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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속의 누런 색 봉투

김선정교수
서구인들이 쓴 안내서에 의하면 외부인을 꺼린다는 400여명의 데풍 스님들이 있다. 그들은 도대체 어느 구석에 살고 있는 것인가?
일행이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들락거려서 주의가 분산되는 틈에 마리온과 나는 슬그머니 빠져 개들만 게으르게 흩어져 뒹구는, 미로처럼 복잡한 건물과 골목들을 뒤지며 사람의 냄새나 소리를 찾았다. 박대를 당하더라도 데풍의 진짜 스님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한참만에 어느 후미진 마당 안으로 들어서니 경판이 빽빽하게 꽂혀있는 방에서 창을 활짝 열고 팔을 걷어부친 청년 스님들이 둘씩 마주앉아 먹물로 경을 찍어내고 있었다. 승복을 제대로 다 갖추지 못하고 남루한 누더기와 섞어 입었지만 한결같이 맑고 명랑했다.
스님들은 우리를 방안으로 불러들여 금이 가고 이빨 빠진 사발에다 버터차를 따라주었다. 마리온이 영어로 해석이 딸린 티벳어 회화책과 소사전을 꺼내 서로 문장과 단어를 짚어가며 대화를 시작했다.
스님들은 한국과 영국에도 절이나 스님이 있고 불자들이 있는지 또 우리들이 불자인지를 알고 싶어했다. 그리고 지난 3월 항거때 데풍의 400여 스님 중 무려 100명이 넘는 스님들이 잡혀갔는데 아직도 군인들이 수시로 들이닥쳐 이것저것 조사와 심문을 하고 밤에 갑자기 와서 자고 있는 스님들에게 총을 들이대고 한 둘씩 잡아간다고 했다. 자신들도 무슨 이유로 언제 잡혀가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잡혀간 스님들의 생사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처형을 면했더라도 고문이 심해서 어쩌다 풀려난다 해도 정상적으로 살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영화 본 이야기하듯이, 남 이야기하듯이 낙천적으로 웃고 있는 저 젊은 가슴엔 도대체 뭐가 담겼을까 싶었다.

절마다 관광객들을 간섭하며 거칠게 구는 승복차림들은 진짜 스님이 아니라 쏘와(정부직원 또는 스파이)로 스님들의 생활도 일일이 간섭하고 참견한다고 했다. 스님들은 우리를 데리고 방과 방 사이로 건물과 테라스로, 다시 건물과 방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미로들을 지나 어는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경전을 찍는 스님들보다는 훨씬 나이가 들어보이는 스님들이 역시 승복을 갖춰입지 못한 흙투성이 맨발로 뭔가 흙일들을 하고 있었다.
우리를 데려간 스님들이 그 중에 한 스님에게 뭔가를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차와 새콤하게 말린 치즈를 내왔다. 그 동안 이것저것을 묻는데 버스에 모여 출발하겠다고 한 6시에서 이미 10여분이 지나고 있었다. 당장 일어나 그 복잡한 미로 속에서 버스가 있는 주차장까지의 최단코스를 잡아 전력을 다해 뛴다 해도 20분 이상 지각을 할 판이었다.

그런데 우리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어떤 분위기가 거기에 있는 스님들로부터 스며나오고 있었다. 마리온은 나만 괜찮다면 어려운 일을 겪는 한이 있어도 좀 있어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의 예감은 적중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한 스님이 들어와 바닥에 쪼그려 앉은 마리온의 옆에 털썩 앉으면서 마리온의 감싸안은 무릎과 가슴 사이로 누런 색의 두툼한 봉투를 푹 찔러 넣고는 천연덕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스님들은 놋쇠로 된 동이에다 저녁 공양을 날라왔다. 야크 고기를 썰어 넣은 칼국수였는데, 날이 추운 티벳에서는 살코기보다는 비게 기름이 값도 비싸고 좋은 것이라서 송글송글한 야크의 기름덩이들을 국수 위에 소복하게 얹어서 퍼주고 때가 새까맣게 낀 나무 젓가락을 한자씩 들려주었다. 한국에서야 담백한 쇠고기국의 냄새조차 역겨워하였지만 한국을 떠난 후론 어떤 음식이든 먹었다. 그것을 먹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있으면 함께 먹지 못할 음식은 없었다. 그렇게 먹은 음식은 아무리 더러워도 탈이 나는 일도 없다.
마리온은 젓가락도 잘 썼다. 둘다 허기가 졌던 터에 몇 번을 더 청해서 맛있게 먹었다. 모두 기뻐서 스님들은 티벳글로 경구(經句)를 적고 나는 한글과 영어로 ‘티벳의 독립, 한국의 통일, 그리고 세계의 평화’라고 썼다. 마리온도 영어로 ‘세계평화’라 써서 서로 교환했다.

스님들게 마땅히 드릴 게 없었다. 그래도 뒤져보니 구급약이 나와서 나는 감기 걸린 스님들에겐 감기약을 드리고 나처럼 위산과 다라는 스님에겐 지니고 있던 제산제를 모두 드리고 밖으로 나섰다. 해는 중천에 있어도 시간은 오후 8시가 넘어 있었다. 차라리 다들 가고 없으면 지나가는 차든 말이든 세워 보고 안되면 밤세워 걸어서라도 가련만 잔뜩 화가 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까봐 매우 걱정이 되었다.
길을 구분할 수 없어서 무조건 아래로 향하는 길과 계단을 찾아 달렸으나 미니버스가 떠난 주차장이 보이는 지점부터는 안심이 되어 슬슬 걸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차장에 나타나자 승복차림의 가짜 스님과 군인들 몇 사람이 우르르 몰려와 애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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