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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시종에서 만난 구루

박물관

설오스님의 티베트불교 체험기 中

 

따시종에서 만난 구루

나로바 육성취법을 배우고자

까규파의 성취자인 나로바(1016~1100년)가 나란다 대학 승정으로 최고의 명예를 누리고 있었을때, 추하고 못생긴 거지 노파가 꿈에 나타나 시험을 하였다. 나로바는 그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쩔쩔매다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 도리를 알 수 있습니까?"

노파는 띨로바(988~1069년)라는 구루를 찾아가라고 일러주었다. 그는 승정의 지위를 사암하고 구루 띨로빠를 찾아나서기 전에 헤루까 만트라를 70만 번하고, 간절히 '구루를 만날 수 있기를' 염원하며 길을 떠났다. 나로바는 많은 어려움과 강도와 거렁뱅이들에게 시달리며 몇 년을 헤메었으나, 스승과의 만남은 기약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박복함과 업장의 두터움을 한탄한 나로바가 자살을 결심하고, 벼랑에서 몸을 날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띨로바가 나타났다. 나로바가 일찍 나타나지 않은 것을 원망하자 띨로바는 말하였다.

"네가 나를 찾아나선 그 순간부터 나는 잠시도 너를 떠난 적이 없다. 다만 네 스스로의 아상에 가려 나를 보지 못하였을 뿐이다. 네가 도중에 만났던 거지와 강도들이 다 나의 화신이었다.

그 뒤 나로바는 띨로바에게서 12년에 걸쳐 아상을 없애는 혹독한 시련을 거쳤다. 그런 다음 수행을 성취하여 까규파의 주된 수행법인 『나로바 육성취법(六成就法)』을 남겼다.

지금도 까규파의 무문관에서는 이 수행법을 위주로 전수하고 있다.

 

나는 대만에서 티베트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우연히 『나로바 육성취법』에 대한 서적을 몇 권 발견하였다. 본래부터 기공이나 무술에 관심이 많았던 터인지라 몸과 마음을 함께 닦는 놀리 정연하고 구체적인 수행법에 매력을 느꼈다. 그러나 이 수행법이 아직도 전수되고 있는지, 실제로 성취자가 존재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매일 나름대로 열심히 책도 보고 기도도 하면서, '이 수행을 전수하는 도량과 성취자와 인연만 된다면 이 한 생을 다 바쳐서라도 그 수행을 해보고자 한다'며 간절히 염하였고, 나로바 육성취법을 전수해 주실 구루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실한 기대도 없이 티베트의 임시정부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로 갔다.

그곳 다람살라의 티베트불교 도서관에서 티베트어 연수를 하던 중, 따시종에 위치한 까규파의 전통 수행도량인 캄바카 사원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의 책임자인 도종린포체를 통하여 '나로바 육성취법을 전수하는 무문관이 그 도량 안에 시설되어 있고, 성취자인 독댄 암틴이 지도를 해준다'는 말을 들었다.

한달 남짓을 기다리자 그 사원에서 제일 큰 행사인 파드마삼바바의 기도법회와 함께 라마댄싱이 열렸다. 그때 암틴도 밖에서 라마댄싱을 참관하면서, 티베트 사람들이 거의 매일 돌리는 만트라와 경전이 든 '마니륜'이라는 통을 돌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중 하나가 '저분이 무문관을 지도하는 성취자이시고, 행사 중에 비가 오지 못하도록 진언으로 막고 있는 것' 이라고 말해주었다.

다른 티베트인과는 달리 유난히 피부가 희고 빛나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누구에게나 유쾌한 느낌을 주는 힘찬 모습은 70대 노인이라고는 믿기가 어려웠다.

나는 뵙기를 청하고 처소로 찾아갔다. 너무도 좁은 방에 나즈막한 나무의자를 놓고 두 사람과 통역한 사람이 앉으니 방안이 가득찼다.

