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總[입문III] 꺼지지 않는 불꽃, 이타의 길--이타행1.

로덴
總[입문III] 꺼지지 않는 불꽃, 이타의 길--이타행1.




꺼지지 않는 불꽃, 이타의 길



1. 이타행의 공덕


앞의 초대의 글에서 소개한『수심팔훈(修心八訓, bLo sByong Tshig brGyad Ma)』은 대표적인 ‘로종(bLo sByong, 修心)’ 문헌 중에 하나입니다. ‘로종’은 티벳 불교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글과 그와 관련한 수행 방법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여덟 개의 아주 간단한 게송으로 이루어진 이『수심팔훈』의 구성을 보면, 처음 일곱 게송은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한 내용 담고 있으며, 마지막 여덟 번째 게송은 절대 진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간단한 게송 속에 불교 수행의 모든 요체인 상대적인 깨달음의 길(世俗菩提心)과 절대 완성의 진리(勝義菩提心)를 모두 담아 놓은 것입니다. 아무리 정교하고 뛰어난 수행의 방편이라도 마음을 원하는 대로 다스릴 수 없다면, 그저 먼 산의 남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밀법 수행에서도 가장 고도의 선정력(禪定力)을 요구하는 구경의 완성단계 수행들도 결국 마음을 원하는 만큼 집중하고 제어할 수 있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십 년을 이기적인 습관에 길들여온 마음을 바꾸고 제어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에서 그림을 그릴 때 화판(畵板)을 잘 고정시키지 않으면 어떠한 그림도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의 판(板)을 잘 다스려야 원하는 수행의 행법(行法)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근기를 가지고 있던 불교의 위대한 수행자들도 혹독한 스승 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지게 지며 힘들게 자신의 마음을 길들여 왔습니다. 티벳의 위대한 성자 밀라레빠(Milarepa)처럼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지어온 업으로 인해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자신의 마음을 붙들어 매고 다스리는데 까지는 가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무상요가 혹은 신비의 수행법이라고 하는 고도의 방편을 터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도 축적된 스승들의 효과적인 방식이 있습니다. 그냥 마음만을 붙들고 힘들게 애써 보아도 습관적으로 길들여진 마음의 흐름을 바꾸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나를 향한 마음을 남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나의 처지와 남의 상황을 바꾸어서 보는 것이지요. 이것이 축적된 방법입니다. 그냥 생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행동 방식 하나하나에 베여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은 서서히 길들여지기 시작하며, 따라서 모든 현상이 본질적으로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더불어 거친 자의식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가 생겨납니다. 간단하지만 이것은 수많은 스승들의 게송에서 발견할 수 있는 비법 아닌 비법(秘法)입니다. 바로 이타심(利他心)을 기반으로 한 수행입니다. 이타심이 한 번 개발되고 나면, 세상의 모든 열정은 다 식어도 중생을 위한 연민과 사랑의 따듯함은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여러분 안에 자리 잡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 자신의 마음 상태를 살펴보십시오. 스스로 만족할 만큼 충분히 성숙해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잘 따라 줍니까? 스스로 살펴본 지금 그 마음이 여러분의 현재 수준이자 근기입니다. 불교의 수행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제 이타심에 관한 달라이 라마의 법문을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법문은 모든 ‘로종’ 문헌의 근간인 샨띠데바(Shantideva, 寂天) 보살의「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Bodhicaryavatara)」강의에서 간추린 것입니다. 이 샨띠데바 보살의「입보리행론」은 달라이 라마께서 세상에 법을 펴신 이래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항상 계속되는 ‘마음 다스리는 길과 지혜법문’을 위한 대표적인 교과서입니다.

