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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마파 이야기 : 16대 까르마파 랑중 릭페 도제

박물관

 

16대 걀와 깔마파

(1923-1981 CE)

 

 

 

16대 까르마파 랑중 릭페 도제는 디추 강사 델게 지역에서 환생하였다. 그는 태중에 있을 때부터 위대한 존재라는 예언이 있었다. 릭페 도제의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구루 린포체께서 수행하신 동굴에서 출산할 때까지 지냈다. 그가 태어난 후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딸을 나았다고 했다. 그의 집에 있는 물 공양 그릇 속에 물들이 모두 우유로 변했다고 한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7 발자국을 걷고는 얼마 후에 당신은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릭페 도제는 어려서부터 잃어 버린 동물을 찾는 투시력 같은 것이 있었다.

 

15대 까르마파의 예언 편지에 따라 11대 타이 시뚜는 곧 16대 까르마파를 찾았다. 까르마파는 8세에 사미계와 보살계를 수지하였고 까규파의 주 수행 본존인 바즈라바라히의 관정을 받았다.

 

릭페 도제는 켄체 초끼 로되 린포체로부터 15대 까르마파의 유품을 전해 받았고 출푸 사원에 도착했을 때는 2대 잠공 콩툴, 파오 린포체, 걀삽 린포체가 맞았다. 출푸에 도착하여 까르마파는 흑모관 의식을 치렀는데 이때 하늘에서 꽃잎 비가 내렸다.

 

릭페 도제는 13대 달라이라마로부터도 확인을 받고 삭발의식을 하였다. 달라이 라마는 머리를 깎기 위해 릭페 도제에게 흑모관을 잠시 벗으라고 했는데 그가 흑모관을 벗었는데도 다키니들이 만들어준 흑모가 여전히 머리에 쓰여져 있을 것을 보았다고 한다.

 

까르마파는 타이 시뚜와 걀왕 둑빠의 집전 하에 즉위식을 올렸다. 그는 타이 시뚜 린포체로부터 까규 법맥을 전수 받았고 잠공 콩툴 린포체로부터는 린첸 뙈르조의 전승을 받았다. 또한 강칼 린포체로부터 모든 현교의 가르침을 받았고 사꺄의 법맥도 전수 받았으며 캅제 링 린포체로부터는 겔룩파의 가르침과 사미계를 수지하였다. 또한 뚤구 우겐 린포체로부터는 초귤 링빠의 뙬마 전승을 배웠다.

 

까르마파는 1940년대에는 주로 안거로 보냈으며 타이 시뚜와 잠공 콩툴 린포체로부터 비구계를 수지하였다.

 

까르마파는 일찍부터 전생을 기억하는 등의 성취자의 능력을 보였으며 11대 타이 시뚜와 함께 바위에 발자국을 남기기도 하였다. 한 번은 온천에서 뱀에 둘러싸여 춤을 추었는데 뱀들이 전혀 물지 않았다.


1940년대 중반에는 부탄으로 순례를 떠나 흑모관 의식을 거행하고 그곳의 불자들을 가피해주었다. 1947년에는 달라이 라마와 함께 시킴, 네팔, 인도의 불교 성지들을 돌아보았다.  

까르마파는 초귤 링빠의 전승을 닝마 법맥의 종정으로 모셔지는 민돌링 티젠 린포체에게 전수해주었고 14대 달라이라마로부터는 칼라차크라 관정을 받았다.

1949년 마오쩌뚱의 중국 정부는 티벳을 점령하여 정치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달라이라마, 뺀첸 라마와 함께 까르마파는 북경을 1954년에 방문하여 갈등 해결을 위한 회의에 참석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까르마파는 12대 타이 시뚜 린포체의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까르마파는 깔루 린포체, 아콩 린포체, 트룽빠 린포체를 비롯한 13명의 린포체에게 매우 진귀한 전승을 전수하였다. 이들 세명의 린포체들은 후에 16대 까르마파의 입적 이후 서양에서 까규의 법맥을 지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까르마파는 중부 티벳과 암도 지방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군사적 갈등을 중재하였고 이러한 상황들을 달라이 라마에게 보고하곤 하였다.


까르마파는 1959년 중국의 무력 침공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예견하고 깔루 린포체, 타이 시뚜 린포체 상계 넨빠 린포체 등을 부탄으로 보내 걀삽 린포체와 타렉 린포체를 찾도록 하였다.

 

달라이 라마에게 이야기한 뒤 까르마파는 딜고 켄체 린포체, 걀삽 린포체, 폰롭 린포체를 비롯한 60여명의 일행과 함께 티벳을 탈출하였다. 

부탄에 도착했지만 까르마파는 일행들을 독려해 좀 더 가도록 재촉하였다. 그 다음날 폭설로 인해 길을 막혔는데 바로 뒤에 중국군의 추격대가 있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지체했다면 잡힐 뻔 하였다.  

부탄의 왕족에게 예를 표하고 부탄에 머무르던 환생 린포체들을 접견한 뒤 까르마파는 시킴으로 발길을 옮겼다. 따시 남걀은 까르마파께서 이곳에 머물면서 불사를 행하시기를 간청했다. 까르마파는 9대 까르마파께서 지으셨던 룸텍 사원을 주석 사원으로 정했다. 까르마파는 당시 인도의 수상 네루를 만나고 룸텍 사원 재건을 위한 후원을 받게 되었다.


