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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에 대한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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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에 대한 헌신

-구루에게 온전히 나를 바침,50게송-

                               

                            아리야수라(아쉬바고샤)





바가완 바즈라싸뜨바에게 엎드려 절하나이다. 


@, 바가완은 깨달은 존재, 붓다를 위해 사용된 많은 용어 중의 하나이다.

그에 대한 티벳 용어, ‘촘·단·다’는 

다음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촘’은 극복하다, 다스리다를 의미한다.

붓다는 해탈을 가로 막는 장애와 

일체지를 가로 막는 장애를 극복한 자이다.

해탈을 가로 막는 장애는 

번뇌, 혹은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장애와 

상호의존적인 결합으로서의 존재를 붙잡는 무지, 

이 모든 것의 씨앗을 포함한다.

일체지를 가로 막는 장애는 

이 번뇌와 무지의 본능적인 성향(습성)을 말한다.

‘단’은 소유하다, 지니다를 의미한다.

붓다는 모든 미덕을 지니고, 공덕과 지혜의 두 자량을 완성하였으며,

색신과 지혜신을 성취하였다.

‘다’는 초월하다, 건너가다를 의미한다.

붓다는 까르마와 망각으로 인해 고통 받으며 무력하게 생, 사의 바퀴를 도는

삼사라를 건너가셨다.


바즈라사뜨와, 도제셈빠의 숨겨진 뜻은 어원에서 발견될 수 있다.

‘도·제’는 부서지지 않는 금강-번개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이것은 

공성을 파악하는 동시 지복을 경험하는 마음과 

마음의 대상인 공성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  

금강석처럼 단단한 지혜를 말한다.

‘셈·빠’는 영웅심을 가진 자를 의미한다.

이것은 자기자신이 모든 환영적인 망각과 무명, 습성을 버리고,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준비가 되어있는 

영웅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바가완 바즈라사뜨와는 

딴뜨라를 설한 보신붓다, 바즈라다라(지금강)의 상태를 말한다.

그가 깨달음에 도달한 방법은 

구루에 대한 헌신, 구루에게 온전히 바치는 것이었으므로,

아쉬바고샤는 이 귀의문으로 그의 글을 시작한다.

구루헌신에 관한 이 글은 대중이 부여하는 가치와는 상관없이

아쉬바고샤의 또 다른 저작인 대승기신론 만큼이나 중요한 저술이다. 



1, 내가 성스러운 바즈라사뜨바의 지위에 도달하는 원인이신 

나의 구루의 연꽃 발아래 올바른 방법으로 절하면서,

구루에 대한 헌신에 관하여 

많은 흠 없는 딴뜨라 경전에서 말한 것을

간략하게 줄여 설명하겠습니다.


 

2,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붓다께서는 

열 방위에 있는 모든 세계에 머물면서,

그 분들이 가장 높은 여러 관정을 받았던 딴뜨라의 스승에게 

존경의 마음을 바쳤습니다. 


@, 일반적으로 견해의 바탕, 나아갈 길, 결과의 세 가지 입문, 

세 가지 관정의 형태가 있다.

첫 번째는 마음흐름을 성숙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는 수행의 길 자체이며,

세 번째는 붓다후드에 실제로 들어가는 것이다.

깨달음에 도달했거나 앞으로 도달하게 될 모든 사람은 

딴뜨라의 스승으로부터 이러한 가장 높은 관정을 받음으로서 

그렇게 되었던 것이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붓다는 

완전한 깨달음, 궁극적인 스승의 의미 안에 내포되어 있다.

또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가르침은 

이 각성이 포괄하는 한계 범위를 결코 넘지 못한다.

상대적 진리의 관점에서 볼 때,

어느 한 시점의 붓다의 깨달음은 

다른 한 시점의 붓다의 깨달음과 다르지 아니하며,

어느 한 시점의 붓다의 가르침은

다른 한 시점의 붓다의 가르침과 결코 다르지 아니하다.

현재불의 가르침을 안다면,

과거불의 가르침을 아는 것이고,

미래불의 가르침에 대해 전혀 두렵지 않다.


