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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여신 쿠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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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여신 쿠마리

 

이마에 제3의 눈 티카를 붙인 쿠마리

[이데일리 권소현기자]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여자아이가 진한 스모키 화장을 한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습.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에는 섬뜩했다.

쿠마리는 네팔 네와르족이 1000년 이상 유지해온 전통으로 이에 얽힌 전설은 다양하다.

대부분이 옛날 힌두교의 탈레주라는 여신에서 비롯됐다.

그중 하나는 이렇다. 탈레주 여신이 아름다운 소녀로 현신했는데 왕이 그만 욕정을 참지 못하고 범하려 들자 저주를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왕이 잘못을 뉘우치고 여신을 위한 사원을 지어 간절히 기도하자 여신이 나타나 초경을 겪지 않은 순수한 어린 소녀를 골라 자신의 분신으로 섬기라고 명한다. 이 소녀가 바로 쿠마리다.

또 하나는 17세기 자야 프라카시 말라 왕과 여신의 비극적인 사랑에 관한 전설. 탈레주 여신은 사원을 찾은 말라 왕에게 반해 몇 년뒤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찾아가겠다고 약속한다. 실제로 몇년 뒤 왕과 왕비가 길을 걷고 있을 때 한 어린 소녀가 웃으면서 다가와 자신이 여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왕은 이를 믿지 않고 소녀에게 무례하다고 화내며 추방했다.

그러나 그날밤 탈레주 여신의 분노가 신들린 왕비의 입을 통해 전달됐고 놀란 왕은 여신을 달래기 위해 사원을 세우고 쿠마리 숭배를 시작했다는 것.

기원이야 어찌됐든 쿠마리는 아직도 네팔인들에게 추앙받는 `살아있는 여신`이다.

쿠마리가 되려면 32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반드시 샤캬족이어야 하며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검어야 하고 몸에 흉터가 없어야 한다. 경전에서는 쿠마리의 몸은 보리수, 허벅지는 사슴, 눈꺼풀은 소와 같아야 하며 목은 고둥을 닮아야 한다고 돼 있다.

과연 어떤 형상이어야 할까. 부분 부분 머리속에 그려서 합쳐보니 인간의 형상은 아니다.

아무튼 혈통과 신체적인 조건이 충족되면 쿠마리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테스트를 받게 된다.

빛을 모두 차단하고 소, 돼지, 양, 닭 등의 머리를 놓아둔 방에서 하루를 지내는 것이다. 피 냄새가 진동하는 깜깜한 공간에 갇혀 꼬박 하루를 지내야 한다면, 생각만해도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쿠마리가 되려면 이를 견뎌내야 한다. 무서워서 울거나 소리를 지르면 탈락이다. 쿠마리가 되려면 두려움과 슬픔, 기쁨 등 속세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테스트를 통과해 최종 쿠마리에 선정이 되면 그야말로 공주 대접을 받으며 여신으로 살게 된다. 네팔 국왕이 제일 먼저 달려와 무릎을 꿇고 축복을 빌 정도다.

정치인들이나 정부 관료들도 쿠마리를 자주 찾아 그녀의 발을 만지거나 입을 맞추며 소원을 빈다.

쿠마리가 만약에 크게 울거나 웃으면 심각한 병에 걸리거나 죽음을 암시한다는 믿음도 있다. 눈물을 흘리거나 눈을 비비면 죽음이 임박했다는 표시고 떨면 투옥을 의미한다. 그러나 쿠마리가 조용히 있거나 침착하다면 이는 소원이 받아들여졌음을 뜻한다.

쿠마리 사원, 3층 창문을 통해 얼굴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같은 대접에는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기 마련. 쿠마리가 되면 가족과 떨어져 카투만두 더르바르 광장에 있는 쿠마리 사원에서 살아야 한다. 9월 인드라 자트라 축제를 비롯해 1년에 13번의 크고 작은 축제때를 제외하고는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여신으로 추앙받지만 어찌 보면 쿠마리 사원에 감금돼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아동학대라는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쿠마리는 절대로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 넘어져 다치거나 뾰족한 것에 찔려 피를 흘린다면 이미 부정을 탔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바로 쫓겨난다. 때문에 초경은 당연히 쿠마리 생활의 끝을 의미한다.

