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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밀교의 진수-기맥명점 수행

화이트타라

  氣脈明點 수행


  기맥명점수행은 원만차제 수행의 하나이다. 이 수행의 목적은 중맥을 열어서 좌우맥으로 흐르는 분별의 기를 정화하여 중맥으로 들어가게 함으로서 지혜의 기로 바뀌게 하는 데에 있다. 단전에 있는 배꼽불을 일깨워서 그 불의 힘을 이용하여 중맥을 여는 뚬모수행과 직접 가슴차크라를 열어서 상대적개념을 정화하는 금강염송의 두 수행이 기맥성취수행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달라이라마 계통인 황교의 창시자인 종카파대사는 금강염송 수행의 성취자로 알려져 있다. 미라레바는 뚬모수행의 성취자로 히말라야 설산에서 무명옷만 걸치고 때로는 벌거벗은 몸으로 일생을 사셨다. 미라레바의 해와 같은 제자로 불리워지는 감포바는 꺄규파 수행을 체계화한 성취자이다. 그가 처음 스승인 밀라레바를 찾아 뵙고 자신의 수행을 말씀드린다. 그 중에 자신이 경율론 삼장을 두루 섭렵하고 선정을 닦았는 데 십삼일간 깊은 선정에 들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말씀드린다. 그 때에 미라레바는 보리 가루를 버터와 뜨거운 차를 섞어 먹으려고 주무르고 계셨다. 뭉친 보리 가루를 들어 보이시면서 ꡒ네가 그 동안 해 온 수행은 이 짬바(보리가루)만도 못하다. 나에게 뚬모를 배워라.하고 말씀하신다.

  뚬모란 우리 몸 안에 내재해 있는 신비의 열을 단전에서 일으켜서 그 열을 이용해 몸을 정화하고 몸 안의 氣脈과 각 차크라를 다 열어서 상대적 사유를 정화하여 절대적 경지로 들어가게 하는 수행이다. 산만하게 온 몸으로 흐르는 분별망상의 기를 중맥 안으로 끌어들여서 중맥에 안주하게 하여 중맥에서 기를 융화함으로서 정수리에 있는 감로를 녹아 내리게 하여 구생의 희열을 증득하고 지복과 空性이 하나가 되는 空樂不二의 완전한 경계를 성취하는 데에 있다. 이러한 기맥성취 수행은 주로 호흡법을 통하여 수행하며 육체적인 요가도 곁들여 하고 있다. 뚬모의 열은 반드시 단전에서 일어나 중맥 안에서만 움직여야 기를 중맥에서 안주하고 녹아들게 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다. 만약 급한 마음에 조급히 수행하여 중맥 안이 아닌 신체의 다른 부분에서 열이 느껴지게 되면 오히려 진정한 뚬모의 열이 일어나는 데에 장애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반드시 차분하고 안정된 태도로 천천히 이 수행에 임해야 하는 데 티벳의 대부분의 위대한 성취자들이 사오년 내지 일생동안 이 수행을 하여 성취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많은 티벳사원에 무문관제도를 시설하고 있는 데 거의 대부분이 이 뚬모 수행을 위주로 한 나로바 육성취법을 가르치고 있다.

  나로바 육성취법이란 인도의 성취자의 나로빠에 의해 체계화된 수행법으로 뚬모수행을 근간으로 해서 幻身을 성취하고 꿈 수행을 통해 법신 보신 화신을 성취한다. 正光明의 수행을 통해서 무명의 어둠을 밝히고 遷識법을 통해서 의식의 천이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힘을 얻고 대수인을 통해 본래의 자성광명을 인지하는 수행법이다. 이 모든 수행의 모태를 뚬모 즉 배꼽불 수행에 두고 있다. 그 중에서도 幻身성취란 뚬모 수행이 안정되면 기가 미세해져서 거친 육신이 아닌 미세한 기로 이루어진 환신이 생겨나게 된다. 선정상태에서 생겨나는 意生身과도 흡사한 이 환신을 증득함으로서 천강에 달 그림자가 다 비추듯이 중생들의 필요에 따라 천백억 화신을 나툴 수 있게 된다. 부처님께서 경전에서 삼대 아승지겁을 통해 복덕자량을 쌓아야 성불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 데 환신을 성취하여 천백억 화신으로 중생들의 수요에 응할 수 있음으로 한생에 삼대 아승지겁도안 쌓을 수 있는 복덕자량을 구족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밀종에서 한 생에 성불할 수 있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한다.

  밀라레바 전기에 보면 밀라레바가 설산에서 고행을 할 때 스승인 마루빠를 간절히 염원하면 마루빠가 현신하여 가르침을 내리시는 대목이 가끔 있다. 실제로 역대 티벳조사들의 전기에서 이런 류형의 일화는 자주 접할 수 있으며 현재에도 많은 제자들이 스승들의 이러한 현신을 많이 체험한다고 한다. 이것은 현재에도 뚬모 수행을 성취한 성취자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실제로 환신이나 분신을 통해서 제자들을 접인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 것이다.

