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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권력·지위? 깨달음만이 진짜 '자기 재산'이지요"

하얀연꽃

 

"돈·권력·지위? 깨달음만이 진짜 '자기 재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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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5.03 03:02 | 수정 : 2017.05.03 07:28

[부처님오신날 특별 인터뷰… 송광사 법흥 老스님에게 듣는 삶의 화두]

조지훈 시인·효봉 스님이 은사
"너그러운 효봉, 친절한 일타… 쉬지 않고 노력한 법정 스님"

"해탈 위해 전국 기도처 찾아… 팔만대장경 앞에선 17만배… 간절히 기도하면 업장 소멸"
 

전남 순천 조계총림 송광사는 온통 연록의 잔치였다. 큰절 동쪽 개울 건너 화엄전에 들어서니 '방우산방(放牛山房)'에서 노스님이 봄꽃처럼 싱그런 미소로 객을 맞는다. 송광사에선 동쪽에 사신다 하여 '동당(東堂) 스님'으로 불리는 법흥(法興·86) 스님이다.

법흥 스님은 '스승 복'이 많다. 속세의 은사는 고려대 국문학과 시절 조지훈 시인이다. '방우산방'이란 당호는 조지훈이 월정사에서 머물던 '방우산장'에서 따왔다. 1959년 출가해선 당대의 선사인 효봉(曉峰·1888~1966) 스님이 은사다. 구산(九山) 전 송광사 방장, 법정(法頂) 스님이 절집안 촌수로 형님이다. 법흥 스님은 송광사 주지와 회주(會主), 그리고 조계종 원로의원을 역임했다. 불기(佛紀) 2561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지난주 송광사에서 법흥 스님을 만났다.
 
 
송광사 동당 법흥 스님이 점심 공양(식사)을 하기 위해‘방우산방’을 나서서 큰절로 가고 있다.
송광사 동당 법흥 스님이 점심 공양(식사)을 하기 위해‘방우산방’을 나서서 큰절로 가고 있다. 스님은“1970년대부터 송광사에서 여러 대중 스님들과 함께 살아온 것 자체가 공부”라고 말했다. /김한수 기자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새벽 예불 드리고, 능엄신주와 '관세음보살보문품' 등 40년간 매일 독경해온 경전을 읽고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지요. 밥때 되면 먹고, 평생 써온 금강경 쓰고,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 책도 읽고 지냅니다. 옛날 주지(1974~77) 시절부터 수십년간 새벽 예불 때면 모든 전각을 돌면서 한 시간씩 절하고 기도 올렸어요. '국보(國寶) 잘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요.(고려시대 16명의 국사(國師)를 배출한 송광사는 국보 4점, 보물 27점 등 2만여 점의 유물을 간직하고 있다) 요즘은 걷는 게 예전만 못해서 전각을 돌지는 못합니다."

미수(米壽·88세)를 바라보지만 그는 지극히 소박하고 솔직하게 '중[僧]답게 사는 법'을 보여주는 어른이다. 시봉하는 이 없이 직접 '061'로 시작하는 일반 전화를 받고, 빨래하고, 공양(식사)은 자신의 방에서 받지 않고 시간 맞춰 통나무 다리를 건너 큰절로 간다. 요즘 낙(樂)은 부처님과 옛 선사들의 말씀을 붓글씨로 써서 선물하는 것이다. '금강경' 5400자를 사경(寫經)해 선물한 병풍이 140개에 이른다고 했다.

―출가 사연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어려서부터 절에 가서 절하는 게 그렇게 좋았어요. 대학 다닐 때에도 서울 청룡사, 개운사에서 매일 기도를 올렸어요. 졸업하고 스물여덟 늦은 나이에 문경 대승사 묘적암으로 갔지요."

―거기서 효봉 스님을 만나셨나요.

