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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 뒷골목 기행

박물관
라싸 뒷골목 기행
 

 
 

티벳일기 13: 라싸 뒷골목 기행

 


조캉사원 뒷골목에서 만난 한 아이가 실뜨기를 하고 있다. by yon\g-han

 

사실 라싸는 하루에 다 둘러보기가 불가능한 곳이다. 규모가 큰 사원만도 조캉을 비롯해 세라사원과 드레풍사원 등이 있고,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인 노블링카와 티벳박물관, 회족 모스크, 수공예단지를 비롯해 조캉 인근의 시장골목과 구시가 거리처럼 헐겁게 둘러보아도 최소 사흘 이상은 걸린다. 티벳의 길안내를 맡고 있는 현지인 가이드에 따르면 제대로 라싸를 둘러보려면 최소한 일주일은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 아직 나는 라싸의 극히 일부분만을 보았을 뿐이다. 티벳의 심장 조캉사원은 라싸에 남은 티벳 전통구역의 중심이기도 한데, 이 곳을 중심으로 옛빛 그득한 오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라싸 구시가의 과일장수. by yon\g-han

 

티벳은 위험하지 않나요? 라싸에 소매치기는 없나요? 내가 티벳에 다녀온 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질문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티벳은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가운데 한 곳이다. 거의 대부분이 티벳 불교 신자인 티벳인들은 처음부터 강도나 소매치기를 할 생각이 없다. 따라서 어디를 가든 범죄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다만 유명한 사원 주변에는 구걸하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많다. 라싸가 한족도시화되면서 유목하던 들판도 잃고, 경제권도 잃은 극빈자들 중 상당수는 구걸로 생활을 유지해가고 있다. 그렇다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1원씩 주다보면 주변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들어 금세 100원이 나가고 1000원이 나갈 수 있으니, 정 이들을 도와주고 싶을 땐 아무도 모르게 슬쩍 찔러주는 수밖에 없다.

 

티벳박물관. by yon\g-han

 

한번은 내가 조캉사원을 나와 시장 골목을 싸돌아다니다 좌판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1원을 주었다가 우르르 몰려든 아이들에게 모두 120원을 강탈(?)당한 경험이 있다. 어쨌든 구걸하는 사람은 많아도 치안은 잘돼 있는 곳이 티벳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의 공안들이 혹시라도 제2의 라싸봉기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24시간 티벳을 감시하고 있으니 티벳의 안전은 역설적으로 중국에 의해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사실은 이런 안전이 티벳인들에겐 엄청난 불안요소에 다름아니다. 심지어 중국의 공안들은 외국인을 집안으로 끌어들여서는 안된다고 티벳인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혹시라도 외국인들이 그들에게 달라이 라마의 근황이라도 알려줄까, 프리티벳을 주장하며 티벳인들을 부추기지 않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다. 당연히 티벳에서는 외국인일지라도 달라이 라마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사진을 지니고 다니다 공안에게 걸리면, 추방을 당하기 십상이다. 

 

티벳박물관에 전시된 화살통(위)과 수공예단지에 전시된 육현금 잠예(아래). by yon\g-han.

 

어느 정도 라싸의 사원을 둘러보았다면, 이제 많은 여행객들이 놓치는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놓치면 후회할 곳들을 둘러볼 차례다.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인 노블링카 앞에 자리한 티벳박물관은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외면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이 곳에는 티벳의 역사와 문화, 종교와 복식, 유목문화와 생활도구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 티벳의 진면목을 알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특히 우리가 잘 몰랐던 티벳의 의학기구와 전통악기, 유목과 관련된 각종 도구와 전통 의복 전시는 꽤 볼만하다. 이 곳에서 내 관심을 끈 것 중 하나는 잠예라는 악기다. 잠예는 기타처럼 생긴 육현금 악기로, 흔히 조캉사원 앞에서도 잠예를 연주하는 걸인과 승려들을 더러 볼 수가 있다.

 

조캉 바코르 골목에 탕카화가들과 탕카가게들이 있다. by yon\g-han

 

때마침 저녁 무렵에 들른 조캉사원 바코르에서 나는 잠예를 연주하는 노스님을 만났는데, 노스님은 내게 1원을 요구했다. 1원에 얼마든지 잠예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감사했다. 바코르에서는 해금을 연주하는 걸인들도 많은데, 이들의 연주는 모두 수준급이다. 또한 바코르 골목에서는 전통 탕카를 그리는 ‘탕카 화가’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어떤 탕카 화가는 10대 초반의 소년을 수제자로 두었는데, 소년의 솜씨가 심상치 않았다. 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차마고도를 따라 운반돼 온 윈난산 차 도매상도 흔하게 만난다. 지금은 중띠엔으로부터 그래도 차가 다닐 수 있는 차도를 따라 운반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말과 나귀만 다니던 차마고도를 따라 라싸까지 운반되던 귀한 차다.

 

바코르 골목의 차도매상(위)과 야크버터를 파는 가게(아래). by yon\g-han.