과거, 현재, 미래의 붓다는 

바탕에서는 마음흐름을 각성시키는 것, 즉 여래장의 각성이며,

나아갈 길에서는 그 각성이 전개되어 나타나는 초월지혜의 성취이며,

결과에서는 이 모든 것을 포괄한 그 자체를 넘어서 있지 않는다.


 

3, 하루에 세 번, 

최상의 믿음인 확신을 가지고,

합장을 하고, 

꽃과 더불어 만달라를 바친 다음, 

그대의 머리를 스승의 발에 대고 절을 함으로서, 

그대를 가리치시는 구루에게 

자신이 품고 있는 존경의 마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 믿음의 세 가지 수준이 있다.

흥미와 관심이 첫 번째이고,

열정과 추구가 두 번째이며,

본성을 자각함에서 오는 확신이 세 번째, 최상의 믿음이다.

그러한 최상의 믿음을 가진 자 만이 구루에게 헌신할 수 있고,

오류 없이 재빠르게 붓다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제자로서 

여러분은 자신의 구루를 깨달은 분으로 보아야 한다.

스승의 입장에서 스승이 아직 깨달은 자가 아니고,

제자인 여러분이 붓다후드에 도달했다하더라도,

그 분께 존경의 마음을 보이고, 예를 갖추어야 한다.

이 세계의 천 분의 붓다 가운데 한분이시고, 

지금은 뚜시따 하늘(도솔천)에 계신 매떼야(마이뜨레야)께서는 

그의 구루 싸캬무니 붓다 앞에서 붓다의 깨달음에 도달했지만

그의 구루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수뚜빠를 들어 자신의 이마에 대었다.

마찬가지로, 모든 붓다의 자비의 화신이신 아발로끼떼스와라께서는

수카바띠 하늘에 계시는 자신의 스승, 아미따바 붓다의 머리로 구성된

11면의 형상을 두 정 위에 올려놓고 있다.


구루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뿔을 취하려고 사슴을 죽인 다음, 

그 시체는 버리는 것과 같아서는 안 된다.

스승은 사용하고 나면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자신의 깨달음을 가능하게 해 준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4, 계율을 수지한 자는 

자신의 스승이 재가자이거나 손아래 사람이라 하더라도,

속인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그가 쓴 저작과 같은 것을 바라보고 엎드려 절하지만,

마음으로는 스승을 향합니다.


 

5,그를 모시고, 공경의 마음을 보여 주기위해,

그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고, 

일어나고,

자리를 마련하여 드리고,

- 승려의 계율을 받은 자라도 (속인의 스승에게)이렇게 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엎드려 절하거나 인습을 벗어난 행동은 하지 마십시오. 


@,계율 중의 한 가지는 

비구나 비구니는 속인들에게 절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것은 

계율을 준수하는 자들 사이에 

오해와 비난을 일으킬지도 모르기에,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속인의 스승에게 엎드려 절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대 성취자 짠드라고미와 그의 제자 짠드라끼르띠는 

서로 만나 다르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곤 하였다.

짠드라고미는 속인이었고, 짠드라끼르띠는 승려였다.

어느 날 짠드라끼르띠는 짠드라고미를 자신의 승원으로 초청하였다.

그는 승려와 제가신도 전체가 줄을 지어 예를 올리기를 바랬으나,

속인 스승, 짠드라 고미는 

제가신도들이 이상하게 여기리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짠드라끼르띠는 문수사리상을 법좌에 올려 놓고,

승려들로 하여금 문수사리상이 짠드라고미 바로 앞에 놓이게 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이 예불이 붓다의 지혜의 화신인 만주쉬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렇게 해서 승려들은 불쾌한 느낌을 피할 수 있었다.


 

6, 스승과 제자 간에 이루어진 서약이 

변질되지 않게 하려면,

스승-제자의 관계를 설정하기 전에 

서로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밀교 입문 관정식에서, 

영적 성취에 꼭 필요한 수행과 수행의 단계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여러 종류의 계율을 수여 받는다.

이를테면 제자는 자기 자신을 걸고, 

항상 스승을 명상하는 신(이담)과 동일한 것으로 관상하면서,

자신이 지금 입문한 수행에 들어가겠다는 서원을 깨트리지 않기로 맹세한다.

