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달라이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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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14TH DALAL LAMA OF TIBET

역대 달라이라마 1대~1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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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달라이 라마는 ‘걀와 겐둔 둡(Gyalwa Gendun Drub, 1391∼1474)’이었다. 소남 갸초가 달라이 라마로 즉위한 뒤 추서한 1대 달라이 라마가 그였다. 걀와는 ‘위대한 수행자’라는 뜻이다. 그는 카담파의 나르탕 사원에서 출가하여 여러 종파에서 수학하였다. 1447년 그 유명한 시가체(Shigatse)의 타쉬룬포(TashiLhunpo) 사원을 건립했다. 선정(禪定)과 교학(敎學)을 겸비했고, 20년 이상을 수행에 전념하다 1474년 앉은 채로 입적했다.

2대 달라이 라마는 ‘걀와 겐둔 갸초(Gyalwa Gendun Gyatso, 1475∼1542)’다. 그는 닝마파 가문에서 태어났고, 4살 때 1대 달라이 라마 겐둔 둡의 환생으로 확인되었다. 그의 환생을 신성한 호수 라모이 라초(Lhamoi Lhatso)가 알려 주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서부터 달라이 라마의 환생은 라모이 라초에 의해 확인하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1542년, 그 역시 앉은 채로 입적에 들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달라이 라마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3대 달라이 라마 ‘소남 갸초(Gyalwa Sonam Gyatso, 1543~1588)’는 달라이 라마 제도를 확립한 사람이다. 1543년 탄생한 그는 드레풍 사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1578년 몽골의 황제 알탄 칸을 교화하고, 티베트 불교 중 겔룩파의 전성기를 열었다. 일생을 닝마파와 겔룩파의 전통에 따라 수행했고, 이를 융합하려고 노력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장악한 몽골 제국과의 외교관계 설정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로 인해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가 아시아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588년 설법을 하다가 입적했다.

티베트의 정치와 종교를 이끌던 달라이 라마 제도는 4대 달라이 라마 ‘용텐 갸초(Yonten Gyatso, 1589∼1617)’대에 이르러 문제에 직면했다. 그는 티베트 인이 아니었다. 달라이 라마가 몽골 제국에서 태어났다. 몽골 제국의 황제 알탄 칸의 직계 후손이 4대 달라이 라마 용텐 갸초였다. 이방인 달라이 라마의 환생은 소남 갸초가 알탄 칸에게 몽골로 돌아가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결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 밖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환생의 확인도 즉위도 늦었다. 4대 달라이 라마는 수행과 교육에 전념했고, 일찍 입적했다.

5대 달라이 라마 ‘걀와 나왕 롭상 갸초(Ngawang Lobzang Gyatso, 1617~1682)’는 달라이 라마를 굳건한 권력의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위대한 5대 달라이 라마’로 불린다. 그러나 냉혹한 권력투쟁의 한가운데 서 있었고, 역사상 가장 정치적인 위치에 있기도 했다. 9세기 이후 지방으로 나누어져 있던 티베트의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시켰다. 1642년 그는 정신적이고도 세속적인 군주의 자리에 오른다. 티베트의 의료 체계와 국가 교육 체제를 확립한 탁월한 정치가로 활약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오늘날 달라이 라마의 상징이며 티베트의 상징이기도 한 포탈라궁을 건설한 일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강력한 군주의 사후 포탈라궁이 완성되지 못할 것을 두려워 한 그의 유언 때문이었다. 그가 입적한 지 17년이 지난 1695년 포탈라궁이 완공되었다. 이 때문에 6대 달라이 라마의 즉위가 많이 늦어졌다.

6대 달라이 라마 ‘걀와 상양 갸초(Tsang Yang Gyatso, 1683~1706)’는 사찰에서 수행 생활을 하지 않은 유일한 달라이 라마다. 이 때문에 2대 판첸 라마가 직접 그를 찾아가 환생자로 확인했고 가르쳤으며, 1697년 즉위했다. 그는 시와 음악을 사랑했다. 그러나 20살이 되던 해 자리를 박탈당했고 포탈라궁에서도 쫓겨났다. 그가 사찰에서 수행 생활을 하지 않은 것을 빌미로 일단의 몽골 인들이 침입해 1705년 몽골로 납치했으며 다음해 몽골에서 입적했다.

