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總[입문IV] 딴뜨라의 예비수행 --금강승3.

로덴
總[입문IV] 딴뜨라의 예비수행 --금강승3.




딴뜨라의 예비수행



모든 딴뜨라의 수행은 스승이 자격을 갖추었다고 인정하는 제자와 제자가 완전히 믿고 따를 수 있는 자질을 모두 갖춘 스승이 사자전승(師子傳承)하는 것이 법을 전하는 가장 정통적인 방식입니다. 그래서 딴뜨라에 입문하기 전에 먼저 금강의 계율과 서약을 맹세하며, 그에 따른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칩니다. 제자의 입장에서 보면 스승에 대한 신뢰를 쌓아나가는 과정이며, 스승의 입장에서 보면 제자를 제대로 된 법 그릇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스승의 성향과 제자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흑마술과 살인의 대업(大業)을 지은 밀라레빠(Milarepa) 같은 경우는 재가(在家) 스승이었던 마르빠(Marpa)에게 엄청난 시련과 혹독한 정화의 수업을 예비 과정으로 거쳤습니다. 이 경우 사랑과 인내로 충만한 스승의 자질과 그것을 견뎌낼 만한 제자의 자질이 없었다면, 기본적인 법을 전하기도 전에 벌써 법 인연은 끝났을 것입니다. 이 외에도 제대로 된 딴뜨라의 법을 전수하기위한 스승과 제자 사이의 감동적인 일화는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법의 전승 방식을 가지고 있는 딴뜨라도 입문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공통적인 예비 수행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도 불교의 딴뜨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승받아 1000년도 훨씬 넘게 전수해온 티벳 불교의 모든 학파가 공통적으로 거치는 예비 수행입니다. 이제부터 그 예비수행의 내용들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시작도 없던 그때부터(無始以來) 쌓아온 업과 번뇌로 인하여 끊임없이 생사유전(生死流轉)하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깊은 수행에 들어가려면, 몸과 마음에 깊숙이 베어있는 이 업과 번뇌를 정화(淨化, purification하는 기본적인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조건을 긍정적인 조건으로 바꾸어 나가는 준비 과정을 티벳 불교에서는 ‘예비수행(豫備修行, sNgon \'gro, 前行, parvagama)’이라고 합니다.

보통 예비수행은 세속적인 욕망에 붙들려 있는 마음을 중생의 이익을 위한 정신적인 수행으로 전환(轉換, transformation)하기 위해 관상법(觀想法)과 물리적 행위를 병행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밀법을 전하는 대부분의 스승들은 이러한 예비수행을 거치지 않은 제자에게는 본격적인 딴뜨라 수행을 위한 입문관정(入門灌頂, dBang bsKur, abhisheka)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 예비수행은 모든 딴뜨라를 수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선행 조건입니다. 바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수행은 마지막에 결과를 맺기도 힘들뿐더러, 어느 정도 결과를 맺더라도 언제나 무언가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수행의 기본은 적절한 과정을 거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딴뜨라에 입문하기 위해서 행하는 예비수행에는 (1) 귀의(歸依), (2) 배례(拜禮), (3) 금강살타(金剛薩陀, Vajrasattva) 수행, (4) 만다라 공양(曼茶羅 供養), (5) 구루요가(Guru Yoga, 스승요가) 등이 있으며, 순서도 귀의에서 시작하여 점점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식입니다.

귀의(歸依)

불교의 모든 수행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성취하신 무수히 많은 스승들이 법계에 계시며, 이 전통을 끊임없이 보존 전승하고 있는 승가(僧家)가 있습니다. 따라서 불교의 모든 수행에 입문하는 제자들은 이 고귀한 가르침을 전하신 분과 그 법과 그 맥을 이어가는 승가에 대한 귀의를 시작으로 실제 수행에 들어갑니다.

