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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자비의 이중주, 티베트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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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자비의 이중주, 티베트 불교

 

    * 자료 출처 : 계간 『불교평론』겨울호

 

 

 

    * 글쓴이 : 주 민황 (동국대 인도철학과 강사)

 

  

  - 차례 -

  1. 티베트 불교에 대한 오해:티베트 불교는 라마교 ?

  2. 티베트 불교의 전래

  3. 티베트 불교의 교리적 특징

  4. 티베트 불교의 수행법과 그 특징

  5. 맺는 말

 


4. 티베트 불교의 수행법과 그 특징


티베트에 처음 소개될 당시의 인도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과 힌두 밀교 수행이 결합된 상태였다.

붓다의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불교 경전에서 가르치는 수행이다. 이 수행의 핵심은 도덕과 선정(禪定)과 지혜를 닦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밀교 수행이다. 이 수행은 불교 경전의 가르침과 힌두 요가와 힌두 밀교의 방법을 결합시킨 것이다.

티베트 불교는 밀교(탄트라)수행을 강력한 방편으로 사용한다. 총카파 스님은 도덕과 선정과 지혜를 닦아서 자비심과 지혜의 공덕을 쌓은 후에는 밀교 수행을 하라고 충고한다. 티베트 불교도들이 누구나 밀교 수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밀교 수행은 현교(顯敎) 수행으로 바탕을 확고히 다진 후 다음 단계로 밟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수행이다.

밀교 수행은 결과가 빨리 오고 강력한 만큼 위험도 크다. 중관 철학을 확고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밀교 수행을 하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타락하는 경우도 있다.

1) 람림

티베트 불교의 수행법의 특징은 ‘람림(Lamrim)’에서 찾아볼 수 있다. 람림은 밀교 수행으로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준비단계라고 할 수 있다. ‘람림’의 ‘람’은 길(道)이고, ‘림’은 단계라는 뜻이다. 요컨대 람림은 ‘깨달음으로 이끄는 단계적 수행법’이다. 람림에서도 스승의 역할이 중요하다.

스승은 제자의 의식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판단해서 그에 알맞은 수행방법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시기를 정한다. 두통약을 먹어야 할 환자에게 소화제를 주거나, 소화제를 먹어야 할 환자에게 항암제를 준다면, 약이 환자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수행이 약이라면 수행자는 환자이다. 자격 있는 스승을 만나서 안내를 받는다면, 쓸데없이 길을 헤매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철저히 믿고 수행하며, 스승은 환자를 다루는 의사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제자를 보살피게 된다. 그래서 티베트 인들은 올바른 스승을 만나 철저히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 깨달음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티베트 불교의 수행에서도 문사수(聞思修)는 모든 단계에서 기본적으로 강조되는 것이다. 보리심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나면, “모든 중생이 수없이 많은 전생 중의 어느 생에선가 한번쯤은 내 어머니였을 것이다. 어머니로서 내게 사랑을 베풀고 보살펴 주었던 분들이 지금도 윤회 속을 떠돌며 고통을 당하는 중생으로 살고 있으니 중생들을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도록 안내하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보리심”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보리심에 대해서 깊이 명상해서 내 마음 속에 보리심을 일으키고 발전시킨다.

그런 식으로 초보 단계에서부터 한 가지 가르침을 들을 때마다 생각하고 명상하는 단계를 거친 다음에 마음이 확고해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가르침을 스승에게서 받는다. 따라서 육도윤회에 대해서 듣고 생각하고 명상하는 단계가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티베트 불교의 꽃이라고 할 ‘람림’ 수행은 아티샤 스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티베트에 온 아티샤 스님에게 서부 티베트 왕족인 장춥외(byang chub o’d) 스님은 수행법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쓰여진 것이 《보리도등론(菩提道燈論, bodhipathaprad沖pa·byangchub lamgyi sgron\ma)》이었다.

