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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달라이 라마 보좌하는 청전스님 - 4

화이트타라
20년째 달라이 라마 보좌하는 청전스님 “나는 전생에 신라, 중국, 인도의 고승… 존자님 모시는 건 운명” 달라이 라마는 게으르다? ▼ 스님은 공부하는 교학승과 도를 닦는 선승으로 나뉘는데, 어느 쪽이었나요. “스님이 되기 위해선 당연히 공부를 해야 하고, 그 위에 수행관(觀)이 서면 수행을 하는 겁니다. 교와 선을 함께 하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선가에 바로 들어간 게 실수였어요. 수행관이 서지 않은 상태에서 수행을 하려니까 10년을 정진해도 발전이 없었어요. 마음에 품고 있던 의문들을 풀지 못하겠더라고요. 게다가 법상에서 늘 생사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처럼 말하던 선가의 큰스님들이 정작 열반할 때는 두세 달씩 정신을 못 차리기도 하는 것을 보며 회의가 밀려왔어요. 이런 수행으로는 평생을 정진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외국의 고승들은 어떻게 수행하는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태국, 버마, 스리랑카, 인도 등을 돌아다녔어요.” ▼ 달라이 라마도 그때 만난 건가요. “1987년 8월경에 뵈었는데, 1시간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탈하고 솔직한 심성에 감동을 받았어요. 큰스님을 여럿 뵈었지만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죠.” ▼ 어떤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간혹 여자에 대한 유혹을 견디기 어려워 잠 못 이루는 때가 있는데, 존자님(달라이 라마)께서도 그런 유혹에 힘든 때가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나 또한 당신과 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따르는 비구이기 때문에 부처님에게 빌고, 그의 말씀을 따르며 그런 유혹을 이겨나가는 것입니다’라고 하셨어요. 달라이 라마는 실제적인 힘과 영감, 자비로운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진실함이 저를 그분 곁에 오래 있게 한 게 아닌가 싶어요.” ▼ 명성에서 오는 압도감 때문은 아닐까요. “그런 건 없었어요. 그날 다른 두 명의 스님과 함께 알현했는데, 나오면서 그분들께 뭘 느꼈냐고 하니까 ‘뭘?’ 하더라고요. 저는 정말 존자님을 뵈면서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활짝 열리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은 분이 달라이 라마 외에 딱 두 분이 계세요. 티베트에서 만난 고승 한 분과 마더 테레사 수녀예요.” ▼ 달라이 라마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라고 소개되어 있던데, 그분의 제자라는 어떤 공식적인 기준 같은 것이 있습니까. “그런 건 없어요. 저 스스로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제자로 사는 거죠. 달라이 라마께서도 저를 제자로 생각한다는 걸 느껴요. 제가 이제 그만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그러자 ‘제자는 스승 밑에 있을 때 가장 빨리 깨닫는다’며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몇 년 전에도 다시 ‘정말 떠나고 싶다’고 했더니 ‘여름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살지만 겨울에는 내 곁에 있으라’고 하시더군요.” ▼ 오랫동안 곁에서 모셨으니 흥미로운 일화도 많을 것 같습니다. “유머가 많은 분입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게으름이에요. 누군가 게으름에 대해 물으니까 ‘나는 그것에 대해 말할 수가 없어요. 내가 게으르니까’ 하시고는 저를 향해 ‘당신도 게으르지?’ 하시는 거예요. 어찌나 부끄럽던지…. 재작년인가는 유럽순방을 하면서 성모 마리아가 출현한다는 성지에 가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참배를 마치고 나오시면서 ‘이제 개종을 해야 하나봐. 성모 마리아가 웃으며 나를 보더라고’ 하셔서 사람들이 다 웃었죠.” ▼ ‘역시 달라이 라마구나’ 하고 감동을 받을 때는 언제인가요. “통역할 때 많이 느껴요. 일반적인 이야기는 웃으면서 하시지만 진리, 법 등에 관한 말씀을 하실 때에는 눈빛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통역하면서 긴장하죠. 더 놀라운 것은 한국말을 모르는데도 이따금 ‘잘못 이야기 했어, 다시 해’ 하실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럴 땐 정말 깜짝 놀라죠. 또한 기억력이 대단해요. 1990년대 초에 모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하러 오면서 통역을 한 사람 데리고 왔어요. 달라이 라마께서 통역과 악수하다가 ‘당신, 5년 전에 대학에서 나한테 진리가 뭐냐고 물었지?’라고 해서 통역이 화들짝 놀란 적이 있어요. 그 대학에서 특강을 하고 난 뒤 수백 명의 학생과 일일이 악수를 했는데 그 사람을 정확하게 기억하셨어요.” 달라이 라마는 본래 티베트 불교의 최고 지도자를 일컫는 호칭이다. 현 달라이 라마는 법명이 톈진 갸초로, 6세 때인 1940년 제14대 달라이 라마에 올랐다. 티베트 독립운동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이 거세지자 1959년 인도로 피신, 망명정부를 세웠다. 그 후 세계를 돌며 평화와 화해를 설파해온 그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