일반적으로 불(佛) 법(法) 승가(僧家)의 삼보(三寶)에 귀의를 하는 데는 여러 가지 동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을 피해 안락을 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이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려는 동기를 가지고 귀의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동기든 다 귀의하는 이유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무언가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의 한계를 느끼고, 불교 수행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 자체가 중요하며, 그로 인해 귀의심(歸依心)을 일으키게 된다면 더 없이 훌륭한 것입니다. 물론 굉장한 동기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불교 수행을 위한 서원을 세우기에는 충분합니다. 더불어 대승의 길이 모든 중생을 이익을 위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귀의를 위한 동기는 모두 갖추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부처님께 귀합니다. 거룩한 불법에 귀의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승가에 귀의합니다.”라고 귀의를 맹세하면 됩니다. 물론 앞에서도 누누이 말한 것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귀의를 하기까지는 맹목적인 믿음만 가지고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스스로 점검해보고 나서 그것이 지혜의 등불을 밝혀줄 진리라는 확신이 섰을 때 귀의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실제 불교 수행에 들어가서도 흔들림 없는 정진력과 바른 법을 판단할 수 있는 눈을 갖출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삼보에 대한 귀의를 하고 나서도, 딴뜨라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더 귀의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딴뜨라의 깊은 경지를 설명하고 이끌어줄 스승에 대한 귀의입니다. 나아가 밀법의 스승은 제자의 모든 수행에 언제나 완전한 모습으로 자리하기 때문에 끝없는 존경심과 헌신의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섣부르게 스승을 선택할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물론 스승도 아무나 제자로 받아들지는 않습니다. 적절한 조건과 근기를 갖춘 제자만이 밀법의 수행을 완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딴뜨라에 들어가는 입문관정을 받을 때는 그 첫 번째 귀의의 대상이 바로 스승입니다. 그러고 나서 삼보에 귀의합니다. 수행의 한 중심이 바로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특정한 무상요가를 수행할 때는 승승과 둘이 아닌 그 법계의 본존께 먼저 귀의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결국 이 모든 귀의는 부처님께 하는 것과 같습니다. 딴뜨라의 모든 본존과 스승들은 부처님께서 화현하신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딴뜨라를 수행하고자 하는 입문제자들은 스스로 납득할 만큼 충분한 귀의의 조건이 갖추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전적으로 스승께 귀의하여 헌신하는 것이 최상의 결과를 맺는 방법입니다. 딴뜨라를 수행하기 전에 하는 귀의는 보통 예비수행으로 귀경게(歸敬偈)를 100,000번 염송(念誦)합니다.

배례(拜禮)

절을 하는 수행인 배례(拜禮, phyag \'tshal, 절하기)는 아주 중요한 예비수행입니다. 모든 불교 수행에 있어서 절하기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지만, 딴뜨라를 수행하는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예비수행 중에 하나입니다. 절하기는 보통 앞에다 단을 차리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찰에 가면 당연히 부처님을 모신 단(壇)이 있기 때문에 바로 절하기를 시작하면 되지만, 가정에서 혼자 수행을 하는 경우는 조그만 불단(佛壇)을 갖추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잘 조성된 불상(佛像)이나 불화(佛畵)를 중앙에 모시고 정화수(井華水)와 향을 올릴 만한 정도의 정갈하고 소박한 단이면 훌륭합니다.

절하기 수행은 물리적인 행위로 인해 생긴 부정적인 몸의 업을 정화하는데 최고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물론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아 절하기에 무리가 있는 경우는 스스로 잘 조절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히려 몸만 더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게으름을 피우기 위한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절을 할 때는 단순히 몸만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의식을 부처님의 완전한 모습과 자비로운 행위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몸을 움직여서 하는 절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보통 절하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온 몸을 다 사용하는 오체전신투지(五體全身投地) 방식으로, 먼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나서 정수리 목 가슴(또 다른 방식으로는 정수리 이마 목 가슴 네 군데의 맥륜 자리)에 순서대로 댄 다음 가볍게 반배를 한 후, 다시 같은 방식으로 손을 움직여 예를 갖춘 다음 온 몸을 구부려 엎드린 후, 양 무릎과 이마, 양 손바닥이 땅에 닿게 하여 머리위로 올려 손끝을 살짝 들어 예를 표한 다음 일어나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일반적으로 한국 사찰에서 많이 하는 절의 형태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약식 절하기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티벳에서는 이런 절하기 수행을 평생 동안 수백만 배를 하는 경우도 많으며, 수미산(須彌山, Mt. Kailash) 순례에 나서는 사람들이 오체투지로만 모든 순례를 마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딴뜨라에 입문하는 예비수행으로서 하는 경우는 100,000배를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절을 더 많이 하는 경우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딴뜨라에 입문하기 위한 절하기와 다른 예비수행들은 단순히 예비수행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근기를 다 갖춘 딴뜨라의 최상근기 수행자들도 언제나 함께하는 일상의 수행인만큼 평생의 수행으로 삼아도 좋은 방법들입니다.

