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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사-붓다에서 암베드카르까지-성립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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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야 왕조에 버금가는 통일 국가를 이루었던 굽타 왕조 때부터 지배층의 종교로서 확고하게 자리 매김한 힌두교는 사회 전반의 기본 질서로 그 골격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8세기 중엽에 파탈리푸트라를 수도로 하여 번성했던 팔라(Pāla) 왕조의 여러 왕들은 특히 불교를 보호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당시 동인도와 벵갈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융성했던 불교는 기존의 대승 불교와는 차별화된 교의 내용으로 보다 더 힌두교에 근접한 탄트라 불교의 양상을 띠고 있었다. 이와 같이 힌두교와 습합된 탄트라 불교를 대승과 구별하여 금강승이라 한다.

금강승이란 인도 불교의 최종 발전 단계로서 대승 불교의 인도적 변용이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금강승 교단 내에서는 자신들의 교의야말로 금강처럼 견고하고 유일한 최상의 진리라고 자부하며 그와 같은 명칭으로 불렀다.

금강승의 교의는 힌두교의 의례와 교의 내용을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채용함으로써 불교 고유의 특징을 상실함과 동시에 종국적으로는 힌두교에 동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지만 금강승의 성립 계기를 단순히 힌두교와의 습합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이미 대승 경전에서부터 강조되기 시작했던 다라니 등의 주력() 신앙은 금강승의 뿌리로서 인정되며, 더 나아가 인도 사상의 일반적 토양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금강승의 배경으로 거론되는 주요 원인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교주인 가우타마 붓다의 역사적 실체가 퇴색되었다는 점이다. 부파 시대와 대승 불교를 거치면서 성립된 다불() 사상, 삼신불() 사상 등은 가우타마 붓다를 역사적인 인물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수많은 불보살들의 등장함으로써 인도 전래의 다양한 신들에게 접근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급기야 힌두교의 만신전(殿) 속으로 가우타마 붓다가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힌두교의 비슈누 파에서 발달한 화신() 사상 중에서 10대 비슈누 화신들 중 아홉 번째 화신이 붓다라는 사실이 그 대표적인 예이기도 하다.

둘째, 출가 의식을 거친 수행자들도 다시 재가자와 같은 위치로 돌아갈 만큼 교단의 규율과 기강이 해이해졌으며, 이는 교단의 지적 활동을 쇠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셋째, 금강승 교단에서 출가 비구는 주술사(siddha) 내지 마법사(vajrācārya)로서의 역할까지 수행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는 쉬바교 또는 비슈누교와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예컨대 그 당시 천민 집단의 비교적() 의례로서 주술사인 귀녀()들이 특정일 밤 묘지에서 음주, 육식을 하면서 광란의 향연을 벌이고 지도자인 남성과 성적인 요가행을 했으며, 이는 각종 탄트라에도 반영되어 있다.

넷째, 탄트라 우주관의 영향으로 인하여 여성성을 강조하고 여성 원리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불교 교의와는 달리 여신 내지 여성 원리에 적극적인 가치를 부여했다. 반야() 즉 지혜는 여성성으로서 영원 절대성을 지니며, 방편(便) 수행은 남성성으로서 상대적인 활동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 점은 힌두 탄트라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힌두교에서는 쉬바 신이 남성성으로 무시간적 영원성을 지니며, 샥티 신은 여성성으로서 변화와 창조성을 지닌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립 배경 (인도 불교사-붓다에서 암베드카르까지, 2007. 11. 5., ㈜살림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