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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규기원법회에 대한 까마바존자님 소개

박물관

        

 

          까규기원법회에 대한 까마바존자님 소개

 

     오늘(2004년 7월 28일) 이곳에 네팔, 인도등지에서 적어도 열아홉사원의 유나와 감찰소임을 맡고 계신 라마들을 모신 것은 저 자신의 까규기원법회에 대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먼저 저 개인의 간단한 이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어린시절 시골에서 보통아이들과 같이 생활했는데 까규파에서 저에게 “까마바”라는 큰 명칭을 내려주신 이후로 저의 책임이 매우 중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까규파 교파내의 법적인 사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저 개인적으로는 역대의 까마바님들의 자비심과 위대한 업적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때에 맞추어 적당한 변화는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이제 정식으로 까규기원법회에 대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까규기원법회”는 우리가 인도에 와서 새삼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일찍이 삼백년 전에 제 7 대 까마바이신 체닥잠초와 제 8 대 까마바이신 미제돌제와 제 9 대 까마바이신 왕축돌제 그리고 제 10 대 까마바이신 최잉돌제등의 시대에는 확실히 대부분의 까규종파의 문도들이 한 곳에 모여서 성대하게 법회를 갖고 석가모니부처님의 은덕을 가슴 속에 새기고 세계평화와 안녕을 기원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비록 “까규기원대법회”라는 명칭은 없었으나 그 의미는 까규기원대법회를 비슷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제 7 대 까마바이신 체닥잠초께서 계실 때에는 불교의 사대명절중에 신통변화일(파드마삼바바를 기념하는 재일, 음력 2월 10일)에는 성대한 기원법회를 거행하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법회동안 가장 불가사의한 성물(聖物)들을 진열하고 그 앞에 금은보화와 풍성한 공양물을 올리고 매일 티베트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진귀한 각양각색의 공양물들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제7대 까마바이신 체닥잠초께서 자신의 법상위에서 예배를 올리셨습니다. 

  새벽부터 기도문을 염송했는데 당시에도 오늘날 가장 중시하는「大法行文」가운데 있는 「大祈願文(대기원문)」을 염송하였고 까마바께서도 「?淨佛土願文(청정불토원문)」의 염송방식으로 친히 기원문을 낭송하셨습니다.

  오후에는 인도와 티베트의 성현들과 성왕들의 역사를 창송하게 하고 대형 가무활동을 선보이게 하였습니다. 제 7 대 까마바이신 체닥잠초는 평소에 많은 신도들을 접견하지 않으셨답니다. 이 신변일과 티베트 신년에 대중들이 5,6일간 축제를 하는 기간에만 차담을 나누는 시간동안 오랜시간이 아닌 잠시동안만 친견을 허용하셨습니다. 당시 기원대법회때에는 새벽시간의 기원의식을 할 때 시간이 비교적 길었으므로 많은 신도들이 다만 존자님을 친견하기 위하여 참석하러 왔습니다. 그 밖에 일반적으로 볼거리를 위해서 혹은 새해에 벌어지는 많은 행사들을 위해서 모여들기도 하였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것은 다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기왕에 우리 모두 과거의 대덕성현들을 따라서 행하기로 하였으니 반드시 실천에 옮겨서 확실하게 본받아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역대 대덕성현들의 발자취와 공적을 연구하여 비록 말법시대인 이 시대를 산다할지라도 가르침에 따라서 봉행하고 여법하게 수행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저 자신도 끊임없이 많은 조사스님들의 전기와 사적을 읽고 또한 까규기원법회가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욱 더 번창하고 의미있는 행사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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