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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 마음은 티베트에 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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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티베트는 어디에... [소슬바람의 평화로운 책읽기⑧] 아마 아데 지음 <그래도 내 마음은 티베트에 사네> [출처 : 오마이뉴스] 박현주(nabi8) 기자 ▲ <그래도 내 마음은 티베트에 사네> ⓒ 궁리 20세기가 '야만의 세기'로 불리는 것은 인간 자유의 외침을 전지구적인 전쟁을 통해 폭력적으로 억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20세기만큼 인류 역사상 인간이 타고난 자유의 권리를 폭넓게, 효과적으로 획득한 시대도 드물다. 표면상으로라도 민주주의가 상식적인 정치이념으로 각광받았고,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로부터 많은 식민국가들이 해방되었으며, 여성은 수천 년 동안 하등한 성으로 살았던 굴종의 세월을 찢고 참정권을 보장받았다. 그 역동적 역사의 그늘이라고 해야 할까? 중국 인민해방군이 제국주의와 결탁한 국민당과의 오랜 내전 끝에 마침내 승리하던 해, 중국의 변방 티베트에서는 참혹한 비극의 서막이 오른다. 중국 공산당은 집권과 동시에 티베트 침공을 개시했고, 티베트는 중국의 폭정 아래 온 국토가 감옥이 된다. 티베트의 정치적 지도자이자 정신적 지주이기도 한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티베트 침공 후 외국으로 망명하여 현재까지 독립운동을 이끌고 있다. 참혹한 비극의 서막 오른 티베트 이 책의 지은이 아마 아데는 중국 공산정권 치하에서 27년간 옥살이를 한 티베트 여성이다. 그녀는 중국과 접경을 이룬 티베트 동부지역 캄에서 태어나 자랐다. 1950년 인민해방군이 캄 지역을 침공하자, 그녀는 이에 저항하는 캄파 게릴라를 지원하며 지하 여성운동 조직을 결성한다. 그러나 아데는 고문을 못이긴 동지의 자백으로 1958년에 체포되어 27년이라는 긴긴 옥살이를 시작한다. 아데가 받은 공식적으로 받은 형기는 16년이었지만 형기를 모두 채우고도 11년간이나 더 수감돼 있었다. 이는 불교를 버리고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겠다는 맹세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티베트 죄수들이 종교적 신념을 부정하지 않으면 형기가 끝나도 석방하지 않았다. 불교를 버리지 않았던 아데는 감옥과 강제수용소 등을 전전하며 참혹한 티베트의 실상을 온몸으로 겪게 된다. 티베트의 독특하고 고풍스런 불교 사원은 감옥으로 개조되었고, 아름다운 골짜기 곳곳에 강제노동수용소가 세워졌다. 수용소의 풍경은 그야말로 지옥의 형상이었다. 수시로 학살이 이루어졌으며 수용자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데, 마치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의 모습과 흡사하다. 아데는 수감된 지 5년 만에 처음으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굶주림과 강제노역으로 티베트인들은 감옥에서 하나둘씩 스러지기 시작하고, 아데 역시 건강이 악화되어 죽는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아데는 노역을 거부하고 조용히 죽기로 결심한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신앙의 실천밖에는 없다고 여긴 그녀는 옷자락을 찢어 108개의 매듭을 지어서 염주를 만들고 의식을 잃을 때까지 기도문과 만트라를 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아데는 불행의 종말을 억지로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리하여 다시 강제노역을 견디면서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 캄 지역에서 악명높은 고탕걀고 강제노동수용소로 이송된 죄수는 모두 100명이었는데, 그중 살아남은 사람은 단 4명뿐이었다. 그 4명에 속한 아데는 민약란가 인근의 쉬마차 강제노동수용소로 이감된다. 이 지역은 중국의 침공 이전에는 아름다운 명소였지만, 인민해방군 주둔 이후 21개에 달하는 교도소와 강제노동수용소가 촘촘히 들어서게 된다. 100명 중 살아남은 이는 4명뿐 아데는 교도소에서 돌을 나르며 자신에게 묻는다.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중국인들은 티베트에 들어와서 우리의 재산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종교와 그리고 우리의 모든 꿈을 빼앗고 급기야는 노예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아데와 감방 동지들은 신께 기도하는 일 외에는 이 고난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와 동지들은 밤마다 기도한다. 티베트가 독립되기를, 종교의 자유를 갖게 되기를, 평화로운 시절로 돌아갈 수 있기를….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를 침공한 목적은 티베트인이 공산주의 이념을 받아들여 '종교적 악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중국은 티베트의 값나가는 문화유산, 석탄 등의 지하자원과 풍부한 산림자원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인민해방군은 티베트 사원의 불상, 벽화, 고서적 등을 대대적으로 반출하기 시작한다. 아데는 국보급 문화유산이 함부로 뜯겨서 짐짝처럼 실려 나가는 것을 가슴 아프게 바라본다. 티베트의 울창한 산림은 마구 훼손되는데, 중국엔 마치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것처럼 티베트의 나무를 자르고 또 잘라간다. 중국은 약탈한 자원의 원활한 수송을 위하여 철도와 도로를 건설하고 토목 공사에 티베트인들을 강제 동원한다. 금불상과 석탄과 목재가 중국으로 실려 나가고 그 대신 본토 중국인들이 열차를 타고 티베트로 몰려왔다. 중국정부는 티베트에 한족을 이주 정착시킴으로써 티베트의 고유한 공동체 문화를 해체하려 한다.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한 목적은? 아데의 고통스런 감옥살이는 문화혁명이 끝나고 등소평이 집권하면서 비로소 끝이 난다. 1958년, 20대 젊은 아기 엄마의 몸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간 지 27년만인 1985년에 50대 노인이 되어 집에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고향에는 그녀를 반겨줄 가족이 남아있지 않았다. 부모와 형제는 목숨을 잃거나 흩어졌고, 어린 아들은 그녀가 중국 공안에게 끌려간 직후 충격으로 사망했다. 아데는 석방된 지 2년 후에 조국 티베트를 떠나 인도로 망명한다. 그리하여 달라이 라마의 망명 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 머물며 지금까지 티베트의 실상을 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국제재판소에서 티베트의 참상을 증언하고 인권을 호소하는 활동에 남은 인생을 바치고 있다. 자본의 단맛을 보면서 급경사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은 이제 티베트에 대하여 과거에 행하던 20세기식 물리적 폭력을 접고, 그 대신 달러를 벌어들이는 관광 상품으로 알뜰하게 활용하고 있다. 라싸와 북경을 잇는 새로운 철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원인 티베트의 청장(靑藏)고원을 가로지르며 전 세계 관광객들을 황홀케 하고 있다. 청장열차를 타고 티베트의 비경에 감탄할 이들이 티베트의 독립이나 자치 요구에도 관심을 기울여주면 좋으련만, 티베트의 평화가 20세기엔 물리적 폭력에 억압받고 21세기엔 물질의 유혹에 시험당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내 마음은 티베트에 사네> 아마 아데 지음, 조이 블레이크슬리 기록, 김은주·김조년 옮김, 2007 궁리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