초경을 시작한 이후에는 사원에서 나와 평범한 소녀로 돌아가지만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쿠마리였던 딸이 돌아오면 집안이 망하고 쿠마리였던 처녀와 살면 남자가 비명횡사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사회에 속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살다가 결국 매춘부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1900년대 들어서 조금씩 인식이 바뀌어 쿠마리를 지내고 나서도 결혼해서 자녀도 낳고 잘 사는 케이스도 많다.

그런 쿠마리를 보러 여행자 거리인 타멜에서 한 20분 걸어 더르바르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 입구에 쿠마리 사원이 있기 때문이다.

엽서를 파는 사람, 과일을 파는 사람,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사람 등등을 헤치고 사원에 들어갔더니 4시에 쿠마리가 얼굴을 보여줄 거란다. 시계를 보니 10분 남았다. 쿠마리 사진촬영은 절대 금물이다.

입구에서 코흘리개 아이들이 파는 엽서를 보니 쿠마리는 볼살이 통통한 앳된 모습이다. 현재 쿠마리인 프리티 샤캬가 4살때 선정됐다고 하니 한창 엄마 품에서 어리광 부릴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사원에 들어온 것이다.

ㅁ자 모양의 사원은 아담했으며 상당히 오래된듯 여기저기 세월의 때가 묻어있었다. 1757년에 지어졌다니 250년의 역사를 안고 있는 곳이다. 여신의 숙소라 그런지 나무 하나하나에 새겨진 문양이 섬세하다.

2006년 인드라 자트라 축제때 나들이를 나온 쿠마리. 이제는 숙녀의 모습이다. <출처 : >http://kumari.puellula.com>


안뜰에 쭈그리고 앉아 쿠마리를 기다렸다. 비둘기들이 유난히 많았다. 안뜰 중앙에는 기부금을 넣는 큼지막한 함이 있었다. 하루 3번, 매일 정해진 시간에 얼굴을 보여주지만 기부금을 내면 특별히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단다.

3층 열린 창문 너머로 까르르 웃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여신이어도 한창 모든게 즐겁고 재밌을 나이를 속일 수는 없나보다. 발랄하고 천진난만함이 가득 묻어있는 웃음소리다.

4시를 한참 넘겨서야 빨간 비단 옷을 입고 눈가에 까맣게 화장을 한 쿠마리가 3층 창문으로 얼굴을 빼꼼 내민다. 이마에 제 3의 눈인 `티카`를 그린 것이나 짙은 화장을 한 모습은 사진과 같았지만 얼굴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소녀였다.

소녀 쿠마리는 5초쯤 눈길을 여기저기 주더니 휙 들어가버린다. 쿠마리의 눈길은 곧 축복이란다.

짧은 시간 올려다본 쿠마리의 얼굴에서는 통통한 젖살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대신 소녀티가 났다. 이제 쿠마리는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이곳 쿠마리 사원에서 살 수 있는 날도 얼마 안 남은 듯 하다. 온실 속에서 나와 세상에 부딪혔을 때에도 저렇게 발랄한 소리로 웃을 수 있을까. 쿠마리가 사원을 떠나서도 여자로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잠깐 기도했다.
 
 


▲ BBC인터넷 화면 캡쳐

 

네팔의 여신 ''쿠마리'' ''美 나들이'' 이유로 지위 박탈

 

 


네팔에서 살아 있는 여신으로 추앙받는 ‘쿠마리’ 사자니 샤키아(10·사진)가 미국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여신의 지위를 박탈당했다고 AP통신이 3일 전했다.

쿠마리는 불교도와 힌두교도 모두로부터 존경받는 어린 소녀로, 1년에 3∼4차례에 한해 처소를 떠날 수 있다. 특히 최상위에 속하는 3명은 네팔을 벗어날 수 없는데 사자니도 이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사자니는 지난달 쿠마리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홍보하기 위해 영국의 한 방송제작자와 함께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사찰 원로들은 “사자니가 고결함을 잃었다”며 쿠마리 지위를 박탈하는 한편 후계자를 물색 중이라고 밝혔다.

