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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사억념도정가(四憶念道情歌)

로덴
초대의 글>>




사억념도정가(四憶念道情歌)




롭상 깰상 갸초(Lobsang Kalsang Gyacho) 作詩, 로덴 譯



1. 방편과 지혜 두 가지를 다 갖춘, 변함없는 상좌(上座:玉座)에
모든 귀의의 대상(本處)이신, 은혜로우신 스승께서 앉으셨네.
단증(斷證)하고 원만하신 부처 한 분, 거기에 계시니,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맑은 마음(淨相)으로 기도(啓請)하라.
자신의 마음을 방치하지 말고 존경과 믿음 속에 안주하라.
억념(憶念)을 잊지 말고 존경과 믿음 속에 간직하라.

2. 생사윤회의 끝없는 고통의 감옥에서
안락을 잃은 여섯 종류의 유정(有情)이 떠도네.
은혜로이 [우리를] 기르시던 부모님들 거기 계시니,
집착과 증오를 버리고 애정과 자비를 기르라.
자신의 마음을 방치하지 말고 자비 속에 안주하라.
억념(憶念)을 잊지 말고 자비 속에 간직하라.

3. 평온을 느끼는 극락(極樂)의 무량궁(無量宮),
온(蘊)과 계(界)가 청정한 이 몸에 신성한 몸이 계시니,
삼신(三身)과 둘이 아닌 본존(本尊) 한 분 거기 계시네.
평범하게 여기지 말고 자부심과 명료함을 연마하라.
자신의 마음을 방치하지 말고 깊은 밝음 속에 안주하라.
억념(憶念)을 잊지 말고 깊은 밝음 속에 간직하라.


4. 드러나 있는(現象) 인식의 대상(所知)인 만다라(漫茶羅:道場)에는
법의 성품 자체인 해 밝은 허공이 가득하고,
표현할 길 없는 절대법칙(絶對法則:眞諦) 하나 거기 있으니,
망상을 버리고 청정한 공성의 본래 성품을 보라.
자신의 마음을 방치하지 말고 진여 속에 안주하라.
억념(憶念)을 잊지 말고 진여 속에 간직하라.

5. 여섯 가지 의식(意識)들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교차로에서
자신의 마음을 소홀히 하여 법의 성품을 제대로 보지 못하누나.
속임수 환영인 연극 한 편 거기 있으니,
진리로 생각 말고 공성(空性)의 본래 성품을 보라.
자신의 마음을 방치하지 말고 밝은 공성 속에 안주하라.
억념(憶念)을 잊지 말고 밝은 공성 속에 간직하라.

이상(以上)은 지존(至尊) 문수사리묘음(文殊師利妙音) [보살]께서 법왕(法王) 쫑카빠(Tsong ka pa) 대사(大師)에게 직접 전하신 교계(敎誡)로서, 특별히 네 가지의 억념(憶念)을 지니는 눈을 열어주고 이어주는 도정가(道情歌: 깨달음의 노래)이다. [이 내용을] 자타(自他)에게 정견(正見)의 습기(濕氣)를 들이고자 석문(釋門) 비구(比丘) [제7대 달라이 라마] 롭상 깰상 갸초(sLo bzang skal bzang rgya mtsho)가 편찬(編纂)하나이다.

이 제7대 달라이 라마 롭상 깰상 갸초께서 편찬(編纂)하신 <사억념도정가(四憶念道情歌)는 다람살라의 세릭 빠르캉에서 서기 2003년 출판한 교정 인쇄본으로 서기2004년 정초(正初)에 한국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사억념도정가(四憶念道情歌)』달라이 라마 강설>>


깨달음의 비,

롭상 깰상 갸초의『사억념도정가(四憶念道情歌)』



(*역주: 원제는『중관인사억념성취기우도정가(中觀引四憶念成就祈雨道情歌, T: dBu ma\' lta khri dran pa bzhi ldan gyi mgur dbyangs dngos grub char \'bebs)』이다.)


달라이 라마의 1979년 스위스 성당(聖堂)의 강설(講說) 중에서,

오늘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하여 이곳 가톨릭 성당에 모인 여러분을 보니 너무나 기쁘고 행복합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과, 이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미 세상은 다양한 지식과 상품들을 서로 편리하게 교환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특정한 나라나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 된 것입니다. 아주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분전에 저는 위층에서 가톨릭 신부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다양한 종교의 신도(信徒)들이 이러한 접촉을 갖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는데 서로 공감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다른 이들이 서로의 지혜를 교환하고 연구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1973년 교황(敎皇)님을 만났을 때도 다른 종교 간에 지혜를 교환하는 것에 대한 이러한 논의를 했었습니다.