딴뜨라에 입문하는 예비수행으로서 절을 하는 경우는 먼저 자기 앞 허공중에 자신의 근본 스승을 중심으로 무한히 펼쳐져 있는 법계의 스승들과 불보살님들을 함께 관상해야 합니다. 궁극의 깨달음을 통해 하나가 될 스승과 본존을 관상함으로써 딴뜨라 수행의 본래 목적을 가슴 깊이 세기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의식의 작용을 활용하지 않는 딴뜨라는 단지 공허한 몸짓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몸을 정화하기 위한 절을 하지 말고 말과 마음까지 정화할 수 있는 진언 염송(자기 귀에 들릴 정도나 속으로)과 관상을 함께 해야 합니다. 이렇게 신(身) 구(口) 의(意)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때 절하기 수행은 제 가치를 발휘합니다.

금강살타(金剛薩陀) 수행

이 금강살타(金剛薩陀, rDo rje sems dpa\', Vajrasattva)는 기본적으로 정신적(생각과 말)인 정화를 위한 수행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스승의 지도를 받아 수행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내용이 입문의 장이니 만큼 기본적인 ‘금강살타 수행법’의 내용을 간추려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딴뜨라에 입문하는 예비 수행으로 하는 금강살타 수행은 먼저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의 모든 상호(相好)를 갖추신 금강살타존(金剛薩陀尊)을 자신의 정수리에 모시는 관상을 해야 합니다. 실제 입문관정 의식을 치른 제자는 자신을 직접 본존으로 관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예비 단계의 수행을 할 때는 이렇게 자신의 정수리에 모시는 관상을 해야 합니다. 이때 금강살타존은 자신의 근본 스승께서 청정한 가피로 화현하신 모습입니다. 밀법을 전하는 스승들께서는 이 수행 방법이 오염된 의식을 정화하는데 최고의 효과를 발휘한다고 증명합니다.

금강살타의 수행법은 하나의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법맥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법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에서 권고(勸告)드린 것처럼, 지금 이 수행을 하고 계신 분이나 익히 이러한 내용을 접하신 적이 있으신 분들은 함부로 시비를 가리기 위해 주변의 비슷한 수행 경험을 가진 사람과 논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 법맥이 다를 수도 있고, 수행에서 나타나는 근기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수행 경험은 오직 스승과의 대화를 통해서만 나누어야 합니다. 이러한 권고는 딴뜨라를 공부하는 시작이나 중간 그리고 마지막까지 언제나 명심해야 할 내용입니다. 스스로 법을 오해해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도 문제지만, 바른 법이 흐려져 그 힘이 약해지면 너무나 거친 법들이 세상을 어지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금강살타의 수행을 할 때는 번잡하지 않은 조용한 장소에서 허리를 곧추세워 눈은 살짝 뜨고 턱은 약간 당기며, 결가부좌 혹은 반가부좌 자세로 양손을 모아 엄지손가락을 살짝 마주친 선정인(禪定印)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외에도 방석이나 주변 여건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수행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수행이 그렇듯이 금강살타 수행도 참회(懺悔)와 함께 시작합니다. 자신이 세운 서원이나 서약 그리고 계율에 대한 잘못을 참회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일어난 잘못된 행위를 정화하고 앞으로 일어날 부정적인 행위들을 예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른 참회는 미세하게 숨겨진 자신의 업장(業障)을 녹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수행을 시작하면서 가슴 뭉클함과 함께 일어나는 많은 눈물들은 다 참회에 따른 업장 소멸의 과정입니다. 이와 함께 가장 이상적인 금강살타 수행을 위해서는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해 깨달음 얻고자 하는 마음인 보리심(菩提心)이 함께 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서 소개하는 금강살타 수행법은 가장 일반적인 내용을 간추린 것이니 만큼, 실제 수행에 있어서는 법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날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정신적인 준비를 마치고 나면, 이제 본격적인 관상 수행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관상은 수행자의 정수리에 금강살타를 모시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것을 순서대로 살펴보면, 연꽃의 방석 위 한 가운데에 진언종자(眞言種字) ‘훔(Hum)’이 있는 옥좌(玉座)를 제일 먼저 정수리에 관상합니다. 이 ‘훔(Hum)’자는 다시 하얗게 빛나는 금강살타로 변합니다. 옥좌에 반가부좌를 하시고 앉으신 금강살타께서는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수행자의 머리에 살짝 대고 계십니다. 금강살타께서는 두 팔에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계시며, 너무나 맑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온갖 상서로운 장식을 다 갖추고 계십니다. 이 관상법은 ‘구루요가(Guru Yoga)’와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스승의 청정한 모습을 금강살타와 한 몸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금강살타께서는 가슴 쪽으로 향한 오른손에 황금의 금강저(金剛杵, Vajra)를 들고 계시며, 허리 쪽에 있는 왼손에는 요령(搖鈴)을 위쪽으로 향하여 흔들고 게십니다. 이 두 가지 상징물들은 각각 방편(금강저)과 지혜(요령: 소리의 공성)를 나타냅니다. 가슴에 있는 하얀 달 방석 위에 진언종자 ‘훔(Hum)’이 있고, 그 주위 시계반대방향으로 백자진언(百字眞言, 아래 참조)이 둘러져 빛나고 있습니다. 이 빛은 허공계와 중생계를 두루 비춰 모든 업과 번뇌를 맑히는 빛입니다. 이때 수행자는 모든 현상계의 본래 성품인 공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지극히 일반적인 수준의 신비적인 체험을 위한 수행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완전한 청정과 공성의 본성을 갖춘 관상의 대상만이 모든 집착을 벗어나게 해줍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관상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관상을 선명하게 하기 위한 집중의 힘(止)과 관상의 대상이 지닌 본래 청정한 공성에 대한 직관(觀)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금강살타의 본래 성품인 깨달음의 잠재성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그려진 금강살타는 단순히 마음에서 투영된 것일 뿐입니다.

