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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으로 가는길

김선정교수
1989년 7월 1일 새벽, 티벳으로 가기 위해 거의 한달여를 묵었던 타밀의 호텔을 나섰다. 내가 꿈꾸고 계획했던 모험에 찬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라 국적이 각기 다른 11명이 함께 가는 단체여행이었다.
스위스 출신 인류학도 루카스는 사후의 의식과 퍼스낼리티에 관한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티벳의 영산 카일라스에 간다고 했다. 사후의식과 카일라스가 무슨 관계가 있는 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의지와 집념이 없었더라면 티벳행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영특하고 용의주도한 그는 중국으로 장사 다니는 네팔 상인들을 사귄 다음, 그들과 함께 차를 세 내 그해 7월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장푸까지는 기세 좋게 갔는데, 영어 한마디 모르는 중국 세관원들에게 두들겨 맞는 것만 겨우 면한 채 무참하게 쫓겨났다. 그해 3월에 있었던 라싸 독립항쟁의 여파였다. 1차 도전에 실패하고 밀입국이라도 감행할 각오로 방법을 모색하던 그는 중국 당국이 5월부터 단체관광에 한해 티벳을 개방한다는 정보를 얻고 이를 확인하는 텔렉스를 북경으로 보냈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10명 이상의 단체여야 하고, 라싸에 주재하는 중국 여행사의 인솔하에만 가능하다”는 회신이 왔다. 곧장 라싸의 여행사로 확인해보니 “개인과는 접촉할 수 없으니 티벳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카투만두의 여행사와 접촉하라”는 대답이었다. 동행할 동지도 두 명 구했겠다 이젠 가게 되는구나 기뻐하며 여행사를 찾아갔으나 한결같이 외면만 당했다. 역시 지난3월 항쟁의 여파였다.
할 수 없이 푸카스는 직접 포스터를 만들어 시내 여기저기에 붙였다. 그걸 보고 찾아오는 사람은 많았지만 정작 가겠다는 사람보다는 “정말 티벳이 열렸느냐”고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중에도 지원자는 일곱명으로 불어났다. 내가 빛바랜 포스터를 보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루카스들을 찾아간 것은 그들이 마침내 여행사와 계약을 마친 다음날이었다.
네팔 사람답지 않게 흰 얼굴에 검은 뿔테 안경을 써서 중국관리 같은 인상을 주는 여행사 사람은 ‘나도 좀 끼어달라’는 말에 정말 중국관리처럼 벌컥 화를 냈다. “지금까지 싸우스 코리언이 티벳에 간 적도 없고 갈 수도 없다. 이 여행이 지금 얼마나 까다롭게 진행되는 줄 알기나 하느냐. 잘못하면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 비자까지 취소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루카스와 레이슬리가 나를 딱하게 여겼는지 중국대사관에 한번 가보겠다며 떠난 다음, 나는 호텔방에서 간절하게 기도했다. 잠시 후 그들은 중국 비자가 선명하게 찍혀있는 내 여권을 들고 와서 익살스레 흔들어 보였다. 여직원이 웃으면서 선선히 발급해 주었다고 했다. 의외일 정도로 쉽게 받아서 좋긴 하지만 그들도 영문을 모르겠다고 했다.

티벳행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일행은 매일 한차례씩 만나 티벳에 관한 정보를 교환했다. 여행사에서 프린트를 나눠주며 오리엔테이션을 했는데, 주로 티벳에 가는 서방 여행객들에게 중국측이 요구하는 금기 사항들이었다. 달라이라마 사진을 가져가지 말며, 티벳인들의 편지 심부름을 하지 말라, 단체를 이탈하여 티벳사람의 집을 방문하거나 티벳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를 어길 경우 강제 추방됨은 물론 특히 독립운동에 관계된 편지를 전달하다 발각될 경우에는 여행사에서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으니 긴장하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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