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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바라본 이웃 종교의 다름과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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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스님이 바라본 이웃 종교의 다름과 같음

   

 

 

   

  1. 종교 교류의 다섯 가지 방법

 

   먼저 부족한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한국 기독자(?) 교수협의회 회장 이정배 교수님과 이곳까지 인도해 주신 주님의 뜻에 감사드립니다이것은 고 법정스님이 평소 이와 같은 자리에서 매우 자연스럽게 나누던 인사법이기도 합니다오늘 제가 발표할 발제 내용도 이웃 종교와의 교류행적 속에 생생히 살아있는 스님의 육성과 체취를 전해드리는 방식으로 준비된 것임을 미리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법정스님의 행적 속에서 발견되는 인간관계와 사회 활동을 살펴보면 스님이 나툰 다양한 사회적 역할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큰 흐름에 따라 열(10)가지 활동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선 수행자와 명상가로서의 법정.

 2. 경전 번역가로서의 법정.

 3. 문필가로서의 법정.

 4. 민주화 운동가로서의 법정.  

 5. 불교 개혁가로서의 법정.

 6. 자연주의자이며 생태철학가로서의 법정.

 7. 무소유 전도사로서의 법정.

 8. 아름다움을 추구한 미학가로서의 법정.

 9. (문화를 사랑한 다인(茶人)으로서의 법정.

 10. 종교 교류 활동의 모범을 보여준 법정.

   그중에서도 오늘은 ‘종교 교류 모범활동가로서의 법정’에 초점을 맞추어 스님의 행적을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서구사회에서 종교간의 대화와 교류를 위해 앞장서서 활동하고 있는 달라이 라마는 한국의 여성 수도자 모임인 삼소회원들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종교에는 신념을 가져야 하지만 이웃 종교에는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고 했습니다그는 종교 교류를 심화 시키는 다섯 가지 방법을 이야기 합니다그것은

 첫째종교학자들 간의 학술세미나를 통한 교류와 만남.

 

 둘째각 종교 수도자들과 영성체험을 나누는 만남.

 셋째각 종교 지도자들의 교류와 만남.

 넷째이웃종교의 성지를 순례하는 기회를 갖는 것.

 다섯째사회적인 문제에 종교가 서로 힘과 지혜를 모아 협력하는 것 등입니다.

  법정스님은 달라이라마가 제안한 다섯 가지 방법을 완벽하게 실천하여 종교교류의 큰 모범을 보여준 분입니다불일암 시자 시절의 제 기억을 되살려 보면 스님은 불자들 보다 천주교나 기독교인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훨씬 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당시 스님 글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불일암을 찾아왔는데 그중에서도 천주교인들이 가장 많았습니다스님은 그들을 천주보살(天主菩薩)이라 불렀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또한 스스로를 천불교(天佛敎신자라 불렀습니다그러니까 스님은 뜻하지 않게 천불교 교주가 된 셈입니다.

  스님의 이웃 종교와의 열린 교류 활동을 살필 수 있는 사례는 한두 가지 아닙니다스님은 유럽 여행 중에 장익 주교님의 도움으로 베네딕도 성인의 수행처인 수비아코를 참배하며 묵상에 잠겼고 성 베네딕도의 수도규칙을 <맑고 향기롭게소식지에 소개하기도 했습니다스님은 또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머물던 아씨시를 둘러보면서 마치 인도의 불교성지를 참배할 때처럼 아주 크나큰  성스러움과 성인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왔다고 고백한 적도 있습니다.

 

 

   2. 종교를 바꿀 생각은 하지 마라

 

