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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이 상처이다

김선정교수
네팔과 인도 각처에 흩어진 티벳 정착촌들을 다니며 수많은 훌륭하신 린포체들을 만났다. 티벳 사람들은 나라도 없고 한국 사람들처럼 물질이나 문화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지만 어버이처럼 존경하고 따를 수 있으며 언제라도 만나주고 아무리 사소하고 유치한 문제라도 진지하게 듣고 상담해주며 점도 쳐주는 그런 린포체들을 많이 모시고 사는 것이 늘 부러웠다.
호세는 며칠 후에 도제 촙계 린포체가 네팔에서 내려와 데라둔의 샤까파 대학에 한달 정도 머무신 다음 다시 티벳으로 가신다고 했다. 데라둔의 티벳 정착촌은 다람살라에서 차로 18~20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티벳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미니버스를 대절해서 데라둔으로 가고 나는 다음날 혼자 밤 버스를 갈아타며 그들을 좇아갔다.
다람살라에서 온 사람들 중에 내가 모르는 40대 초반의 건장한 미국여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강보에 쌓인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남자처럼 짧게 자른 머리에 염주를 팔목에 감고 티벳 스님들이 입는 자주색 승복치마 비슷한 걸 입고 있는 그녀는 티벳 불교에 푹 젖어 있는 듯 보였다. 그녀가 안고 있는 아기는 주먹을 꼭 쥐고 웅크린 몸은 고통에 겨워 바들바들 떨었다. 그 조그만 몸뚱이 전체가 고통이었다. 나올때부터 뇌에 이상이 있어 끊임없이 경기를 하고 미국의 어떤 의사도 도울 방법이 없어 곧 죽을 거라고 했다는데, 18개월이 됐다고 했다.
여자아이답게 둥글고 예쁜 얼굴이었다. 선이 고운 눈썹과 쌍꺼풀이 있는 갈색눈은 초점없이 눈물을 흘렸지만 맑고 예뻤다. 그러나 시원하게 잘 생긴 이마 위로 땀에 젖은 곱슬머리가 드리워져 더욱 애처러워 보였다. 린포체께서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니, 티벳사람인데 누군지 모른다고 했다. 모른는 것일까? 말할 수 없는 것일까? 저렇게 순결하고 예쁜 아이가 왜 저토록 아픈가? 어떤 보살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시려고 저런 몸을 하시고 저렇게도 고통스러워 하시는 걸까.
눈매가 힘찬 린포체는 80을 바라보는 노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린포체가 계신 방은 그다지 넓지 못해 7~8명 되는 우리 일행이 들어가면 좀 옹색할 정도였다. 우리와 만나는 중에도 티벳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하얀 카닥(티벳과 몽골인들이 격식을 차려 인사할 때 건네는 비단수건, 몽골은 푸른색이고, 티벳은 흰색인데 요즘은 인조견으로 만든다.)과 몇푼의 돈을 올리고 린포체에게 축복을 받거나 치료를 받거나 모(티벳의 점술법으로 대부분 주사위를 사용한다 개중에는 염주를 사용하기도 한다.)를 여쭙기도 한다.
린포체께서 늘 앉으시는 침대와 그 앞 책상위에는 온갖 침대와 그 앞 책상위에는 온갖 경전들과 수행도구, 그리고 자루나 봉지에 담긴 약재며 향가루 등이 온통 널려 있어서 간신히 린포체가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린포체를 모셔본 호세는 린포체께서는 밤에도 누워서 주무시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말로 하면 장좌불와인 셈이다.
린포체는 환자의 맥을 짚어 본 다음 아픈 부위를 혀로 핥거나 입으로 빨거나 이빨로 잘근잘근 물어서 치료하신다. 어떤 환자는 묻거나 맥을 짚을 것도 없이 보자마자 붙들고 빨거나 핥으신다. 호세는 린포체가 더러운 상처를 입으로 빨아 뱉지 않고 삼킨다고 했다. 언제가 샤키대학에 처음 린포체가 오셔서 스님들의 곪고 더러운 상처에 입을 대려하자 놀란 스님들이 더러운걸 씻고 올테니 좀 기다리시라고 했다고 한다. 그때 린포체는 내게는 더럽고 깨끗한 것이 없으니 상처보다는 네 마음을 닦으라고 하셨단다.
잘못 손을 대면 혹시 더 아플까 싶고, 제 스스로 몸도 못가누는 아기를 받아 린포체는 아기몸을 떡 주무르듯 하셨다. 한 팔과 다리를 잡아 공중에서 흔드는가 하면, 뒤집어 놓고 관절들을 누르기도 하고 아기의 관절과 근육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 숙련된 손으로 아기를 다루셨다. 아기는 신기하게도 울음을 멈추고 호흡도 고르게 편안해졌다. 린포체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옆에 오뚝 앉혀 놓고 다음일을 하셨다. 그런 아기의 모습을 보니 불법에 대한 신뢰와 환희심이 일어나 보살도를 가고자 하는 마음이 절로 생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편안해 하는 아기를 본 엄마는 아기를 린포체께 드리고 갈테니 린포체께서 마음대로 하시라고 했다. 나아서 크면 린포체 곁의 비구니로 만드시든지......
그러나 린포체는 엄마더러 아이와 함께 린포체 곁에 좀더 머물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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