암틴은 소매없는 꾀죄죄한 런닝셔츠에 흰치마를 걸치고 계셨는데, 밖에서 가사에 법복을 다 갖춘 여법한 모습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이 시골집 할아버지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곳에 오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로바 육성취법을 수행하기를 원한다'고 말씀드렸다.

"의외로 수월하게 법에 이르는 차제가 있다. 먼저 네 가지 기초수행을 10만 번씩 다 마치고 본존 관정을 거쳐 무문관을 하고나면 '나로바 육성취법'을 줄 수 있느니라."

아직도 업장이 두터운 나는 법을 줄 수 있다는 말씀과 그 예비단계에 대한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웬지 좀 싱거웠다. 티베트의 성취자라면 신비롭고 평범한 인간을 초월한 어떤 비범함이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초수행에 대한 청법을 차일피일 미루고, 더 좋은 환경의 사원과 더 좋은 선지식이 있는지를 알아보며 다녔다.

마침 1시간 남짓한 거리의 세라부링이라는 마을에 다른 까규파 사원이 있으며, 비구니들을 위한 무문관이 시설되어 있고 나로바 육성취법도 전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으로 티베트 비구니 스님들의 무문관을 지도한다는 밍귤린포체를 찾아뵈었다. 겨우 21세의 나이와는 달리 태산같이 묵중하고, 말을 할 때는 강물처럼 부드럽고 자상하였다. 그야말로 비범하신 환생자요, 연꽃 속의 보석같이 빛나는 모습이었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그곳으로 옮겨와 수행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그곳으로 옮겨와 린포체를 모시고 수행하고 싶다며 받아주기를 청하였다. 린포체도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집 한채를 예약해 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따시종으로 돌아왔다.

 

집은 불타고

그런데 산 어귀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웃집에 사는 아르헨티나 국적의 외국인 여자가 무덤에서 금방 일어난듯한 창백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나쁜 소식이 있어요. 스님께서 거주하고 있던 집이 불에 다 타버렸어요."

'아니, 아침에 멀쩡하던 집이 몇 시간 나갔다 온 사이에 다 타 버리다니...'

믿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였더니, 집 앞에 많은 인도 사람들과 몇 명의 라마들이 타다 남은 물건들을 쌓아놓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처구니 없었다.

함께 외출했던 도반스님은 자신의 돈지갑부터 찾았다. 이삼년 동안 공부하고자 준비해온 전 재산을 방안에 두고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100불짜리를 60여장이나 넣어놓았던 전대는 다 타버리고 허리끈 부부만 약간 남아있었다.

물건을 챙겨놓았던 20여 개의 가방들과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 준비했던 오리털 파카ㆍ슬리핑백ㆍ등산화 등이 불에 타다 말고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따시종 마을이 생긴 이래 제일 큰 화재였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사람이 겨울에 수행하기 위해 지어놓은 집으로, 여름에는 비어 있으므로 잠시 빌려 들어갔던 것인데, 남의 집에 불을 내어 훼손을 시켜놓았으니 고쳐주어야 했다.

불을 꺼준 마을 사람들에게 사례를 하여 돌려보내고 도반스님과 둘만 남았다. 우선 겨우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옆의 작은 토굴로 쓸만한 짐을 옮겼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려하니 이불이 다 타버리고 없었다. 서글프고 처량한 마음에 말문이 막혔다.

'얼마나 두터운 업장이 있길래 이역만리 낯선 인도 땅까지 와서 남의 집까지 다 태워먹는단 말인가!'

마침 라마가 슬리핑백과 담요 하나를 들고 왔고, 미국 비구니스님이 티셔츠 두벌을 갖다주었다. 잠을 청하고 누었으나 눈앞에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영상과 함께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만감이 교차하고 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어지럽혔다.

'부처님께서 제행이 무상하다 하셨던가!'아침까지 멀쩡했던 집, 많은 인도인들과 티베트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좋은 물건들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하고, 지금은 이불과 헌 옷가지를 얻어 입어야 하는 신세가 되다니….'