  저는 법정스님의 다비식을 앞두고 강원도 오두막을 찾아 갔습니다스님이18년 이상을 머물던 암자 주변에는 손수 심어놓은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루었고 그 숲은 신성한 빛을 내뿜으며 스님의 고결한 영혼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보통 나무들은 꽃열매 등의 모양을 따서 꽃말과 이름을 짓지만 자작나무는 기름기 머금은 흰 나무껍질이 자작자작 불에 타는 소리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다비식을 올리던 날이었습니다관도 수의도 없이 평소 입던 승복위에 가사만 한 장 덮은 스님의 육신을 태우는 불길은 연꽃으로 변하면서 자작자작하는 맑고 투명한 소리를 연출해냈습니다‘화중생련(火中生蓮), 불꽃 속에 연꽃이 핀다’는 말 그대로였습니다그 때 저는 작은 불씨들이 검은 하늘로 솟아오르며 사람들 가슴속에 한 점 불씨로 타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그 불씨는 청정과 청빈의 불씨요 친절과 자비의 불씨였습니다이제 그 불씨를 키우는 일은 살아남은 저희들의 몫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비를 올리던 그날 저는 불연 듯 불일암을 찾았습니다불일암은 제가 출가할 때 세워지기 시작해 수계할 때 낙성을 했으니(1975년 9월 2저의 산중 나이와 같은 나이 입니다스님의 다비를 마치고 불일암에 들어서니 마당 저쪽에 한손에 묵주를 돌리며 기도하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습니다그는 목포 초당대 교수 문현철 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저는 그분이 간직한 자기만의 법정스님 이야기를 듣고 정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이제껏 알지 못했던 법정스님의 진면목과 종교의 틀을 넘어선 인간의 신선한 뜰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방황하던 십대에 담임의 권유로 법정스님의 『산방한담』을 읽고 불일암을 찾아가 당돌한 질문으로 법정스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의 뒷바라지로 조선대 법대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 더 이상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학업을 포기하려고 했을 때 스님이 등록금 고지서를 광주 베토벤 음악 감상실에 맡겨 놓으라고 했습니다스님은 그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빠짐없이 등록금을 보내주었습니다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소개하라 해서 가난한 친구 세 명을 소개해 그들도 졸업 때 까지 도움을 받았습니다그들은 이제 대학교수병원 의사 등이 되어 사회활동을 하고 있지만 스님을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문교수는 스님은 도움 받은 사실을 일절 입 밖에 내지 못하게 해서 지금까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는데 스님 다비식을 모신 후에야 비로소 입을 연다고 했습니다.

  대학 다닐 때 가톨릭 입문을 준비한 그는 다니던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습니다그런데 바로 그날교통사고를 당해 두 주일간 사경을 헤매고 다섯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습니다그는 퇴원하자마자 송광사 불일암을 찾았습니다법정스님은 홀쭉해진 그를 보고 “어디 아팠어?”하고 물었습니다그는 “하느님이 계시다면 나를 치인 차를 붙잡아 주지 않고 영세 받은 날 교통사고를 나게 할 수 있느냐나도 스님처럼 불교를 믿고 싶다.” 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천주님은 그런 만화 같은 일을 하는 분이 아니다이런 아픔을 통해 네가 더욱 성숙해져 더 큰 시련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그리고 “천주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나 모두 한 보따리 안에 있는 것이니까 번거롭게 종교를 바꿀 생각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저를 만난 그날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는 심정으로 불일암 마루 앞에서 “스님스님 계세요저 왔습니다현철입니다!” 하면서 목이 메어했습니다.

 

  3. 종교 교류 활동의 대표적인 사례들

 

   스님의 대표적인 종교교류 활동을 행적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970년 초반 강원룡 목사님이 중심이 된 크리스챤 아카데미의 종교간 대화모임과 여섯 개 종교지도자모임에 불교계를 대표하여 활동했습니다또한 유신독재에 맞서 민주회복 국민선언 각계인사 이른 한명 가운데 유일한 불교인으로 참여하였습니다그때 스님은 불교 교단으로부터 몰지각한 승려로 비난을 받았고 정보부 형사들의 감시는 물론 편지까지 사전 검열을 받는 불편함과 힘겨움을 감수해야 했습니다그런 생활은 불일암까지 이어졌습니다스님은 함석헌 선생과 장준하 선생계훈제 선생 등 민주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사회의식과 종교인의 시대적 사명에 눈 뜬 계기가 되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습니다그때의 인연들이 씨앗이 되어 종교교류의 폭이 심화되고 동지적 우정을 나누게 된 것입니다스님은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 활동했고 크리스챤 아카데미 운영위원으로 종교간 대화모임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1985년 6월 26조선일보 21세기 모임에서는 서광선 목사님과 법정스님의 특별대담 <다종교사회한국 종교의 길이란 주제로 심도 있는 대화를 소개하였습니다또 1997년 52일자 평화신문은 부처님 오신날 기념으로 장익주교님과 스님의 대담 프로를 마련했는데 이 때 주고받은 스님의 말 한 대목을 옮겨 보겠습니다.

  “불교에서는 만난다는 것을 시절인연으로 풀이합니다시절인연이 오면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난다는 거지요친구간의 만남이라는 것도 종교적인 빛깔이나 의식을 넘어서 마음과 마음이 접촉될 때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사실 주교님을 만날 때는 내가 중이라거나 상대방이 사제라는 의식이 전혀 없습니다그렇게 허심탄회 하게 만나다 보니 어떠한 벽도 없습니다만나서도 종교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종교 간의 벽이 허물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대화가 있어야 되고 대화가 있기 위해서는 독단적인 울타리를 넘어서 모든 종교가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윤리인 공동선을 가지면 용해가 됩니다.