이제 금강살타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지혜와 자비를 상징하는 하얀 정수(精髓)를 관상해야 합니다. 이 하얀 정수는 수행자의 정수리를 타고 온 몸으로 흘러내리면서 모든 부정적인 업과 장애를 녹여 내립니다. 이렇게 해서 부정적인 어둠은 수행자의 몸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온 몸에는 맑은 치유(治癒)의 정수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가지 몸의 변화나 정신적인 경험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신비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거친 몸과 마음의 업과 장애가 녹으면서 일어나는 현상들이기 때문에 그 자체에 집착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수행자는 자신의 몸이 점점 금강살타의 특성으로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일반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을 가지고 있던 수행자가 점점 청정한 금강살타의 사고와 말과 행동방식을 갖추게 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중생들의 이익을 위하여 움직이게 됩니다. 이러한 사고의 흐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금강살타 백자진언을 염송해야 해야 합니다.

금강염송(金剛念誦: 일명(一名): 백자진언(百字眞言)

옴 바즈라 헤루까 삼마야, 마누빨라야, 헤루까 떼노빠티따, 디도 메 브하바,
수또카요 메 브하바, 수뽀카요 메 브하바, 아누락또 메 브하바
사르바 싣힘 메 쁘리야짜, 사르바 까르마 수짜메, 찥땀 슈리얌 꾸루 훔
하 하 하 하 호, 바가반 바즈라 헤루까 마메 문짜,
헤루까 브하바 마하 사마야 사뜨바, 아 훔 페.

(Om Vajra Heruka Samaya, Manupalaya, Heruka Tenopatitha, Dridho Me Bhava, Sutokhayo Me Bhava, Supokhayo Me Bhava, Anurakto Me Bhava)(Sarva Siddhim Me Prayatsa, Sarva Karma Sutsame, Tsittam Shriyam Kuru Hum, Ha Ha Ha Ha Ho, Bhagavan Vajra Heruka Mame Muntsa, Heruka Bhava Samaya Sattva, Ah Hum Phet.)

(오, 금강 헤루까의 서언(誓言)이시여, 저를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시어, 헤루까의 성스러운 금감심(金剛心)에 머물게 하시고, 현상의 궁극적 본성을 깨닫게 하시며, 수승한 기쁨의 가피를 내리시어, 완전히 드러난 지복을 맛보게 하시고, 당신의 경지로 이르는 사랑과 연민(慈悲)을 일으키고, 모든 신통을 얻게 하소서. 선업(善業)에 길들어, 당신의 모든 성품을 닮아가게 하시고, 금강심과, 오지혜(五智慧)를 갖추신, 세존 금강 헤루까시여, 저를 버리지 마소서! 헤루까로 머무시는 대 서원의 귀의처시여, 금강심과, 일체지로 모든 이원(二元)의 장애를 제거하소서.)

