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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서 소개문

보련화

이 놀라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솔직히 칼 구스타프 융의 서론적 해설이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융은 이 책을 간략히 해설하면서 한번쯤 읽어 볼 만한 좋은 책이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는 이 책의 초반이 출판된 이후 단 한번도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자신의 연구에 있어서 수많은 근본적 통찰을 이 책을 통해 얻었음을 고백한다고 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위대한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에게 이런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까? 책을 한페이지 한페이지 읽어가면서 놀라움은 경악으로 바뀌었고 책을 마칠 즈음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나의 기존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나 역시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죽은자의 영혼이 다시 태어나기까지 49일간의 여행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환생과 영혼 불멸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영혼 불멸은 그렇다치더라도 환생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생, 영혼 불멸, 사후 세계 등을 믿지 않거나 거부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 책을 읽어 보길 권한다. 왜냐면 이 책은 단순히 환생, 영혼 불멸, 사후 세계 등의 종교적인 교리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죽음의 기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책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우리는 삶은 기리지만 죽음은 두려워한다. 왜일까? 죽음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잃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죽음이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무지하고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도록 하는 두려움과 무관심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진정한 원인임을 분명히 알게된다.


살아 있는 이 순간 자기 자신의 모습과 삶을 진실되게 바라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자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나타나는 어마어마하게 밝고 찬란한 빛에 두려움을 느껴 그 빛이 영원한 해탈의 세계로 인도하는 빛인 줄도 모르고 그 빛을 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빛을 좇아가지 않은 영혼은 49일간의 영혼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런데 그 여행의 각 단계에는 보다 차원높은 세계로 환생할 수 있는 기회들이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명에 둘러싸인 인간은 두려워하며 그 기회들을 피해버리고 결국 마지막에는 남녀가 성행위를 하는 영상에 끌려 다시 어머니의 자궁으로 들어가 인간으로 환생하게 된다.


즉,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저급한 단계이며 영혼이 미명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두려움에 떨다가 도달하는 가장 마지막 단계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표면적인 내용의 전부이지만 각 세부적인 단계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에서 이 책의 진정한 의미를 깊게 명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단순히 믿기 어렵고 말도 안되는 죽은 자의 여행을 말하는 넌센스가 아니다.


 이 책은 결국 산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가를 죽은 자를 통해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자는 죽음에 대해 준비하고 죽음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죽음을 담담하게 때로는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죽음 그리고 우리가 죽은 자를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 가족의 일원이 죽으면 우리는 그를 성급하게 병원 영안실 찬 바닥에 버려둔다. 그리고 병원 또한 죽은 자와 산 자를 철저하게 격리한다. 왜인가? 죽은 자는 사람이 아닌가? 괴물이 되는가? 이 모든 것이 두려움과 무지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폭력이다.


죽은 자를 왜 우리는 좀 더 우리 곁에 두지 못하는가? 그의 몸이 썩어서 악취가 나기까지는 아직은 시간이 있다. 우리의 전통적 장례문화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이 책은 삶과 죽음을 Art의 경지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우리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길 안내자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었다. 다양한 해설이 가미되어 있어 책은 두꺼워졌지만 읽기는 오히려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 사람들은 죽음에 무관심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칼 융은 그의 해설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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