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오스님 티벳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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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보리심

화이트타라
 

 발보리심 


  염리심을 수행자의 머리라 한다면 보리심은 수행자의 마음이라고 구루께서는 항상 말씀하셨다. 우리가 도를 성취코자하는 목적은 일체중생을 해탈케하고자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과거생에 나의 부모가 아니였던 중생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일체중생이 곧 나의 부모이자 가장 은혜로운 어머니라는 것이다.

  용수보살은 〈보행왕정론〉에서 말씀하셨다한다.


    "이 지구의 흙을 다 부수어 노간주나무 씨앗만한 크기의 환을 만든다해도 한 사람이

    무수한 삶을 되풀이하며 인연맺었던 어머니의 숫자에는 미치지 못한다."


온 우주에 가득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어머니와 같은 중생들이 윤회의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고 있는데 어찌 방관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티벳불교에서는 무엇보다도 보리심을 강조하고 있으며 수행의 궁극목적으로 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보리심은 깨달음의 전제이자 뿌리이다. 그것은 관용이라는 고갈되지 않는 보물에 비유된다. 그래서 티벳에서는 수행의 마치기 전에 반드시 보리심을 일으키고 長養하는 기도를 한다.


   보리심의 보배를

   일으키지 못한 자는 일어나게 하시고

   이미 일어난 자는

   더욱 더 증장케하소서

   

보리심을 발하는 데에는 세가지 류형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양치는 목자와 같은 발심이고,

  둘째는 뱃사공과 같은 발심,

  셋째는 왕과 같은 발심이다.

양치는 목자는 양들을 다 앞에 보내고 자신은 맨 뒤에 따라간다. 그와 같이 일체중생을 다 성불시킨 후에 자신이 성불하겠다는 발심이다. 뱃사공은 손님을 모두 배에 싣고 함께 강을 건넌다. 중생과 내가 함께 성불코저하는 발심이다. 왕은 항상 자신을 만 백성의 위에 놓는다. 곧 내가 먼저 성불한 후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발심이다. 물론 구루께서는 목자와 같은 발심이 가장 수승한 보리심이라 말씀하신다.

  그러나 수행성취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살행을 한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두팔이 없는 어머니가 아기가 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물에 뛰어드는 것과 같아서 함께 죽을 뿐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력보살의 환생자가 아닌 대부분 근기의 사람들은 자비와 방편, 공성과 지혜의 두 팔을 자라날 수 있게끔 먼저 적정처에서 수행을 하여 힘을 얻어야하는 것이다. 다만 수행의 전제는 일체중생을 하나도 빠짐없이 성불케 하겠다는 보리심을 먼저 굳건히 발해야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보리심의 자비를 베푼다는 것이 실제적인 상황에 부딪쳤을 때 쉬운 일이 아님은 누구나 한번쯤 체험했을 것이다. 〈모든 이익과 기쁨을 남한테 주고 모든 손실과 고통을 자기자신이 취하라〉이 두 글귀가 보리심의 내용 전부를 함축하고 있다. 거의 상상하기 어려운 자비이다. 병원에서 불치의 병으로 죽어 가는 환자의 고통과 병을 대신 받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성불하기를 바란다면 이 가르침대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티벳불교에서는 보리심을 증장시키기 위해 자비심을 기르는 구체적인 수행방편을 많이 시설해놓고 많은 역대의 스승들이 그러한 방편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했으며 오늘날까지도 널리 전수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는 세세생생 자기자신만을 위하여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행복하지 못하여 괴로워하고 있다면 자신만을 위했던 삶의 방식이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이야말로 그 방법을 바꿀 때가 아닐까?> 자비야말로 행복코저 하는 소망을 실현시켜주는 보배로 그 축복의 빛은 온 우주에 두루 미치는 것이다.

  소걀린포체는 말씀하신다. <자비는 동정보다 훨씬 위대하고 고귀하다. 동정은 두려움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건방진 우월감에 젖은 듯한 느낌이 베어있기도 한다. 자비심을 기르면 모든 중생이 똑같이 비슷한 방식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중생을 섬기게 되고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어느 누구보다 우월하지 않음도 알게 된다. 따라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을 보고서 처음 반응은 단순한 동정이기보다는 자비심이어야 한다. 그를 존중해야하며 감사의 마음까지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고통을 겪으면서 우리에게 자비심이 솟아나게 해준 거룩한 선물을 준 것이고 영적인 깨달음에 가장 필요한 자질이 계발되도록 우리를 도와준 것이기 때문이다.>하셨다. 다람살라에는 무수한 문둥병환자와 거지들이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 티벳인들이 초하루 보름이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면 피부가 닿을 까 두려운 문둥병 환자나 거지들이 우리의 성불을 돕기 위한 부처의 화현이라고 믿고 열심히 보시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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