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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가기, 혹은 앓기

김선정교수
오늘부터 올려질 글들은 티벳 간단승가대학 불교미술학과 김선정교수의 글로 ‘대중불교’에(불기2539년 8월~2541년 8월)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생생한 체험의 언어로 환생의 땅 티벳을 안내할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아무리 절을 많이 한다고 해도 티벳사람들을 당할 수는 없다. 티벳 사람들은 온몸을 던져 오체투지를 한다.
내가 티벳 사람들의 진짜 절을 처음 본 것은 1989년 6월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서였다. 네팔에는 아득한 옛날부터 티벳고원을 내려와 티벳의 불교와 풍습을 지키며 사는 셀파족 등, 티벳계 부족들이 많다. 이들은 중국의 침략으로 1959년 달라이라마께서 인도로 망명한 이래 뒤따라 망명하여 현재 주로 네팔의 카투만두에 모여 살고 있다.
나는 우선 인도와 스리랑카등을 여행하고 카투만두로 가서 티벳으로 갈 길을 이리저리 알아보았다. 수교가 없던 당시 한국 사람으로 중국 비자를 받아 합법적으로 티벳에 갈 수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티벳이나 네팔의 현황을 전혀 몰랐던 나는 스벤헤딘이나 여타의 탐험가들이 쓴 여행기를 읽고 그들처럼 히말라야 산을 걸어서 넘어가리라 작정하고 등산화, 슬리핑백, 아이젠등 산악장비랄 수도 없는, 몇가지 장비를 한국에서 카투만두로 부쳐놓고 인도로 출발했다.
카투만두에 막상 가보니 내가 읽은 서양인들의 이야기는 아득한 전설이 될 정도로 현지 사정이 많이 변해 있었다. 물론 오래된 건물도 많고 가난한 사람들도 여전했지만 여행가들이 상투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문화된 고급 관광 호텔들과 45분 컬러현상소, 패스트푸드 체인점에 일본 식당등의 유흥가와 상가가 즐비했고, 젊은이들은 그 더위에 마이클 잭슨풍의 가죽 잠바와 썬그라스를 끼고 길거리를 어슬렁거렸다. 티벳은 이미 금단의 땅이나 신비의 나라가 아니었다.
벌써 여러해 전부터 중국은 외화벌이를 위해 단체관광에 한해 티벳을 서방인들에게 열어주었다. 물론 비자도 까다롭고 갈 수 있는 지역도 한정되었지만......
티벳관광이 얼마나 인기 상품이었던지 카투만두에 티벳관광만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도 여러군데 있었다. 그러나 그해 4월에 라싸에서 있었던 대대적인 독립항쟁으로 중국은 티벳에 무기한 계엄령을 내렸었고 여행사들도 모두 임시 휴업중이었다.
한국에서 부친 장비도 도착되지 않았을뿐더러 서양인, 일본인, 한국사람들까지도 달러를 뿌리며 고급관광을 하는 그곳에서 내 푼돈에 고용될 셀퍼나 안내인이 있을 리가 없었다.
티벳으로 가지 못하게 되면서 열이 나고 설사를 하며 십여일을 앓았다. 세계에서 몰려오는 배낭족들을 위한 싸구려 호텔이 집중한 타밀의 어느 호텔 2층방에서 병이 회복되어가던 어느날 밤, 골목과 시장길을 떠도는 카투만두의 주인없는 개들이 모두 모여 뛰어다니며 하늘을 찢을 듯 짖어대는 통에 잠자리를 떨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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