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總[입문III] 내 마음의 적--이타행2.

로덴
總[입문III] 내 마음의 적--이타행2.




2. 내 마음의 적


“자비심과 선한 마음을 기르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이기심입니다. 남들의 평화와 기쁨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의 안락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마음 자세입니다. 윤회하는 다양한 중생들의 가장 일반적인 마음 상태가 바로 이 자기중심적인 태도입니다. 모든 망상의 근원이지요. 그러므로 자비심과 선한 마음을 기르려는 수행자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이와 같은 망상의 파괴적인 속성을 이해하고, 어떻게 이러한 망상이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하는 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망상의 파괴적인 속성을 알고, 원치 않는 결과를 어떻게 야기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서「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을 잠깐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샨띠데바(Shantideva, 寂天) 보살은「불방일품(不放逸品)」이라는 제목이 붙은「입보리행론」제 4 장에서, ‘증오와 분노, 집착과 시기질투 같은 망상은 우리 안에 있는 내부의 적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아래의 두 게송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샨띠데바 보살은 망상이란 놈은 팔 다리도 없고 무기도 들지 않았으면서,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번뇌를 일으키는 적들이라고 말합니다. 망상은 우리의 마음을 속박하여 노예처럼 부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망상이 우리의 적인지 조차 깨닫지 못하고 그냥 일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망상과 맞닥뜨려 무언가를 해볼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망상과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으면, 이들은 끊임없이 마음에 남아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우리를 해롭게 할 것입니다.

분노와 욕망 등의 적들은
팔 다리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하고,
용기와 현명함도 갖추지 못했는데,
어찌하여 나를 노예로 삼았는가?

내 마음에 머무는 동안
쾌락으로 나를 해하는데,
그런데도 싸우지 않고 인내함은
이유 없이 참고 있는 치욕일 뿐이네.

(Zhe sDang Sred Sogs dGra rNams Ni// rKang Lag La Sogs Yod Min La//
dPa\' mDzangs Min Yang Ji Zhig lTar// De Dag Gis bDag Bran bZhin Byas.

bDag Gi Sems La gNas bZhin Du// dGa\' mGur bDag La gNod Byed Pa//
De La\'ang Mi Khro bZod Pa Ni// gNas Min bZod Pa sMad Pa\'i gNas.)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제 4 장의 28, 29 게송)

부정적인 사고와 감정은 속이는 일을 자주합니다. 교묘한 눈속임으로 우리에게 장난칩니다. 예를 들어 욕망은 우리에게 아주 믿음직스럽고 존경할 만한 친구처럼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분노와 증오도 든든한 보호자처럼 나타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해치려고 하면, 분노는 마치 멋있는 보호자처럼 치밀어 오릅니다. 강한 힘이 솟아나게 하지요. 상대방보다 약한 경우에도 분노는 여러분을 강한 것처럼 만들어 줍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힘과 에너지에 대한 객관적인 감각을 잃게 하지요. 결국 무참하게 맞고 마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분노와 같은 파괴적인 감정은 그 실체를 만나기 힘들 정도로 교묘하게 우리를 현혹합니다. 이외에도 부정적인 사고와 감정들이 우리를 속이는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마음의 상태를 완전히 드러내려면, 먼저 마음의 평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그들의 배반적인 속성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예를 들어 시민권(市民權), 사회사업, 정치적 해방, 종교 등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배경에는 항상 선한 마음이 함께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지한 관심과 바른 동기는 종교만의 것이 아닙니다. 타인이나 자신의 공동체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것입니다. 즉 좀 더 큰 단위의 공동체나 타인들의 행복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데서 생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자세와 동기가 보편 인류에 대한 봉사와 선행으로 역사 속에서 함께해 온 것입니다. 역사의 기록을 통해 이렇게 거룩한 일들을 보게 되면, 비록 과거의 일이라 단순히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더라도, 여전히 그로인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느낍니다.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이나 그들의 업적들을 보면 깊은 존경심이 절로 일어납니다. 물론 우리 시대 안에도 이러한 거룩한 행적을 남기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반면에 우리의 역사 속에는 살인, 고문, 전쟁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던 기억도 함께 간직되어 있습니다. 이것 역시 일반적인 인간의 어두운 한 단면입니다. 이러한 모든 사건의 실질적인 원인은 증오와 분노, 시기와 질투 등 채워지지 않는 탐욕입니다. 세계사(世界史)는 인류의 긍정적인 사고와 부정적인 사고의 결과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러한 과거의 기록을 통해 너무나 당연한 결과를 낳을 우리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고의 결과가 일어나도록 스스로를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제 자신「입보리행론」을 수행하는 수행자로서, 또 일개 비구(比丘)로서 아직도 이러한 감정들을 완전히 다 다스리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남에게 거친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짧은 순가 화를 가라앉히고 나서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말은 이미 나가고 난 뒤입니다. 이것을 되 돌이킬 방법은 없습니다. 말은 허공으로 살아졌다고 하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화낸 사람에 사과하는 길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부끄럽고 창피하기 때문이지요. 누군가에게 한 번 화낸 일이 이렇게 번거롭고 힘든 일을 만드는데도 화는 끊임없이 다시 또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부정적인 마음은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아주 큰 상처를 입히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거기다 끈질기기까지 하지요.