남의 집을 태웠으니 무엇보다도 수리가 급했다. 일단 세라부링으로 거처를 옮기고자 하였던 계획을 미루고 화재의 뒷수습을 하는 수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밤새 뜬눈으로 새우고는 아침에 암틴을 찾아뵈었다. 내게 남아 있던 2천500불 가운데 2천불을 봉투에 넣어올리고는 말씀드렸다.

"제가 업장이 두터워 법을 구하러 왔다가는 불만 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잿더미를 보고 모든 것이 무상함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방황하고 분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제가 업장이 두텁고 근기가 약해서 법을 받기 어렵다면 더 많은 공양을 준비해 올리고 참회기도를 하고자 하오니, 빠른 시일 내에 수행의 길에 들어서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암틴 노장님은 자상한 미소를 띠우며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미 화공(火供)을 하였다. 많은 공양물을 불 속에 태워 올렸으니 어찌 더 이상의 공양이 필요하겠느냐? 내일부터 당장 법을 주겠노라."

 

수행을 시작하다

다음날부터 한편으로는 불에 탄 집을 티베트사람들의 도움으로 보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루 암틴으로부터 기초수행의 가르침을 받았다.

어둡고 버터 냄새가 절어 있는 좁은 방에 쭈그리고 앉아 구루께서 한마디 한마디 윤회의 고통에 대해 세세히 일러주고 '염리심을 일으켜 마음이 법을 향해 성숙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무한한 환희와 감동이 용솟음쳤다.

인도의 5월은 그야말로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덥다. 게다가 따시종은 물이 부족한 까닭에 몸 안의 수분 부족으로 인한 풍토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줌소태에 걸린다.

그 무더운 인도에서의 첫 여름을 구루 암틴의 좁은 방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보냈다. 비록 풍토병과 탈수로 고생하긴 했지만, 오체투지 10만 번을 환희심과 간절함으로 마칠 수가 있었다.

당초 6개월만 수행하고 대만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내생을 위해 이성을 포기하고 방황하고 헐떡이는 마음을 쉬는 수행만을 위해 매진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구루의 좁은 방에서는 대만에서 온 제자 두 사람과 놀이가 벌어졌다. 그것은『밀라레빠 십만송』이라는 책을 놓고 제자가 마음대로 책을 펼치면 스승이 읽어주며 인연도 보고, 때에 맞는 법문도 해주는 놀이였다.

때마침 내가 들어가니 나한테도 책을 주며 '펼쳐보라' 하셨다. 내가 임의로 펼쳐 스승님께드리니, 구루와 통역자인 라마가 박장대소하며 '너무도 딱 맞는 구절'이라며 즐거워하였다. 영문을 몰라 통역을 청하였더니, 그 대목은 말라레빠(1040~1123년)와 두 번째 수제자인 레충바에 얽한 고사였다.

 

밀라레빠를 떠나 인도로 법을 구하러 간 레충바는 인도에서 많은 스승들을 만나 논리학과 특별한 주술에 관한 법을 익히고, 그와 관련된 많은 서적들을 구해 돌아왔다. 그는 스승인 밀라레빠는 무식한데 자신은 더욱 박식해진 것을 은근히 자만하며, 우쭐해진 마음으로 말라레빠가 계신 동굴을 찾아갔다.                                                                 

밀라레빠는 레충바의 그러한 마음을 알고는 물을 길어오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신통력으로 물가에 수많은 당나귀 새끼를 나투어 놀도록 하였다. 레충바가 당나귀들을 정신없이 보고 있는 동안 밀라레빠는 그가 인도에서 가져온 많은 주술에 관한 책들을 모두 불살라 버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레충바는 '아, 늦어서 꾸중을 듣겠다' 싶어 급히 물을 길어 돌아왔다. 어디선가 종이 타는 냄새가 났지만 '스승님께서 공양을 짓고 있나 보다' 생각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더니 말라레빠가 인도에서 가져온 서적들을 다 태우고 있는 것이었다.

