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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도란 무엇인가?

초펠스님
이 글은 쵸펠 스님이 자비신행회에서 주최한 제3기 임종 간호(호스피스) 교육에서 강의한 내용입니다. 한국말로 강의한 내용을 그대로 옮깁니다. 티벳 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 부처님 가르침을 수행하는 간절한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가을에 고속도로 다니면 사람들 많이 모여 단풍놀이합니다. 그러나 나무들은 단풍놀이하는 거 싫어합니다. 원래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업을 지닌 업신(業身)을 갖고 있는데, 이 업신을 버려야만 사바세계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래 살게 해 달라고 하면서 산 위에 있는 것부터 바다 아래 있는 것까지 다 먹고 싶다고 하는데, 우리는 알지 못하니까 착각해서 그러지 수행자의 처지에서 보면, 또 티벳에서도 죽는 것은 좋은 기회라고 합니다. 저는 한국에 온 지 두 해밖에 안 돼서 한국말을 잘 못하는데, 특히 바르도 세계, 종교적인 내용은 표현하기가 힘듭니다만, 불교 낱말들이 모자라도 이런 까닭에서 설법을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호스피스 교육 받고 하는 것은 수행의 좋은 방편입니다.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방편에 기대어야 하는데, 호스피스 실천이 좋은 것은 아픈 사람을 도와 주면서 죽음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티벳에서는 아직도 집에서 죽고, 사람이 죽으면 묻지 않고 송장을 독수리 먹이로 주는 조장(鳥葬)을 합니다. 조장터도 많이 있고 조장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죽음,덧없음[無常]을 공부할 좋은 기회가 됩니다. 누구나 죽음을 인식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죽이고 버릴 수 있습니다. 특히 스님들이 티벳에서 수행을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죽으면 스님들을 모시기 때문입니다. 조장하는 사람들도 수행자 스님들이예요. 그래서 수행을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가끔씩 사고 나면 엠블런스 안에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우린 아무것도 못 느끼면서 나와 다르다고 하며 삽니다. 요즈음은 태어나는 곳도 병원, 죽는 곳도 병원입니다. 편안하게 죽어야 하는데, 수술하고 괴롭게 죽고 나서 가슴을 때리고 우는 것도 안 좋습니다. 이것은 호스피스 교육에서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호스피스 활동을 하려면 기본으로 알아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만, 사람은 왜 태어났는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눈이 있으면서도 눈이 있는 줄을 모르고 눈이 아플 때 눈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린 사람으로 왜 태어났는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지 못하고 시간 낭비만 하고 있습니다. 백년 산다, 오래 살았다 하지만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도 잠깐뿐입니다. 지옥,천당,신들의 세계에 견주면 짧은 기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짧은 기간을 낭비해서 살게 되면 그것보다 아까운 일은 없습니다. 돈 잃어 버리고 사업 잘 안 되면 걱정 많이 합니다만, 사람으로 태어나 죽기 전에 좋은 업을 쌓아야 다음 생에 가져갈 수 있습니다. 죽을 때는 업들만 그림자처럼 따라갑니다. 그 때 그 사람이 진짜 부자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수행 방편과 좋은 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자기에게 바탕으로 깔려 있다면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을 고맙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 먼저 살펴야! 호스피스 교육이 도움이 됩니다.

또 죽음에 대해 살펴야 하는데, 사람이 죽을 때에 느낌이 많이 있습니다. 한 보살님은 실천을 많이 하는데, 죽어가는 이가 나 살려달라, 다음 생을 위해 같이 가자 할 때 도와 줄 수 없고 막힌다고 합니다. 죽을 때 느낌, 어떻게 죽어가는지, 환자는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는지, 그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호스피스 교육생들은 알아야 합니다.

죽을 때 느낌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죽음은 반드시 누구에게나 오는 것,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불교 안에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부처님 사성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괴로움을 또 네 가지로 나누는데, 덧없음[無常],괴로움,빔[空],나없음[無我]입니다. 첫번째 덧없음을 보면 ‘거친 덧없음’과 ‘미세한 덧없음’이 있습니다. 거친 덧없음은 사고날 때 사람이 죽는 것처럼 눈으로 바로 볼 수 있는 것이고 ‘미세한 덧없음’은 보기를 들어 저 집이 단단해 보이지만 어제 그 집이 오늘 집이 아니라서, 그대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조금씩 변해 가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미세하게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도움이 됩니다. 그래야 죽을 때 크게 놀라지 않고 괴로움 없이 죽게 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처사님은 해병대 출신인데 월남전에 전쟁하러 가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배를 타고 갈 때 죽으러 간다고 생각을 하니까 아무리 파도가 높이 쳐도 아무 것도 겁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죽으러 가니 겁이 안 났는데 살아서 돌아올 때는 파도가 치니 겁이 났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지금부! 터 죽음을 인식하고 준비한다면 어떤 것도 겁내지 않고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그럴 수 있다면 무슨 이익이 있는지 곧 알게 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반드시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올 것이고 업신 때문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합니다만, 영원히 살 수 있는 방법은 안 태어나는 것입니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죽음은 되풀이됩니다. 그러나 안 태어나고 안 죽기는 어렵습니다만 다음 생이 있다고 인정하면 죽음을 받아 들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음 생은 반드시 있습니다. 다음 생은 업에 따라 태어나기 때문에 조심하여야 합니다. 어떤 때는 자식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 “아이고 내 팔자야, 아이고 내 못 살아” 하는데 팔자라는 것이 참 좋은 말입니다. 전생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전생이 있는데 왜 내생이 없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사람이 죽으면 또 사람으로 태어날 거라고 생각하는데 큰 착각입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크게 걱정없이 살게 되는데 그 방법들이 쉽습니다. 자기 살아 있을 때 자기 죽는 것을 자꾸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참선을 가만히 하고 있는 것은 신도님들한테는 맞지 않습니다. 왜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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