인간의 가장 좋은 특징 중에 하나는 이성(理性)입니다. 이성은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게 하고, 이롭고 해로운 것을 구별하게 해줍니다. 분노와 강한 집착은 이렇게 좋은 인간의 속성을 순간에 마비시킵니다. 아주 슬픈 일이지요. 분노와 집착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점점 더 미칠 것 같이 됩니다. 물론 어느 누구도 미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이성을 잃고 나면, 그때부터 모든 파괴적인 행동이 다 나옵니다. 한 번 마음이 이렇게 돌아가기 시작하면, 앞을 못 보는 사람처럼 갈피를 못 잡고 질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심리 상태를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면, 거의 정신 이상으로 흐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을 잘 다스리면 더 이상 파괴적인 일은 하지 않게 됩니다. 너무나 간단하게도 우리의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아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적은 바로 우리 안에 있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마음이 스스로 잘 길들여져 있다면, 적들의 힘이 강하게 밀려오더라도 크게 영향 받지 않고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감정에도 정신적인 평화와 안정은 쉽게 흔들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적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내부에 있습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적은 인격을 가진 외부의 어떤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런 적은 지극히 상대적이고 무상한 것입니다. 순간 적이었다가도 다른 순간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까운 우리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지요. 그러나 내부의 적인 생각과 감정은 조금 다릅니다. 여러분의 의식이 이어지는 동안은 과거에도 여러분이 적이었으며, 현재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도 여러분의 적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샨띠데바 보살은 부정적인 사고와 감정이 실제의 적이며, 이 적들은 우리 내부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내부의 적들은 아주 위험합니다. 외부의 적이 가지는 파괴적인 잠재성은 내부의 적에 비해 한계가 있습니다. 외부의 적에게는 가끔 물리적인 방어력을 행사할 수도 있습니다. 두꺼운 벽을 이중 삼중으로 쌓아 요새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현대의 핵무기들은 이러한 요새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주 기지를 통해 핵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는 전략적 방어망을 기술적으로 실현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즉 공격이 발전하면 방어도 발전하는 것이 외부의 적대 관계이며, 눈에 드러난 외부의 적은 어떻게든 막아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부의 적은 다릅니다. 이 내부의 적은 진지하게 잘 살펴보지 않으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평생 확인도 한번 못해본 채 한생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부의 적을 확인하든 확인하지 못하든 그들은 언제나 우리를 힘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외부의 파괴적인 적들도 알고 보면 내적에 문제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습니다. 즉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을 해소시킬 실마리인 셈입니다.

내부의 적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깊은 직관의 힘을 통하여 마음의 본성을 확실하게 아는 것입니다. 마음은 아주 복잡한 현상입니다. 불교에서는 마음과 의식을 다양한 유형으로 구분합니다. 과학에서는 어떠한 하나의 현상을 관찰할 때, 수많은 실험과 분석을 통해 낱낱의 사실들을 파악해냅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증거 자료를 가지고 그 구성요소들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이나 역할을 찾아내고는 합니다. 이러한 분석적인 접근은 언제나 흥미로운 결과를 우리에게 제시해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내부 세계나 경험적인 세계, 정신 현상 등에도 이만큼의 집중력을 발휘하면, 거기에 다양한 형태의 정신 상태와 이해 방식, 사물에 대한 인식 수준, 내면에서 비롯된 현상학적 특징 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마음에도 아주 이롭고 유용한 측면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잠재적인 사실들을 바르고 구체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에서 비롯된 고통과 문제들을 과학자들처럼 하나씩 분석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내면적인 직관을 통해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법을 수행하는 사람은 실제로 이렇게 마음을 분석하고 관찰하는데 삶의 가장 큰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내부의 적들이 남아 있는 한 언제나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샨띠데바 보살은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샨띠데바 보살은 이 세상의 모든 적들이 한꺼번에 다 달려들어도 마음이 잘 길들여져 있으면, 실제 내면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단 하나의 망상이 마음에 일어나는 것으로도 모든 내면의 안정과 평화는 산산이 흩어지고 맙니다.

만약 신(神), 비신(非神, 阿修羅) 등의 무리가
한꺼번에 나에게 적이 되어 달려들어도,
그들만으로는 무간지옥(無間地獄, Abhici)의
불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갈 힘이 없다네.

[하지만] 번뇌, 이 강력한 적은
무언가 [원인]을 만나면, 최고의 산이라도
[다 태우고] 재(灰) 하나 남기지 않으며,
[무간의 불속]으로 한순간에 나를 던지고 만다네.

(Gal Te lHa Dang lHa Min rNams// Thams Cad bDag La dGrar Langs Kyang//
De Dag Gis Kyang mNar Med Pa\'i// Me Nang Khrid Cing \'Jug Mi Nus.

