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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도의 가르침

화이트타라

 바르도의 가르침

  

  히말라야 설산에서 흘러나온 가장 진귀한 가르침 중에 하나는 무엇보다도 바르도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 상세한 가르침일 것이다. 「바르도」란 중간상태란 뜻으로 흔히 삶과 죽음사이에 생겨나는 중음의 상태를 말한다. 깨달은 안목에서 보는 죽음은 시작도 끝도 없는 흐름의 일부로서 온전한 전체의 맥락 가운데 일부로 보는 것이다.  그러한 삶과 죽음사이에 흐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바르도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양상과 해탈할 수 있는 비전등이 티베트 스승들의 깨달음을 통해서 전수되어 졌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에도 중음의 상태는 경험할 수 있다. 선정상태에서 意生身을 일으키는 선정중음이 있고 잠잘 때에 꿈 속에서 활동하는 夢中중음이 있다. 이 세가지 중음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거의 유사하지만 스승으로부터  바르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거의 인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티벳에서는 죽는 과정과 죽은 이후의 바르도 상태에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인식하여 친숙해지기 위해서 살아있을 때에 스승을 의지하여 상세한 가르침을 받고 끊임없이 마음의 본성을 자각하려고 노력하고 잠 잘 때와 꿈을 꿀 때등의 다양한 국면들을 수행에 활용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살아 있으면서 죽음에 대한 준비를 가장 열심히 하는 민족일 것이다. 그들은 죽을 때 극적으로 혹은 수행자로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게 죽기를 염원한다. 그러므로 살아있을 때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 혹은 죽은 후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많이 사유한다. 그런 연고로 한국에서 일찍이 유통되어진 파드마삼바바의「死者의 書」와 같은 저술들이 생겨난 것이다. 전 세계에 널리 번역되어 서양의 과학문명을 놀라게 했던 이 책은 사람이 죽은 후에 다음 생의 몸을 받기 전까지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또 어떻게 죽어 가는 사람을 도울 것인지를 기록한 경전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육신을 벗어버린 중음의 상태에서 구경의 해탈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맞게된다고 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쥐덫에 걸려있던 쥐가 덫에서 풀려난 듯 육신의 굴레를 벗어버린 영혼은 살아서 육신을 입고 있을 때보다 일곱배 이상의 힘과 영민함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살아있을 때 수행을 통해 그토록 갈망했던 최고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이 때에 주어진다고 한다. 종카바 대사를 비롯한 티벳의 많은 성취자들이 구경의 해탈을 죽음의 순간에 성취했다고 전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티벳에서는 스승들의 태어난 날은 기념하지 않고 그가 죽은 날, 즉 최후의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기념한다고 한다.

  바르도 가르침의 독특함과 힘은 죽음의 실제과정을 지극히 명료하게 제시함으로써 해탈 방편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데에 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과 죽은 이후 바르도 과정에서 일어나는 단계등을 상세히 진술하고 있는 데, 법신성취를 할 수 있는 광명의 단계와 보신 성취를 할 수 있는 달마다투 즉 법성에서 광휘의 불꽃이 일어나는 단계와 화신 성취를 할 수 있는 자비로운 모습을 한 불보살님들과 무서운 모습을 한 본존불과 호법신장들이 나타나는 세 단계로 크게 나누고 있다.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던 地水火風 四大가 쇠락하여 차례로 근원으로 섭수된 후에 어머니에게서 받은 붉은 명점과 아버지에게서 받은 흰색 명점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깜깜한 암흑과 함께 외호흡이 끊어지는 데 이 때에 가장 먼저 근원적 광명인 법신 광명이 나타나게 된다. 생전에 수행을 잘 했거나 스승으로부터 바르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이러한 법신 광명을 인지하여 해탈을 하게 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광명을 인지하지 못하고 무의식 상태에 들게된다고 한다. 수행자가 마음을 본성 가운데에서 흩어짐 없이 쉴 수 있는 한 이 광명은 유지되는 데 보통의 경우 손가락을 퉁길 정도의 짧은 기간동안 지속되거나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동안만큼 지속된다 한다. 그래서 티벳에서는 성취하신 수행자가 열반하게 되면 삼일에서 오일동안 시신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선정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아주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시신이 고개를 떨구거나 코에서 액체가 흘러나오면 의식이 몸에서 떠난 징조라 하여 그제서야 염을 하고 화장할 준비를 하게 된다.