레충바가 미친 듯이 분노하여 항의를 하자, 밀라레빠는 너무나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며 말하였다.

"나는 네가 기다려도 안 오길래 네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너를 위해 이 책들을 태우고 있었느니라."

그리고는 레충바의 마음을 조복받기 위해 많은 신통력을 보여 주셨으나, 레충바는 떼를 썼다.

"그까짓 장난 같은 신통 따위는 소용없고 책이나 내놓으라."

갖은 신통력으로도 레충바의 마음이 조복되지 않자 밀라레빠는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레충바는 겁이 덜컥 났다.

'스승님께서 화가 나서 이 세상을 떠나버리신게 아닌가?'

레충바는 후회와 절망에 가득 차서 죽기로 마음먹고 벼랑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나 나무에 걸려 죽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 꿇어 앉아 잘못을 뉘우치며 스승님을 불렀다. 그러자 밀라레빠는 허공에서 다시 몸을 나타내어 참회를 받아주었다. 그 뒤 레충바는 마음을 조복받고 열심히 수행하여 밀라레빠의 달과 같은 두 번째 수세자가 되었다.

 

스승님은 이 고사와 나에게 일어난 화재가 너무도 흡사한 상황이라면서, 마침 그 대목을 내가 펼친 데 대하여 너무도 신기해 하고 즐거워하였다. 나도 불이 난 덕분에 헐떡이는 마음을 쉬고 법으로 마음이 향하게 되어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스승님께서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시며 정색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럼 한 번 더 태울까?"

그 말씀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 화재는 우연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날 이후 '그 불은 스승님께서 나를 법으로 인도하기 위해 자비로 내린 가장 큰 가피일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신심을 갖게 되었다. 구루는 항상 말씀하신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스승이 너를 성불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가치라고 생각해야 한다."

따시종에 찾아오는 다른 나라의 외국인들이 가끔 부러운 눈으로 내게 묻곤 한다.

"외국인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티베트불교 수행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

그러면 나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로케트나 미사일이 빠르게 멀리 날 수 있는 것은 꽁무니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지요…."

 

 구루는 수호본존

티베트불교에서 구루의 존재는 그 제자에게 있어 가피의 근본인 부처요, 가장 자애로운 의지처인 아버지와 같다. 그리고 모든 번뇌와 장애를 없애 성취를 내리는 수호본존이며, 고통과 슬픔을 어루만져 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다.

현장스님의 염불선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고향을 생각하고 어머니를 생각할 때 안온함을 느끼듯이, 고향 같고 어머니 같은 자연의 품에 안길 때 인간은 평안함을 얻게 된다. 번뇌의 인간이 침묵의 대자연 속에서 평안을 느끼듯이, 내면의 공을 체험하고 침묵의 공간을 간직한 선지식의 존재는 우리를 근원적이니 평안으로 인도한다. 그래서 청정 승보는 번뇌와 죄업으로 오염된 중생들에게 최상의 복전이요, 으뜸가는 보배라고 부르는 것이다. 침묵의 공간을 성취하나 선지식은 끝없는 자비의 파동으로 중생의 번뇌를 흡수하는 자석과 같은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내면의 공성을 체득하여 태양과 같은 자비와 지혜광명을 구족한 구루는 끝없는 자비와 방편으로 제자의 번뇌를 정화하여 불과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그러한 구루를 만났을 때 제자는 다만 신심으로 고무되어 수행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마치 수족관에서 청소부 물고기가 온갖 오물을 다 먹어치우듯이….

제자들의 번뇌를 다 없애 주는 암틴의 모습! 그 모습은 언제나 맑은 가을하늘을 대하는 듯한 느낌으로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구루는 그대로 내 영혼의 고향이 되어 주었다.

소걀린포체는 말씀하셨다.