그러한 명상의 대상인 신들, 스승들은 

본질에 있어서 모든 붓다의 깨달음과 동등하며,

나타난 형상의 측면에서만 다를 뿐이다.

스승도 전에 맹세코, 밀교의 비밀을 

이해하거나 보존할 수 없는 자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서약하였다.

마치 사자의 젖이 진흙 그릇에 보존될 수 없는 것처럼,

심오하고 효과적인 밀교방편이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맡겨져서는 안 된다.

그러한 서약을 한 뒤에 

스승과 제자사이에 이루어진 맹세가 깨어지게 된다면,

둘 다 바라는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매우 심각한 불행이 두 사람을 뒤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정식 관계가 성립되기 전에

서로를 신중하게 파악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예전에는

관정을 수여받기 위해

예비제자는 3년 이상의 기간 동안 요청을 해야만 했다.

입문은 평범하게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제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게 함으로서,

구루는 그에게 밀교의 길에 입문하는 가치를 각인시키고,

서약을 시험해보고,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지를 확인하였다.

경우에 따라 구루는 그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기 전에

더 오래 기다려 보게 하기도 한다.

구루는 반복해서 그의 자세나 태도를 시험해 보고,

그를 잘 이해했다고 생각이 들 때에 그를 제자로 받아들일 것이다.


제자 또한 마음에 두고 있는 스승을 검증하여,

그가 스승으로서의 품성과 요건을 갖추었는지 파악해야 한다.

내가 이 스승에게 완전히 내 맡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정식으로 스승-제자관계에 들어가기 전에,

선택은 완전히 자유롭다.

그러나 한번 둘 사이의 유대가 발생한 뒤에는

구루·헌신에 관한 이 가르침의 내용이 서약의 형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7,지각이 있는 제자는 

자비심이 부족한 자, 노여움을 잘 타는 자,

나쁜 행위를 버리지 않고, 

거만하며, 욕심이 많고, 계율이 없고,

자기 지식을 자랑하는 자를 스승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8,그는 한결같고, 

잘 다스려져 있으며, 

현명하고, 

인내심을 갖추고 있고,

꾸미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결점을 감추거나, 

가지고 있지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꾸미지 않습니다.

그는 가르침의 의미와 예식의 절차를 잘 알고 있고,

자비심이 있고, 

가르침에 관한 완전한 지식이 있습니다.


 

9, 그는 열 가지 특성을 갖추고, 

만달라를 사용하는 데에 유능하고,

밀교를 설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다르마에 대한 최상의 믿음을 갖고,

자신의 감각을 완전히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 일반적으로 대승의 스승은 다음 열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1)계율 청정, 

2) 정신적 고요, 

3) 모든 내, 외의 장애소멸 

4) 많은 지식

5) 가르치는 것에 게으르지 않고, 기쁨을 느낌 

6) 가르침의 보물창고

7) 공성에 대한 견해 

8) 가르침을 전달하는 데에 능숙함 

9) 큰 자비심

10) 제자가 지성이 있든 없든 가르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음


밀교의 스승은 더 많은 특성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의 행위와 말과 생각이 통제되어 있어

행위, 말, 마음이 항상 그대로 유지되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10, 그러한 보호자의 제자가 된 뒤에 

마음속에서 그를 경멸한다면,

모든 붓다를 비방한 것처럼 

끊임없는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11, 그대가 만일 스승을 경멸할 만큼 어리석다면, 

전염병에 걸리게 될 것이고, 

악령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그리고 악마에 들리거나, 

전염병에 걸리거나 

아니면 독으로 죽을 것입니다.


 

12, 권력자에게 살해되거나, 불에 타 죽거나, 

아니면 독사에 물리거나, 

물에 빠지거나, 마법사의 저주에 걸리거나,

악령에 들려서 죽고, 

지옥에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13, 스승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마십시오.

어리석게도 이렇게 하게 된다면, 

분명 지옥에서 끓게 될 것입니다.


 

14, 아비찌 지옥(아비지옥)은 

얼마나 두려운가요!

