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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차제와 원만차제

화이트타라
 

생기차제와 원만차제



  티벳불교 수행은 크게 생기차제와 원만차제 두 단계를 구분 짓고 있다. 이 두 차제는 모두 깨달음의 지혜을 얻기 위한 방편이다. 생기차제에서는 본존불 수행의 관상과 진언을 통해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因을 심게 하고 원만차제에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서 그 자리에서 직지인심 견성성불케 해주는 법이다. 원만차제에서는 중생과 부처가 둘인 상대적인 경계를 인정치 않는 일체 유정이 다 본래부처라는 지견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방편을 빌리지 않고 본연의 절대적 진리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다. 근기가 아주 수승한 사람은 생기차제의 수행을 거칠 필요없이 직접 원만차제의 수행을 하게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기차제의 수행을 거쳐서 업장을 정화하고 불보살님을 관상함으로써 부처의 본래면목을 회복하게된다고 티벳의 스승들은 가르치신다. 그래서 대부분의 티벳사람들이 자신과 특히 상응하는 본존불을 정하여 관상하고 진언을 모신다.

  티벳불교 안에는 각파마다 고유한 전승을 가진 수행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공통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수행이 본존을 관하는 본존수행, 즉 본존요가이다. 시방에 본래 계시는 불보살님을 본존불인 지혜존으로 모시고 자신의 몸을 수행의 대상으로 정한 불보살님과 똑 같은 모습을 관상하는 것을 삼마야존, 혹은 계율존(계율의 대상인 부처님)이라 부른다. 자신인 삼마야존을 선명히 관상하여 본존 만트라를 모시고 자신이 진실로 본존불과 똑 같은 부처라는 자만심과 신심이 확고해졌을 때 지혜존인 본존불과 상응할 수 있게되고 그의 가피를 잘 받아들일 수 있게되는 것이다. 지혜존과 삼마야존이 잘 상응하여 가피가 충만해졌을 때 자타가 둘이 아닌 不二의 공성의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 데 이 단계를 원만차제의 단계라한다. 이를 테면 한가지 수행안에 생기차제 원만차제가 다 포함되어있다. 다만 원만차제 수행만을 할 때는 성성적적한 광명의 상태로 생기차제를 대신한다.

  원만차제수행을 대표하는 법으로 마하무드라라불리우는 까규파의 大手印수행과 마하무디라 불리우는 닝마파의 대원만수행을 들 수 있다. 이 두 수행안에는 止觀의 두 수행을 다 포함하고 있으며 한국의 참선법과 흡사한 면도 많이 있다. 그러나 티벳불교에서는 이러한 원만차제수행은 스승이 직접 제자에게 자성의 본모습을 보게해주고 가르켜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제자가 근기가 익지 않았을 때에는 스승이 많은 방편을 빌려서 제자에게 자성의 본모습을 인지할 수 있도록 자상하게 이끌어 주신다.

  원만차제의 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모습으로 남녀교합상인 부모불 즉 쌍신의 모습을 한 불상을 많이 보게된다. 티벳불교를 처음 접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쌍신상을 보고 음란한 성행위나 하는 사교로 여기거나 쾌락주의적인 종교로 오해하는 일이 종종 있다. 티벳불교에서 보여지는 불상들의 여러 가지 모습과 장엄물은 다 부처의 완전한 경지를 표상화하여 상징적으로 可視화 한 것이다. 특히 무서운 모습으로 나투시는 분노존의 예를 들면 이마에 있는 다섯해골은 탐진치만의의 오독번뇌가 다 정화되어 법계체성지 대원경지 평등성지 묘관찰지 성소작지등 다섯지혜를 구족함을 상징하고 여러개의 팔은 육반라밀 내지는 삼십칠조도품을 상징하며 세 얼굴은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을 구족했음을, 세 눈은 시방을 두루 살핌을, 발아래 밟고 있는 마구니는 번뇌마, 죽음의 마, 오온의 마와 天魔외도의 마구니를 다 조복받았음을 상징한다. 그와 같이 남녀의 교합상인 부모불은 모든 번뇌를 조복받고 일체종지를 성취하여 자비와 방편, 지혜와 공성이 하나가 된 空樂不二의 온전한 존재임을 표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방편과 자비는 남성으로 지혜와 공성은 여성으로 표상화한 것이다. 이것은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한 것이며 번뇌를 기초로 하는 성적인 쾌락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이다. 온전한 깨달음이란 지혜와 방편이 하나된, 공성과 자비가 둘이 아닌 모습으로 양날개가 온전한 비행기가 많은 사람들을 수월케 목적지로 실어다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티벳트 불교가 다른 불교와 다른 점 중에 하나는 다른 불교는 자비로운 부처님의 상만을 모시는데 비하여 티베트 불교에는 대부분의 불보살님들이  자비존과 분노존의  두가지 모습을 나투신다. 그것은 어머니가 아들을 사랑하고 가르칠 때 자애로운 사랑을 베푸실 때도 있고 때로는 간절한 사랑으로

가슴 아프게 회초리를 들고 엄하게 질책하시는 모습을 보이시듯이 중생을 성불시키기 위한 대자대비하신 마음으로 나쁜 습기와 불법에 장애가 되는 마장을 없애기 위해 분노하신 무서운 형상을 보이시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관음보살은 마하카라라는 온 몸이 검은 분노존을 나투시고 문수보살은 야만타카를 대세지보살은 금강수라는 분노존을 나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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