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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바 사가행 법문(3)

화이트타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 말씀드릴 내용은 귀의의 분류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귀의계를 전수하겠습니다. 이곳에 중국사람들만 모인 것이 아니라 많은 외국친구들도 귀의를 하고 싶어해서 통역을 몇 사람 더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 귀의라는 고유명사를 쓰던 안쓰던 간에 사실상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미 하고 있는 일입니다. 귀의의 뜻은 곧 서로 의지하곻 보살핀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서부터 의지한 것이 곧 귀의입니다. 귀의의 본질면에서 볼때 우리는 매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에서 구경의 구원자는 자신이라고 합니다. 그 의미는 근원적인 고통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만 소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학자들이 처음부터 자신의 힘만 의지하고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고통을 소멸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의지하고 귀의할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대상은 큰 능력을 구비해야 하고 진실하여 조금도 틀림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불,법,승 삼보님을 귀의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귀의의 주요한 의미는 상호간에 서로 보살피고 신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사람이든지 삼보님을 굳게 믿고 구호자로 삼고자하는 마음만 있다면 귀의계를 받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왜 스승님앞에서 귀의계를 받아야만 하는가하면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계를 주시는 스승님의 우리의 참괴(慚愧)의 의지처입니다.

만약 우리가 혼자서만 귀의하겠다하고 귀의계를 받는다면 우리가 귀의계를 어겼을 때에다만 자신만이 마음을 낸 것이기 때문에 소홀해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스승님 앞에서 귀의계를 받았다면 스승님께서 인도하시고 우리 눈앞에 한 사람의 증인이 있으므로해서 스스로 더욱 조심하고 성실하게 귀의계를 잘지키고 범하지 말 것을 경계하게 됩니다. 귀의계를 범했다하더라도 더욱 더 주의하고 동시에 이 귀의계를 더욱 더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비록 여기에서 불법승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귀의를 하지만 원만한 해탈의 과위를 증득하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중에 한 가지도 없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면 중병이 걸린 환자를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의사도 필요하고 약도 필요하고 또한 간호사의 보살핌이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원만한 불과를 증득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의사와 같은 부처님과 약과 같은 법과 간호사와 같은 승가의 보살핌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사보가 아니고 삼보님이기에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말년에 출가한 한 노스님이 계셨습니다. 한 여신도가 그 스님을 신심으로 모셔서 베 두필을 공양올리고 법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설법을 잘 할 줄 몰라서 혼잣말로 말하기를..“무지하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구나.”하고 “무지가 고통이다”라는 말만을 계속 반복했습니다. 이때에 여신도는 이 말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무명으로 인해서 고통이 생겨나는 것임을 깨달아서 그 여신도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한 좀도둑이 신도가 스님에게 베 두필을 공양올린 것을 보고 몰래 노스님 뒤를 따라갔습니다. 집에 당도하여 스님이 집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뒤쫓아가서 베 두필을 내놓으라고 협박하였습니다. 노스님은 매우 놀라고 두려운 소리로 “나는 밖에는 못나가니 당신이 창문으로 받아가시오.”하였습니다. 도둑놈은 곧 한 손을 창문으로 들어밀었습니다. 노스님은 이어서 말하기를 “신도가 나에게 공양할때는 두 손으로 공손히 올린 것이니 당신도 두 손으로 받아가야 하오!”

그래서 도둑놈은 두 손을 창문 안으로 내밀었습니다. 이때에 노스님을 얼른 끈으로 도둑의 두 손을 묶어서 기둥에 묶었습니다. 그리고는 집밖으로 나와서 몽둥이를 들고 말했습니다. “나를 따라서 귀의를 하거라!” 한 구절 귀의문을 따라할 때마다 몽둥이로 모질게 두들겨팼습니다. 전부 세 번 귀의를 하고 세 번을 실컷 두들겨 패고는 도둑을 놓아 주었습니다. 도둑은 너무 아파서 일어나기도 어려워 간신히 다리를 절면서 돌아갔습니다. 도중에 한 사람을 만나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도둑이 말했습니다. “사실 나는 도둑인데 오늘 나보다 더 큰 도둑을 만나서 귀의문을 한 마디 따라할 때 마다 죽도록 얻어맞고 오는 길입니다.” 이어서 또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신통도 하시지요. 삼귀의만 말씀하셨기 망정이지 사귀의를 말씀하셨더라면 저는 아마 죽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 도둑은 부처님께 신심을 내어서 후에 축가하여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네 번째는 귀의의 배워야 할 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개별적으로 배워야 할 것 중에 버려야 할 세 가지입니다.