스승을 비방하는 자는 

거기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15, 그러므로 그대의 스승이 

큰 지혜와 덕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속에서 그를 얕잡아보지 마십시오.


 

16, 주의력이 부족하여, 

스승에 대한 불경을 저질렀다면,

공손하게 그에게 공양을 올리고, 

용서해 줄 것을 청합니다.

그리하면, 미래에 전염병과 같은 해로움이 

그대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17,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그 분께  

포기하기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아내, 자식, 자기 삶마저

기꺼이 바쳐야만 한다고 가르침은 말하고 있습니다.

무상한 재물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18, 그와 같은 공양은 

열의를 가지고 있는 제자에게 

바로 이 생애에 붓다의 깨달음마저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다면, 

수백만 겁 동안에도 도달하기 어려운 깨달음을 말입니다.


 

19, 자신의 맹세를 잘 지키십시오.

그리고 항상 깨달은 자, 스승에게 공양을 하십시오.

그는 모든 붓다와 동등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20, 다함이 없는 붓다의 지혜의 몸을 얻고자 하는 이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최상의 것 까지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스승에게 드려야 합니다.


@, 낮은 것은 세상의 물건을 드리는 것이고,

보통의 것은 자신의 몸과 말과 마음을 드리는 것이고,

최상의 것은 가르침을 수행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21,보시는 모든 붓다에게 

끊임없이 공양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보시에서 많은 공덕이 축적되며,

그러한 공덕의 자량이 쌓임에 따라 

최상의 깨달음이 나타납니다. 


@, 모든 붓다의 대리자인 스승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보시는 붓다후드의 목적에 온전히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색함이나 이기적인태도는 

가장 아끼는 것을 내어 주는 것에서 마음을 움츠러들게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만을 주게 한다.

중생들을 이롭게 한다는 일이 거짓된 흉내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신을 온전히 바친다 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집착 없이,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 스승에게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치려 해야 할 것이다.

만달라 공양은 자신의 몸과 말과 마음, 

심지어는 온 우주까지도 이 목적을 위해 바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밀라레빠처럼 가난하여 공양할 재산이 없다 해도 문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태도이고, 

스승과 깨달음과 중생을 위해 

어떤 것이라도 기꺼이 희생할 자세가 되어있는 것이다.

최상의 공양은 수행이다.

그러나 재산이 있다면, 공덕을 얻기 위해 그 것을 사용하는 것을

결코 주저해서는 안 된다.


공양은 스승이 부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스승은 그 공양물 대하기를 호랑이가 풀을 보듯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전적인 헌신에 의해 자신을 이롭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22, 그러므로 자비와 보시, 계율, 인욕을 지닌 제자는 

결코 자신의 스승과 지금강불을 다르게 보지 않아야 합니다.


@, 자신의 스승, 명상하는 신위(이담),지금강불, 형상을 지닌 붓다는

딴뜨라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동일한 것이다.

그 것은 드라마에서 일인 몇 역을 하면서 연기를 하는 배우와 같다.


자신의 스승을 지금강불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는 힘은

자신의 동기에 달려 있다.

보리심의 동기를 키운다면, 다른 사람들을 완전히 도울 수 있기 위해

자신이 붓다가 되려 할 것이다.

동기가 크면 클수록 깨달음의 필요성 또한 커질 것이다.

깨달음을 이루는 것, 그 것을 성취하는 방법만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속에 이 것 밖에 없기 때문에 

저절로 자신의 스승을 지금강불로 보게 될 것이다.


깨달음을 원하면 원할수록, 

더 분명하게 자신의 스승이 붓다이어야 할 필요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큰 자비심으로,

자기 자신을 쉽게 기쁨으로 헌신할 수 있다.

보시바라밀을 수행함으로서, 지계, 인욕, ...의 바라밀을 수행함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이 구루라고 하는 하나의 중심에 모이게 되고,

그 때 스승의 상태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23, 무서운 결과가 탑(부도)을 파괴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스승의 그림자마저 밟아서는 안 된다면,

절대로 그의 신발이나 자리를 사용하거나 밟고 다니고, 

그의 자리에 앉거나 법좌에 올라타서는 안 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 부도는 붓다의 사리를 모시는 기념탑이다.