  꿈 수행이란 말 그대로 깨어있을 때 뿐 만 아니라 꿈속에서도 수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성불하기 전에 정화되어야할 업장이 네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깨어있을 때 분별망상을 일으키는 무명의 장애이다. 둘째는 깊은 잠의 어둠의 장애이다. 잠에 깊이 들면 꿈도 안 꾸고 죽은 듯이 자게 되는 데 이것도 당연히 정화되어야 할 업장중에 하나이다. 셋째는 잠이 조금 엷어지면 꿈을 꾸게 되는 데 이러한 꿈의 장애도 광명으로 정화되어야 한다. 智者 無夢의 경계로서 이미 낮에 분별망상의 업장이 다해서 꿈을 꾸는 습기까지도 다 정화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남녀의 성욕의 장애이다. 우리가 업신을 받게되는 근본인 애욕의 장애가 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네 번째 장애에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한 쪽에서는 定障이라 하여 無想의 깊은 선정에 빠지는 장애를 정화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꿈 수행이란 낮에 이미 상당한 수행에 힘을 얻어서 꿈의 경계까지도 자유자재하게 바꿀 수도 있고 심지어는 흔히 말하는 유체이탈을 하여 부처님의 정토에 가서 법문을 듣는다든지, 이미 가신 선지식들을 뵙고 법을 청하는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는 상태이다. 이러한 꿈 수행을 할 수 있는 조건은 이미 낮동안의 수행에 상당히 힘을 얻어 분별망상이 어느 정도까지 정화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충분히 잠을 잘 수 있어야 한다. 옛날 나란다대학에서 어떤 성취자는 먹고 배설하고 잠자는 일밖에 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꿈 수행을 위주로 했던 것이다. 현존해 계신 성취자로 닝마파의 민링틴친 린포체가 계신다. 티베트에 드공까규파의 체닥라마는 꿈 속에 나로빠를 만나야 겠다는 염력을 지어서 그날 밤 꿈 속에서 인도에 가서 나로빠를 만났다. 나로빠를 뵙고 법을 청하니 육성취법을 다 듣기를 원하는 가고 물으셨다. 체닥라마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을 알고는 육성취법을 다 들으려면 시간이 충분치 않으리라 생각하여 나로빠 육성취법 가운데에 뚬모 수행과 천식법 부분만을 청해서 직접 전수 받아온 법본이 지금도 전수되고 있다.

  正光明수행이란 낮에 무명의 장애와 깊은 잠의 어둠의 장애, 꿈의 장애등이 다 정화되어 항상 무명의 어둠이 없는 자성광명 가운데 있을 수 있도록 광명상태를 인지하고 수련하는 수행이다. 이 수행도 뚬모에 완전히 힘을 얻고 나서 꿈의 습기까지도 다 정화하기 위해 상당히 수행에 힘을 얻은 단계에서 하는 수행이다. 빛이 있음으로서 어둠이 단박에 사라지듯이 정광명수행을 통해서 무명의 어둠을 흔적도 없이 밝힐 수 있으므로 卽身성불할 수 있다고 한다는 것이다.

  遷識法은 의식을 자유자재로 옮길 수 있는 수행으로 나란다대학 시절만 해도 이 수행의 성취자가 인도에 많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화로서 위진 남북조시대에 달마대사가 중국에 불법을 전수하러 오실 때 도중에 큰 구렁이가 죽어서 썪는 냄새가 역하게 났다. 너무도 큰 놈이어서 들 수가 없어서 자신의 의식을 옮겨 구렁이 몸으로 들어가 산에다 버리고 돌아오니 자신이 벗어 놓은 잘 생긴 육신은 온데 간데 없고 아주 사납고 추한 모습의 육신이 남아있었다. 한 선인이 그 근처를 날아다니다가 멋지고 잘 생긴 육신이 벗어져 있는 걸보고 자신의 못 생긴 육신을 벗어 놓고 바꿔 입고 갔던 것이다. 달마대사는 할 수 없이 그 선인의 육신을 입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 날 달마대사의 초상이 그렇게 험상궂은 모습이라 한다. 이 고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인도에서는 천식법의 성취자가 많이 있었나 보다. 그러나 현재 티벳에서도 이렇게 동물의 몸에까지도 자유로이 들어갈 수 있는 천식법은 失傳되었고 아미타 극락정토로 의식을 옮기는 포와법으로 대치하고 있다.

  눈 밝은 스승을 의지하여 윤회가 고통의 본질임을 알아서 出離心을 내고 자비심과 보리심을 일으켜서 空觀의 正見에 의지하여 아집을 여위고 차제로 수행하면 나로바 육성취법의 마지막 성취의 단계인 大手印을 증득하게 된다. 밀종에서의 대수인은 최고의 果位로서 見惑과 思惑이 다하고 자성 본연의 대원경지를 증득함을 말한다. 근기가 익은 제자를 스승께서 禪機활발하게 단박에 一分 무명을 파해서 깨닫게 해주는 일화가 많이 있다. 이러한 접인 방식은 중국이나 한국 선종에서 쓰는 가풍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근기의 제자는 스승이 눈 한번 깜짝하는 사이에 깨달아 버리지만 중하근기의 제자에게는 생기차제를 거쳐서 원만차제 수행에 들어가서 시절인연이 도래했을 때 直指人心하여 견성성불 할 수 있도록 지혜와 방편으로 이끌어 주신다. 제자가 스승에 대한 진정한 신심과 헌신을 내고 그 가르침에 따르기만 하면 스승은 그 제자를 마음의 본성을 깨달아 성불할 수 있도록 책임져주신다고 티베트 사람들은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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