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總[입문III] 나와 다르지 않은 너--이타행4.

로덴
總[입문III] 나와 다르지 않은 너--이타행4.




4. 나와 다르지 않은 너



“「입보리행론」제 8 장 「선정품(禪定品)」에서는 모든 중생을 위해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인 보리심을 일구는 실질적인 수행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샨띠데바 보살의 가르침은 용수(龍樹) 보살의 저서인「보행왕정론(寶行王正論, Rajaparikatharatnamala/ Ratnavali)」(*역주: 고려대장경(K-617)에는 진제(眞諦)의 저서로 되어 있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경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타심을 개발하는 방법은 나와 남을 바꾸어서 생각하고 평등하게 보는 수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입보리행론」의 수행도 기본적으로 여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나와 남을 평등하게 보는 수행’은 ‘내가 고통을 원치 않고 행복을 바라는 것처럼, 허공계의 한량없는 중생이 모두 고통을 벗어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개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샨띠데바 보살은 우리가 행복을 원하는 만큼 다른 이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샨띠데바 보살은 우리 몸에 머리 팔 다리 등 여러 가지 다른 부분들이 있지만 그들 모두 다 같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 각자가 모두 몸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어느 한 곳만 보호해서는 몸의 안전 역시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중생들이 고통을 싫어하고 행복을 바라는 것도 그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와 남의 상황을 다른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마치 내 몸의 한 부분처럼, 언제나 함께 보호하고 돌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의 건강 역시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부인권(天賦人權, Natural Right)’이란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바로 우리가 날 때부터 타고난 권리를 말합니다. 우리가 고통에서 자유롭고 스스로의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는 것처럼, 다른 이들도 똑 같은 권리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차이는 오직 숫자적 범위일 뿐입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권리라는 것은 자기 자신이나 자기를 둘러싼 공동체의 권리를 말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의 권리라고 말할 때는 곧 모든 중생들의 권리를 의미합니다. 또 모든 중생의 의미 안에는 이미 우리 자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이의 권리는 우리 자신의 권리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 자신의 안전이 다른 이의 안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무관심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남에게 의지해서 살아야 하며, 심지어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그들을 수행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사실만 봐도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앞에서 그렇게 지적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기 행복과 욕망만을 채우려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거기에는 무언가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이유가 있습니까? 아마 분명한 이유를 찾기가 힘들 겁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은 다른 이들의 친절과 협력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들의 이익을 챙겨주면 줄수록 여러분의 행복과 이익은 점점 자라날 것이며, 반대로 스스로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갈수록 외롭고 힘들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잘 관찰해 보십시오. 그러면 확실한 결론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진정으로 여러분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바라다면,「입보리행론」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이익보다 남들의 안위와 행복을 챙기는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고 나면, 남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매진하는 자세를 확실히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나아가 보리심에 대한 수행은 지혜를 얻기 위한 다양한 수행과 함께 병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 자신과 모든 중생들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부처의 성품(佛性)을 살펴 볼 수 있으며, 모든 현상이 실제로 공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논리적인 힘을 사용하여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의 모든 고통은 무지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을 멸하려면, 거친 마음의 속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즉 무지의 얼룩을 지워야 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지혜가 필요한 부분을 탐구하고 수행하며, 자비심과 이타심을 끊임없이 개발해 나가다보면, 마침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입보리행론」의 구성을 살펴보면, 보리심에 관한 내용들에 이어서 바로 제 9장「지혜품(智慧品)」을 설하고 있습니다.「지혜품(智慧品)」은 앞에서 설명한 장들과는 달리 아주 어렵고 복잡합니다. 저는 샨띠데바 보살이 크나크신 자비심과 너무나 아름다운 내용으로 우리에게「입보리행론」이라는 큰 선물을 주셨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제 9 장「지혜품(智慧品)」은 다릅니다. 이「지혜품(智慧品)」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것은 단순한 감동과 기도만으로는 안 됩니다. 충분히 만족할 만큼 이해할 때까지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열심히 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달라이라마 「입보리행론」법문 중에서)

이렇게 해서 ‘꺼지지 않는 불꽃, 이타심의 길’은 모두 달라이 라마의「입보리행론」법문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인연 있는 분들은 이미「입보리행론」을 한번쯤 읽었거나 공부해 보신 적이 있겠지만, 한번 읽고 감동하고 접어둘 그런 내용은 아닙니다. 평생을 자신의 수행 지침서로 삼아도 아무런 손색이 없는 논전입니다. 특히 제 9 장「지혜품(智慧品)」은 인도의 거의 모든 철학과 사상을 큰 설명 없이 한 구절 한 구절에 농축하여 논데다가, 그를 토대로 불교의 철학과 수행의 최고 정수인 공성을 논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더군다나 이 제 9 장의 34게송에서 공성의 핵심을 설하시던 샨띠데바 보살은 허공으로 그 몸을 숨긴 뒤 다시는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그 이후 저자거리에 입전수수(立廛垂手)하여 회향(廻向)하신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만은 아닙니다. 이 소중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시절 인연이 되어 함께 공부할 날을 기대해 봅니다. 더불어 이제는 금강승의 길을 살펴보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다음부터는 밀법(밀법, Tantra) 입문의 장입니다. _()_


금강승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올리는 조그만 기도입니다.



로덴의 기도 II.


금강의 춤


지축을 흔드는 소리에 깨어보면,
저 만치에 금강의 춤을 추는 스승이 계십니다.

당신의 한 사위 한 사위,
세상의 모든 것을 부숴버립니다.

소멸하는 아름다움에
말문이 막히고,
내 딛는 우주의 발사위는
환희의 정수로 녹아듭니다.

세상의 모든 속박을 무너뜨리는
자유로운 환희의 춤,
빛나는 소멸의 춤,
.........

오늘도 저를 위해
금강의 춤을 추시는 스승이시여.

일심으로 정례(頂禮) 귀의하나이다.

---

세상의 조그만 거울이 되어,
맑게 빛나는 법을 나누기 위해 애써보지만,
언제나 부족함과 게으름이 부끄럽게 합니다.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살가운 정을 나누지도 못했습니다.
먼 산, 가까운 세상을 넘나 드니라 익히 가진 것도 없습니다.

빈한(貧寒)한 살림에 올리는 이 정화수(井華水) 한 그릇이
제가 올리는 공양의 전부입니다.

모두가 부족한 것들뿐입니다.

하지만 스승이시여,
당신을 향한 기쁨의 눈물만은 변함없습니다.

그러니 스승이시여,
제가 기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언제나 한결같이 따듯한 빛으로 나투소서.
부디 그들의 빛으로 강림하소서.

함께 하는 이들에게
스승의 향기를 전하게 하소서.

아침의 기도에 부쳐,

로덴 합장.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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