  내가 캄바가 사원에 있는 동안 무문관을 지도하시던 독댄 안잠이 돌아가셨다. 이 분은 평소에 고행으로 일관하시면서 정진력이 뛰어나셔서 이 절의 전 대중으로부터 신망과 존경을 받으셨다. 여든 두 살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시봉을 받지않고 무문관에서 대중과 똑같이 공양을 받아드시고 무문관하시는 라마들을 지도하시는 일 외에 혼자서 묵묵히 불상에 복장을 하시는 일과 정진하고 기도하시는 일로 하루를 보내셨다. 열반하시기 일주일 전까지도 대중기도에 참석하시고 평소와 다름없이 불상 복장도 하시었다. 그러나 본인은 물론 온 대중이 다 그 분이 돌아가실 날이 머지 않았음을 감지하고 마음속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안잠은 고요히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드리고 계셨다. 새벽에 구루 암틴께서 안잠의 부름을 받고 두 분이 몇마디 나누시더니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그 시간이후 암틴은 오일간 안잠의 시신을 선정상태에서 고요히 계실 수 있도록 곁에서 지키셨다. 그 오일동안 시신에서는 전혀 역겨운 냄새가 나지 않았다고 암틴께서는 말씀하셨다. 오일이 지나고 무문관 법당에서 기도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암잠을 위한 기도의식이 있던 날 맑은 하늘에 너무도 찬란한 쌍무지개가 나타났다. 다비식 날 온 대중과 마을 사람들이 안잠의 시신에 마지막 하직인사를 올리는 카다(흰 명주수건)를 올렸다. 다비식은 세 시간에 걸쳐 대중라마들의 기도와 함께 이루어졌다. 그 날 저녁 잿더미 속에서 안잠의 심장과 혀가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고 사리 백오십여과가 수습되었다. 후에 안잠의 심장과 혀는 무문관 법당에 사리탑을 조성하여 안치되었고 사리와 유골은 법당 마당 옆에 사리탑을 조성하여 안치하였다.    

  티벳에서는 일반 사람의 시신이라도 사흘이 지나기 전에는 옮기지 않는다한다. 왜냐하면 그가 깨달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고 그의 의식이 언제 떠날 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만일 시신에 손을 대게 되면 의식이 손을 댄 부분 쪽으로 쏠리게 되어 정수리 쪽의 천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가게 되어 불행하게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특히 신중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대만의 큰스님들께서는 의식이 육체를 떠나는 데 여덟 시간이상 걸린다고 주장한다. 티벳에서는 대부분 삼일이상 걸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시신의 검사나 화장은 삼일이 지난 후에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만약 그 전에 시신을 옮기거나 만져야 될 경우에는 만지기 전에 포와 수행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깨달은 수행자는 죽음의 순간에 근원적인 광명을 인지하여 법신 성취를 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일생동안 수행과 지속적인 정진을 통해서 스승께서 알려주신 광명의 상태와 본연인 자성광명을 합일시키는 수행을 계속했을 때 죽는 순간 그 광명을 인지 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뉴욕 공항에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누군가가 마중을 나왔을 때 사전에 소개해 준 사람으로부터 그 사람의 인상착의나 사진을 가지고 갔다면 그 많은 인파 가운데서도 그를 찾아내고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사전지식이 없다면 그가 곁에 있다해도 알아 볼 수 없을 것이다. 일단 마음의 본성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 인지할 수 있게 되면 나중에 그 본성을 알아볼 수 있는 열쇠를 확보한 셈이다. 사진이 있다하더라도 몇 번이고 자세히 보고 익혀두어야 그 사람이 스쳐지나갈 때 곧 알 수 있듯이 평소에 꾸준히 수행하여 마음의 본성에 대한 인지를 한층 깊고 확고하게 해두어야 바르도 상태에서 많은 경계가 일어 나는 중에도 바로 근원적인 광명을 인지하여 법신 성취를 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근원적 광명의 발생은 동트기 바로 직전 텅빈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과 마찬가지다. 그러한 상태에서 점차적으로 태양이 모든 방향으로 윤곽을 드러내면서 광채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이 때에 죽은 영혼은 소리, 빛, 색이 흐르면서 진동을 의식함과 동시에 찬란하게 밝은 빛이 여러 가지 색체를 띠고 아른거리면서 끊임없이 요동함을 느끼게 된다. 마치 한 낮의 땡볕아래 신기루와 같은 현상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듯한 현상을 보게되는 것이다. 이 때에 이 법성의 빛에 대한 인식이 있는 수행자는 이러한 광휘가 매우 안정되게 일어나게 되고 이를 활용해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티벳불교에서 닝마파의 대원만 수행 가운데에 ꡐ토갈 수행ꡑ이 있는 데 이 수행은 法性의 참뜻과 실제적인 의미를 알려주고 이 법성을 인지하고 안정시킬 수 있도록 중점을 두어 가르치고 있다. 이 수행을 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法性의 빛은 단지 번쩍거리는 번갯불이나 반딧불에 불과할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현상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 오직 토갈 수행자만이 그러한 찬란한 빛의 현현이 자신의 마음의 본성에서 일어난 것임을 인지하여 해탈을 얻어 보신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한다.  