"아닙니다. 당시 묘적암에는 훗날 조계종의 대율사(大律師)로 꼽힌 일타 스님 혼자 계셨어요. 출가하러 왔다 말씀드리니 '쌀 두 말 가져오라' 하셔요. 갑자기 객이 오니 먹을 쌀이 없었던 거지요. 일타 스님 말씀 따라 사흘간 1만2000배를 하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마룻바닥의 묵은 때가 다 벗겨질 정도였어요. 제 머리 깎아주시고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을 비롯해 중 되는 기초는 다 가르쳐주셨어요. 일타 스님 소개장을 들고 대구 동화사로 가서 효봉 스님을 뵙고 출가했습니다."

―당시엔 절 형편이 어려웠던 모양이지요.

"모두 다 가난했습니다. 직지사 강원 있을 때는 공양 시간에 밥 돌리다 모자라면 처음부터 다시 걷어서 나누기도 했어요. 그래도 당시 스님들은 공부에 대한 간절함이 대단했습니다. 지금은 스님들도 승용차 타고, 해외여행도 많이 다니지만 그런 간절함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법정 스님도 책에 썼지만 중은 무소유라야 해요."

―은사 효봉 스님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너그럽고 원만하기로 치면 한국에서 최고셨습니다. '참선하는 길이 최고다. 화두 놓친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파계(破戒)는 파기(破器)다. 깨진 그릇엔 물을 담지 못한다'며 참선과 계율을 중시하셨죠."

―출가 후 참선 수행도 많이 하셨지요.

"그렇지 못했어요. 제 별명이 '컴퓨터' '녹음기'입니다. 기억력이 좋아서 구산 스님에게 '총기 좋다'는 칭찬도 들었지요. 그런데 기억력이 참선에 도움이 안 됐습니다. 통도사, 해인사, 상원사 등 전국의 선원을 다니며 '무(無)'자 화두를 들었어요. 그런데 화두는 잘 들리지 않고, 몸이 자꾸 아파요. 나는 왜 안 되나, 답답했죠. 할 수 없이 말씀드렸더니 효봉 스님은 '구산은 상근기(上根機)인데 너는 중근기(中根機)인 모양이다. 참선 대신 경전 공부와 기도를 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기도를 시작하셨군요.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저와 중생의 해탈을 위해서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오대산 적멸보궁을 비롯해 전국 유명 기도처는 다 찾아다녔어요. 성철 스님 권유로 팔만대장경을 모신 해인사 장경각에서는 340일 동안 17만배(拜)를 올렸습니다."

―사형(師兄)인 법정 스님은 어떠셨나요?

"이기적(?)이었어요. 주지는 물론 사찰의 총무, 재무, 교무 같은 삼직(三職)은 절대로 안 맡았어요. 그랬던 스님이 1980년대 보조사상연구원 원장직은 맡고 싶어 했어요. 하여간 법정 스님은 평생 조금도 쉬지 않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렇게 노력했으니 그 많은 책을 썼지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국민께 어떤 말씀을 들려주시겠습니까.

"부처님은 우리 모두가 본래 부처임을 알려주시고 생사해탈해 피안(彼岸)에 이르도록 가르쳐주신 분입니다. 늙고 병들고 죽는 이 육신은 가짜 나, 가아(假我)입니다. '진짜 나', 실아(實我)를 찾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재산, 권력 좇으며 욕심부리고 싸우고 사기도 칩니다. 그러나 그런 건 죽을 때 못 가져갑니다. 간절히 공부해 생사해탈하는 것만이 유일한 내 재산이에요. 내 마음이 맑을 땐 부처의 마음이 되고, 내 마음이 탐진치(貪瞋痴·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를 벗어나지 못하면 축생(畜生)의 마음이 됩니다. 내 재산이 뭔지 잘 챙겨봐야 합니다."

청산유수로 법문하던 스님은 문득 벽시계를 보더니 "밥때가 됐다"며 일어섰다. 그는 방우산방을 나서다 기둥에 걸린 주련(柱聯) 한 구절을 가리켰다.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사흘이라도 간절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란 뜻으로 갓 출가한 행자들이 배우는 '자경문' 구절이다. 법흥 스님이 처음 머리 깎을 때부터 지금까지 새겨온 초심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03/20170503000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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