“부처님의 수많은 가르침은 모두 마음을 다스리고 전환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보이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티벳 불교에서는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는 특정한 수행 방법을 따로 분류하는 전통이 있으며, 그와 관련한 문헌들을 ‘로종(bLo sByong, 修心)’이라고 부릅니다. ‘로종’은 다시 말하면,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사고방식(마음)을 전환함으로써 일상의 생활방식까지도 전환하는 수행과 문헌들을 통틀어 ‘로종’이라고 합니다. 로종 수행의 주요한 특징 중에 하나는 ‘나(自我, self, I)’라는 자의식(自意識)에 집착하여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이 태도를 스스로 깨닫고 극복해나갈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하는 태도는 다른 이들을 위하려는 마음이 자라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한계 속에서 큰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게 만듭니다. 이기적인 사고를 전환함으로써 이타심(利他心)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자신이 귀한 만큼 남이 귀한 줄은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전체를 놓고 보면, 자신 보다 오히려 남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종 문헌은 대부분 샨띠데바(Shantideva, 寂天) 보살의「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Bodhicaryavatara)」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입보리행론」을 뀐누 라마 린포체(Kunu Lama Rinpoche)께 전수받았습니다. 제 자신 언제나 제 삶에 이 수행을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남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설명하고는 합니다.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내용은 전반적인 불교의 사상과 수행에 관한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지금 말하려고 하는 내용은 이타심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다스리는데 아주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담고 있는「입보리행론」의 제 6 장 「인욕품(忍辱品)」과 제 8 장 「선정품(禪定品)」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타심과 선한 마음이 주는 이익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선한 마음은 모든 행복의 실질적인 원천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일상입니다.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과 협조 없이 혼자서 생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서도 음식이나 주거, 주변 동료 등 필요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혼자서 어찌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혼자서 멀리 외딴 곳에 떨어져 사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아무리 건강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라도 혼자서는 공존에서 오는 행복이나 만족감 같은 경험을 맛보기 힘듭니다. 모든 자기만족과 행복은 다른 것에 의지하여 오는 공존의 산물입니다.

심지어는 아주 이기적으로 오직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살려고 해도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또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려고 해도 다른 존재에 의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사기를 치려고 해도 사기 칠 대상을 필요로 합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고들 역시 다른 사람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혼자서는 어떠한 행동도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모든 사람들의 행위는 다른 존재들과 떨어져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돈을 벌고, 다른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삽니다. 인기 명예 명성 이 모든 용어 역시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그런 의미의 것이 아닙니다. 존경해줄 누군가가 있고, 좋아해줄 사람들이 없다면 어디서 인기를 얻고 어떻게 명성을 쌓겠습니까? 혼자서는 아무리 소리쳐도 텅 빈 메아리만 되돌아 올 뿐입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도움과 정을 받으려는 자연스런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씩 신경생물학(神經生物學, Neurobiology)에 관계된 학자들과의 만남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이 학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직 태어나지 않고 어머니의 태중(胎中)에 있는 태아(胎兒)도 어머니의 심리 상태에 따라 물리적으로나 정식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 다는 분명한 증거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자주 듣게 됩니다. 어머니의 편안하고 안정적인 마음 상태가 태아의 건강을 위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임신이 이루어진 초기 몇 주간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나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합니다. 제 자신 역시 이 부분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뇌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어머니의 지속적인 접촉이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애정이 필요한 시기에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지금 당장은 표가 나지 않더라도 나중에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는 누군가를 보면 정을 느끼고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뜹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웃어주고 사랑으로 돌봐주면 보호받는 다는 느낌에 행복해 합니다. 반면에 아이를 해롭게 하면 두려움에 떨게 되고 성장 과정에 아주 해로운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젊고 건강하고 힘 있을 때는 가끔씩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완전히 홀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상이지요. 아무리 인생의 황금기라 하더라도 인간인 이상 친구가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인 제 자신의 경우를 보면, 오십대가 되면서부터 여러 가지로 늙어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흰 머리가 점점 늘어가고 혼자서 무릎을 굽혀 앉기가 점점 힘들어 집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른 사람의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인간 삶의 모습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친구와 동료는 만족과 행복을 지켜줄 아주 소중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좋은 인간관계나 우정을 발전시킬 것인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외적인 차원에서는 친구를 돈으로 살수도 있습니다. 물론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는 동안 이런 친구는 항상 주위에서 멀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친구가 아니라 돈과 명예의 친구입니다. 이러한 관계에서는 이른바 친구라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더 이상의 행복은 없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더 큰 부와 명예의 친구를 찾아 떠나기 마련입니다. 그런 대상을 찾기만 하면, 이런 친구들은 언제든지 ‘안녕’이라고 말하지요. 분명한 것은 인생의 여러 단계를 거칠 때 마다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필요할 때 남아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마음만이라도 여러분 곁에 남아 어려운 시기를 함께 해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입니다.

그러면 친구는 어떻게 만드는 것입니까? 분명한 것은 미움과 경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협박하고 으름장 놓는데 친구가 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좋은 친구는 아무래도 정직하고 진지하게 서로 돕는 속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따듯하게 다가가야 하는 것이지요. 단지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일상에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보면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갈수록 더 절실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경제적인 면만 봐도 가족 국가 국경이 사라져 가는 시대입니다. 나라에서 나라로 대륙에서 대륙으로 세계는 쉴 사이 없이 서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주 깊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자기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어김없이 다른 나의 경제에 의지해야 합니다. 결국 다른 나라의 발전이 곧 자기 나라의 발전과 맞물려 있는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현대 세계에 사는 우리의 사고 구조나 습관도 혁명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아주 일상적인 경제 활동도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인 책임의식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보편적인 형제애와 동포애입니다. 단순히 종교적 이상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상호협력과 존중의 정신입니다. [모든 것이 연기의 법칙으로 이루어진 불교적 세계관을 다시 한번 상기하십시오.]