딴뜨라에 입문하기 위한 예비수행에서는 이 백자진언을 보통 100,000번 염송합니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 백자진언의 축약 진언인 “옴 바즈라사뜨바 훔(Om Vajrasattva Hum)”을 600,000번 염송하기도 합니다. 이 진언을 염송하는 목적은 모든 말과 마음을 금강살타에게로 집중하기 위한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의식의 정화가 이루어집니다. 실제 진언 염송 수행을 해 나가다보면, 진언의 힘이 의식을 정화하는데 어떻게 작용하는지 하나씩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극히 미세한 의식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불교 수행의 핵심입니다. 의식을 대상에 집중하게 되면, 그 대상의 속성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 요체입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몸과 말과 의식이 금강살타 본존에 익숙해지면, 참회와 가피를 능동적으로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참회의 대상인 부정적인 행위와 의식도 결국 그 본래의 성품이 공한 것임을 알게 되고 거기에 이끌려 마음에 무거운 업을 남기지 않게 됩니다.

이와 같이 의식에 쌓여 있는 수많은 부정적인 번뇌와 망상들이 본래 공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쉽게 이것을 제거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때가 잔뜩 낀 옷을 세탁하는 것처럼,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대부분의 때는 한 번에 지워집니다. 그러나 미세하게 끼어있는 잔 때들은 씻고 또 씻어야 말끔히 지워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얼룩이 지워질 때까지 반복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수행자들도 초기 단계에서는 거친 수준의 업과 번뇌를 정화해나가지만, 미세한 수준의 업과 번뇌는 지속적인 정화를 통해서만 모두 제거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매 정진 시간이 끝날 때는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해 이 수행의 공덕을 회향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함께 공부한 것처럼, 모든 수행의 완성은 나만의 정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다르지 않는 이 모든 현상계가 함께 맑아질 때 온전한 부처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향의 마음은 이타심을 개발하는데 아주 큰 효과가 있습니다.

금강살타 수행법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게 되면, 수행자의 일반적인 신구의(身口意)를 금강살타의 신성한 신구의로 전환할 수가 있으며, 본존의 완전한 성품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금강살타의 본존요가는 예비단계에서부터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최고의 정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금강살타 수행법은 본 수행에 들어가서도 그 가치를 발휘하는 뛰어난 수행방법입니다.

만다라 공양(曼茶羅 供養)

배례(拜禮, 절하기) 수행과 마찬가지로 만다라 공양도 관상법과 함께 수행하는 물리적인 행위입니다. 물론 만다라 공양 수행도 그 깊이에 따라 차원이 다르지만, 가장 일반적인 예비수행으로서의 만다라 공양은 직접 행위를 통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 만다라 공양법은 한국 불교문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낯선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행하는 방법이 어려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부처님의 성도지(成道地)인 인도의 보드가야(Bodhgaya)를 순례하다 보면, 평생 이 만다라 공양을 자신의 수행으로 삼고 있는 티벳인 불교 수행자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만다라 공양은 일반적으로 둘레가 약 10cm 정도 되는 둥그런 판을 가지고 시현(示現)합니다. 수행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보통 금이나 은과 같은 가치 있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만다라 공양 판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아주 얇은 원형 판이기 때문에 아주 값비싼 도구는 아닙니다. 만약 이러한 도구가 없는 경우는 그냥 맨 땅이나 돌 판 혹은 나무판 등 평평한 판이면 됩니다. 어떤 재료의 도구를 사용하든 실제 관상을 할 때는 황금의 판으로 관상해야 합니다. 그것은 청정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이 만다라 판이 모든 중생에게 내재한 불성(佛性)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둥그런 원판이 준비되면, 공양물(쌀과 같은 곡물이나 깨끗한 돌 또는 동전, 보석 등)을 가지고 만다라를 쌓아 올리게 되는데, 원판 가득 만다라 재료가 쌓이면, 그 위를 평평하게 하여 좀 더 조그만 원판을 놓고 다시 그 안을 채우는 방식으로 쌓아 갑니다. 만다라는 기본적으로 원판을 왼손 위에 올려놓고 가슴 정도 높이에 위치시킨 다음, 오른손으로 공양물을 시계 방향으로 흩뿌리면서 쌓아갑니다. 이때도 먼저 삼보와 스승께 올리는 귀의문(歸依文)을 염송하고, 만다라 공양에 필요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기도문을 염송하며, 청정한 만다라의 세계 안에서 모든 중생들이 깨달음을 성취하기를 바라는 보리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외만다라(外曼茶羅) 장문(長文)]