  첫째 부처님께 귀의함으로서 세간의 신들에게 귀의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함으로서 중생들을 해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함으로서 나쁜 친구들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마땅히 지켜야 할 세 가지는

  첫째 부처님께 귀의함으로서 불상의 작은 조각이라도 마치 부처님을 대하듯 공경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둘째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함으로서 경전에 글자 한자라도 법을 대하듯 공경하고 받들어야 합니다.

  셋째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함으로서 스님들의 법의 한 조각이라도 공경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그 다음 공통적으로 배워야 할 것은

첫째 설사 생명의 위험과 이익의 유혹을 받더라도 삼보님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어떠한 필요에 의해서라도 다만 삼보님께 귀의하고 다른 외도들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언제 어디서든 삼보님께 공양올리는 것을 끊이지 말아야 합니다.

   네째 자신은 물론 다른 이가 귀의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다섯째 어떤 방향을 가든지 그 방향에 계신 불보살님께 절을 하고 예경해야 합니다.















대만불자 질문:  법왕님께 여쭙니다. 어떤 분을 근본상사라고 하는지요? 모든 까마까규파의 제자들은 다 까마바를 근본상사로 모시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까마바 답변: 이른바 근본상사라 하는 것은 주로 마하무드라를 수행할 때 우리 마음의 자성자리를 이끌어 보여주신 분이 바로 우리의 근본상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까규파에서는 나의 마음자리를 가르쳐주신 분은 모두 곧 나의 근본상사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까규파의 모든 사람들의 근본상사가 다 까마바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까규파의 전승에서 볼 때 특히 강창까규파의 전승에서는 까마바가 아주 중요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대만불자 질문: 법왕님께 여쭙니다. 귀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익숙하게 적응도 되지 않았느데도 귀의를 할 수 있습니까?

까마바 답변: 일반적으로 귀의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삼보님의 공덕을 알고 귀의하는 것, 삼보님의 차별을 알고 귀의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설한 바와 같은 몇 가지 방식을 갖추어야 원만한 귀의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방식을 모른다하더라도 귀의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경전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 곧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입니다. 법을 생각하는 것이 곧 부처님 가르침인 법보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승가를 생각하는 것이 곧 승보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불법승 삼보님의 공덕을 생각하는 즉시 귀의계를 얻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만불자 질문: 법왕님을 저의 근본상사로 모시고 싶은데요. 저는 정토신앙을 하고있는데 제가 법왕님께 귀의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정토수행을 할 수 있는지요?


까마바 답변: 일반적으로 말해서 귀의한다는 것은 저에게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삼보님께 귀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사람들은 큰 스님을 만날 때마다 다시 한번 더 귀의하는 풍속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만약 저에게 귀의했기 때문에 정토수행을 하는데 장애가 된다면 그것은 안좋은 일입니다. 저도 갈도록 정토수행에 신심이 나서 그 법을 수행하고 싶은 생각이 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음으로 수행하는 것이고 저도 마음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과거에 수행한대로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해서 노력하여 수행하시면 됩니다.


대만불자 질문: 법왕님께 여쭙니다. 저희들이 구루요가를 수행할 때에 상응해야 하는 구루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요? 만약 제가 이미 구루를 만났다면 수행을 할 때에 어떤 때는 자신의 구루의 모습이고 어떤 때는 까마바님의 모습이 정수리에 나타나는데 그렇다면 저의 근본상사는 까마바이시기도 하고 저의 구루 넨빠린포체 이시기도 한 것인지요? 저는 까마바와 전승조사님들의 심성이 같다고 보는데 이렇게 관상하면 맞는지요?

까마바 답변: 구루요가는 상사상응법(上師相應法)이라 하는 상응한다는 것은 외적인 모습이 상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상게넨빠린포체와 나를 억지로 섞어 놓는다면 매우 이상할 것입니다. 구루와 상응하고 구루가 마음에 들어왔다는 것은 구루의 공덕이 우리의 마음에 녹아든 것을 의미합니다. 번뇌장과 소지장이 일어날 때에 타력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대치하여 두 가지 장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것을 구루와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루가 갖추고 있는 가장 큰 공덕은 바로 번뇌를 항복받고 자신의 마음을 조복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공덕이 자신의 마음에서 생길 수 있다면 곧 구루와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고 하고 구루의 가피가 마음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루를 억지로 우리의 마음속에 집어넣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넨빠린포체의 모습과 나의 모습을 하나로 섞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보기에도 이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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