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總[입문II] 삼전법륜(三轉法輪)--일반4.

로덴
總[입문II] 삼전법륜(三轉法輪)--일반4.



삼전법륜(三轉法輪): 불성(佛性)



“부처님께서 굴리신 세 번째 큰 법륜(三轉法輪)은 다양한 경전들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대표적인 경전은 「대방광여래장경(大方廣如來藏經, Tathagatagarbhasutra)」(이하, 여래장경)입니다. 이 경전에서는 우리 안에 내재된 깨달음의 잠재적 성품인 불성(佛性)에 대하여 설하고 있습니다.「여래장경」은 용수(龍樹, Nagarjuna) 보살의 「찬법계송(讚法界頌, Dharmadhatustotra)」과 같은 찬송(讚頌) 모음집과 미륵(彌勒, Maitreya) 보살의「구경일승보성론(究竟一乘寶性論, Mahayanottaratantrastostra)」의 원래 출전근거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두 번째 큰 법륜(二轉法輪)을 굴리실 때 다루셨던 주제인 개인적인 깨달음을 위한 여러 가지 초세간적 경험들과 공성(空性)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을 바로 이「여래장경」에서 설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모든 현상의 본래 성품이 공하다는 것은 이미 반야부 경전에서 그 가장 심오한 경지를 다 드러내 보이셨기 때문에 세 번째 법륜에서는 공성을 더 자세히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세 번째 법륜의 특징은 공성과 그에 대한 깊이를 직접 깨닫기 위한 지혜를 증장시키는 구체적인 수행 방법들을 다루 있다는데 있습니다.

세 번째 큰 법륜에 속하는 경전에는 또 다른 부류가 있습니다. 이 또 다른 부류에 속하는 주요한 경전에는「해심밀경(解深密經)」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경전에서 초전법륜(初轉法輪)과 이전법륜(二轉法輪) 때 설하셨던 내용 중에 서로 상충하는 부분들을 다시 정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여기서 공성과 무아를 분별하여 보여 주시고, 이것이 어떻게 서로 다른 범주의 현상에 적용되어야 하는 지를 설하고 계십니다. 그 내용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변계소집상(遍計所執相) 의타기상(依他起相) 원성실상(圓成實相)이라는 세 가지의 형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변계소집상이란 외부에 나타난 대상은 단지 순간적인 것일 뿐인데,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분별하여 거기에 집착하며 말로써 ‘이것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눈에 눈병이 생겨 이물질(異物質)이 끼여서 보이는 것을 허공중에 마치 머리카락이 실제로 있는 것같이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의타기상은 모든 것이 서로 다른 것에 의지하여 존재한다는 연기의 법칙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 원성실상은 모든 현상계의 궁극적인 존재 형태인 진여(眞如) 즉 공성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존재에 대한 이상의 세 가지 구분은 관점에 따라 서로 나누어 질 수 있지만, 실제는 모든 현상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속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각각은 다시 모든 존재의 속성이 되는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을 분별하여 집착하는 성품인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다른 것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의타기성(依他起性), 모든 것을 원만하게 다 갖춘 원만실성(圓成實性)이 됩니다. 이 세 가지 속성에 맞추어 무아(無我)의 다른 개념들을 설한 것입니다. 즉 변계소집성이기 때문에 자성(‘이것이 그것이다.’라고 할만한 성품)이 결여되어 있으며, 의타성이기 때문에 자성이 결여되어 있고, 원만실성이기 때문에 자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세 번째 굴신 법륜을 “특성을 아주 분명하게 밝히신 법륜”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세 번째 법륜에서 설하신 무아의 개념이 두 번째 법륜을 굴리실 때 설하신 반야부 경전의 취지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모두 부처님의 수승한 방편에서 나온 것입니다. 즉 두 번째 법륜에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분명히 무아의 원리는 모든 현상의 자성이 결여되어 있는 공성에 대한 보편적인 개념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많은 수행자들에게 공성의 견해는 너무나 극단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들의 이해를 넘어선 것이지요. 모든 현상의 자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이 이들에게는 결국 모든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말로 들린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현상의 자성이 결여되어 있다.’라는 의미가 곧 ‘비존재(非存在, non-existence)’라는 뜻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은 그러한 근기의 수행자들을 위해 세 번째 법륜을 굴리실 때「해심밀경(解深密經)」과 같은 경전을 구체적으로 설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반야부 경전에서 설하신 공성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로 인해 인도의 대승불교 안에는 중관(中觀, Madhyamaka)과 유식(唯識, Cittamatra)이라는 양대 학파적 체계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티벳불교의 전통 안에도 ‘딴뜨라(Tantra, 密法)’라고 부르는 고도로 발전된 수행과 이론 체계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 딴뜨라의 전통은 부처님께서 굴리신 이 세 번째 법륜과 관계가 있습니다. ‘딴뜨라’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흐름(continuum, 相續) 혹은 법맥(法脈, lineage)\'이라는 뜻입니다.
「비밀대유가딴뜨라금강정(秘密大瑜伽恒特羅金剛定, Vajrasekharamahaguhyayogatantra)」라는 요가 딴뜨라 계열의 경전에서는 이 ‘딴뜨라’를 주로 마음이나 의식의 흐름에 대한 지속성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딴뜨라’는 지속적인 흐름이라 하네.
그래서 윤회를 ‘딴뜨라’라 하네.
‘나중(續)’이라는 뜻은 넘어섬이네.
그래서 열반을 ‘나중(續) 딴뜨라’라 하네.