스승의 경우처럼, 

이 것은 붓다후드에 도달하기 위해 존경과 헌신의 초점으로서 사용한다.

부도를 파괴하는 것과 스승의 그림자를 밟는 것은 

둘 다 궁극의 깨달음에 대한 가장 큰 무시이고 불경이다.

그러므로 양 쪽의 결과는 동일하다.


 

24, 큰 지각력을 가지고,

스승의 말씀에 기쁨과 열성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 것을 행하기에 지식과 능력이 부족하다면,

왜 순종할 수 없는지 설명해드려야 합니다.


 

25, 뚜렷한 성취, 

높은 세계에 태어남, 

행복은 스승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자기 스승의 충고를 어기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 스승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의 충고를 따르는 것은 

무수한 공양을 올리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그에게 온전히 맡김으로서,

그 분은 나를 궁극적 깨달음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거만하게 자신을 내 세우고, 굳게 닫힌 마음으로,

자신의 영적 성장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로부터 작은 한 가지라도 배울 수 있겠는가?


이 것은 내가 아무 생각 없는 노예가 되어야 한다던가,

아니면 스승이 내게서 부당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깨달음이라는 완전한 자유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깨달음에 도달하는 방법에 자유가 있어야 한다.

순종해야 한다고 보고, 순종하라고 한다고 해서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의도와 목적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스승은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해 행동하고 말할 뿐이다.

그가 요청한 것이 하기 어렵고, 그 목적이 지금은 불분명 할지라도

기쁨으로 생각하고, 나에 대한 배려에 대해 깊이 감사하면서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나 자신이 그의 바램을 따를 수 있는지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아무래도 따를 수가 없다면, 

공손하게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설명해드리면,

큰 자비심을 갖춘 붓다와 같은 분이기에, 

부당하게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스승의 요구를 어기지 않을 수 있다면 그 것이 최선이다.

그가 지시한 대로 길을 따라 간다면,

일반적인 성취를 이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동기에 따라,

높은 세계에 태어나거나,

해탈의 기쁨을 느끼거나,

궁극적인 붓다의 깨달음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6, 스승에게 속한 것을 자기 목숨처럼 지키십시오.

스승이 아끼는 사람들도 그를 대할 때처럼 대하십시오. 

그의 주위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자신에게 가장 귀한 사람 대하듯이 대하십시오.

항상 똑같은 마음으로 생각하십시오. 


@, 돔뙨빠가 아띠샤에게서 배우기 전에,

그는 캄 지방의 다른 스승을 모시었다.

시봉하는 동안 

스승의 자식을 등에 업고 다녔고,

손으로는 털실을 짜고, 발로 가죽을 부드럽게 주무르고,

밤에는 그의 가축을 돌보았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커다란 기쁨으로 하였다.

그리고 그는 속인 중의 한 사람이었을 뿐이지만,

아띠샤는 그를 지목하여 티벳에 가져 온 모든 가르침을 그에게 전수하였다.


밀라레빠께서 마르빠 스승을 시봉하였을 때,

자기 자신을 진흙탕에 납작하게 엎드려

스승의 아내인 다메마에게 

소젖을 짜시는 동안 자기 등에 걸터앉아 계시라고 간청하였다.

여러분은 스승에게 가까운 모든 사람에게 

그와 같은 존중과 헌신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내가 스승의 가족이나 가까이서 시봉하는 자나 다른 제자들을 시샘한다면

그의 시간과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어 한다면,

이 것은 그를 보편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는 자로 믿지 않는 것이다.


 

27, 결코 그 분과 같은 침상과 자리에 앉지 말고, 

그 분 보다 앞서서 걷지 마십시오.

가르침이 있을 때에는 상투를 틀지 말고, 모자를 쓰거나, 

신발을 신고 있거나, 무기를 휴대하지 마십시오.

그가 앉기 전에 먼저 자리에 앉거나,

그가 맨 바닥에 앉아 있는데 손으로 엉덩이를 바쳐 올리거나 

들썩거리면서 몸을 꼬지 마십시오.