진지하게 잘 살펴보면, 이타심과 자비심은 갈수록 더 어느 곳에나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매일매일 접하는 지구촌 뉴스에서도 충분히 이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기아 홍수 이상기후 질병 테러 전쟁 이기적 우월주의 경제 등 어느 것 하나 지엽적인 문제가 없습니다. 아무리 고립되어 홀로 살려고 해도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셈입니다.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결국 단 한사람, 단 하나의 국가를 넘어 지구라는 행성의 안전을 걱정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조그만 개인으로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감싸 안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비록 지구의 어느 한 귀퉁이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왜소한 존재일지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 지구인의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 될 때, 우리는 마치 어머니 품속의 아이처럼 서로에게 보호받는 따듯한 정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어려울 때 함께 해주는 친구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조그만 힘이 되어 줄 때, 큰 단위 지구 전체가 행복한 분위기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랑(慈)과 연민(悲), 이타심과 형제애가 인류 발전의 핵심입니다. 단지 미래를 위해서만이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慈)과 연민(悲)은 긍정적 사고와 느낌을 가진 용어입니다. 희망과 용기, 결단과 의지를 갖게 해 주는 말입니다. 미래의 인류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지금 이 순간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이성(理性)을 활용하여 무언가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조그마한 불안도 다음 세대가 경험할 미래에는 엄청난 고난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모든 것을 정치인에게만 맡겨 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 자신 조그만 한 개인으로서 질수 있는 모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단지 소리치고 항의하는 것만으로는 모든 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개인 각자의 내면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조그만 한 개인으로서 보편적인 인류의 발전을 위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방법입니다. 이타심은 단순한 종교적 이상이 아닙니다. 큰 단위의 인류 전체가 따듯함 속에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입니다. 여기에 이의를 달 무언가가 있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비심과 이타심이 자라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욕심과 분노와 시기를 줄이고, 선한 마음을 자라게 할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답하자면, 물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제 의견에 공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러분 스스로 자신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열어야 합니다. 함께 실험해 봅시다. 무언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제 자신의 한정된 경험을 통해서 보더라도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을 끊임없이 해 왔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줄이고 긍정적인 자세로 생각하고 말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 온 것이지요. 수행을 하다보면, 단 한 순간의 정신적인 작용도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요소들에 의지하여 생겨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에 이끌리게 되면, 마음도 따라서 금방 변하고 맙니다. 이것이 마음의 특성에 관한 가장 단순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한 순간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 마음을 관찰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제 이타심과 선한 마음의 몇 가지 다른 이익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과 천상계(天上界)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는 다음 생에 좀 더 나은 생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은 남을 해롭게 하지 않음으로써 이룰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극히 세속적인 종교 행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도 선한 마음과 이타심은 절대적인 작용을 합니다. 좀 더 나은 생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지요.

나아가 우리가 바라는 장수 건강 행복 성공 등과 같은 인간 삶의 특성을 살펴보더라도 모두 선한 마음과 친절함에 의지해야 이룰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입니다. 또 보살이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한 자비심으로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육바라밀을 행하는 것은 보살의 수행을 성취하는데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따라서 선한 마음과 이타적인 친절은 단순한 인생의 성공에서부터 수행의 길을 통한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처음 시작부터 중간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이타심입니다. 시간 공간 장소 사회 문화 할 것 없이 꼭 필요한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선한 마음과 이타심은 오직 끊임없는 노력으로만 자라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 맞는 조건과 환경을 스스로 갖추려고 노력하고 마음을 긍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타심을 이루기 위한 조견과 환경을 갖추기 위해서는 마음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항상 깨어(自覺) 있어야 하며, 주의 깊게 잊지 말고 살펴야(憶念) 합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아무리 새로운 상황을 접하게 되더라도 바로 알아차리고 자비심과 선한 마음을 그 자리에서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타심을 키워나가다 보면, 점점 자신을 어렵고 힘들게 하던 습관적인 업이 정화되고, 자비심과 선한 마음이 함께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한번 자비심과 선한 마음이 주변의 여건으로 작용하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일어나는 따듯함의 불길이 자신을 두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어떠한 주변의 상황에도 꺼지지 않는 지복의 불길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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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N I'm imdressep! BION I'm imdressep! Cool post! 2015-10-11 오후 9:41:05 덧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