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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날의 달라이 라마

박물관

젊은날의 달라이 라마

 

티벳사원의 하루

 

티벳탄 카펫을 짜는 여인

 

 

 

 

 

 

 

[티벳 여행기 01] 누가 바람을 보았는가

얌드록쵸를 지나 룽다가 펄럭이는 카롤라 설산이 보이는 고갯길 / 고도계에 4,900m라는 숫자가 찍혀나온다고 옆에 앉은 분이 말한다. 일행들의 입술은 고산증으로 파랗게 변해있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럴 때는 천천히 천천히...


남쪽으로 네팔과의 사이에는 높은 산들 - 에베레스트, 마칼루, 초오우, 마나슬루, 시샤팡마 등이 병풍처럼 늘비하게 둘러 서있고, 그 아래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데 위치한 강, 얄룽창포(Yarlung Tsangpo/고도 4000m/창포는 티벳어로 江의 뜻) 가 흐르는 곳, 눈덮인 산 위로 코발트빛 하늘이 한없이 깊은 나라, 티벳.
제목을 여행기라고 적어놓고 보니, 불과 일 주일 동안 작은 버스 안에 앉아서 흔들거리며 티벳의 몇 개 마을을 둘러본 나로서는 티벳에 대해서 할 말이 별로 없을 것도 같다.
그것은 화려하고 이색적인 볼거리가 아니라 큰 사원의 불상보다 더 인상적인, 그들의 맑은 영혼이 비치는 듯한 천진한 표정 속에는 분명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잊고지냈던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고 느꼈는데, 그것을 꺼내서 신실하게 표현 할 방도가 내게는 없기에 하는 말이다.
이들의 지난(至難)해보이는 삶과 때국물이 흐르는 얼굴에서 피어나는 미소는 서로 상충되어 보여서 불가사의하다 할 밖에...
다만 조심스럽게 찍은 그들의 일상과 표정을 담은 사진들 밑에 간략한 설명을 달고자 한다.

오늘은 우선 고른 사진 몇장을 일정 순서와는 무관하게 올려봅니다.

체탕에서 얌드록쵸 가는 길옆 마을 한 쪽 향을 피우는 곳 / 티벳인이 사는 곳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룽다. 기도문이나 불교경전을 오색의 천에 찍어 줄로 꿰어 다발로 엮어 놓은 것이다. 룽다를 걸어두는 의도와 목적은 자비로운 존재에 대한 종교적 성찰과 천에 찍힌 경문의 내용이 바람을 타고 우주 만물에 그 뜻이 전파되어 모두 부처가 되기를 바라는 대승적 기원을 담은 것이다. 다섯 가지 천 색깔의 의미는 파랑은 하늘, 노랑은 땅, 빨강은 불, 흰색은 구름, 초록은 대양을 나타낸다고 한다.



체탕에서 한참을 들어가 만난 사미예 사원 / 이곳에서 승려들이 벌이는 "챰"축제가 열린다는 정보를 듣고 먼길을 돌아서 찾았으나, 축제는 없었으며 사원 내부 몇 곳의 문이 닫혀있어서 경내 일부와 학승들의 생활하는 모습만 둘러볼 수 있었다.



시가체 타쉬룬포(Tashilhunpo) 사원 앞 / 자신들의 믿음에 의지하여 가장 낮은 곳으로 온몸을 던지는 오체투지



라싸 조캉 사원 앞 / 오체투지하는 티벳여인들



라싸 조캉 사원 앞 / 참배객들의 쉬는 시간



라싸 조캉 사원 앞 / 오체투지하는 참배 노파. 이분의 소망은 무엇일까?



라싸 조캉 사원 / 티벳 불교의 본산지. 이 사원의 주위에는 전국에서 찾아온 참배객들의 발길이 일년내내 끊이지 않는다.



라싸 바코르 시장 / 장식용 천을 잡고 흥정하는 티벳 상인들



라싸 드레풍 사원 / 사원 내부



라싸 드레풍 사원 / 사원 외부



라싸 드레풍 사원 / 사원 내 두 승려가 티벳 전통 긴나팔을 부는 연습을 하는 곳의 입구에서 만난 아이.



라싸 조캉사원 앞 / 야크 기름으로 불을 켜두는 곳



라싸 조캉사원 앞 광장 / 티벳은 양력과 음력과는 또 다른 티벳력을 쓴다. 올해에는 우연히도 음력과 티벳설이 겹쳤다고 한다. 아침에 이중으로 담긴 풍선을 사는 소녀들



라싸 포탈라궁 / 줄을 선 인파 속에 설빔을 치려입은 티벳 어린이



라싸 포탈라궁 / 앞쪽에 착포리 언덕이 보인다. '나는 티벳의 라마승이었다'에서도 소개되는 착포리. 의술승려를 배출한 사원이 있엇던 곳으로 티벳 의술의 산실이었던 곳인데, 지금은 중국군의 주둔지이다.