그러나 《보리도등론》에는 수행의 핵심만 간결하게 쓰여졌기 때문에, 그 후로 주석서가 많이 나오게 되었다. 주석서 중 가장 방대하고 대표적인 것이 1402년에 쫑카파 스님(1357∼1419)이 지은 《보리도차제론(菩提道次第論, byangchub lamgyi rimpa)》이다. 쫑카파 스님이 겔룩파의 창시자인 만큼 지금까지도 겔룩파에서는 《보리도차제론》을 가장 중요한 수행의 지침서로 삼고 있다. 다른 종파들도 아티샤의 ‘람림’ 수행법을 받아들여 수행지침서를 만들어서 제자들을 지도해 왔다. 람림의 기본구조는 다음과 같다.

“수행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초급과 중급과 고급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초급은 다음 생에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수행하는 사람이고, 중급은 자신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고, 고급은 모든 중생들을 윤회에서 해탈시키기 위해서 붓다의 경지에 오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낮은 단계의 수행은 높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기반이 되는 것이므로, 소승의 수행을 확고하게 한 후에 대승과 밀승(密乘)의 단계로 올라간다.

모든 수행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붓다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지혜와 자비심이라는 두 날개를 갖춰야 한다. 계율을 잘 지켜야 보살의 서원을 이룰 수 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명상을 해야 한다.” 등이 람림의 기본적인 가르침들이다.

람림 수행에서 가르치는 주제들은 ① 스승에게 완전히 의지하는 것, ② 불법(佛法)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것이 소중하다는 것, ③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며, 세상의 모든 것이 항상 변한다는 것, ④ 육도윤회 가운데 삼악도에 태어나는 것이 위험한 이유, ⑤ 윤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삼보에 귀의하는 것, ⑥ 업(業)의 원리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⑦ 모든 중생에 대해서 평등심을 기르고 내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 ⑧ 이기심이 가져오는 피해를 생각하며 남을 나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훈련하는 것, ⑨ 남들의 고통을 내가 떠맡고 내 행복을 남들에게 나눠준다는 생각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하는 것, ⑩ 내가 모든 중생들을 도와서 해탈시키기 위해서 붓다의 경지에 오르고 싶다는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 ⑪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훈련을 하는 것, ⑫ 모든 것의 공성을 통찰하는 훈련을 하는 것 등이다. 초급 수행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업(業, karma)에 관한 것이다.

‘카르마’는 행동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에서 온 말이지만, 의지가 포함된 행동을 의미하는 불교용어로 바뀌었다. ‘업’은 어리석음과 집착과 미움 등의 번뇌에 오염된 중생들이 의지를 갖고 한 행동들이다. 행동은 몸과 생각과 말로써 나타날 수 있다. 행동에 담긴 의도는 아주 미세하기 때문에 수행자가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는다면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업에는 우리 자신의 의도가 섞여 있기 때문에 업을 선택하는 권한은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저지른 업의 결과를 피할 수는 없다. 업과 업보는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불교를 숙명론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업은 우리의 의지에 의해서 변화시킬 수 있다.

업보를 피할 수 없다고 해서 업이 숙명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업과 업보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의도가 담긴 행동을 하고 나면, 그 의도가 우리의 의식 속에 잠재력으로 남게 된다. 나중에 그 잠재력이 발휘될 기회가 생기면 업보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 속에 감춰진 의도는 잠재력으로 의식 속에 남기 쉽기 때문에 계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계율은 부도덕한 행동을 하려는 의도를 막아주는 방벽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좋은 업을 쌓기 위해서는 계율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재가자의 계율보다는 비구의 구족계가 부도덕을 방지하는 더 철저한 방벽이다.

이미 저지른 업이 심어 놓은 잠재력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은 해탈과 성불뿐이다. 모든 중생은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싫어한다. 보통 사람들은 명성과 획득을 원하고, 상실과 두려움을 싫어하고, 이기심을 기르다가 결국 패하고 만다. 어떤 이들은 조금 더 장기적인 이익을 구하기 때문에 업에 대해서 배우고 더 장기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행동을 한다. 그러나 그런 행동들만으로는 영원한 이익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윤회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구한다.

육도에 윤회하는 중생 가운데 신(神)들은 즐거움에 빠져 있고, 반신(半神, asura)들은 신들에 대한 질투로 가득 차서 수행할 여유가 없다. 짐승들은 수행할 정신적 능력이 없고, 생존만을 생각하며 산다. 귀신들은 고통과 질투에 짓눌려서 자신들이 가진 것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깨끗한 물을 보면 고름과 피라고 생각하고, 엄청난 식욕을 채우려고 하지만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지옥 중생들은 미움과 탐욕으로 저지른 행동의 결과로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수행할 여유가 없다.

