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 순례기21 “성스러운 호수, 마나사로바(Manasarova) Ⅰ” 글· 사진 다정(茶丁) 김규현 불교의 시작은 바로 여기에서… 비록 육체적으로는 고통스러웠지만 영적으로는 무한히 충만하였던 수미산‘산-돌이’의식을 무사히 끝마치고 다음 순례지로 이동할 준비를 하면서 이미 마음은 신비의 호수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수미산의 베이스 캠프(B.C), 더르첸마을에서부터 펼쳐진 넓은 벌판 가운데 누워 있는 태고의 전설이 가득한 호수는 저녁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어서 신비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는 히말라야의 굴라만다타봉(7,728m)의 만년설이 역시 저녁 햇살에 빛나고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고산병 증세로 정상이 아닌 눈을 더욱 황홀하게 만들고 있었다. 뒤처진 일행 때문에 30Km 거리의 마나사로바 호수가의 치우굼파에 도착한 때는 이미 어둠이 호수에 깔리고 난 뒤였다. 일행은 ‘산-돌이’, 즉 코라(Kora)를 힘겹게 끝낸 터라 모두 탈진상태에 있었지만 신성(神性)을 마주 대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을 하고 말을 아끼며 조용히 움직였다. 잠자리를 배정받고 우리는 다시 민박집 거실에 모여 들었다. 자축연을 하기 위해서였다. 야크똥이 타고 있는 난로가에는 때 아닌 파티가 벌어졌는데, 각기 준비한 요기거리에다 차와창(티벳의 민속주) 그리고 맥주까지 곁들인 풍성한 식탁이었다. 모두 잔을 따라 낙오자를 부축하여 코라를 해준 가이드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하는 등 축하 분위기였다. 해동의 외로운 순례자 또한, “타시데릭(Good Luck), 푸부 킴 (Mr 金)!” 하면서 축하인사를 건네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번 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성취한 것 같은, 그런 홀가분함이 가슴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실로 오랫만의 술은 고산지대 특유의 가슴의 콩닥거림과 이명현상을 몰고 왔지만 수미산 화두는 놓치지 않았다. 이번의 코라는 난해한 경전 속의 숲속에서 희미한 길을 찾아내어 ‘신화 속의 나라의 전설적인 산’을 다녀온 것이었다. 신화가 퇴색한 말세시대인 현대에서는 신화의 복원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보면 인류를 과학문명의 종말에서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신화의 복원’에서 부터 시작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이번 코라를 통해 그것을 확인한 셈이지만…. 신비의 호수 마나사로바에서의 첫 새벽은 맑고 쾌청하였다. 특유의 푸른 하늘빛도 여전하였다. 호수는 하늘과 닿아 있어 하늘과 호수는 둘이 아니었다. 글자 그대로의 천호(天湖)-하늘호수였다. 이 호수 가에서 불교는 시작되었다. 카필라성의 마야 부인은 어느 날 천신들에게 이끌려 대설산을 넘어와 정화(淨化)의 일번지인 이 호수로 와 이 맑은 물로 목욕을 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마야 부인의 육신은 인간으로서의 불순을 정화하여 신성(神性)을 갖게 되면서 석가세존, 싯다르타를 잉태할 수 있었다. 아뇩다지가 바로 여기…. 이렇듯 불교란 위대한 종교의 수레바퀴가 구르기 시작한 시원지인 이 신화 속의 호수는 불전에는 아뇩다지 호수로 빈번히 등장한다. 붓다의 육성녹음에 가까운 원시경전인 아함부(阿含部)에서부터 나타나는 아뇩다지의 기사는 대·소승의 경론에 ‘수미산설’에 부속되어 장황하게 나타나는데 이를 요점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염부제‘남섬부주’의 중앙에는 아뇩다지 또는 아나바탑다지(阿那婆塔多池)라는 호수가 있는데 대설산의 북쪽과 향산(香山, 즉 수미산)의 남쪽 사이에 있는 바 주위가 8백 리이다. 금은보화로 치장된 모래사장과 거울 같은 물결은 맑고 푸르다. 보살의 원력으로 용왕이 살면서 시원한 물을 흘려 염부제 전체에 공급하고 있다. 호수에는 사방에 문이 있어서 동은 공작하(孔雀河), 서는 마천하(馬泉河), 남은 상천하(象泉河), 북은 사천하(獅泉河)가 발원하여 흐르고 있다." 경 속의 ‘수미산설’은 크게 수미산 부분과 호수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 산의 묘사가 상징적이며 다소 과장된 반면 아뇩다지의 묘사는 사실적이어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면 위의 구절은 신화라기보다 지리지에 가깝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위의 기사는 거의 사실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위의 구절을 좌표삼아 경전 속의 신화의 세계로 떠나보기로 하자. 염부제주는 우리가 사는 대륙, 즉 사대주설(四大洲設)의 남섬부주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아세아, 또는 인도대륙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아뇩다지 또는 아나바탑다지는 산스크리트어로는 마나사로바, 팔리어로는 아노타타(Anotatta)로서 빛과 지혜를 상징한다. 티벳에서는 마추이초 또는 마핑융초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지금 지도 위에서 일반적으로 불려지는 마나사로바 호수는 그러니까 바로 한역경전 속의 아뇩다지인 것이다. 그리고 이 호수의 위치도 실제 지도상의 좌표와 부합되어 대설산(히말라야)과 향산(수미산, 즉 카이라스) 사이에 있는 것이다. 주위가 8백 리라는 수치도 지금의 이 호수와 그 옆의 호수가 합쳐져 있을 때의 둘레와 거의 가깝다. 전설에는 하나였던 호수가 갈라져 해와 달의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수량이 많을 태고적에는 합쳐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리학자들은 결론내리고 있다. 다음으로 금은보화 운운은 공기가 희박한 이곳에서는 모든 물체가 강렬한 색채로 반사되기 마련이기에 흔한 모래도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용왕의 존재 여부는 독자의 가치관에 맡기고 다음으로는 4대 강의 발원지로서의 문제를 풀이해 보자. 실제로 수미산과 아뇩다지 부근에서 4대 강은 발원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갠지스·인더스, 카르나리, 스트레지 강이 바로 그 강들이다. 경전 속의 공작하, 마천하, 상천하, 사천하가 위의 강들인 것이다. 이상으로 위의 사실들을 종합 분석해 보면 신화 속의 세계는 바로 역사적, 지리적 사실인 것이니 어찌 신비롭다고, 놀랍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12세기 초 이 땅이 배출한 걸출한 밀교성자 미라레빠도 이 호수를 경이롭다고 노래하였다. 자타가 공인한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 불렀다. “마팡융초 ‘아뇩다지 또는 마나사로바’는 명성이 드높아 세상 사람들은 멀리서 칭송하네./ 마팡융초는 초록색 옥구슬 만달라이도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면 청량수가 언제나 넘쳐 흐르네./ 붓다께서 예언하셨네./ 더위를 몰아내는 청량호(淸凉湖)라고…./ 마팡융초는 4대 강의 근원이요 물고기 수달 노니는 낙원이라네./ (中略) 천신들이 목욕하는 호수는 팔공덕수의 시원한 감로수라네./ 장려한 쟘부디샤 숲은 무성하나니 남쪽섬을 이름하여 남염부제주(南閻浮堤洲)라 하도다./ 이보다 경이로운 호수 어데 있으랴. 이보다 아름다운 호수 어데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