고대(古代)에는 각각의 대륙뿐만 아니라 조그만 마을들까지도 고립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반면에 지금의 21세기는 서로간의 대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관계가 너무나 밀접해 진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나 지식의 상호 교환이 가능한 다양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러한 고무적인 상황을 너무나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은 아주 은혜로운 일입니다. 만약 소심한 마음을 가지고 접근하거나 고집스런 태도를 가진다면, 이러한 접촉은 오히려 서로 부딪치고 반발할 위험이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가간다면, 이러한 상호 교환은 여러 종교의 일반적인 목적을 위해 아주 유익한 결과를 맺을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이미 자신들의 일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로 인류의 조화와 형제애, 그리고 평화를 기본으로 한 것입니다.

오늘 이 화창한 오후에 나는 『사억념도정가(四憶念道情歌)』 즉, 깨어서 기억하는 마음인 억념(憶念)(*역주: 억념(憶念, T: Dran-pa S: smrti, mindfulness는 일반적인 기억이나 생각과는 의미가 다르다. 즉, 부처님이 본래 중생의 이익을 위해 세웠던 서원의 차원에서 자신을 항상 놓치지 않고 바라보며 깨어 있는 것을 말한다.)의 네 가지 종류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억념은 불교수행의 전문적인 용어입니다. 항상 깨어서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고 기억하여 잊지 않는 수행의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네 가지 억념에는, 첫 번째 공성(空性)에 대한 억념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보리심(菩提心)의 근본인 자비(慈悲)에 대한 억념입니다. 세 번째는 여러분의 몸을 신성한 몸으로 보는 밀교 수행과 관련한 억념입니다. 또, 네 번째는 정신적인 친구와 스승에 대한 억념이 있습니다. 이 원전(原典)은 쫑카빠 대사(大師)께서 구전전승(口傳傳承)하신 것을 대덕(大德) 쉐랍 셍게(Sherab Senge)께서 이어 받은 스승의 맥(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게송은 제7대 달라이 라마이신 깰상 갸초(Kalsang Gyacho)께서 정리하여 지으신 것입니다.