7대 달라이 라마 ‘걀와 칼장 갸초(Kalzang Gyatso,1708~1757)’는 1708년 동티베트에서 태어났으나, 몽골 제국과의 갈등으로 공식적으로 즉위하지 못했다. 불운한 환경에서 지냈으나 그의 청정한 수행 생활은 티베트 국민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았다. 많은 논서를 남겼고 1757년 입적했다.

8대 달라이 라마 ‘걀와 잠팔 갸초(Jampal Gyatso, 1758~1804)’는 1758년 태어나 1762년 라사로 보내졌다. 3대 판첸 라마에게서 교육을 받았으며, 경이로운 영적 능력을 지녔고 정치를 혐오했다. 그의 생전에 영국이 최초로 티베트에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의도를 보였고 이때부터 티베트는 고립정책을 채택했다. 그는 1804년 입적했다.

9대 달라이 라마 ‘걀와 룽톡 갸초(Lungtok Gyatso, 1806~1815)’는 가장 불행한 지도자였다. 5대 달라이 라마 사후 달라이 라마의 지도력은 급격히 약해졌으나, 외부 세계와의 갈등으로 인해 티베트 내부 정치 상황은 권력 다툼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이 때문에 ‘달라이 라마’ 제도가 명목을 유지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내부 권력 다툼은 오래지 않아 다시 격화되었고, ‘달라이 라마’는 그 소용돌이에서 비켜날 수 없었다. 이후 9대부터 4대에 걸친 달라이 라마가 모두 단명했다. 9대 달라이 라마는 겨우 10살에 입적했다.

10대 달라이 라마 ‘출트림 갸초(Tsultrim Gyatso, 1806~1815)’,
11대 달라이 라마 ‘켄둡 갸초(Khedrup Gyatso, 1838~1856)’,
12대 달라이 라마 ‘트린리 갸초(Trinley Gyatso, 1857~1875)’는 각각 21살, 18살, 20살에 입적했다. 이들의 죽음에 대해, 정치적 암살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으며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13대 달라이 라마 ‘걀와 툽텐 갸초(Tubten Gyatso,1876~1933)’는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회복했지만 티베트의 저물어 가는 운명과 일생을 함께 한 비극의 지도자였다. 1876년 태어나 1878년에 즉위한 그는 1904년 영국의 침략과 1909년 중국의 침략을 받았다. 티베트 정치는 외부의 침략으로 인해 안에서 다툴 여력이 없었고, 역설적으로 13대 달라이 라마는 국내 정치를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기나긴 중국의 침략을 간신히 견뎌냈으나 끝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1 3대 달라이 라마는 조국 티베트의 비극을 예언하며 1933년 입적했고,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는 티베트의 비극과 함께 환생했다.

제14대 달라이 라마 | 텐진 갸초(1935~) 제5대 달라이 라마가 계속 환생하여 그 뒤를 잇는 달라이 라마가 되어왔는데지금 달라이 라마는 제14대이다. 1950년 10월, 중공군이 독립 국가 티벳에 쳐들어간 뒤로 제14대 달라이 라마를 비롯해 많은 추종자들이 1960년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하여 다람살라에 티벳 망명 정부를 세웠다. 티벳 사람들에게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 보살의 화신이다. 티벳 사람들 뿐만 아니라, 서구의 지성들도 달라이 라마에게서 부처님의 모습을 발견한다.

14대 달라이 라마는, 지각 있는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에게 자비를 베풂으로써 가장 큰 행복을 실현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몸으로써 실천하는 분이다. 달라이 라마는‘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마저도 사랑하는 그런 사랑’을 지지한다. 그리하여 티벳에서 자행된 중국의 만행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발표문에서도 침략자에 대한 참된 사랑(자비)을 나타내고 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비를 보시할 방법을 찾는 달라이 라마는 티벳 불교의 고갱이를 묻는 질문에 곧바로 ‘친절’이라고 대답한다. 나의 적은 나의 좋은 벗이며 큰 스승입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어려움에서 배울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나의 종교 실천은 보살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보살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닦는 사람으로, 모든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자기를 바칩니다. 나는 이 같은 보살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지금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마음과 친절을 베푸십시오.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어떻게든 그 사람들한테서 무엇이라도 배우려고 합니다. 달라이 라마의 영성이 담긴 가르침에서 서구의 많은 지성인들은 절망적인 현대 문명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대안을 발견한다. 달라이 라마는 비폭력 평화 운동으로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