인간의 세계도 탐욕과 분노로 가득 차 있거나 질병에 시달리는 일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불법을 만나서 수행할 기회를 만든다. 그런 경우를 가리켜 ‘귀중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다고 말한다. 수행할 조건이 갖춰진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귀중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언제 닥칠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업의 인과법을 생각하며 인간의 수명을 귀하게 여기며 수행에 힘쓴다. 이상의 것들이 초급 수행에서 생각하는 주제들이다. 초급의 수행에 충분히 익숙해진 후에는 중급의 수행으로 들어간다. 중급 수행에서는 개인의 해탈을 구한다. 해탈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 고통과 고통의 원인과 고통의 소멸과 고통을 소멸시키는 방법 등을 가르치는 사성제(四聖諦)에 관해 명상한다.

육도윤회에서 헤매는 동안은 업(業)을 피할 길이 없다. 신들의 세계에 태어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다른 세계로 태어나야 한다. 신의 세계에서는 즐거움에 취해 선행을 닦지 않기 때문에 공덕을 쌓지 못해서 다른 낮은 세계로 태어나게 된다. 심지어는 지옥에 태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중급 단계에서는 육도의 윤회 속에 있는 동안은 고통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명상한다.

윤회 속에는 세 종류의 고통이 있다. ① 고통스러운 고통, ② 변하는 고통, ③ 보편적인 고통 등이다. 고통스러운 고통은 죽음과 병과 전쟁 등과 같이 명백하고 직접적인 고통을 말한다. ‘변하는 고통’은 변화에서 생기는 고통을 말한다. 원하는 것을 얻으면 잠시 동안은 행복하지만 곧 다른 욕구가 생기면 이미 얻었던 것에 대해서 싫증을 내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일시적인 행복이 나중에는 고통으로 변하는 것을 ‘변하는 고통’이라고 말한다. ‘보편적인 고통’은 윤회 속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고통을 말한다.

모든 것이 무상한데도 영원을 찾아 헤매며, 변치 않는 ‘나’란 것은 없는데도 ‘나’를 찾으려 하며, 영원한 ‘내 것’이라는 것이 없는데도 ‘내 것’을 찾아다니는 중생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보편적인 고통’이라고 부른다. 그런 종류의 고통이 윤회 속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는 고통이라는 뜻이다. 깨달은 수행자들이 “모든 것이 고통이다.”라고 말할 때는 세번째의 ‘보편적인 고통’을 의미한다.

윤회 속에 있는 것은 이상의 세 가지의 고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윤회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시도는 헛되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해탈을 구하는 중급의 수행자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닦음으로써 해탈할 수 있다. 초급과 중급 다음에는 상급의 단계가 있다. 대승과 소승의 차이는 보리심(菩提心, bodhicitta)에 있다. 지혜에 대해서만 명상한다면 대승불교도들도 아라한의 길로 빠지게 된다. 보리심을 수반한 지혜만이 전지(全知)와 해탈을 막는 장애를 제거해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상급의 수행은 자기 자신만의 해탈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의 해탈을 구한다.

과거 언젠가의 전생에 나와 친밀했던 중생들이 지금은 지옥에 떨어지거나, 짐승으로 태어나거나, 현생의 나의 적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그 중생들을 해탈시키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러나 붓다의 지혜만이 중생들의 기질에 맞게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붓다의 경지에 올라 중생들을 돕고 싶다는 서원을 세운다. 그런 마음이 보리심이다.

‘붓다는 중생들을 해탈시키고, 보리심은 붓다를 만든다’고 한다. 중생들을 해탈하도록 돕겠다는 보리심 때문에 성불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성불의 원인은 보리심인 것이다. 보살은 중생들을 돕겠다는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수행해서 지혜와 공덕을 쌓은 결과로 붓다의 힘과 특성들을 갖게 되는 것이다. 보리심이 없이 밀교 수행을 하면 기껏해야 신통력을 가진 악마로 태어난다. 그래서 티베트 불교에서는 보리심이 동기가 되어 수행을 하는지를 점검하라고 강조한다. 보시·인욕·지계·정진·선정·지혜 등의 육바라밀은 상급의 수행에서 완성된다.

