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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관정(灌頂) 의식

아남카라

 티베트의 관정(灌頂) 의식

관정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법을 전해주고 전해받는 밀교의 독특한 의식이다. 이 의식을 통하여 밀교에 입문하려는 사람은 스승으로부터 밀교의 교리와 행법을 전해받고, 스스로 그런 법을 전할 수 있는 자격을 인가받는다.

원래 관정은 인도에서 제왕이 즉위할 때 이루어지던 의식이었는데, 대승 불교에서는 이것을 받아들여 보살이 불위(佛位)를 계승하는 의식으로 전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밀교에서는 여래의 다섯 가지 지혜를 상징하는 다섯 개의 병에 든 물을 가지고 제자의 정수리에 뿌려서 부처님의 씨앗을 끊지 못하게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 관정은 단순히 비밀의 가르침을 사자상승(師資相承)하기 위한 의식으로써 뿐만이 아니라 밀교를 널리 홍포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 사람으로 이와 같은 의식에 의해서 관정을 받은 인물에는 통일 신라 시대의 입당 유학승인 현초, 불가사의, 의림과 같은 인물이 있다.

관정은 인도로부터 중국, 한국, 일본 등의 동북아시아에 전해진 것과 티벳, 네팔 등의 서북아시아에 전해진 것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 근본은 다르지 않고, 전해진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종류의 많고 적음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동북아시아에 전해진 의식에서는 관정을 받는 자의 자격과 진행 정도에 따라서 다섯 종류의 삼매야(三昧耶)로 나누고 있다. 여기서 삼매야란 경지를 일컫는 말로 다섯 종류의 경지에 따라 분류한 다섯 종류의 관정을 의미한다.

첫번째 단계는 만다라에 예배하고, 그에 따른 의식을 보고 들음으로써 선의 씨앗을 양육시켜가는 경지이다.

두번째 단계는 관정도량에 인도되어 투화득불(投華得佛)*에 의해서 인연이 있는 불보살과 결연하는 경지이다. 이것을 결연관정(結緣灌頂)이라고 한다.

세번째 단계는 이미 투화득불을 통하여 결연을 맺은 불보살의 인계와 진언을 베푸는 경지이다. 이것을 수명관정(壽命灌頂)이라고 한다.

네번째 단계는 밀교의 스승으로써 자기본존의 인계와 진언을 인가하는 경지이다. 이것을 전법아사리관정(傳法阿寐梨灌頂)이라고 한다.

이들 네 종류의 관정법은 의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관정이다. 여기에 대해서 다섯번째 단계의 관정은 외형적인 의식이 아닌 무형식, 무활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비밀관정의 경지이다. 이것을 인법관정(人法灌頂)이나 이심관정(以心灌頂)이라고 한다.

즉, 앞의 네 종류의 관정은 실제 외형적으로 의식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다섯번째의 관정은 마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무형, 무활동의 관정이다. 이 다섯 종류의 관정 중에서 가장 널리 전파된 것은 결연(結緣)과 수명관정(壽命灌頂), 그리고 전법(傳法)의 세 관정이다.

티벳에서는 관정을 방쿨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종교 수행자가 지녀야 할 힘을 준다는 의미다. 관정은 티벳 밀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소승과 대승의 차이는 자신만의 깨달음을 추구하느냐 그렇지 않고 이타행을 위해서 정진하느냐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대승과 밀교의 차이는 관정의식을 베푸느냐 그렇지 않느냐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본다. 이와 같이 티벳의 관정의식은 밀교의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따라서 밀교의 가르침을 추구하려고 한다면 먼저 이 관정이 베풀어지고나서 비로소 밀교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즉, 이 관정이 베풀어지고나서 만다라를 친견하는 것이 허가되며, 그런 뒤에 밀교의 경전, 의궤의 독송이 허가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관정에도 근기에 따라서 여러 종류의 단계가 있다. 간단히 금강선(金剛禪)을 베풀고 불보살과 인연을 맺는 결연관정으로부터 최고의 밀교행자를 위한 전법관정에 이르기까지 이 관정의식을 통해서 밀교의 법등(法燈)이 스승으로 부터 제자에게 바르게 전승되어가는 것이다. 티벳에서 밀교의 전승자가 되려면 병관정(甁灌頂), 비밀관정(秘密灌頂), 반야지관정(般若智灌頂), 언어관정(言語觀頂)을 차례로 받아야 한다.

여기서 비밀, 반야지, 언어의 세 종류 관정은 무상유가(無上瑜伽)밀교의 특수한 관정이며, 티벳 밀교 중에서도 각 종파에 따라서 다르고, 고파에 속하는 디궁카규파에서 베푸는 관정과 게룩파의 관정도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다. 그러나 네 종류의 관정을 베푸는 것은 각파에서 공통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 네 종류의 관정은 각각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로 병관정에서는 금강유가(金剛瑜伽) 만다라를 가지고, 다섯 부처님과 다섯 가지 지혜를 관정하고 탐심, 진심, 치심, 자만심, 질투심과 같은 번뇌의 티끌을 정화해서 불퇴전의 스승의 자리에 이르도록하여 변화신으로 전환시킨다.

두번째로 비밀관정에서는 세속보리심(世俗菩提心) 만다라를 가지고 세속의 몸을 정화하여 금강의 몸으로 수용신으로 전환시키는 관정을 베푸는 것이다.

세번째로 반야지관정에서는 반야모비밀처(般若母秘密處) 만다라를 가지고 환희심을 일으켜서 정신적인 티끌을 정화하여 법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관정하는 것이다.

네번째로 언어관정에서는 승의보리심(勝義菩提心) 만다라를 가지고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죄업을 정화하여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라는 경지에 도달하여 티벳 밀교의 이상적 존재인 금강살타를 체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이론적으로 이해했다고 할지라도 관정의식에 앞서서 꿈으로 점치고, 치목을 던지고, 꽃을 던져 불보살과 결연을 맺고, 서원이 담긴 물을 수여하는 등의 모든 의식은 비밀의 베일에 감추어진 내용이며, 불가사의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튼 밀교의 의식 중에서 관정의식은 가장 신비적인 내용을 가진 것으로써 티벳에서마저 흔히 행해지지 않은 비밀스런 의식인 것이다.

투화득불(投華得佛)*: 진언종에서 관정 때 꽃을 만다라 위에 던지고 그 꽃이 떨어진 곳에 따라 자기에게 인연이 있는 부처님을 구하여 자기가 모시는 본존(本尊)으로 모시는 것

 

자료 출처 : 월간 『붓다』 2002년 3월호 (통권 제 169호)

글쓴이 : 허일범 (진각대학교 밀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