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藥師여래佛 수행법의 역사

박물관
藥師여래佛 수행법의 역사 일찍이 인도에 있었던 약사여래불 경전이 후에 티베트로 전해졌습니다. 어제 관정할 때 말씀드린바와 같이 세존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 일찍이 그 자리에 모인 팔만보살 대중과 아라한 대중에게 선설하셨는데 그때에 모인 대중가운데는 3만의 보살과 대승천인,건달바,아수라,용왕 등도 한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에 불타께서 대중에게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선묘한 법문을 선설하셨습니다. 문수보살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일어나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말법시대의 중생들은 안팎으로 각종의 고통이 있습니다. 간절히 구하오니, 세존께서는 약사불법을 선설하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약사불법을 들으면 모두 능히 공덕을 성취하고 고통을 소멸하도록 하여 주소서” 불타께서 이로 인하여 약사불 법문을 선설하셨습니다. 무릇 약사불전에 기도하면 모든 고통이 즉시 소멸될 수 있습니다. 제불보살님들의 원력이 다르기 때문에 그 원력과 부합되는 각종 수행법이 있습니다. 약사여래불 수행은 몸과 마음의 질병으러 인한 장애와 임종을 맞게 된 상황을 대치하는 법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 약사여래불 수행법을 선설하신 후에 범천, 제석천과 십만의 십이야차대장등이 약사여래불 명호를 지송하는 사람들을 수호하기로 원을 세우셨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약사경전에 나옵니다. 藥師經은 초전법륜 때에 설하신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약사경을 선설하실 때에 아난존자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난존자는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7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부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약사경은 두 번째 법륜을 굴리실 때 설하신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약사경을 설하실 때에 깊고 심오한 지견과 광대한 지견의 법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래서 세 번째 법륜을 굴릴 때 설하신 법이라고 할 수 있고 밀교부에서 볼 때 액사수행법은 밀교부 가운데 여래부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티베트는 본래 본교등과 같은 토속신앙을 신봉했습니다. 본교는 역사가 매우 오래된 종교로서 야티쩬보왕 시대에 이미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송쩬캄뽀 시대에는 많은 수정으로된 탑등의 길상물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정법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부처님의 경전이 분류되지는 않았지만 경전은 이미 유통되고 있었고 등불공양이나 은잔등에 공양을 올리는 방법은 본교의 공양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佛像、佛塔、經堂等外적인 상징물들이 전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아마도 진정한 승가는 없었고 대중들이 모여서 선행을 하고 독송을 하는 등 불법의 율의와 계율의 상황에 부합되도록 수지하였습니다. 五代이후 송쩬칸뽀 때에 삼예사원을 세웠고 아울러 역경원도 세워 번역가들을 청하여 각종 경전들을 번역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삼백여명의 선남자들이 함께 출가하여 불법이 흥성하게 되었습니다. 藥師法門은 켄뽀 보리살타 때에 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켄뽀 보리살타는 중인도 사람입니다. 아마도 왕자였다가 출가하신 것 같습니다. 티송데우쩬왕에게 초청되어 티베트에 불법을 널리 편 후 대중들을 위하여 질병의 장애를 소멸하고 자량을 쌓기 위하여 각 부의 약사여래불 수행 법본을 지으셨습니다. 법본은 廣、中、略등의 다른 판본이 있는데 중간본이 가장 널리 유통되었다. 그래서 약사수행법은 印信大師가 계실 때에 티베트에 유통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역사는 前宏期時代에 속한 역사입니다. 後宏期시대에는 까담파의 원류인 아띠샤존자부자가 티베트에 와서 불법을 전했는데 아띠샤존자는 약사불 수행을 매우 중요시하셔서 약사수행법이 더욱 성행하였습니다. 약사여래불께서 화신불로서 시현하셔서 약사불 수행법은 밀교의 사부(事部)에 속하지만 수행차제는 무상요가부에 속합니다. 우리가 수행하게되는 天法儀軌 또한 事部에 기초를 두지만,무상요가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무상요가부의 관정을 받은 후에야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약사여래 수행법의 공덕과 이익 약사여래 수행을 하면 이익이 매우 많지만 실제적인 이익은 신심에 딸려 있습니다. 신심은 불.법.승 삼보님과 부 딴뜨라. 모 딴뜨라 등 일체 해탈도에 대한 신심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신심은 가히 청정한 신심과 수승한 신심과 취사할 줄 아는 신심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신심은 보통 공덕을 본 후에 마음속에 환희심을 느끼고 동경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심은 또한 상근기.중근기.하근기의 신심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근기의 신심은 보통의 신심이고 상근기의 신심은 무량한 흔들리지 않는 신심입니다. 티벳은 밀법을 수행하는 곳이고 밀법은 신심을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신심을 중요시 여기고 지혜를 덜 중요시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은 좋은 점도 있지만 위험성도 있습니다. 