2) 밀교 수행

이상의 세 등급의 수행을 거친 후에 밀교 수행을 하게 된다. 밀교를 수행할 때는 현교를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밀교는 현교 위에 부가되는 것이지 대체되는 것이 아니다. 밀교 수행자는 단지 밀교 경전을 독송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밀교 명상을 하기 위해서 경론(經論)에 대한 지식을 얻어야 한다.

밀교 수행은 욕망과 질투와 혐오 등의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들을 거부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을 건전하고 유익한 힘으로 변화시킨다. 그것은 내 앞으로 달려드는 야생마를 길들이는 것과 비슷하다. 야생마의 앞을 가로막고 멈추라고 소리치다가는 말에게 채일지도 모른다. 밀교 수행은 옆으로 비껴서 있다가 야생마가 내 곁을 지나가는 순간에 등 위에 올라타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을 달래며 마구간으로 몰고 갈 수 있게 된다.

밀교 수행에는 자기제어와 수용의 기술이 필요하다. 밀교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독특한 예비수행들이 있다. ① 오체투지, ② 금강살타(Vajrasattva) 명상, ③ 만달라(mandala) 공양, ④ 구루요가(guruyoga) 등을 각각 10만 번씩 수행한 후에 본격적인 밀교 수행에 들어간다. 오체투지를 할 때는 내 앞의 허공에 부처님이 연화좌에 앉아 계시고, 부처님의 좌우에 보살님들과 역대 고승들이 둘러싸고 있고, 불경(佛經)이 부처님 뒤쪽에 쌓여 있고, 부처님의 앞쪽으로는 불교의 수호신들이 모여 있다고 상상한다.

내 좌우에는 각각 어머니와 여자 친척들, 아버지와 남자 친척들이 서 있고, 내 앞에는 원수와 적들이 서 있고, 내 뒤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있다고 상상한다. 원수를 앞에 세우고 친구를 뒤에 세우는 것은 평등심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모여 있는 사람들 주위에 육도윤회 속의 모든 중생들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함께 서 있다고 상상하면서, 내가 절을 하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같이 절을 한다고 상상하며 오체투지를 한다.

땅에 엎드릴 때는 과거의 잘못을 모두 참회하고, 일어설 때는 부처님의 말씀과 행동과 생각이 나를 가득 채운다고 상상한다. 금강살타 명상은 100개의 음절로 된 진언이라고 해서 백자진언(百字眞言)이라고 불리는 진언을 10만 번 암송한다. 이 수행을 할 때는 나를 비우고 금강살타가 내 안으로 들어와 내가 금강살타가 된 상태에서 진언을 암송함으로써 과거의 악업을 정화한다.

만달라 수행을 할 때는 불보살님께 세상의 모든 귀중한 것을 바친다고 상상하면서 쌀과 보석 등을 만달라 판 위에 올려 쌓았다가 다시 쏟으며 기도문을 외우는 것을 한 번으로 쳐서 10만 번을 되풀이한다. 이 수행을 통해서 보시하는 마음을 기르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고 다짐하는 마음을 기른다. 구루요가는 나를 비우고 스승과 내가 하나가 된다고 상상하며 스승에게 귀의하는 기도문을 외운다.

이 수행을 통해서 스승에게 헌신하고 의지하는 마음을 기른다. 이 수행을 통해서 수행자의 의식 속에 남아 있는 악업을 정화하고, 깨달음에 대한 확고한 열망을 기르며, 스승에 대한 신심과 헌신을 기르고 나면 밀교 수행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이때 스승에 대한 믿음은 내 안의 불성에 대한 믿음을 이끌어낸다. 스승과 하나가 되는 것은 곧 나의 불성과 하나가 됨을 의미한다. 밀교 수행에는 ‘관상(觀想) 단계(生起次第)’와 ‘완성 단계(圓滿次第)’의 두 단계가 있다.