소승과 대승, 현교와 밀교 등 불교의 다양한 체계와 분류 방식에 대한 설명은 이미 앞서서 많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미 이러한 내용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접한 분들도 천천히 공부해나가다 보면 점점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에 불교의 기본적인 수행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을 설명하겠습니다. 완전한 전환(轉換) 또는 좋은 쪽으로의 전환을 불교의 수행의 기본입니다. 실제 전환해야할 대상은 거칠고 탁한 몸, 그리고 말과 의식입니다. 이들을 맑고 청정한 몸과 말과 의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불교의 수행입니다. 이것은 화학적인 전환의 과정이 아닙니다. 모든 좋지 않은 원인을 제거하고 좋은 것을 개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쁜 것을 제거하고 좋은 것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제어해야 합니다. 마음이 잘 길들여져 있지 않으면, 좋지 않은 원인들이 왕성해집니다. 하지만 마음이 잘 길들여져 있으면, 좋은 원인들이 자라납니다. 이렇게 마음이 잘 길들여진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를 구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마음 이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불합리합니다. 이렇게 유일(唯一)한 것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학파들의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현상이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모든 현상은 마음이다.”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마음에는 다양한 특성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는 좋아하고 싫어함 또는 선과 악의 다양한 현상들이 일어났다 사라집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원인과 조건이 서로 결합하고 해체하여 생기는 마음의 변화들입니다. 불교에서는 생겼다가 사라지는 마음의 속성들이 과거에 길들여진 마음의 상태와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잘 길들여진 마음은 좋은 속성의 결과를 만듭니다. 따라서 마음이 길들여져 있느냐 아니냐는 좋고 나쁜 행위를 일으키는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결국 좋은 행위는 좋은 현상을 만들고 나쁜 행위는 나쁜 현상을 만듭니다. 여기서 제가 사용하고 있는 “선”과 “악”이라는 용어는 각각 자기 자신과 남을 편하게 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개념적인 용어입니다. 순간적으로든 궁극적으로든 무언가 편안하지 않으면, 행복보다는 고통이 따릅니다. 여기서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자신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자신이 독립적으로 따로 떨어져 존재한다고 생각할 때부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이러한 생각이 자신에 대한 자의식(自意識)으로 발전하여 “나”라고 하는 확고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이러한 잘못된 이해 때문에 남에 대한 구별이 생기고 자신에 대한 집착이 생깁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이기심으로 구별하고 비교하기 때문에 분노와 증오 같은 상대적 감정이 생겨나며, 이전에 자의식(自意識)이 생기지 않았을 때 고요하고 평화롭던 행복은 부서지고 맙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분노와 증오는 남들을 비난하고 해롭게 하는 동기가 됩니다. 동시에 얼굴 표정은 일그러지고 점점 어둡게 되어 갑니다. 이것은 다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자신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한 마음의 변화가 말과 얼굴을 변하게 하고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그래서 조화는 깨지고 폭력과 전쟁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다른 모든 전쟁들은 나와 다른 대상을 향한 엄청난 집착과 증오가 자라나 발생한 것입니다. 아마 스위스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별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세계에 어떤 충돌이 있어도 여러분은 중립적인 입장에 서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제 그와는 반대되는 상황을 말해 보겠습니다. 누군가 마음이 잘 길들여져 평화롭고 행복하다면, 그의 말은 부드럽고 친절할 것입니다. 그래서 남들을 편하고 즐겁게 할 것입니다. 마치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얼굴 표정은 아주 편안할 겁니다. 자신의 편안함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분위기를 포근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행동은 마음의 잘못을 제어하고 좋은 면을 개발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해서 마음의 모든 허물과 잘못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시도할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선하고 좋은 삶만이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희망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평화로운 마음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수행이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자(慈:사랑)와 비(悲:연민)를 개발하여 다른 이들을 돕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수행해 나가면 자비의 억념이 갖춰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벗어날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방법을 방편(方便)이라고 합니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지혜와 방편의 해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방편은 지혜를 파악하도록 도우며, 지혜는 방편을 파악하게 합니다. 서로를 보충해 주는 것이지요. 이 지혜와 방편을 하나로 합일(合一)하는 것이 바라밀(婆羅蜜)의 길을 가는 핵심입니다. 이러한 형태로 지혜와 방편을 합일하는 수행을 일반적으로 바라밀승(婆羅蜜乘)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지혜와 방편을 동시에 개발하는 특별한 수행인 금강승(金剛乘)이 있습니다. 이것은 밀교적인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다음 억념은 이 밀교의 수행인 신성한 몸과 관련한 것입니다.

밀교의 수행을 하려면 스승이 필요합니다. 어떤 유형의 스승이 필요할까요? 율장(律藏, Vinaya)이나 경전에는 이러한 스승의 자질과 자격이 잘 나와 있습니다. 또, 밀교의 경전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결국은 이러한 수행에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갖춘 스승이 필요합니다. 스승은 깊은 경험이 필요하고, 제자는 그렇게 완전한 자격을 갖추신 스승께 헌신해야 합니다. 따라서 다음의 네 가지의 억념은 스승의 길에 대한 억념입니다. 자 이제 게송을 읽어 보겠습니다.

1. 방편과 지혜 두 가지를 다 갖춘, 변함없는 상좌(上座:玉座)에
모든 귀의(歸依)의 대상(本處)이신 은혜로우신 스승께서 앉으셨네.
단증(斷證)*하고 원만하신 부처 한 분, 거기에 계시니,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맑은 마음(淨相)으로 기도(啓請)하라.
자신의 마음을 방치하지 말고 존경과 믿음 속에 안주하라.
억념(憶念)을 잊지 말고 존경과 믿음 속에 간직하라.