"스승을 만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승을 참으로 믿고 따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승이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본질적인 것은 자기 자신 안에서 통찰력을 발견하고, 그 가르침과 스승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따르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어떠한 어려움과 좌절, 모순과 결함에 직면하더라도 굴복하거나 자신의 유치한 감정에 속지 말고, 자신의 선택을 위하여 그 길을 끝까지 따르는 인내ㆍ지혜ㆍ용기ㆍ겸양을 길러야 한다. 더욱이 조급하게 굴어 진리와 멀어져서도 안 된다. 오히려 빨리 가고자 하다가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불에 탄 집의 보수가 끝났을 때 인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겨울철이 다가왔고, 내가 티베트불교 수행에 맛을 새록새록 느껴 갈 즈음 또 다른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찾아왔다. 집주인이 인도의 날씨가 좋아졌으니 수행을 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집을 비워주어야 했다.

티베트에서 무문관 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일단 산에 들어와 수행을 시작하면 더욱더 높은 산으로 가야지, 마을 쪽으로 내려가면 퇴굴하게 되는 인연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꺼려한다. 그러한 말을 아나 들었으면 모르되 이미 들은 이상 마을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인도에서 외국인이 땅을 사서 집을 짓기라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인도인들은 외국인에게 땅을 파는 것을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도의 10억 인구 가운데 내가 믿고 의지할 분이란 오직 구루 암틴 한 분밖에 없었다. 제대로 통하지도 않는 언어로 매일 찾아 뵙고 '집을 지을 수 있게 가피를 하셔야 한다'고 무조건 떼 아닌 떼를 썼다. 구루는 불쌍히 여겼는지, 당신 제자에게 도와주도록 부탁하셨다. 그리고 집 지을 땅을 살 수 없어 힘들어하고 있던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다.

 

라마들이 무문관을 하고 있는 철조망 바로 옆에 산신과 호법신들을 모신 탑이 보였고, 그 곳에 암틴 린포체의 착좌식(환생자인 린포체를 찾게되면 정식으로 법상을 마련하여 전생의 그 자리에 등극하는 의식을 해하는 것. 이때 제자들은 공양을 올리고 린포체는 가피를 내린다)이 있다며 높은 법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구루 암틴은 본존이신 금강해모(金剛亥母 : 산스크리트 어로 '바즈요기니', 혹은 '바즈라바라히'한다. 배꼽불 수행의 본존인 여신으로 때로는 어미돼지의 모습을 나투기도 함으로 돼지 해자를 써서 '해모'라 번역. 하늘을 날아다니는 여자 호법신인 다키니들의 우두머리라고도 한다. 주로 16세 소녀의 모습이며 온몸은 불타는 붉은 색으로 나툰다고 함)의 포즈로 법상에 걸터앉아 있다가, 나에게 당신 사진을 한장 주시며 '코팅을 해서 보관하라' 하셨다.

그 앞에서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암틴 사진이 붙어 있는 라이터를 팔고 있었다. 내가 라이터 두 개를 사자 그 연들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책 한 권을 펼쳤다.

"이것은 수행자의 명부입니다. 여기에 이름을 올리세요."

이름을 올리려 하였으나 모두가 남자 수행자의 이름을 올리는 부분뿐이었다.

"여자 수행자의 이름을 올릴 곳이 없는데요?"

그러자 책을 뒤집더니 마지막 끝부분에 한 칸 정도의 여백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여자 수행자의 이름을 올리는 곳' 이라 말해주었다. 그 여백에 이름을 올리고 나니 머리를 어깨만큼 기르고 무문관 수행을 하는 라마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다가가 인사를 하고 물었다.

"머리를 그렇게 기른 것이 무슨 뜻입니까?"

"두고보면 알게 될 것이오."

그들은 그렇게 대답하고 지나가 버렸다.

 

꿈을 구루에게 말씀드리자 구루는 매우 기뻐하며 말씀하셨다.

"무문관 철조망 옆에 땅을 사서 집을 지으라."