처음 두 구절에서 보면, 우리의 정신적인 흐름(혹은 지속성, 相續)은 자기를 하나의 개별적인 사람(我)으로서 인식하는 바탕입니다. 일반적인 차원에서는 이러한 정신적인 흐름을 바탕으로 하여 부정(不淨)한 행위를 저지르기도 하고 그로 인한 결과로 죽음과 재생(再生)이라는 윤회의 굴레를 돌고 도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수행의 길에서 보면, 동시에 이 정신적인 흐름을 바탕으로 하여 정신적인 성장과 고도의 깨달음을 경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 정신적인 흐름을 바탕으로 하여 불성(佛性)이라고 부르는 궁극적이고 완전한 일체지(一切智)의 경지를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윤회(輪廻)와 열반(涅槃)이 다른 것이 아니며, 둘 다가 이 공통의 정신적인 흐름을 바탕으로 하여 나타나는 서로 다른 모습일 뿐이지요. 따라서 의식의 흐름은 언제나 바로 이 순간에 있습니다. 이것이 ‘딴뜨라 혹은 흐름’의 의미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제 생각에 밀법(密法, Tantra)의 수행은 바로 이 세 번째 법륜과 관계가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확인하게 되겠지만, 딴뜨라의 수행과 이론 체계는 바로 우리 의식의 본 바탕 안에 있는 잠재성을 일깨우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합니다. 부처님께서 굴리신 세 번째 법륜의 궁극적인 목적 역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이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법륜을 주의 깊게 공부하고 살펴보면, 딴뜨라의 길을 암시하는 여러 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두 번째의 법과 세 번째의 법륜이 현교(顯敎, Sutra)의 가르침과 밀교(密敎, Tantra)의 가르침을 이어주는 소중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예를 들어 공성의 원리가 문자적으로 잘 드러나 있는 것과 공성을 경험하는 차원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같은 반야부 경전을 볼 때도 두 가지 차원의 해석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딴뜨라의 경전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들 역시 같은 경전 안에서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생기는 거칠고 미세한 차원의 다양한 깊이에 따라 공성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이 세 번째 법륜으로 인해 딴뜨라 즉 다양한 차원의 초세간적 경지를 구현하는 길을 논할 수 있는 문이 열린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 법문 중에서)

이렇게 해서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받아 어떻게 일체지(一切智)의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셨는지 그 모든 원인과 결과를 한 생에서 다 보여 주셨습니다. 쉽지 않은 내용들입니다. 무수한 세월을 동안 충분한 공덕 자량을 쌓고, 모든 준비과정을 거쳐, 실제 수행을 다 마치신 다음에야 비로소 완성하신 경지입니다. 즉 모든 원인과 조건을 다 갖추시고 그 열매를 맺은 신 것이지요. 하지만 부처님께서 힘들게 보여주신 이 길을 우리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실제 수행에 있어서도 부처님의 축적된 경험이 잘 남아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직접 걸으신 길만큼 어렵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한 것은 지금 당장 부족한 내 자신의 지혜를 한 단계씩 발전시키고 그에 따른 방편을 충분히 갈고 닦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할 공부 역시 부처님께서 굴리신 이상의 세 번의 법륜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중생들의 다양한 근기만큼이나 무수히 많은 방편들이 있습니다. 그 모두가 법계의 스승들께서 직접 체험하시고 증명하신 것들이지요. 중요한 것은 자기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완전한 해방의 길을 가겠다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어딘가 깊은 산 속으로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스스로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무지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이들과 따듯한 사랑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한때 하나의 부처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게 될 때 그때야 비로소 우리의 공부는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해나갈 공부들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핵심이 다 드러난 상태에서 아직도 풀리지 많은 의문들을 하나씩 점검하는 과정입니다. 그에 따라 마음을 다스리는 구체적인 방법들도 하나씩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특별한 방편을 수행할 수 있는 금강승의 길을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걸음씩 계속해서 함께 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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