Nyon Mongs sTobs Chen dGra \'Dis Ni// Gang Dang Phrad Na Ri Rab Kyang//
Thal Ba Yang Ni Mi Lus Pa// Der bDag sKad Cig gCig La \'Dor.)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제 4 장의 30, 31 게송)

샨띠데바 보살은 또 일반적인 적과 망상의 중요한 차이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일반적인 적들에 대해 잘 파악하고 나면, 친구로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망상에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망상은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오히려 여러분을 더 곤경에 빠뜨리고 맙니다.

합당한 길에 의지해서 가면,
모든 이익과 안락을 누릴 것이며,
번뇌들에 의지하면,
다시 고통이 해롭게 하리라.

(mThun Par Rim Gro bsTen Byas Na// Thams Cad Phan Dang bDe Byed Na//
Nyon Mongs rNams Ni bsTen Byas Na// Phyir Zhing sDug bsNgul gNod Pa Byed.)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제 4 장의 33 게송)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마음을 잘 다스림으로써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꿀 수 있고, 삶의 행동 방식 역시 나아지게 됩니다. 티벳의 한 지방인 암도(Amdo) 사람들은 아주 성질이 급합니다. 그래서 티벳 사람들 중에 누군가 성질 급하게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암도 출신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제 자신 암도에서 태어난 암도 출신입니다. 저도 본래 성질이 좀 급한 편인데, 그래도 10대 20대 때의 제 자신과 비교해 보면 지금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화도 잘 참을 뿐만 아니라 한번 화를 내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모두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 덕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제 생애에서 조국을 잃었고, 어머니와 훌륭한 제 스승들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제가 조금이나마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었고, 지금 이 순간 제 자신은 평화로운 마음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마음을 살피고 다스리는 훈련을 해온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속성 중에 하나입니다.

무지와 망상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한 완전하고 영원한 행복은 불가능합니다. 진정 자신의 마음속에서 이러한 무지와 망상의 구속을 발견하였다면, 이제 거기에서 자유로운 해탈을 구해야 할 시기입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비구와 비구니 스님이라면 모든 삶을 여기에 바쳐야 합니다. 완전한 해탈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스스로가 법을 수행하는데 완전히 헌신할 수 있게 되면, 그때 완전한 해탈의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저처럼 충분한 시간을 가지기가 힘들다면, 아주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해탈을 위해 헌신하는 것 이외에 너무 바쁜 일을 만들지 마십시오. 제 자신 너무나 게으릅니다. 게으른 달라이 라마 뗀진 갸초(Tenzin Gyatso)입니다. 한 생을 다 바쳐 완전히 법을 수행하는 데만 헌신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 배우고 있는 이러한 가르침들을 마음에 잘 간직하고 언제나 자신의 삶 속에 반영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러면 번뇌와 망상은 물거품처럼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업과 번뇌로 이루어진 우리의 삶은 끝없이 돌고 도는 윤회를 하며, 나타났다가 사라지고는 합니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곧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되고, 쉴 새 없이 오고 갑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생겼다가 사리지고 오고 가는데도 우리의 근본 의식의 흐름은 하나의 자의식(自意識)으로 지속됩니다. 즉 나라는 의식이 그 모든 것을 경험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렇게 조건지어진 존재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이루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을 하는 목적은 이러한 자의식의 업을 녹이고 진정한 내면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제 자신의 경험을 봐도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수행으로 가능합니다. 스스로 내면에 깊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정도는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사실입니다.

내부의 적인 번뇌와 망상은 오로지 모든 현상에 대한 궁극적인 본성을 꿰뚫는 지혜를 얻어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외부의 어떠한 무기나 물리적인 힘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바른 진리에 의지해야 합니다.

번뇌, 번뇌여, 지혜의 눈으로 흩어지니,
내 의식에서 사라져 어디로 가겠는가?
어디에 머물다 나를 [다시] 해하러 오겠는가?
약한 마음이여, 내 방일(放逸)을 태워버리는 구나.

(Nyon Mongs Nyon Mongs Shes Rab Mig Gis sPang// bDag Yid Las bSal Gang Du \'Gro Bar \'Gyur// Gang Du gNas Nas bDag gNos Bya Phyir \'Ong// bLo Zhan bDag La brTson Pa Med Par Zad.)
(「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제 4 장의 46 게송)

제가 어려서 이「입보리행론」을 처음 뀐누 라마 린포체(Kunu Lama Rinpoche)께 구전(口傳) 받았을 때, 저는 이러한 번뇌 망상이 하주 하찮고 나약한 것이라고 스승께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스승은 그 자리에서 바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원자폭탄도 이 번뇌 망상은 못 부시느니라.’ 이것이 위의 구절에서 샨띠데바 보살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내부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 값비싼 무기는 필요 없습니다. 지혜의 힘을 길러 이들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상대적인 내부의 감정과 사고의 흐름을 바르게 파악함과 동시에 모든 현상의 궁극적인 본성인 절대적인 진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공성을 보는 직관’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약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내부의 적을 말합니다. 하지만 샨띠데바 보살은 단순한 의미에서 내부의 적을 약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외부의 적과는 달리 내부의 적은 강력한 지혜의 힘으로 한 번 부서지고 나면 다시는 뭉치거나 돌아오지 못합니다.” (달라이 라마「입보리행론」법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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