그러나 문제는 인도 사람이 땅을 팔지 않는 데 있었다. 하는 수 없이 200여 미터 떨어진 곳의 공터를 사려고 두 달이나 실랑이를 벌였으나, 결국 그땅 주인도 팔지 않겠다고 하였다.

방법이 없어 낙담하고 있는데 한 인도 남자가 찾아왔다. 딸을 시집보내려 하는데 돈이 없어서 땅을 팔려고 왔다는 것이다. 바로 내가 꿈에 본 그 땅의 주인이었다.너무도 기뻐서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었다. 본래 시세보다 다섯 배 이상 되는 금액을 요구하였으나 나는 그 자리에서 돈을 내주었다.

땅 주인은 부끄러워서 그러니 딸의 혼례를 치른 후에 집을 지어 달라고 조건을 내세웠으나, 그 말만은 들어줄 수 없다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이 오면 당장 갈 곳이 없어 하루라도 빨리 집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구루의 가피로 라마들의 무문관 바로 옆의 집은 모두들 놀랄 정도로 어려움없이 순조롭게 빨리 지어졌고,꿈에서 본대로 머리를 어깨에 닿도록 기른 라마들이 철조망 너머로 산책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 티베트의 라마들이 무문관을 하는 중에는, 머리나 수염도 깎지 않고 손발톱도 깎지 않으며 씻지도 않는 풍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환희와 신심 깊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탕카를 그리는 비구니 스님이 찾아왔다. 비구니는 '라마들 머리 꼭대기에서, 그것도 무문관 바로 옆에서 집을 짓고 산다'며, '오래 살 수 없을 것' 이라고 걱정을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나 또한 은근히 걱정이 되어 구루 암틴께 여쭈었다.

"왜 겁이 나느냐?"

구루는 반쯤 농담 어린 어조로 반문하셨다. 나는 순간 모든 걱정이 사라지며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었다.

"전혀 걱정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곳에 집을 짓고 살게 된 것은 제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구루와 불보살님의 가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됐다. 안심하고 오직 수행에만 전념하거라."

구루는 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제자의 번뇌와 미혹을 정화하여 근기를 성숙시켜 주고 수행과정에서의 장애를 없애 준다. 자신의 마음이 구루에 대한 헌신과 신심으로 가득 찼을 때 우리는 수없이 많은 불가사의한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나 또한 불가사의한 일을 직접 체험한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자존심과 아상이 산산조각 나는 경계에 부딛친 적이 있었다. 도저히 상대를 용서할 수 없는 분노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밤새 가슴이 답답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구루께서 방으로 걸어 들어오셨다. 새벽 1시쯤이었다.

구루는 침대 곁에 서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말씀하셨다.

"아직도 중생들에 대한 근원적인 자비를 깨닫지 못하였구나. 그러한 사소한 일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니!"

순간 나의 명치 쪽에서 따뜻한 기운이 감돌더니 나도 모르게 편안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너무도 신기하여 구루를 뵙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니, 당신은 밤에 주무시느라 내 집에 온 적이 없다고 하셨다.

지금까지도 그 때 구루가 정말로 다녀갔던 것인지, 분신을 나투었던 것인지, 내 안에 있는 법신의 구루와 만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스승을 향해 열려 있는 마음 때문에 그분이 보리심을 일깨워 주었고, 한 가지 장애를 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티베트에서는 물론, 불교 선종사(禪宗史)의 기록에 남아 있는 많은 성취자들이 오랜 시간 동아나 스승 곁에서 헌신의 마음으로 시봉을 하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파드마삼바바도 말씀하셨다.

"스승이 없이 홀로 열심히 고행 전진하는 사람이 수행을 성취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헌신과 신심으로 정진을 하는 사람이 수행을 성취할 수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인도의 위대한 스승인 사라하는 말씀하셨다.

'마음 속에 스승의 말씀이 들어간 사람은 손 안의 보물처럼 진리를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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