  1997년 5『기독교 사상』은 부처님 오신날을 축하하는 글을 실었습니다.그 내용은 김경재 목사님이 법정스님께 보내는 편지형식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그때의 내용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석굴암의 미소는 만물의 인연생기의 실상을 꿰뚫어 보는 깨달은 이의 법열과 자비심의 미소요십자가의 절규는 민중과 만인의 고난을 온몸으로 참여한 사랑하는 이의 사랑의 고통이었습니다전자는 빛이 파동으로 움직이는 모습이요후자는 빛이 입자로 돌진하는 모습이었습니다빛은 파동이면서도 입자이듯이 불교와 기독교는 우주적 종교의 가장 전형적인 두 가지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최근 자연 환경의 훼손이 극에 달하고 남북분단의 현실 속에서 사회윤리의식과 도덕성이 황폐될 대로 된 듯한 이 민족사의 위기에 모든 종교인들 특히 불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마음과 뜻을 합하여 생명을 살리고 인간성을 지키는 일에 더욱 협동하고 뜻을 합해야 겠습니다.

  스님은 불교는 기독교에서 종교의 사회활동방식을 배우고 기독교는 불교에서 한국의 문화전통과 명상전통을 배우면서 자신의 영역을 풍성하게 하고 심화시켜 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젊은 날의 스님은 우리사회의 불의에 항거하고 불교의 타락과 세속화를 질타했습니다종교는 다르더라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오히려 가족이나 도반처럼 아끼고 깊은 정을 나누었습니다.사회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청정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하지만 스님은 이 부분을 매우 엄격하고 철저하게 지켜낸 분입니다예를 들면 식사자리에서 “스님약으로 고기 좀 드십시오그리고 술 한 잔만 올리겠습니다.” 하면 “내가 먹을 수는 있지만 이제까지 지켜온 지조를 지키려고 하니 여러분이 도와주세요그리고 나는 전생에 많이 먹었으니까 여러분들 많이 드세요.” 하고 사양했습니다.

  법정스님은 “주는 사람받는 사람주는 물건 이 세 가지를 모두 잊어버려야 참된 배품이 된다”고 했습니다이웃 종교와의 벽을 허무는 종교교류를 통한 여러 활동이 결국은 자기 종교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그러나 스님은 “불교를 제대로 알려면 불교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고 수행자는 수행자라는 자기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했습니다스님이 가장 싫어한 호칭이 ‘큰 스님’이었는데 스님은 그 흔한 호 하나 갖지 않고 <비 구 법정>이라는 단 네 자의 이름으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4. 길상사의 마리아 관음이 보여주는 커다란 어울림

 

   스님은 단순한 삶을 추구하고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반찬은 세 가지가 넘지 않게 했고광목옷을 손수 빨아서 풀 먹여 입는 것을 좋아했습니다손수 장작을 쪼개고 군불을 지피며 채마밭을 일구고 연장을 씻어서 제자리에 잘 정돈해 두었습니다다기 한 벌책 몇 권밭 한 떼기로 큰 재산을 삼았던 스님은 뜻밖의 인연으로 대원각을 기부 받아 길상사를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개원식에는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들이 종교를 초월하여 축하의 마음을 보내왔습니다그때 스님은 이렇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이 길상사는 가난한 절이면서도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1997년 12월 14)

  길상사는 스님이 개원법회에서 다짐한 대로 불자들만을 위한 절이 아니라 종파와 종교를 초월하여 누구나가 느긋하게 산책하며 마음을 쉬고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개방되었습니다산책로를 만들어 들꽃을 심고무소유의 철학을 담은 명구들을 나무에 새겨 달고“침묵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작은 선방을 개설했습니다.

  그러나 길상사의 가장 큰 명물은 일주문에 들어서면 바라다 보이는 ‘마리아관음’일 것입니다길상사의 관음보살상은 가톨릭 미술가협회 회장인 최종태 교수를 어머니로 법정스님을 아버지로 하여 2000년 4월 20일 이 세상에 태어난 특별한 내력을 담고 있습니다마리아 관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인연담을 소개 합니다.