오, 본래의 근본대지여! 강대한 황금의 땅이여!
오, 본래의 근본경계여! 금강의 울타리를 두르고,
한 가운데는 산들의 왕인 수미산과
동승신주(東勝神州), 남섬부주(南贍部洲),
서구야니(西牛貨主), 북구로주(北瞿盧州)의
네 개의 대륙과 여덟 개의 부 대륙이 있으며,
각각을 장엄한 성산(聖山)과 여의수(如意樹),
여의우(如意牛) 마저 갖추니,
애쓰지 않아도 열매 맺는
풍성한 수확의 땅이라네.

수미산 일층(一層)에는 칠정보(七政寶)인
금륜보(金輪寶), 신주보(神珠寶), 옥녀보(玉女寶),
주장신보(主藏臣寶),백상보(白象寶),
감마보(紺馬寶), 장군보(將軍寶)로 장엄하고,

(*역주: 칠정보(七政寶, rgyal srid sna bdun)는 왕의 위엄을 갖춘 일곱 가지 상징적인 보물을 말한다.)

수미산의 이층에는
미모의 여신, 염주의 여신, 노래의 여신,
춤의 여신, 꽃의 여신, 향의 여신,
등불의 여신, 향수의 여신 등이 노닐고,

수미산 삼층에는
해와 달, 보석으로 장엄한 산개(傘蓋)가 있으며,
사방에는 승리의 깃발이 나부끼네.
그 한 가운데에 완전한 재물의 신과
인간이 거주하니, 아무것도 잃는 것 없이
오직 기쁨과 맑음만 가득하여라.

내 소중하고 성스러운 법계의 근본 스승들과
근본 주존(主尊)이신 전법의 스승님께
이 부처님의 복전(福田)을 헌공하나니,
원컨대, 윤회하는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부디 기쁨으로 향수하시고,
허공중에 한량없는 어머니와 같은 중생들을 위해
대자대비하신 가피로 언제나 함께하소서.

[외만다라(外曼茶羅) 단문(短文)]

향수에 적시고 꽃들이 펼쳐진 대지와
수미산과 사 대륙, 해와 달로 장엄한
불국토를 현전(現前)하여 헌공하리니,
모든 중생이 더불어 청정국토를 향수하게 하소서.

[비밀만달라(秘密曼茶羅)]

공성의 바른 견해와 하나인 근본의 지혜는
색(色) 등의 온계처(蘊界處)에서 생겼으며,
수미산과 대지의 감춰진 보병은 해와 달에서 생기나니,
대자비의 복전(福田)이신 보호주 당신께 헌공하나이다.

[내만달라(內曼茶羅)]

탐진치(貪瞋痴)의 모든 대상과
내 몸과 재산, 행복 모두 아낌없이 헌공하나니,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자비로 향수하시고,
부디 삼독(三毒)의 장애에서 해탈케 하소서.

<만달라공양진언(曼茶羅供養眞言)>

이담 구루 라뜨나 만달라깜 니르야따야미.
(Idam Guru Ratna Madalakam Niryatami)
(이 장엄한 만다라를 당신 고귀한 지혜의 스승님께 헌공하나이다.)