평소에 삼보님과 스승님에게 기도를 할때에 우리는 우리의 소원이 실현되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사가 잘 되기를 바라면서 등공양을 올리거나 다른 공양을 올리고 혹은 절에다 호법신 기도를 부탁합니다.그러나, 설사 대신통이 있다하더라도 호법신이 이러한 기도 때문에 바로 어떤 일이 생기게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호법 역시 인과의 규칙을 지켜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호법신이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한동안 공양을 올렸는데도 효과를 보지 못한 후에 어떤 사람들은 호법신이 거짓이라고 생각해서 심지어는 기도한 스님한테 공양금을 돌려달라고 하기도합니다. 이러한 신심은 무지의 기초를 둔 신심입니다. 인과업보의 도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인과응보는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않으면 부처님께서 마음대로 육도중생으로하여금 업력의 과보를 받지 않도록 하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 항상 일체중생들이 고통과 고통의 인을 여의고, 일체중생들이 다 행복과 행복의 인을 갖추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실현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방석을 깔아놓고 바로 사람들에게 앉으라하는 것처럼, 금방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가 전혀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추구해야 되는 표준을 세워놓고 이 표준에 대해서 신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신심이 아무 쓸모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심에도 조건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이치와 원인을 알고 일으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진흙으로 불상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 조성한 불상이 너무 볼품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차 연습한 후에 빚언내 불상은 갈수록 훌륭하고 결국에는 표준에 도달학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을 밑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밑는 것도 알고 밑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 부처님이 안 계시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없는 것을 우리가 있다한다면, 그것은 곧 미신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과 그 가르침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을 우리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스승님께서 가지고 계신 공덕을 알고난 후에, 우리가 비로소 스승님에 대해서 청정하고, 원만한 신심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승님에 대한 신심은 스승님이 말씀하신 것을 사실대로 아는 것을 포함합니다. 과장하지 않고, 거짓되지 않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곧 조작된 신심이 것입니다. 삼귀의 처와 약사부처님과 만다라의 성중을 수행하는 이익은 무엇인가? 옛날에, 아리지구에 뻔갈로대사의 법당이 있었습니다. 이 법당은 현재 명승고적이 되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약사부처님을 예찬하는 법본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 약사부처님의 명호를 듣기만 해도 고통에서 바로 벗어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법본중에서 약사부처님은 전부 일곱분이 계신데, 약사칠불이라고 부릅니다. 경전에서 이르기를 약사여래불 경전은 약사칠불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부처님께서 직접 가피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약사칠불의 공통적인 원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옛날에 캄바지역에 매우 부유한 한 사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승가대중의 교육수준은 높지않았습니다. 하루는, 한 무리의 승가대중이 약사법본을 수행하고 있을 때, 「약사유리광여래불께 예경합니다.」를 염송할 때, 유리는 범어로는 벤두야라고 하는데, 대중들 모두 어떻게 읽어야 하는 지를 몰라서 이곳저곳에 물으러 다녔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학문이 있다고 여겨지는 스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 스님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그 스님이 학문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분은 정색을 하고 경전을 한 번 보고는 캄바발음으로 「뻬체야」라 하였습니다. 「뻬체야」는 연기가 난다는 뜻인데 그렇게 얼버무렸습니다. 그래서 대중들이 기쁘게 그렇게 잃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에피소드입니다. 그러나 정성을 다하여 약사기도를 하면 확실히 악도를 여위고 고통을 없애고 소원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바로 부처님께서 약사수행법을 선설하신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