 

28, 스승이 서 있는 동안 앉거나 기대지 말고, 

앉아 있는 동안 눕지 마십시오.

항상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고,

최상의 방법으로 그를 잘 시봉하십시오.


 

29, 스승 앞에서는 절대로 침을 뱉거나, 

손으로 가리지 않고 기침을 하거나 재채기를 하지 마십시오.

앉아 있을 때 절대로 다리를 쭉 뻗거나, 

뒤처지거나 앞장서서 걷지 말고,

자기의견을 주장하지 마십시오.


 

30, 그의 앞에서는 절대로 팔 다리를 주무르지 마십시오.

노래하거나 춤추거나 악기를 연주하지 마십시오.

스승의 귀에 들릴만한 거리에서

쓸데없이 잡담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말을 하지 마십시오. 


@, 이러한 부적절한 행위의 예는 

스승이 기분 나쁠 것 같아서 금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붓다의 깨달음에 도달하길 원하기 때문이고,

이러한 성취에 큰 존중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칠고 거만하고 경솔한 태도로 행동하지 않아야 한다.


 

31, 스승이 방 안으로 들어 올 때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가볍게 숙이십시오.

그가 보는 앞에서는 공손하게 앉으십시오.

밤에, 혹은 강에서, 위험한 길에서

구루의 허락을 받고, 그를 앞질러 걸을 수 있습니다.


 

32, 스승이 직접 보시는 앞에서는 

지각이 있는 제자라면 몸을 꼬고 앉거나, 

기둥에 기대지 않아야 합니다.

손가락 마디를 우두둑거리거나, 

손가락 장난을 치거나 하지 마십시오.



33, 구루의 발과 몸을 닦을 때, 

말리고, 주무르고, 머리를 깎아드릴 때,

그 행위에 앞서 세 번 절을 하고, 

마칠 때도 그와 같이 하십시오.

그런 다음 자신을 돌보십시오.


 

34, 그대가 그의 이름으로 그 분을 나타낼 필요가 있을 때에는

이름 뒤에 “고귀하신 분”이라는 칭호를 덧붙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해,

더 많은 경칭이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 ‘제 쫑까빠’께서 은둔처에서 몇 몇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을 때

‘까둡 제’가 처음으로 그를 만나러 왔다.

그는 근처에 살고 있는 비구니에게 

쫑까빠 존자님이 어디 계시냐고 물었고, 

그 비구니는 말 한 마디를 남기고 부지런히 가버렸다.

그 비구니가 자기 입을 씻고, 향을 하나 사른 다음 

조심스레 한 말은 이러하였다.

“나의 인자하시고, 존경스러운 승원장이신 고귀하신 분 쫑까빠 님은 

저쪽 너머에 계십니다.”


 

35, 스승의 조언을 요청할 때, 

먼저 그대가 온 이유를 말하고,

두 손을 가슴에 합장하고, 

마음이  흐트러짐이 없이 그가 말하는 것에 귀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그가 다 말 한 뒤에는 

“당신께서 말씀하신 그 대로 행하겠나이다.”라고 응답해야 합니다.


 

36, 스승께서 말씀하신 것을 행한 뒤에는 

공손하게 부드러운 말로  자초지종을 말씀 드려야 합니다.

그 분 앞에서 하품을 하거나 기침을 하거나 웃을 때에는

손으로 입을 가리십시오.


 

37, 어떤 가르침을 받길 원한다면,

그의 앞에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장하여 세 번 요청합니다.

그리고 단정하고 깨끗한 옷을 차려 입고, 

값비싼 것으로 치장을 하거나 화장하지 말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겸허하게 앉아 있습니다.


 

38, 스승을 모시려고 행하는  모든 것,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려고 행하는 모든 것은

거만한 마음을 가지고 행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대신, 겁이 많고, 수줍어하며, 

고분고분한 새색시와 같아야만 합니다.


 

39, 그대에게 길을 가르치는 스승의 면전에서,

자만심에 빠지거나  교태를 부리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마십시오.

