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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문화답사(6) : 몽골의 국교가 된 불교

화이트타라
[사진설명]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럼(Kharkhorum/하라호름)이 폐허가 된 자리 위에 세워진 에르덴조 사원(출처:까페-몽골과 한국) 몽골의 역사(2) - 몽골의 국교가 된 불교 * 참조 - 몽골의 최전성기(13C) : 칭기스칸 - 어거데이칸 - 구유그칸 - 몽케칸 - 쿠빌라이칸 몽골불교 2기 : 몽골불교의 2기는 13세기 초 칭기스칸(Chingis Khan)이 등장하는 정복전쟁의 시대때부터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있는 원나라의 라마교 시대까지이다. 칭기스칸이 불교를 접한 것은 몽골제국이 선포되기 전해인 1205년 경으로 보인다. 칭기스칸은 이때 만난 티베트 불교도들의 가르침에 감명받고 당시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인 사캬 라마(Sakya Pandita)에게 메시지를 보내 전쟁이 끝나면 자신에게 와서 불교를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러한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칭기스칸 자신은 여러 종교전통을 접하는 와중에서도 자신들 조상들이 섬겨운 하늘의 신 ‘텡그리’에 대한 샤머니즘의 신봉자로 남았다. 1219년 중국 산서성으로 침입한 칭기스칸의 장군 무칼리(Mukali)는 하이윈(Hai-yun)이라는 중국 선종의 승려를 만나 감화를 받고 그를 후원하기 시작한다. 이후 하이윈은 구유그 칸에게서 초청을 받아 중국을 포함한 몽골 통치지역 내의 모든 승려들을 감독하는 수장으로써 임명된다. 그는 몽케칸(Mongke Khan)의 통치기에도 같은 직위를 유지하였고 차기 지배자인 쿠빌라이 칸(Khubilai Khan)도 불교로 교화한 것으로 보인다. 1239년 어거데이 칸의 아들인 코덴(Koden)은 중국 사천성을 점령한 이후로 이웃지역인 티베트를 침공하기로 결심한다. 그러자 티베트에서는 사캬 사원의 승원장이자 사캬파의 수장인 사캬 판디타(Sakya Pandita)를 협상자로 보내게 된다. 사캬 판디타는 티베트 내에서의 자신의 종주권을 인정받고 몽골에 대해서 티벳의 충성을 약속하는 것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이후 코덴을 비롯한 몽골족들은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과 의식에 동화되기 시작하였다. 1253년 쿠빌라이 칸은 사캬판디타를 그의 궁정으로 초대한다. 그러나 초대장이 도착하기 전에 사캬 판디타는 죽고 그의 사촌인 사카 팍파(Sakya Pakpa 또는 Phags-pa)가 대신 초대를 받아들여 몽골로 간다. 쿠빌라이 칸은 당시 20대 밖에 안된 이 젊은 티베트 승려에게 감화받아서 1260년에 ‘국사(The Guru of the Empire)’의 칭호를 주는 한편 티베트 불교를 몽골의 국교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티베트 불교가 몽골에서 중국선불교의 위치를 대체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몽골제국내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불교는 쿠빌라이 칸 치하에서 번성하여 1291년 원 왕조 치하의 영토 안에서는 42,3189개의 사찰과 213,418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전해진다(티베트 사캬파 이외에 다른 불교종파와 불교전통도 포함) 1294년 쿠빌라이 칸이 죽은 후 계승자들에 의해 티베트 불교는 형식적으로는 유지되는 듯 했으나 희생제의, 흑마술, 그리고 잘못해석된 성력중심의 탄트라 의식 등으로 순수성을 읽어갔다. 이때의 불교의 타락상은 극에 달하여 재물과 처녀를 사원에 바쳐야 하는 등 그 폐해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368년 원왕조가 멸망하고 몽골족이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면서 이러한 불교는 잊혀지기 시작하고 몽골족은 자신들 본래의 샤머니즘으로 회귀하였다. 이후 몽골불교의 부흥은 달라이라마의 개혁파 불교를 만나는 16C까지 기다려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