하나의 만다라 판이 완성되어 그 위를 평평하게 할 때는 손목과 팔꿈치 사이의 부위로 공양물을 살짝 쓸어내려 평평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청정한 불성을 가리고 있는 탐 진 치 삼독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오른 팔은 미세한 맥관(脈管, rTsha)의 흐름에서 보면, 생명 풍기(風氣, rLung)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풍기는 모든 거친 의식을 실어 나르는 말(馬)과 같기 때문에 그것을 제어하는 마부와 같은 오른 손으로 거친 장애를 제거한다는 의미합니다. 다시 그 만다라 판 위에 공양물을 조금 더 부은 다음 이번에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세 번 쓸어내립니다. 이것은 부처의 완전한 신구의(身口意)를 드러내고자 하는 서원과 출리심(出離心), 보리심(菩提心), 공성에 대한 정견(正見)을 항상 되새기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청정한 만다라 세계의 지수화풍(地水火風) 층을 의미하는 네 단을 층을 쌓거나 바로 첫 번째 판위의 중앙에 공양물로 조그만 산을 만드는데, 이것은 불교의 전통적인 세계관에서 세계의 한 중심에 있는 수미산(須彌山)을 상징합니다. 그 다음 사방팔방에 각각 사대륙과 팔부대륙을 의미하는 공양물을 조금씩 놓습니다. 그런 다음 다양한 차원의 딴뜨라적 상징을 담고 있는 달과 해를 좌우에 만듭니다. 이때 달은 지혜를, 해는 방편을 각각 상징합니다. 이렇게 하나의 청정한 만다라를 완성할 때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의식을 집중하여 모든 현상 세계의 거친 업을 녹이고 청정세계를 구현하는 관상을 해야 합니다. 이 수행은 물질적인 집착을 벗어나는데 큰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더불어 만다라 공양은 언제나 모든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올려져야 합니다. 이 만다라 공양 역시 딴뜨라의 예비수행으로 실천하는 경우는 최소한 100,000번을 해야 합니다. 더불어 만다라 공양에는 ‘외부 만다라 공양’, ‘내부 만다라 공양’, ‘비밀 만다라 공양’이 있으며, 수행자의 근기에 따라 각각의 행법과 깊이가 조금씩 다릅니다. 각각의 만다라 공양에는 다양한 딴뜨라적 상징성이 담겨 있기 때문에 먼저 깊은 의미를 잘 이해한 다음 실행에 들어가야 합니다.

구루요가(Guru Yoga)

딴뜨라를 수행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의 수행을 이끌어줄 모든 조건을 갖춘 스승을 찾는 일입니다. 스승은 딴뜨라를 전수할 수 있는 튼튼한 이론적 배경과 충분한 경험을 다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자가 수행에 들어갈 때 모든 잘못을 지적해주고 바른 길로 이끌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승 없는 딴뜨라의 수행은 완전한 성공을 기대하기가 힘듭니다. 딴뜨라의 수행에 있어서 스승과 제자의 법연에 대한 이야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혹독한 시련으로 제자를 다스리고 완전한 성취를 이룬 후에도 끊임없이 스승의 사랑을 찬탄하던 마르빠(Marpa)와 밀라레빠(Milarepa)의 관계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구루요가는 스승을 부처의 청정한 화신으로 관상하는 수행을 통하여 수행자 자신의 의식을 정화하는 수행입니다. 정진을 시작할 때 공성에서 생기(生起)한 본존을 관상하고 정진이 끝날 때 다시 공성으로 회향하는 본존요가와는 다르게, 구루요가에서는 스승을 깨달음의 목표로 하기 때문에 수행자의 의식에 언제나 함께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행의 목적을 잃는 것과 같은 셈이지요. 스승은 실제로 부처님의 모든 법을 가르치고 경험하게 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부처님과 다르지 않은 존재입니다. 특히 딴뜨라의 가르침에서는 제자의 근기를 알고 지도해줄 유일한 분이 스승이기 때문에 부처님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정하는 것은 그토록 조심스러운 일이며, 한번 스승으로 모시면 완전한 헌신으로 수행의 길을 따르는 것이 제자의 의무입니다.

구루요가에서는 스승을 부처님의 화현으로 관상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제자는 언제나 스승의 완전한 모습을 관상함으로써 자신의 탁한 번뇌와 오염된 행위를 참회하고 정화할 수 있습니다. 구루요가에서 관상하는 스승은 일상적으로 보통의 몸을 가지고 움직이는 스승이 아닙니다. 실제 스승은 아주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구루요가에서 관상하는 스승은 오직 부처와 한 몸이신 스승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스승의 일반적인 모습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행자의 내면에서 온전한 법의 대상으로 나타나시는 스승은 완전한 부처님 그 자체입니다. 또 입문관정식을 치를 때나 실제 본존요가를 하게 될 경우도 스승은 제자가 수행하는 청정 만다라의 본존으로 생기한 다음 관정을 주고, 제자는 스승을 본존으로 관상해야 하기 때문에 이때 역시 스승은 부처와 둘이 아닌 본존 그 자체여야 합니다. 이와 같이 딴뜨라의 수행에 있어서 스승의 존재는 처음 시작 단계에서부터 마지막 완성단계까지 언제나 완전한 부처와 같습니다. 구루요가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앞에서 금강살타의 관상법과 같이 언제나 자신의 정수리에 모시고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낮에 활동하는 시간에는 항상 이렇게 정수리에 모시고 다니고, 밤에 모든 일과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 때는 스승의 따듯한 품이나 다리를 베고 자는 관상을 하면서 잠드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식입니다. 간단한 것 같지만, 많은 딴뜨라의 수행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정진 시간을 정해두고 하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칠지작법(七支作法)의 순서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① 정례지(頂禮支): 법계(法系)의 스승들께 절을 올리며 예경(禮經)
② 공양지(供養支): 향·꽃·등불·산개(傘蓋) 등을 공양 올림
③ 참회지(懺悔支): 신·구·의 삼업으로 지은 탐·진·치 삼독에 대한 참회
④ 수희지(隨喜支): 시방에 계신 스승의 공덕에 수희 동참
⑤ 청법지(請法支):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께 법을 청함
⑥ 소청주세지(所請住世支): 항상 중생과 같이하기를 바람
⑦ 회향지(回向支): 이 수행 기도 공덕으로 쌓은 복덕을 중생에게 회향