  가톨릭 미술가협회 회장으로 성당의 성모상을 많이 조성한 최종태 교수는 조각의 완성이 관음상이라 여기고 마음속에 밑그림을 그려 두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그는 법정스님이 설립한 시민단체인 <맑고 향기롭게>의 이사이며 가톨릭 신자인 정채봉 작가에게 자신의 소망을 전했습니다최종태 교수를 만난 법정스님은 단번에 의기투합하여 무애자재한 미륵반가사유상의 느낌을 살려 관세음보살상을 만들어 보라고 부탁했습니다최종태 교수는 법정스님의 뜻을 받들어 단 하루 만에 관음상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높이 1.8m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관음상은 이마위에 오불보관을 쓰고 왼손에는 질병의 고통을 없애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감로보병을 들고 있습니다오른손은 가슴위로 높이 들어 올려 모든 두려움을 벗어나 영원한 안식을 얻으라는 의미의 시무외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전체적인 분위기는 깊은 슬픔에 잠긴 성모마리아상을 연상케 하고 알듯 말듯한 은은한 미소는 사랑의 어머니를 표현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최종태 회장이 조성한 길상사의 관음상은 전통 불교조각의 명상미에 가톨릭분위기를 가미하여 종교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최교수는 고마운 인연을 기려 모든 작업을 무상으로 해 주었습니다이 관음상은 불자들은 물론 예술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가톨릭 신자들의 순례지가 될 만큼 종교 화합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완성된 관음상을 보신 법정스님은 “그저 예쁘기만 해서 좋은 불상은 아니다.불상은 그 시대 작가의 눈으로 재조명되고 창작 되어야 하는데 그동안 불교계는 너무 융통성이 없었다그러던 차에 최회장이 고통과 기쁨이라는 양면을 지닌 자비의 화신인 관음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잘 표현해 주어 고맙다또 이를 성모님의 이미지와 조화시킨 것이 돋보인다.” 고 찬탄했습니다.

  길상사는 가톨릭 신자들과 수녀님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으로 이름이 났습니다마리아상을 닮은 관음상 앞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성모송을 바치며 기도를 올립니다또 불자들은 촛불을 올리고 ‘관세음보살’ 기도를 올립니다그래서 기도를 받는 길상사 관음상은 정체성을 잃고 혼란에 빠질 때가 많았습니다그때 관음상의 작은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말 한마디가 “나는 누구인가”입니다관음상의 이런 고민을 없애 드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 “마리아 관음”입니다불교와 천주교가 한 몸이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난 마리아 관음은 천불교 신자뿐 아니라 미래세대의 우리 후손들에게도 커다란 종교적 어울림을 줄 것입니다.

 

 

  5. 법정스님 명동성당 강론

 

  1998년 2월 24서울 명동성당 제대 앞에는 가톨릭 사제가 아닌 승복을 입은 법정스님이 서 있는 진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법정스님의 명동성당 강연은1997년 12월 14일 김수환 추기경이 길상사 개원법회에 참석한 답례 성격으로 이루어졌습니다법정스님은 평화신문의 요청을 받아들여 아기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 메시지를 띄운데 이어 명동성당의 요청을 받고 <경제위기극복과 청빈의 삶>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이날법정스님은 강론에 앞서 “명동성당에서 강론을 하게 된 인연에 감사하며 명동성당 축복 백 주년을 맞는 해이 자리에서 강연을 하게 해 주신 천주님의 뜻에 거듭 감사한다”고 말해 신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습니다.

 

  법정스님은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는 소음과 다름없다”고 했습니다누에가 거친 뽕잎을 먹고 비단실을 뽑아내듯이 스님은 대장경이라는 큰 숲에서 청정한 잎들을 모아 유려하고 감성적인 우리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롭게 들려주었습니다스님의 그런 설법정신은 이웃 종교를 향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스님은 상대방 종교의 언어와 정서로 대화하고 글을 쓰는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가톨릭에 대해서 쓴 스님의 글을 본 어떤 신자는 법정스님은 승복만 입었지 마음속에는 천주님을 모시고 사는 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실제로 법정스님은 봉은사 다래헌과 불일암에 머물 때 서가 한편에 성모상을 모시고 촛불 공양을 올리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통하여 많은 친교를 나누었던 해인수녀님은 가르멜 수녀원에서의 법정스님 강연내용을 회상하면서 눈감고 들으면 그대로 가톨릭 수사님의 말씀이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다음은 법정스님이 이해인 수녀님에게 보낸 편지 답신 내용 중 일부입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난들로 속상해 하던 수녀님의 그늘진 속뜰이 떠오릅니다사람의더구나 수도자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 한다면 자기도취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신의 조영 안에서 볼 때 모든 일은 사람을 보다 알차게 형성시켜 주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뜻을 귓등으로 흘리고 말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수녀님예수님이 당한 수난에 비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겪는 일은 조그만 모래알에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기에 옛 성인들은 오늘 우리에게 큰 위로요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심기일전 하여 날이면 날마다 새날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위의 편지글을 보게 되면 누가 불교에 몸담고 있는 스님의 문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주임 신부가 신자의 상담에 답해주는 글이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떡일 내용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성북동 길상사가 개원 하던 날 길상사 법당을 찾아와 기쁜 마음으로 축사를 해주고 농담과 유머로써 종교 간의 벽과 개인 간의 거리를 금방 허물어 버린 분입니다또 부처님 오신날에는 아무 연락도 없이 길상사 마당으로 들어오셔서 법정 스님과 함께 나란히 앉아 연등 아래에서 산사 음악회를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다시보기 어려운 위대한 어른들의 천진한 만남이 종교 교류의 큰 모범으로 남아 있습니다길상사 측에서는 초파일 연등 공양금의 10%를 서울 가톨릭 사회 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성가정 입양원” 의 후원 기금으로 기탁하였습니다다음은 김수환 추기경을 떠나보내며 법정 스님이 쓴 추도문인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의 내용입니다.