스승에게 그대가 행한 것을 남에게 자랑하는 것에 대해

자기 양심을 조사해보고, 

그러한 모든 행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40, 그대가 성결의식(관정)이나 만달라의 입문의례 등을 해달라고 

요청받았거나,

제자들을 모아 강론을 한다 하더라도,

스승이 그 근처에 있는 경우에는

사전에 허락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41, ‘눈을 열어 줌’으로 알려진 성결의식과 같은 예식을 수행함으로서

제자로부터 받게 되는 공양물은 무엇이든 다 스승께 드려야 합니다.

한 몫을 드리고 난 뒤에는 

그 나머지를 자신이 목적한 방향으로 써도 좋습니다.


 

42, 자신의 스승 앞에서 

제자는 자신의 제자에게 스승처럼 행동해서는 안 되며,

그들도 스승의 제자인 그를 스승에게 대하듯이 행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스승 앞에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그대에게 일어서서 존경의 표시를 하고, 

엎드려 절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43, 그대가 스승에게 공양을 할 때 마다,

스승이 그대에게 무언가를 제시할 때 마다,

지각이 있는 제자는 두 손을 사용하여 머리를 약간 구부리고 받을 것입니다.


 

44, 하는 모든 행동에 있어 부지런하고,

서약의 말을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깨어서 지켜보십시오.

만일 도반이 계를 깨트렸을 때는 친절하게 서로 고쳐 주십시오.


 

45, 질병 때문에 몸으로 스승에게 절을 할 수 없고,

일반적으로는 금하고 있는 행위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허락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마음속에 선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불행한 결과는 없을 것입니다. 


 

46,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을 해서 스승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스승께서 원치 않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이 두 가지를 부지런히 행하십시오.


 

47, “뚜렷한 성취는 스승께서 바라는 것을 행함에서 온다.”

이것은 지금강불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로 스승을 충분히 기쁘게 하려 해야 합니다.


 

48, 제자가 삼보에 귀의하고, 순수한 보리심을 일으킨 뒤에,

입문자는 이 가르침을 가슴에 받아 지녀야만 합니다.

오만한 자아의 의지를 내 버리고,

스승의 발걸음을 따라가십시오.


 

49, 구루헌신에 관한 예비적 학습과

현교, 밀교에 공통인 점진적인 길을 따름으로서,

그대는 청정한 다르마가 담길 그릇이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해당하는 관정을 받고, 

열네 가지 계율을 큰 소리로 따라 외치고,

진심으로 계율을 마음에 받아들인 뒤에, 

그대는 밀교의 가르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제자가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는 선한 생각을 갖고 있고,

겸손하며, 오만함과 이기적인 태도가 없다면,

스승은 제일 먼저 귀의가 의미하는 바를 가르칠 것이다.

자신의 삶의 고통과 혼돈에서 보호받고자 하여

붓다와 다르마와 상가에게 다가감으로서 얻게 되는 

이득과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실 것이다.

그런 다음, 자아포기와 보리심과 공성의 의미를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귀의와 보살의 계율에 의지하여,

구루 헌신에 관한 이 가르침을 듣게 될 것이다.


이 글은 구루와 제자의 상호 관계를 바로 인식하도록,

날마다 외우기 적당하게 작성된 것이다.

스승께서 이와 같이 준비시킨 뒤에

관정을 수여하고, 싸마야 계율을 설명하게 된다.

수행자가 전혀 명상을 하지 않더라도,

열네 가지 근본 싸마야 계율을 지킨다면,

장애를 모두 제거하고 궁극적 깨달음에 도달하리라고

지금강불께서 약속하셨다.



50, 나는 이 저작을 쓸 때

자의적인 해석을 더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이렇게 내가 모은 작은 공덕에 의해

이 저작이 스승을 따르는 모든 제자에게 무한한 공덕이 되고,

모든 사람들이 빠르게 붓다의 경지에 도달하기를 기원합니다.


이것으로 

대성취자 아쉬바고샤의 구루·헌신에 관한 50편의 글을 마칩니다.

이 것은 티벳의 역경사 린첸상뽀가 

인도의 승원장 빼마카라바르마와 함께 티벳어로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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