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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경청

김선정교수
그들은 몹시 흥분해 있었다. 승복차림 한 명이 티벳말로 꼼짝말고 여기서 기다리라 하고 총을 든 군인들을 시켜 세웠다. 잠시 후 커다란 털털이 버스가 먼지구름을 달고 거친 비포장길에 무리한 속도로 부서질 듯이 광음을 내며 달려왔다. 스텐리와 거트였다. 극도의 불안으로 흥분한 ‘장’과 ‘리’가 당장에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걸 겨우 설득해서 두 시간의 말미를 얻어 달려왔던 것이다.
기다려도 우리가 나타나지 않자 군인들을 풀어 데풍은 물론 밑에 있는 네충(티벳 國家信託이 주석하던 절)까지 샅샅이 뒤졌는데 도대체 어디 있었느냐고 다그쳤다. 우리는 땀만 흘리며 아무런 변명도 못했다 두 시간이 지나도 우리를 못 찾아 상부에 보고가 되면 ‘장’이나 ‘리’가 치르게 될 곤욕이야 놔두더라도 일행 전원은 즉각 카투만두로 강제 이송되고 앞으로는 티벳 여행이 전면 금지될 판이었다.
그러나 일행은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변을 몹시 걱정을 하고 있다가 죽었다 살아온 듯이 반겨 주었다. 창백해진 ‘장’의 얼굴에도 핏기가 돌며 긴장이 풀려서인지 화가 나서인지 어디 있었냐고 묻지도 않았다.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마리온은 만약의 도청장치까지 걱정하며 봉투를 열었다.
“티벳이 중국의 일부였던 적은 결코 없다. 역사를 통해 티벳은 완전한 독립국가였다.”
“중국은 티벳의 민족말살정책을 중단하고 대량학살과 잔학행위를 더 이상 하지 말라.”
“우리 데풍의 승려들은 죽음에 이르도록 티벳의 독립을 위해 싸우리라․․․.”등등 바깥 세계에 티벳의 실태와 데풍 스님들의 의지를 전하는 영문 전단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악한 등사기로 밀어서 스님들이 일일이 서명을 한 것이었다. 해방된 티벳 인민과 승려들이 소수민족에게 주는 특혜 속에 풍요와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선전하는, 화려하고 세련된 중국의 영문 잡지들이나 홍보물에 비하면 가슴 아프게 초라했지만 데풍 스님들의 목숨을 건 절규였다.
데풍의 학승들은 1959년 봉기와 문화혁명 때도 간덴과 쎄라의 스님들과 함께 일어나 계를 파하고 무기를 잡아 중국에 맞서 싸우다가 수없이 죽어갔다. 위없는 깨달음과 대자유를 성취하고도 모든 생명이 고통에서 해방될 때까지 이 삼사라에 끊임없이 환생하는 린포체들과 그리고 그 자유를 향해 정진하던 스님들. 그 육신을 죽이고 건물조차 자끈자끈 바수어버렸지만 죽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 그렇게 살아 있었다.

그때의 그 감동이 증폭된 것은 몇 년이 지나 티벳어도 좀 알게 된 다음 남인도에 다시 세운 데풍과 쎄라에 머물 때였다. 춥고 건조한 고지에서 살다가 뜨겁고 습한 저지로 내려와 많은 사람이 굶주림과 가지가지 풍토병으로 죽어가면서도 티벳 사람들은 우선 절과 탑부터 세웠다.
간단, 데풍, 쎄라 등의 겔룩파 승가 대학들은 주로 남인도에 모여있다. 대학들은 끝이 안 보이는 옥수수 농장의 녹색바다 가운데 외로이 떠있는 배와 같이 인가나 도시를 멀리 하고 있다. 각 대학에는 인도에서 태어난 1천명 이상의 젊은 학승들이 새벽 4시부터 늦은밤까지 빽빽하게 짜여진 일과를 따라 한치의 늘어질 틈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여러 스님들이 함께 자는 거처나 음식, 의복이 모두 거칠고 초라하다.
티벳력으로 매달 보름은 금식을 하거나 육식만이라도 삼가며 스님들은 모여 참회를 하며 철야정진을 하는 날이다. 초로의 깡마른 강사 스님이 데풍의 대법당겸 강당에 모인 젊은 스님들을 향해 마이크를 잡고 청년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호소하였다.
강사 스님은 “지금 조국을 아주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위기 속에서 조국과 이곳에서 동포들이 겪는 어려움을 생각할 때 이 좋은 조건에서 어찌 그대들은 이리도 나태하고 안일할 수 있느냐”며 축축히 젖은 눈으로 문장마다 힘을 주어 온몸으로 호소하였다. 강사 스님의 그 눈물겨운 질책에 깊은 바다속처럼 숙연하게 잠겨 들던 젊은 스님들을 나는 법당문 뒤에 숨어서 보았다. 그것이 바로 티벳의 데풍에서 낙천적으로 웃으며 이야기하던 데풍 스님들의 가슴 속이었고 어떤 폭력에도 죽지 않고 살아서 불고 있는 부처의 바람, 대풍(大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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