(*역주: 단증(斷證)은 모든 번뇌 망상을 끊고 성문(聲聞)의 경지나 연각(緣覺)의 경지 또는 십지(十地) 보살 이상의 수승한 경지를 검증한 수행의 경지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스승의 길과 관련한 수행에는 외적(外的) 수행, 내적(內的) 수행, 비밀 수행으로 알려진 각기 다른 차원의 수행이 있습니다. 외적 수행은 자신의 스승을 눈앞의 허공중에 관상(觀想)하는 것을 말합니다. 스승께서 변하지 않는 지혜와 방편의 합일을 상징하는 귀의의 대상으로서, 완전한 출리심(出離心)과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 같은 지혜를 갖추시고, 해와 달의 방석 위에 앉아계시는 모습을 관상합니다. 스승을 모든 잘못과 허물에서 자유로우신 분으로 보아야 합니다. 스승에 대한 존경과 믿음을 키우고 마음을 소홀히 방치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스승을 모든 잘못을 떠난 완전한 부처로 보는 것이 밀교 수행 특히, 무상요가(無上瑜伽)의 기초입니다. 네 가지 관정(灌頂)(*역주: 관정(灌頂,S: abhisheka T: dBang-bskur)은 밀교수행의 입문의식이며, 스승으로부터 수행의 힘을 얻는 전수의식이기도 하다. 아주 다양한 유형의 관정이 수행의 방법과 전통에 따라 주어진다. 여기서 네 가지 관정이란 무상요가에서 주로 행하는 보병, 비밀, 지혜, 제4의 언어 관정 등, 네 가지 관정을 말한다.)을 모두 경험하고 밀법을 수행할 수 있는 완전한 자격을 갖추신 스승은 부처와 같은 존재입니다.

다음 게송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보리심(菩提心)에 대한 억념에 관한 것입니다. 읽어 보겠습니다.

2. 생사윤회의 끝없는 고통의 감옥에서
안락(安樂)을 잃은 여섯 종류*의 유정(有情)이 떠도네.
은혜로이 [우리를] 기르시던 부모님들 거기 계시니,
집착과 증오를 버리고 애정과 자비를 기르라.
자신의 마음을 방치하지 말고 자비 속에 안주하라.
억념(憶念)을 잊지 말고 자비 속에 간직하라.

(*역주: 여섯 가지 종류의 유정 중생, 즉 천상,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을 말한다.)

이 게송의 첫 번째 줄에 있는 “생사윤회”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고통의 근원인 번뇌 망상의 주체가 정신적 물리적 모임인 온(蘊)으로 윤회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유형의 고통이 있습니까? 직접적인 고통으로 인한 고통인 고고(苦苦), 변하는 고통인 변고(變苦), 업과 번뇌가 무르익어 행을 해야 하는 속에서 생기는 고통인 행고(行苦)가 있습니다. 모든 유정 중생들은 윤회의 원인들이 다하지 않는 한 이러한 고통을 끝없이 경험해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유정 중생들은 수만 가지 유형의 고통을 경험합니다. 모든 중생들이 실제로 바라는 것은 행복이지만, 어떻게 행복을 찾아야 할지는 잘 모릅니다. 이러한 상황은 여섯 종류의 유정 중생들에게 똑같습니다.

중생들은 행복을 원하지만 행복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또 고통에서 자유롭기를 바라지만 여전히 고통스럽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그냥 무시해야 합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시작도 없던 그때부터 우리의 부모님처럼 나를 그렇게 은혜롭게 돌봐주던 이들이 바로 중생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차라리 자신에 대한 집착과 남들에 대한 증오를 버려야 합니다. 자신보다는 남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자세를 키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다른 이들의 고통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는 자비심을 수행해야 합니다. 앞에서 했던 법문을 들으신 분들은 자기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허물과 그것들을 제거하는 방법에 대해서 잘 들었을 것입니다. 남들을 행복하게 하는 가치를 잘 알고, 어떻게 남들의 행복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때 가르친 내용이 지금 여러분에게 하려는 말과 똑같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게송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제 자신의 몸을 신성한 몸으로 억념(憶念)하는 세 번째 게송 차례입니다. 읽어 보겠습니다.

3. 평온을 느끼는 극락(極樂)의 무량궁(無量宮),
온(蘊)과 계(界)*가 청정한 이 몸에 신성한 몸이 계시니,
삼신(三身)**과 둘이 아닌 본존(本尊)*** 한 분 거기 계시네.
평범하게 여기지 말고 자부심과 명료함을 연마하라.
자신의 마음을 방치하지 말고 깊은 밝음 속에 안주하라.
억념(憶念)을 잊지 말고 깊은 밝음 속에 간직하라.****

(*역주: 온(蘊)과 계(界)는 불교의 일반적인 용어인 오온(五蘊)과 십팔계(十八界)를 의미하지만 밀교(密敎)적 의미에서는 좀더 청정하고 미세한 차원의 구성 원리를 말한다.)

(**역주: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을 의미한다.)

(***역주:본존(本尊, Yi-dam)은 수행의 스승이나 근본 부처 또는 관상(觀想) 수행의 주존(主尊)을 말한다.)