관상 단계는 상상력을 이용해서 신과 내가 합일되는 것을 관상하는 초기 단계이다. 밀교의 신을 관상하고 내가 그 신의 모습으로 태어난다고 상상한 다음에 내가 만달라 속의 신이 되었다고 관상하면서 그 신의 지혜로 중생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상상한다. 관상이 끝난 후에는 신의 모습조차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공성을 자각한다. 관상 단계의 명상에 익숙해지면 완성 단계로 들어간다. 완성 단계는 우리의 육체 안에 흐르는 생명의 기운을 이용하는 고도의 명상법이다.

이 기운은 정신적 신경조직을 통해서 흐른다. 그 기운이 중맥(中脈) 속으로 들어와 흐르면 수행자는 안정감을 느끼고 명석한 마음을 갖게 된다. 좌우맥이 중맥을 조이고 있는 몇 개의 신경조직망이 있는데 그 지점들을 ‘차크라’라고 부른다. 차크라는 사람의 사념체와 육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척추의 바로 앞쪽에는 정수리로부터 단전에 이르기까지 가느다란 중맥이 있고, 중맥의 좌우로 더 가느다란 좌우맥이 있다고 상상한다. 그 맥을 사념체 속에서 상상한다.

분별망상을 할 때는 기운이 좌우의 맥으로 흐르지만, 마음이 한 곳에 모이면 기운은 좌우맥으로부터 중맥으로 흘러들어간다. 좌우맥과 중맥은 단전 부분에서 서로 만나는데, 그곳에서 기운이 중맥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좌우맥이 중맥의 옆에 나란히 흐르는데, 몇 군데서 중맥을 둘러싸며 조여서 매듭을 짓는다. 그 매듭 부분이 차크라이다. 기운이 중맥으로 흘러들어가서 차크라의 조임을 차례로 느슨하게 만든다.

중맥으로 기운이 흘러들어가게 하고, 차크라의 매듭이 느슨해지면, 분별심이 생기기 이전의 본래의 지혜의 빛이 나타난다. 모든 것의 공성을 통찰하고 무한한 자비심으로 가득 찬 지혜의 빛으로 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분별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기운이 중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좌우맥으로만 흐른다. 티베트 밀교 수행에서 중요한 툼모(tummo)도 단전에서 불을 일으켜 중맥 안으로 기운을 흘러들어가게 하는 수행이다.

그 불은 단지 몸을 따뜻하게 하려는 불이 아니라 단전에서 일으키는 지혜의 불로서 중맥 속으로 지혜의 기운을 흐르게 하는 수행이다. 사람의 몸에는 평소에 사용하는 육체적 몸(化身)과 아스트랄계의 몸(受用身)과 그보다 더 미묘한 차원의 몸(法身)이 있다. 완성 단계는 수행자의 몸과 말과 생각을 이 세상의 육체적 차원에서 벗어나게 해서 아스트랄계에서 발전한 사념체 속에 정신적 기운이 흐르게 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법신의 의식인 밝은 빛과 같은 미묘한 의식을 발전시키고, 사념체를 밝은 빛의 의식(法身)과 결합시켜 깨달음을 얻는다. 티베트 불교 수행에서 선불교(禪佛敎)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는 닝마파의 족첸(rdzogs-chen) 수행의 결과는 밀교 수행과 동일하지만 강조점이 약간 다르다. 족첸은 실재의 본성을 직접 자각하라고 강조한다. 사념체를 상상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법신(法身)을 직접 자각하라고 한다. 이 법신은 인간의 말이나 감정 등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차원이다.

족첸 수행은 선 수행과 비슷하며, 모든 경험을 수행과 관련시킨다. 족첸은 실재의 심오한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족첸 명상 중 어떤 것들은 밀교의 관상이나 차크라 명상과 비슷하다. 족첸 수행을 하기 전에 갖춰야 할 예비수행도 밀교 수행과 같다. 밀교 수행 전체를 통해서 공성에 관한 명상은 필수적이다. 현상 세계의 나는 한정된 기간 동안만 이 세상에 존재하다가 죽으면 소멸한다. 그러나 정신적 육체인 수용신은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기 때문에 신체적 몸보다 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육체적 자아의 실체가 없다고 가르치는 것은 육체에 근거한 나를 일시적인 옷이라고 생각하고 정신의 자각을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결국 티베트 밀교의 수행법들은 모두 중생에게 내재된 본래적 지혜의 빛, 즉 불성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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