여기에 스승을 모시는 청사(請師)와 스승께 현재 자신의 상황을 고하고 서원을 세우는 탄원(歎願)을 먼저 합니다. 그리고 위의 칠지작법 전과정을 거친 다음, 마지막 회향을 하고 나서 부족한 부분에 대한 것을 참회하는 보궐(補闕)과 보리심 게송 같은 마무리 기도를 한 다음 한 정진을 마칩니다. 다음은「천수천안십일면관음보살」의 입문관정식과 실제 수행에서 하는 칠지작법의 한 예입니다.

1) 정례지

모든 부처가 모인 몸,
금강지의 본성
삼보의 뿌리
큰 스승들께 배례하나이다.

스승의 몸은 아름다운 금강의 몸
중생을 돌보시는데 늘 만족이 없는
헤아릴 수 없는 원만한 공덕
스승의 몸에 배례하나이다.

스승의 말씀은 범천(梵天)의 음성
걸림 없는 사자후를 갖추시고
외도와 짐승들을 두렵게 하시는
스승의 말씀에 배례하나이다.

스승의 마음은 허공과 같아
지복광명(至福光明) 무분별의 공성,
삼 해탈문에 묘(妙)하게 거하시는
스승의 마음에 배례하나이다.

대자비 갖추신 보호자
일체지를 이루신 부처님
공덕과 복덕은 바다와 같나니,
여래의 면전(面前)에 배례하나이다.

청정으로 욕망을 벗어나시고
덕으로 악업을 건너시니,
오직하나 절대 진리로 변화하신
적정(寂靜)의 법에 배례하나이다.

해탈의 길을 다시 보이시고
성스런 가르침에 거(居)하시며,
성스런 복덕의 공덕을 모두 갖추신
승가에 배례하나이다.

2) 공양지

청정의 꽃과 염주와
바라와 분향(粉香)과 산개(傘蓋)와
최고의 훈향(熏香)과 등불을
모든 부처님께 공양 올립니다.

좋은 옷과 향
수미산과 같은 향낭(香囊)
이 장엄(莊嚴)하고 거룩한 공양물로
모든 부처님께 공양 올립니다.

3) 참회지

탐 진 치 삼독에 이끌려
신 구 의 삼업으로 지은
저의 모든 악업(惡業)들
남김없이 참회하옵니다.

4) 수희지

시방의 부처님과 그 제자들
독각불과 유학(有學) 무학(無學)자들과
모든 중생들의 공덕에
수희동참하나이다.

5) 청법지

시방 세계의 모든 등불
집착 없이 깨달음을 구하신
그 모든 보호자들께
위없는 법륜을 굴리시기를 청하옵니다.

6) 소청주세지

열반의 경지를 보이신 모든 이들 이시여
중생을 이롭게 하고 평안케 하시려,
무수한 세계에 그렇게 머무시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 올립니다.

7) 회향지

절하고 공양 올리며 참회로
기뻐하고 간청하고 기도하여,
제가 지은 복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모든 중생의 원만한 깨달음을 위해 회향하나이다.

이렇게 해서 간단하게나마 본격적인 딴뜨라를 행하기 전에 거쳐야할 기본적인 예비수행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무상요가의 심오한 방편들이 다 들어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거친 업과 번뇌를 정화하고 의식을 전환하는 데는 아주 뛰어난 수행 방법들입니다. 그래서 티벳 불교의 모든 학파에서는 본격적으로 입문의식을 치르기 전에 이러한 예비 수행을 꼭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딴뜨라 수행을 위한 법 그릇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기초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이들 예비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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