  만일 법성의 찬란한 빛이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 자성의 빛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다음으로 단순한 빛과 색깔들이 크고 작은 물방울무늬와 밝은 점으로 나타나다가 하나로 통합되어 합쳐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거대한 광명체 속에 천여 마리의 용이 한꺼번에 포효하듯한 소리와 함께 눈을 멀게할 정도의 밝은 빛 속에 42 분의 자비한 모습의 불보살님들과 58분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한 분노의 불보살님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바르도 상태에서 나타나는 백명의 자비존과 분노존들을 중국에서는 文武百尊이라고 번역했다. 이러한 文武百尊의 출현은 며칠에 걸쳐서 계속되는 데 생전에 바르도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文武百尊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그러한 모습들은 자신을 위협하고 놀라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없는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육도 윤회로 우리를 인도하는 희미한 빛 속으로 숨게 된다고 한다. 사실상 文武百尊가운데에 자비존 42분의 자신의 가슴차크라에서 현현한 모습이고 58분의 분노존은 자신의 대뇌 즉 정수리 차크라에서 현현한 모습이라고 한다. 대략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자비존 가운데에 아미타불을 위시한 五方佛은 五蘊이 정화되어 대원경지등 다섯가지 지혜가 현현한 모습이고 관음보살을 비롯한 八大보살 八識이 정화된 모습이며  그 배우자인 불모의 모습은 八識의 대상인 경계가 정화된 모습이다. 이와 같이 자비존과 분노존의 모습이 자신의 번뇌와 집착이 정화된 모습인 줄 알아서 그것이 바로 내 마음의 본성인 줄을 알아차림으로서 해탈을 이루어 화신성취를 하게 되는 것이다. 티베트에서나 대만사람들은 이러한 바르도의 文武百尊에 대한 사전지식을 확고히 하여 중음의 상태에서 화신성취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백 분의 자비존과 분노존에 대한 탱화를 그리거나 사진으로 모시기도하고 불상을 조성하여 법당에 안치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文武百尊이 죽은 후에 바르도 상태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닝마파의 족첸 수행을 하게 되면 선정 상태에서도 근원적 광명의 상태를 거쳐서 법성의 광휘가 현전하고 그 다음에 文武百尊이 현전하는 단계를 체험함으로서 법신, 보신, 화신의 성취를 원만하게 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수행의 단계를 四相이라하여 첫째 자성의 본질인 법성의 빛을 실제로 보게되는 法性現前상과 바같경계를 반연해서 지혜가 일어나고 미혹한 분별망상을 여윈 청정한 지혜가 증장되는 證悟증장상, 이 상태에서 더욱 정진하면 모든 청정치 못한 현상들이 사라져서 오색 빛을 띤 현상들이 세간에 가득차고 오방불을 비롯한 자비존과 분노존들의 만다라가 세간에 가득 차서 부처님들 가슴에서 미세한 빛줄기가 자신의 가슴으로 연결되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번뇌에서 해탈하여 모든 습기가 끊어지고 모든 幻의 현상들이 사라지고 지혜가 늘어 각종 신통의 경계가 열리게 된다. 이 때에는 실체의 현상들이 법성으로 정화되어 법신 보신 화신과 정토를 증득케 되는 데 이러한 경계를  세 번째 단계인 明智如量相이라 한다. 거기에서 더욱 용맹스럽게 정진하면 모든 번뇌와 미혹한 현상들이 스스로 정화되어 원초적인 不二법계에서 보리를 증득케 되는 데 이 때에는 법력의 부사의한 힘이 법계에 두루 편만해져서 위신력을 나툴 수 있는 힘이 온전해진다. 마치 하나의 달이 천강에 달 그림자를 나투듯이 온 법계에 화신을 나투어 중생들을 위한 불사를 지을 수 있게 되는 데 이러한 경계를 구경의 法性遍盡상이라 한다.

  이와 같이 자성을 인지하여 구경의 해탈에 이르는 과정은 사후의 바르도 상태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살아 생전에 수행에 마음을 두고 열심히 정진했을 때에야 바르도 상태에서도 해탈할 수 있는 능력과 지견이 갖추어 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티베트 불교에서는 죽음의 순간에 해탈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살아 있을 때에 스승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며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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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p, I've been info Help, I've been informed and I can't become igotnanr. 2015-11-21 오전 3:43:35 덧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