 

시장을 벗어난 골목에서는 고무줄 놀이를 즐기거나 실뜨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어린시절에 했던 놀이와 놀랄 정도로 똑같다. 내가 실뜨기 놀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다 똑같이 따라하자 아이들은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그리고 내가 녀석들의 실뜨기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너도나도 실뜨기를 하겠다고 나서는 통에 한동안 나는 겹겹이 아이들에게 둘러쌓이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멀리서 지켜보던 아줌마와 청년도 ‘나도 할 수 있다’며 아이들 틈에 끼어들었다. 이래저래 골목은 실뜨기 열풍으로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뒷골목에서 만난 한 아이는 내가 한국에서 온 줄 어떻게 알고, 태극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했다.

 

라싸 뒷골목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다. by yon\g-han.

 

티벳에서는 우리와 흡사한 놀이나 문화를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실뜨기나 고무줄놀이뿐만 아니라 나무에 그네를 걸어 타는 것도 우리와 똑같은 모양이다. 고갯마루에 돌무덤처럼 쌓은 쵸르텐은 우리의 돌서낭과 흡사하고, 음식을 먹을 때 조금씩 떼어서 신에게 바치는 것도 우리네 ‘고시레’ 풍습과 다르지 않다. 티벳에는 또한 우리네 막걸리와 같은 ‘창’이라는 술도 있다. 사실 티벳에 사는 약 600만 명의 티벳인들은 우리와 혈통이 비슷한 몽골 계통의 인종이다. 그러나 중국의 점령 이후 티벳인들은 그저 중국 내 50개 이상의 소수민족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국에서는 티벳족을 장족이라 부르며, 티벳을 그들의 자치구 중 하나인 ‘서장 자치구’로 부르고 있다.

 

회족 거주지에서 만난 아이(위)와 이슬람 모스크(아래). by yon\g-han.

 

라싸에는 생각보다 많은 회족(이슬람교도)들도 산다. 티벳 사원보다 규모는 작지만 꽤나 큰 모스크도 만날 수 있고, 온통 머리에 흰 모자를 쓴 회족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회족 거주지도 구시가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 라싸에서 머리에 흰 모자를 쓴 사람을 보았다면, 보나마나 회족이 분명하다. 그러나 티벳의 구시가에 이런 회족 거주지와 모스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한국의 여행객들은 대부분 모르고 있다. 이슬람 모스크에서 100여 미터 위로 올라간 곳에는 티벳의 전통 수공예단지가 자리해 있다. 이 곳에서는 금동불상조각에서부터 옷감짜기, 장신구, 각종 조각품을 만들고 전시하고 있지만, 사진 촬영은 기본적으로 금지돼 있다.

 

조선족의 동행자 찾기 쪽지(위)와 여행자 숙소로 유명한 야크호텔(아래). by yon\g-han. 

 

라싸에는 바낙숄 호텔과 키에리 호텔, 스노우랜드 호텔, 야크 호텔과 같은 여행자 숙소가 들어서 있으며, 라싸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야크 호텔이 가장 유명하다. 방값은 도미토리 30원에서 트윈룸 380원까지 다양하다. 이 곳의 야외 게시판은 여행 동행자를 구하는 메모로 가득 채워져 있다. 내가 야크 호텔에 머물 때 한 조선족이 수미산 여행 동행자를 구하는 한글 메모를 보고 반가워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호텔에는 인터넷 카페가 있어 외국인들은 이 곳에서 모든 소식을 주고받는다. ‘야크’는 티벳 발음으로 ‘야’라고 하는데, 인력거꾼들에게도 야 호텔 또는 야빈관이라 해야 알아듣는다. 여기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한국식당인 아리랑 식당이 있다.

 

윤회와 영원무궁을 상징하는 '영원의 무늬'. 문막이천과 커튼에 두루 쓰인다. by yon\g-han

 

중국은 일본이 우리나라에 내세웠던 논리처럼 중국의 티벳 지배가 티벳의 발전과 근대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래서 티벳이 더 행복해졌는가, 라고 묻는다면 티벳인들은 모두들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들이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하는 달라이 라마는 티벳에 있지 않고, 광활했던 영토는 상당 부분이 중국 땅에 편입돼 자치구 국경이 그어졌으며, 전통적인 티베탄 마을까지 하나 둘씩 한족의 거주지로 변하고 있는 게 티벳의 현실이다. 중국은 ‘백년지대계’(이런 표지판이 교육기관 앞에 세워져 있다)를 내세우며, 티벳의 아이들을 문맹에서 벗어나게 하고, 무상으로 의무교육을 시킨다고 자랑하지만, 그들은 일제가 그랬던 것처럼 중국식 교육을 통해 중국인민화를 꾀하고 있을 따름이다.

 

라싸 구시가에서 바라본 일몰 풍경. by yon\g-han.

 

중국은 점령 이후 문화혁명기를 거치며 티벳인들이 그렇게 신성시하던 사원들을 무참히 폭파했고, 그 많은 승려들을 강제로 환속시켰으며, 일체 종교활동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종교가 곧 생활이었던 티벳인들은 20여 년간의 종교박해 속에서도 신성을 버리지 않고 그들의 종교를 지켜냈다. 사실 티벳인들의 삶은 우리와 비교해보면 거의 난민 수준으로 사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물질적 풍요는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애당초 그들은 돈과 명예와 영광에 의한 ‘잘 사는 것’보다 ‘제대로 사는 것’, 즉 다음 환생을 살기 위해 죄 짓지 않고 이번 생을 건너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 14편에서 계속. 글/사진: 이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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