라싸 포탈라궁 / 설빔을 치려입은 티벳 어린이



아침 햇살을 받은 포탈라궁



라싸 포탈라궁 앞 광장 / 새해 설날 맵시를 낸 단정한 모습의 티벳인들



체탕 가는 길 / 체탕으로 가는 길에 만난 양떼



체탕 사미예 사원 / 숙소에서 일하는 학승들. 처음에는 낯선 표정이었으나 함께 사진을 찍을 때는 밝게 웃었다.



체탕 사미예 사원 / 사원 입구 좌우에 있는 코끼리 상



체탕에서 간체 가는 길 / 이 마을에 있는 한 민가를 방문했는데, 들어가기 전 길에서 만난 티벳인

 

 

 

[티벳 여행기 02] 성도에서 라마불교의 성지 라싸로

(좌)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얄룽창포(江)와 주변 산 / (우) 티벳 공가 공항


사천성 성도(成都/Cheng-du)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오전 성도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2월 7일 정오를 막 넘겨서 티벳의 공가 공항에 내렸다. 라싸 시내, 조캉 사원과 멀지 않은 샹바라 호텔로 이동. 이곳은 티벳여행 5박중 우리가 3일밤을 묶을 곳이다.
우리 일행의 본진은 14명이다. 외로 자신들의 일정에 따라서 부분합류를 하는 4분, 그리고 이틀 후에 온 한 사람을 포함해서 19명이 주로 짐을 실은 버스와 찝차에 나누어 타고 움직였다.

일행 중 최고령자인(82세) 박 선생님이라는 분은 금번 티벳 방문이 19번째라고 한다.
그는 티벳에 관한한 국내 일인자라 할만했다. 티벳 야생화 사진을 직접 찍어서 책자를 발간한 적도 있는데, 그 책은 그 후 티벳 한 대학의 교재로 사용되기도 했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무인구'라는 곳의 방문 허가를 중국과 티벳 당국으로부터 받아내기 위해서 오셨다는데, '시간이 멈추는 곳'이라고 불리우는 이 '무인구'에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계 등의 전자제품이 작동을 멈춘다고 했다. 이 분의 티벳 사랑은 지극한 것이어서 다들 그 분이 전생에 아무래도 티벳인(tibetan)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9번째로 티벳을 찾은 사진작가가 있었고, 우리를 인솔하는 가이드 미스 리는 금번이 8번째 방문이라고 한다. 그 외에 한의사, 선생, 회사원 등 여러 종류의 직업과 함께 나이도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층의 사람들이 함께 모였다. 구정 연휴에 부러 오지를 찾아온 사람들은 첫대면에서부터 적당한 친밀감을 서로 느낄 수 있었다.

라싸에서의 첫날은 고지에 적응하기 위해서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호텔 인근에 있는 조캉사원과 바코르 광장 주변 시장을 둘러보면서 티벳인들과의 첫대면을 즐긴다.
마르고 낯선 공기를 가슴 가득하게 들이킨다. 아~, 여기는 티벳이다.
밤에는 도로에서 불꽃 놀이를 하는 소리가 잠을 이룰 수 없게 시끄럽다. 설날 전날 초저녁에는 두어 시간 동안 아예 바코르 근방 건물들이 전부 소등을 하고 불꽃 놀이를 지원했다. 길에는 공안이라고 적힌 경찰차와 소방차, 구급차, 그리고 청소차까지 등장해서 만약에 있을 사태에 대비하는 듯했다.

티벳은 호전적인 유목 부족 집단으로부터 출발했었다고 소개하는 책자들 안에는 적혀있다.
6세기 이후에 국제무대에 등장한 티벳은 송첸 감포(Son\gtsen Gampo:618~649)의 통치시절에 는 한 때 인도북부와 중국국경까지를 그 세력권에 둔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후에 몽고와 청, 그리고 영국의 침략과 간섭을 받아오다가, 마침내 국민당을 밀어낸 홍위군에게 100만의 인명과 6000여개의 사찰이 훼손된 후에 중국에 통합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지금은 50여년째 중국의 한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여 살아가는 티벳.
티벳은 본시 신정국가(神政國家)이다. 그들은 이른바 외부세계의 <근대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명상할 수 있고 육신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기만을 원했다.

이곳 라싸(Lhasa)는 티벳(중국의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의 수도이며, 위치는 얄룽창포(雅魯藏布江)의 지류인 라싸강 중간 부분에 위치하고, 사방은 설산(雪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해발은 3558m이다. 일조시간(日照時間)이 아주 길고 찬란한 햇빛으로 유명해 일광성(日光城)이라 칭하기도 한다.
지금 라싸 중심부의 상권은 중국의 한족이 거의 차지하고, 요령없는 티벳 장족들은 자신들의 수도에서마저 변두리로 밀려나는 추세에 있다고 들었다.
조캉사원, 포탈라궁, 드레풍사원, 세라사원 등이 유명한 곳이다.

