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오스님 티벳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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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의

화이트타라

 귀의


  법을 전수하는 티벳사원에 참석하게 되면 법사께서는 제일 먼저 귀의의 중요성과 함께 순수한 보리심에 대한 가르침을 설하신다. 귀의란 불교도와 비불교도 즉 內道와 외도를 구분짖는 관건이다. 어린아이가 무서운 개한테 쫓기어 어머니 품안으로 달려오듯이 불법승 삼보님만이 두렵고 엄청난 윤회의 고통에서 나를 구해주실수 있다고 확실한 신뢰를 갖고 온전히 삼보님께 몸과 마음을 의지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티벳사람들은 차나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사고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에도 귀의금강상사 귀의불 귀의법 귀의승하고 귀의문을 간절히 모시는 것을 자주 보게된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세가 안좋다고 느끼거나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되어 큰스님께 해결책을 상의하러오면 귀의문을 많이 모시는 기도를 주시는 것을 자주 보았다. 이와 비슷한 고사는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다.

  석가모니불께 수발타라라는 한 제자가 있었다. 그는 집이 빈곤한데다 아무도 의지할이 없이 외롭게 살다가 괴로움이 극도에 달하자 부처님께로 가서 출가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때마침 부처님께서는 외출중이셨는데 여러 큰제자들이 그의 과거인연을 관해보니 팔만겁동안 선근을 심은일이 없었다. 그래서 머무르는 것을 허락치않고 돌려보냈다.

  수발타라는 괴로움이 극에 달해서 성밖으로 나갔다. 업장이 이렇게 두터우니 차라리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막 자살하려고 하는데 부처님께서 어느 결에 나타나셔서 까닭을 물으셨다. 수발타라가 자초지종을 고하니 부처님께서는 그를 제자로 받아주셔서 7일만에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제자들이 그 연유를 여쭈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ꡒ그대들은 단지 팔만겁 안의 일만 알고 팔만겁 이전에 일찍이 그가 선근을 심은 것을 모른다.그때 역시 그는 가난하여 나무를 해다 팔면서 살았다. 하루는 산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도망칠 곳이 없어서 급히 나무위로 올라갔다. 호랑이가 나무둥치를 밑에서 물어뜯고 흔들어서 나무가 부러지려고 했다. 그는 마음이 다급했지만 누구하나 구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 때 문득 대각부처님께서는 자비력이 있어 능히 모든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신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ꡐ나무불! 빨리 저를 구해주십시요!ꡑ하였다. 호랑이가 ꡐ나무불ꡑ소리를 듣더니 멀찍이 떠나가서 목숨을 다치지 않았다. 이 때에 그는 깨달음의 바른 종자를 심어서 오늘날 인연이 성숙되어 과위를 증득한 것이다.ꡓ하셨다. 여러 제자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기뻐하며 수희찬탄하였다.

  위 고사에서와 같이 티벳사람들도 귀의를 수행과 기도의 일환으로 중요시하고 있으며 실천생활화하여 귀의와 관계된 많은 영험담이 있다.    

  수행에 입문하게되면 먼저 기초사가행 수행을 하게 하는 데 그 중에 제일 먼저 귀의대예배를 십만번해야한다. 귀의의 대상을 모신 탕카(구루트리 혹은 歸依境이라 함)를 앞에 모셔 놓고 전신으로 오체투지를 하면서 입으로는 귀의문을 모시고 마음으로는 나 혼자만이 아닌 허공과 같이 많은 육도의 중생들을 다 내 어머니라고 생각하며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삼보님께 귀의를 한다. 티벳불교에서는 귀의의 대상을 불법승삼보님 뿐만아니라 삼근본이라하여 가피의 근본으로 스승님과 그법을 전수해오신 전승조사들, 성취의 근본으로서 그 법의 수호본존이신 각파의 본존들과 외호의 근본이라하여 남녀호법신인 다카다키니와 자량을 구족케하는 재신들을 다 귀의의 대상으로하고 있다.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삼보님과 삼근본께 진정코 귀의하고자하는 신심이 생겼을 때에야 비로서 윤회의 고통에서 해탈할 수 있는 불법의 수행에 입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 삼보에 귀의를 할 수 있게 되는데는 무엇보다도 윤회의 고통을 뼈속 깊이 느끼고 알아서 윤회계를 벗어나고자하는 간절한 바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을 염리심 혹은 출리심이라 하는 데 윤회계의 모든 것은 고통이 본질임을 알아서 두려운 마음을 내어 마음을 불법에 향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저하는 간절한 염리심이 일어났을때에야 비로소 수행에 입문케됨으로 염리심을 道의 시작이요 수행자의 머리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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