 

  “사람은 결코 태어나면서부터 단순한 것이 아니다자기라는 미로 속에서 긴 여로를 지나온 후에야 단순한 빛 속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다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고 하느님은 단순한 존재이다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느님께 가까워지면 질수록 신앙과 희망과 사랑에 있어서 더욱 더 단순하게 되어간다그래서 완전히 단순하게 되어갈 때 사람은 하느님과 일치 하게 되는 것이다우리 안의 벽과 우리 밖의 벽그 벽을 그토록 허물고 싶어 하던 당신다시 태어난다면 추기경이 아닌 평신도가 되고 싶다던 당신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이 땅엔 아직도 싸움과 폭력미움이 가득 차 있건만 봄이 오는 이 대지에 속삭이는 당신의 귓속말,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 하라사랑하고 또 사랑하라그리고 용서하라.

  소망을 묻는 최인호 작가에게 스님은 “내게 꿈이 있지요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남은 삶을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고 싶군요그리고 추하지 않게 그 삶을 마감하고 싶습니다단순하고 절제된 삶이 출가수행자의 삶이요,단순한 존재인 신께 나아가는 길이겠지요”라고 말했습니다.

 

 

  6. 맺는 말

 

  강원용 목사님과 김수환 추기경그리고 법정 스님은 우리 시대의 세 종교를 대표하는 큰 어른들이었습니다강원룡 목사님은 크리스챤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종교간 대화 모임을 추진하였습니다그 인연으로 종교간의 만남과 교류가 심화되고 종교간의 벽을 허물고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큰 뜻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중국 남북조 시대에 호계삼소 (虎溪三笑)로 유명한 역사인물들이 있습니다.도교의 육수정유교의 도연명불교의 혜원 법사가 그 주인공들입니다그러나 이분들은 실제의 역사공간 속에서는 한 번도 함께 어울린 적이 없습니다중국 역사에서 호계삼소 (虎溪三笑)의 고사가 만들어진 것은 그 당시 벌써 유·불·선 삼교간의 비난과 논쟁이 그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그때 민중의 염원은 세 종교가 화합해서 민중의 고통을 구제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요큰 가마솥을 받쳐주는 세 발처럼 삶들에게 안정과 평화를 주고발이 셋 달린 까마귀가 썩은 고기를 먹어 치우듯 세상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참된 종교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았을까요생각해보면 세상의 종교는 이름은 달라도 그 본질은 사유화될 수 있는 이질적인 영역이 아니라 공기나 침묵처럼 온 중생이 함께 공유하는 공공영역이랄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이루지 못한 세 종교의 화합을 이루어 낸 세 분의 어른들 앞에 다시 큰 절을 올립니다.

 

  지금까지 <법정스님이 바라본 이웃 종교의 다름과 같음>이라는 주제를 놓고 관련된 스님의 행적을 대충 살펴보았습니다스님은 불교라는 틀에 매이는 걸 거부했고 수행자라는 상에 매이는 것을 힘들어 했습니다그러면서도 출가 수행자의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고 항상 처음 시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이웃 종교를 대할 때도 다른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생각과 뜻이 맞으면 깊은 우정과 환대로 가족적인 정을 나누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말과 글과 일치하는 삶을 살았고 체험하지 않고 깨닫지 않은 사실은 글로 쓰지 않았습니다그러기에 법정 스님이 남긴 글과 삶과 죽음 나아가 이웃 종교와의 교류흔적들은 스님이 떠난 뒤에도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이 이런 귀한 자리를 빌어 <법정 스님이 바라본 이웃 종교의 다름과 같음>이라는 주제로 발제하게 된 것을 대단히 송구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법정 스님이 이해인 수녀에게 써준 게송 한 구절을 음미하면서 오늘 발제를 마칩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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