까르마파는 시뚜 린포체, 걀삽 린포체, 콩툴 린포체, 폰롭 린포체, 타렉 린포체, 상게 넨빠 린포체 등 어린 뚤꾸들의 교육 시작했다. 이 어린 환생자들은 탕구 린포체를 비롯한 스승들로부터도 많은 전승과 가르침을 받았다.

 

까르마파는 1967년 아콩 린포체와 트룽빠 린포체를 영국으로 보냈다. 이 때 세워진 삼예링 센터는 서양 최초의 티벳불교의 사원이었다.

 

쵸감 트룽빠 린포체는 후에 샴발라라고 하는 큰 조직을 만들어 미국과 유럽 등지에 불교를 널리 알렸다. 트룽빠 린포체는 수 많은 선원과 심지어는 대학까지 설립하였고 이러한 불사는 서양에 까규 법맥이 퍼지는 초석이 되었다.

 

1974년에는 티벳 불교의 위대한 성취자 중 한 분인 도제창 깔루 린포체가 처음으로 서양을 방문하였고 곧 이어 트룽빠 린포체의 초청으로 까르마파도 방문하였다. 그는 수천명의 사람들을 가피하고 여러차례 흑모관 의식을 거행하였으며 바티칸에서는 교황과 만났다.

 

1976년 까르마파는 뉴욕을 방문했으며 1977년부터는 선원들을 짓기 위한 세계 순례를 시작하였다. 이 즈음 까르마파는 이미 북유럽, 서유럽과 중부 유럽, 미국, 캐나마, 동남 아시아와 호주를 다녀왔던 상태였다.

 

까르마파는 또한 미국 남서부 지역에 호피 미국 원주민 보존 지역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붉은 관세음보살 관정을 주었다. 그곳 사람들은 이 관정식으로 인해 가뭄이 멈추었다며 까르마파가 부족의 오랜 예언을 성사시켰다고 했다. 예언서에는 "서쪽의 종교가 쇠하게 되면 홍모를 쓴 이들이 와서 호피족의 친구가 될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 닝마와 까규 등의 구파는 의식에서 빨간색 판디타의 모자를 착용한다.

 

1981년 까르마파는 델게 본 깡규를 모두 재인쇄하여 전세계에 배포하였다.

 

까르마파는 새들을 특히 좋아했다고 하는데 룸텍 사원에는 보살들로 알려진 새들이 있었다고 한다. 까르마파는 새들과 곧잘 대화를 하곤 했고 명상과 만트라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들의 의식을 정토로 전이하기도 하였다. 까르마파는 비록 영어가 짧았지만 항상 만나는 이들에게 '행복하신가'하고 물었다.

 

1981년 까르마파는 암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육신이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까르마파는 미국 일리노이 주 시온 병원에 입원하였다.

 

까르마파는 여러 질병을 앓았는데 이는 모두 중생들의 고통을 멸하기 위해 자신이 받아들인 것들이라고 하였다. 또한 의사들에게 자신의 몸으로 많은 실험을 하도록 허락하였는데 아무리 약을 투여해도 정신은 전혀 흐트러짐이 없어 의사들을 놀라게 하였다. 한 가지 질병이 나으면 다음 날에는 심각한 또 다른 질병이 계속해서 생기곤 했다는 것이다. 어쩔 때는 의료기기가 스스로 켜졌다가 꺼졌다가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까르마파와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평온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1981년 11월 5일 까르마파는 입적하였다. 3일 동안 심장 부근이 따뜻했으며 의료진은 모두 놀라서 의학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병실에 명상자세로 앉아 있었다. 타이 시뚜 린포체 등의 수행 린포체들은 11월 9일 까르마파의 몸을 모시고 시킴으로 돌아갔다.

 

곧 49재가 진행되었으며 깔라차크라로부터 구루 요가 등 많은 수행이 이어졌다. 모든 유파의 대표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참배하였다.

까르마파의 화장식이 있던 날 그의 시신은 부패하지 않고 단지 어린 아이의 크기로 몸이 줄어 있었다. 그의 몸은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작은 관에 넣어졌다. 시뚜 린포체, 걀삽 린포체, 잠공 콩툴 린포체 들을 비롯한 여러 라마, 린포체와 정부 인사들이 모였고 그의 화장이 이어졌다.

 

불을 붇히자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타이 시뚜 린포체가 불에 공양물을 던지자 까르마파의 심장이 굴러나왔다. 이 심장은 후에 룸텍 사원의 사리탑 안에 안치되었다. 그의 사리와 유골들은 나누어져 전세계 여러 유적의 탑 안에 안치되었다.

 

그는 입저하기 전 다음 환생은 티벳 땅에서 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비밀 주머니에 예언편지를 넣어 타이 시뚜 린포체에게 남겼다. 타이 시뚜 린포체는 10여년이 지나서야 옷을 정리하다가 편지를 발견하였다.

 

까르마파의 입적 후 까규의 법은 타이 시뚜 린포체, 걀삽 린포체, 상게 넨빠 린포체, 잠공 콩툴 린포체를 비롯하여 원로이신 깔루 린포체, 보카 린포체, 탱아 린포체 탕구 린포체 등 성취자들로 순수하게 지켜졌다. 깔루 린포체는 17대 까르마파의 즉위식이 있기 전에 입적하였으나 타이 시뚜, 보카 린포체 등에게 법맥을 전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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