(****역주: 실제 이 세 번째 게송은 밀교(密敎) 수행의 핵심 원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문자하나 하나의 의미 보다는 전체적 수행 내용을 공부하고 이해해야 한다.)

첫 번째 줄은 “평온을 느끼는 극락(極樂)의 무량궁(無量宮)”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밀교에 네 가지 단계의 구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게송은 무상요가(無上瑜伽)와 관련이 있습니다. 무상요가(無上瑜伽)는 전환의 생기차제(生起次第)와 구경의 원만차제(圓滿次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생기차제(生起次第)에 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이 게송의 앞부분에 있는 네 줄은 자신에게 있는 본래의 청정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두 가지의 청정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완전무결하고 신성한 궁전의 한 가운데 자신이 존재합니다. 몸은 청정한 모임으로 이루어진 신성한 몸입니다. 자신을 그렇게 청정한 모습으로 관상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자신의 몸을 부처님의 화신(化身)으로, 말을 보신(報身)으로, 마음을 법신(法身)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몸과 말과 마음은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이 두 가지 몸을 부처님과 같은 속성을 가진 몸으로 생각하고 관상합니다. 여기서 마음이라고 말할 때는 부처님의 마음 또는 진신(眞身)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미세한 마음 또는 “풍기(風氣 rLung)\"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그러한 전환 또는 불성(佛性)을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즉 일반적인 상태의 몸을 가진 자신을 버리고, 신성한 상태의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존재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명료하게 관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궁극적인 귀의(歸依)를 결과적인 귀의라고 합니다. 그것은 자신과 다른 외부의 어느 누가 아니라 스스로 안에 있는 부처님입니다. 즉 자신의 몸과 말과 마음이 완전히 정화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 수행은 자신 안에 있는 궁극적인 부처님을 발견하는 것이며, 자신에 대한 궁극적인 귀의입니다.

다음 다섯 번째 줄은 “자신의 마음을 방치하지 말고 깊은 밝음 속에 안주하라.”입니다. 여기서 “깊은”은 공에 대한 설명이며, “밝음”은 자신의 몸을 신성한 몸으로 관상하여 나타난 상태입니다. 즉 이 두 가지가 하나로 결합한 상태입니다. “깊은 밝음”은 지혜와 방편이 하나로 결합된 상태를 말합니다. 불교 이외의 밀법에서는 단순히 자신을 하나의 신성한 존재로 관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불교의 밀법에서는 자신이 신성한 본존으로서 만달라에 거주하는 것을 관상하며, 그 본존 자체도 궁극에는 공한 것으로 관상합니다. 이것이 불교 밀법 수행의 특징입니다.

다음 게송은 공성(空性)에 대한 억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실제 이 내용은 두 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게송4.)는 허공과 같은 상태의 삼매(三昧)를 말합니다. 두 번째(게송5.)는 수행의 회향 단계에서 오는 환영(幻影)과 같은 상태의 삼매를 말합니다. 다음은 두 게송 중에 첫 번째입니다.

4. 드러나 있는(現象) 인식의 대상(所知)인 만다라(漫茶羅:道場)에는
법의 성품 자체인 해 밝은 허공이 가득하고,*
표현할 길 없는 절대법칙(絶對法則:眞諦) 하나 거기 있으니,
망상을 버리고 청정한 공성의 본래 성품을 보라.
자신의 마음을 방치하지 말고 진여 속에 안주하라.
억념(憶念)을 잊지 말고 진여 속에 간직하라.

(*역주: 이 구절 역시 밀교의 관상 수행과 관련이 있으며, 거친 이 현상계가 완전히 정화된 청정 세계인 만다라의 세계는 본래의 성품인 빛을 그대로 간직한 세계라는 말이다.)