쿠마리는 네팔 카트만두 지역의 네와르족 사이에서 내려오는 전통이다. 2∼4살 여자 어린이 가운데 지명되는데 피부, 눈, 치아가 완벽해야 하며 어둠을 무서워해서는 안 되는 등 32가지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초경을 시작하면 후계자에게 지위를 물려주게 된다.

쿠마리를 만난 신도들은 쿠마리의 발에 이마를 갖다 대면서 존경심을 표하지만 한쪽에서는 아동학대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쿠마리들은 각종 행사에 참여하면서도 금전적 보상을 거의 받지 못하며, 쿠마리 출신 여성과 결혼한 남성은 일찍 죽는다는 속설이 있어 대부분 미혼으로 살아간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신전서 쫓겨난 네팔 '쿠마리', 여신 지위 박탈 "없던 일로"

 

 

 


전통을 무시하고 미국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살아있는 여신' 지위를 박탈당한 네팔의 '쿠마리' 사자니 샤키아(10)가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고 19일(현지시각) 영국 BBC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사찰의 원로들은 사자니가 네팔을 벗어날 수 없다는 율법을 어기고 미국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이달 초 사자니의 쿠마리 자격을 박탈, 쿠마리 제도에 대한 논란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사찰 원로들은 18일 사자니가 간단한 '정화의식'을 거치고 난 후 '쿠마리'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쿠마리는 살아있는 여신으로 추앙받는 네팔의 어린 소녀을 일컫는 말로 불교도와 힌두교도 양쪽으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1년에 3~4차례에 한해 처소를 떠날 수 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접한 박타푸르의 쿠마리였던 사자니는 네팔 국경을 벗어날 수 없는 3명의 쿠마리 가운데 한 명이었지만 쿠마리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영국의 한 방송국과 함께 지난 달 미국을 깜짝 방문했다.

쿠마리의 외국 방문은 쿠마리 역사상 처음 있는 일.

이에 해당 사원의 원로들은 "사자니가 미국을 방문하면서 고결함을 잃었다"고 부분개하며 쿠마리 지위를 박탈했고 조만간 후임자를 물색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39일간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18일 고향에 돌아온 사자니는 자신을 둘러싼 논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것 처럼 보였으며 사자니의 지인들과 구경꾼들이 몰려 사자니의 귀국을 환영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이와 관련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영국의 방송사 측은 논란을 야기하게 된 것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을 총괄한 아이쉬벨 휘태커 감독은 로이터 통신을 통해 "사자니는 보통의 어린 아이인 동시에 살아있는 여신"이라며 "그녀는 두개의 삶을 살고 있다"라고 말했다.

감독은 또 사자니가 워싱턴을 방문하는 동안 미국 내 거주하는 네팔인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으며 현지 초등학교를 방문해 미국인 어린이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전했다.

감독은 "사자니에겐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미국 어린이들은 산자이에게 그들이 사는 방식을 이야기했고 산자이 역시 그녀의 삶을 소개하며 시간을 보냈다" 라고 덧붙엿다.

고대 힌두여신인 '탈레주'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쿠마리는 국왕까지 찾아와 무릎을 꿇고 축복을 구할 정도로 네팔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신 중 하나. 네팔인들은 쿠마리의 축복을 받거나 심지어 눈길이 한번만 스쳐도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처녀'라는 뜻의 쿠마리는 당연히 어린 소녀들로 구성되는데 석가모니의 '샤카' 성을 가진 여자 아이들 중에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검고, 몸에 흉터가 없어야 하는 등 까다로운 32가지 조건을 모두 통과해야한다.

마지막으로 동물의 시체와 피가 낭자한 어두운 방에 갇혀 울지 않고 하룻밤을 무사히 보내면 쿠마리로 선발된다.

쿠마리들은 보통 2~4살 때 쿠마리로 간택되는데 이번 논란의 주인공인 사자니 역시 두살 때 쿠마리로 간택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쿠마리가 아동 학대이자 인권 유린이라는 주장이 끈임없이 제기되면서 지난해 11월 네팔 대법원은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지시한 바 있다.

노컷뉴스 전수미 기자 coolnwar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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