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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병

김선정교수
두 번째 밤을 보낸 헤가라는 마을은 평균 고도가 5천미터 이상이다. 우리가 묵은 정부 초대소엔 식당이 없어 모두 밖으로 나갔다. 삶은 고기, 양배추, 불린 석이버섯, 당면 등을 각각 썰어 담아 늘어놓고 손님이 고르는 것을 중국 냄비에 한꺼번에 털어넣고 가축 똥을 말려서 지핀 불에다 돼지비계 기름으로 볶아주었다. 인도며 스리랑카에서 더럽고 역한 음식 먹는데는 이골이 났고 종일 먹은 것이 없는데도 그것을 보자 속이 답답하고 구역질이 나서 먹질 못했다. 그것이 바로 그 무서운 고산병 증상이란 걸 미처 깨닫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자려고 누우니 본격적인 제 증상들이 나타났다.

머리와 눈이 아프고 어지럽고 배멀미 할때처럼 속이 미슥하여 자주 토했다. 장이 불려오고 다른 사람도 몇인가 걱정이 돼서 왔는데 모두들 정도만 다를 뿐 고산병의 증세들을 느끼고 있었다. 고산병이 심해질 때 죽고 싶지 않으면 무조건 낮은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장은 내일 아침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되면 나 혼자 카투만두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육신이 아픈 것보다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끔찍해서 눈물이 나왔다. 고맙게도 레이슬리가 장을 다그쳐 산소 튜브를 구해오게 했다. 느리긴 했지만 차츰 편안해졌다.
나와 한 방을 쓴 영국 처녀 마리온은 피로를 내색치 않고 토하고 뱉은 것들을 치워주며 새벽까지 나를 돌보아주었다. 잠은 같이 잤어도 그때까지 별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사귄적도 없는 나에게 마리온이 그렇게 해주는 것이 나는 전혀 놀랍지가 않았다.
어느날 카투만두 우체국에 갔다가 소나기를 만난 적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과 섞여 우체국 돌계단에 앉아 비 오는 허공을 망연히 바라보는데 그 허공 어디쯤에서 시선이 끝간 데 없이 깊은 서양처녀가 보였다. 소녀처럼 보이는 가냘픈 체구에 아무렇게나 짧게 자른 금발머리를 고무줄로 대강 묶고 색이 바래고 낡아빠진 인도옷을 입고 있었다.
아무런 말을 않더라도 차라도 한 잔 마시고 싶은 인상이었다. 그를 티벳으로 가는 일행속에서 다시 만났다. 더구나 그는 나의 룸메이트가 되었으니 바로 마리온이었다. 말이 거의 없고 행동도 조용했지만 대범하고 선이 굵었다.

그의 부모는 나란히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였다. 대학에서 인도와 아시아 역사를 공부한 그는 졸업하자마자 인도의 캘커타로 가서 봉사조직에 가입했다. 뱅갈의 시골 마을에서 2년간의 티벳어를 공부했다. 그는 티벳 여행을 끝내는데로 중국 전역을 여행한 다음 영국으로 돌아가서 아시아 역사 공부를 시작해 보겠다고 한다.
불보살님의 가피와 두 서양 친구 덕분에 나는 다음날 아침에는 멀쩡하게 회복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티벳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티벳과 중국과 몽골의 역사가 뒤얽혀 지금까지 이어지는 시가체로 향하는 미니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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