“드러나 있는(現象) 인식의 대상(所知)”은 모든 유형의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 현상은 실제로 드러나 있는 존재이며 선과 악이고 윤회와 열반의 속성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은 공성을 포함합니다. 즉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공성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현상이 단지 이름일 뿐이라는 의미이며, 생각으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본래의 성품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본래 성품은 공성입니다. 따라서 “표현할 길 없는 절대법칙(絶對法則:眞諦)”인 존재의 궁극적인 상태는 “해밝은 허공이 가득”한 상태를 말합니다. 왜 이러한 상태를 표현할 길이 없다고 말하는 걸까요? 그것은 이 현상계가 눈에 보이는 그대로 혹은 나타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른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표현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상이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개별적인 것들은 모두 생각으로 지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번뇌 망상을 제거하고 본래 자성이 결여되어 있는 마음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즉 공성을 바로 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이 공성을 “청정한 공성”이라고 부릅니다. “마음을 방치하지 않고” 잘 붙들고 있는 것을 허공과 같은 선정(禪定)이라고 합니다. 즉 허공과 같은 삼매에 든 것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현상의 공성은 누가 만든 것이거나, 부처님의 가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 본래의 성품이 없는 궁극적인 존재의 한 표현 방식일 뿐입니다.

다음은 수행의 회향 단계에서 오는 환영(幻影)과 같은 상태의 삼매(三昧)에 대한 게송입니다.

5. 여섯 가지 의식(意識)들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교차로에서
자신의 마음을 소홀히 하여 법의 성품을 제대로 보지 못하누나.*
속임수 환영인 연극 한 편 거기 있으니,
진리로 생각 말고 공성(空性)의 본래 성품을 보라.
자신의 마음을 방치하지 말고 밝은 공성 속에 안주하라.
억념(憶念)을 잊지 말고 밝은 공성 속에 간직하라.

(*역주: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여섯 가지 의식이 만들어낸 마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환영(幻影:번뇌)으로 본래의 성품을 바로 보지 못하고 흐려진 상태를 말한다.)

이 게송은 먼저 교차로에서 어떤 마술사가 만들어 내는 환상과 환영을 그려 보게 합니다. 거기에 코끼리나 말 등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잠시 스쳐지나 가는 것일 뿐, 실제 그 자리에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말과 코끼리가 그렇게 잠시 보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들이 거기에 실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하나의 환영으로 보고,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진실은 우리 자신의 여섯 가지 의식이 무지로 오염되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러한 방식으로 거기에 존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잘못된 생각으로 착각한 것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들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무지의 힘으로 우리의 의식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상의 궁극적인 존재 형식에서 보면, 그것은 완전히 상상 속에 그려진 생각일 뿐입니다.

이러한 공성이 세속적인 현상으로 나타날 때 우리는 그것을 대상으로 인식하여 선과 악을 구별하며, 좋고 나쁨 등을 판단합니다. 하지만 이미 앞에서 이러한 대상 하나하나를 분석적으로 살펴보았고, 그들에게 본래의 성품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 하였습니다. 이것을 깨우침으로서 이 모든 현상들이 꿈에서 생겨나는 환영처럼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깊은 선정에 들어 존재의 궁극적인 형태인 빛과 같은 상태를 경험하고 나면, 이 모든 현상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밝은 빛과 같은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현상에 본래의 성품이 없는 것을 바로 보면서도, 세속적으로 존재하는 현상 하나하나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제7대 달라이 라마 롭상 깰상 갸초께서 편찬(編纂)하신 『사억념도정가(四憶念道情歌)』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극히 짧은 게송이지만 현교와 밀교의 모든 수행 방법을 종합해 놓은 것입니다. 법(法)을 수행하든 안하든, 종교가 같든 다르든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든 따르지 않던, 그것은 모두가 여러분 자신의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말씀드린 티벳 전통에 따른 부처님의 가르침은 현교와 밀교, 지혜와 방편을 합일하기 위해 수행하려는 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제 모두 마쳐야 할 시간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상은 지존(至尊) 문수사리묘음(文殊師利妙音) [보살]께서 법왕(法王) 쫑카빠(Tsong ka pa) 대사에게 직접 전하신 교계(敎誡)로서, 특별히 네 가지의 억념(憶念)을 지니는 눈을 열어주고 이어주는 도정가(道情歌: 깨달음의 노래)(*역주: 여기서 도정가(道情歌)란 티벳어 문학 중에, 특히 불교 대장경에서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는 내용을 통틀어 부르는 문학의 한 분야이다. 본문의 내용은 밀법 수행을 통해 완성한 모든 경지 역시 궁극의 본성이 공성임을 노래하고 있는 도정가(道情歌)의 한 형식이다.)이다. 자타(自他)에게 정견(正見)의 습기(濕氣)를 들이고자 석문(釋門) 비구(比丘) [제7대 달라이 라마] 롭상 깰상 갸초(sLo bzang skal bzang rgya mtsho)가 편찬(編纂)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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