포탈라궁이 세상에는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들의 정신적인 성지는 조캉사원이다. 이 조캉사원을 빙 둘러싸고 활기와 생기가 넘치는 바코르(팔각거리/八角街)가 있고, 그 곳을 중심으로 주변에 라싸의 구도시가 위치한다.
바코르 광장에는 전국에서 찾아와 오체투지를 하는 참배객들과 마니차를 돌리며 시계방향으로 바코르를 도는 참배객들을 항상 만날 수 있다. 누구도 달라이 라마를 아래로 내려다보아서는 아니되므로 라사 구시가지의 주택은 그 높이가 2층으로 제한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적힌 티벳 관련 자료는 <티벳/해초여행사>, <티벳 속으로/이레>, <티벳 관련 사이트>자료 등을 참고로 했습니다)

돌마 라캉 / 공가공항에서 라싸 시내로 들어오는 도중에 만나는 마애불이다. 뒷산에 어지럽게 결려있는 흰천은 티벳인들이 첫만남 때 환영하는 뜻으로 상대의 목에 걸어주는 "카타" 인데, 사람들이 이것에 다시 돌을 담아 뒷산으로 던져서 걸어둔 것으로 보인다. 이곳을 다시 칮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였을지도.



라싸 바코르 시장 / 길 양편으로 골동품 가게들이 있으며, 오밀조밀한 기념품 등의 물건들을 파는 잡화상들이 있다. 사진은 가판대 위에 놓인 야크 버터를 자르고 있는 상인



라싸 바코르 시장의 티벳인들과 바코르 광장(사진 우상) / 화려한 원색으로 만들어진 중국풍의 조화(造花)는 식당과 호텔 내부 등에서 자주 보게 된다.



라싸 바코르에 온 참배객 / 겨울에 오체투지를 하거나 바코르를 시계방향으로 도는 참배객들에게 두툼한 옷은 필수 준비물이다. 사진은 바코르 시장에서 만난 한 가족으로 보이는 참배객 일행.



라싸 조캉 사원 앞 한 3층 카페에서 내려다본 바코르 광장 모습 / 우측 흰벽과 금색, 붉은 색이 어우러진 건물이 조캉사원이다.



라싸 조캉 사원 앞 / 오체투지하는 참배객들. 사진을 직어도 되겠느냐고 묻자, 절을 멈추고 3명이 서서 포즈까지 취해준다. 그대로 절하는 모습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그들은 다시 하던 절을 계속한다. 십만배를 올리는 사람도 있다는데 보통 8개월에서 10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라싸 조캉 사원 앞 / 바코르 광장의 참배객들과 역시 참배하기 위해서 찾아온 젊은 스님들



라싸 조캉 사원 앞 / 절을 올리는 참배객과 그들의 식구로 보이는 어린이들



라싸 조캉사원 내부 / 티벳 설을 이틀 앞두고 사원 내부 청소를 하다가 쉬고 있는 라마승들



라싸 조캉사원 내외부 / (좌상) 멀리 포탈라가 보인다. (좌하) 큰 오목거울을 이용해서 햇볕을 모아서 물을 끓이는 이 장치는티벳의 사원마다 볼 수 있었다. (우상) 조캉사원 내부의 라마승들 (우하) 조캉사원 황금 지붕



라싸 조캉사원 앞 바코르 광장 / 타면서 향내가 나는 나뭇가지나 풀을 커다란 향로에 던져넣고 기원하는 티벳인들. 광장에는 향나무가지나 향풀을 파는 상인들이 많이 있다. 작은 손가방 만한 향나무 1봉지의 가격은 1위엔(130원 정도)



(좌) 라싸 조캉사원 앞 / 야크 기름으로 불을 켜두는 곳과 풍선 사는 아이들
(우) 티벳 설날 포탈라궁에 참배하기 위해 줄을 선 티벳인들의 모습 / 명절날 티벳인들에게 무료로 입장이 허락되는 듯 보였다. (우리 입장료는 한 사람당 100위엔(13,000원 정도)



라싸 포탈라궁 앞에서 / 라싸 방문 둘째날, 처음 포탈라궁를 찾았을 때는 설날 개방을 앞두고 내부를 청소하기 위해서 인지 문을 닫았다. 당일 포탈라궁 앞에서 일행 중 한분이 찍어준 사진. 셋째날 체탕으로 떠나기 전에 이 안을 구경할 수 있었다.



라싸 포탈라궁 / 인상적인 궁 내부의 문과 장식물



라싸 포탈라궁 / 궁 안에서 만난 티벳 사람들



라싸 포탈라궁에서 내려다본 전경 / 포탈라궁 앞 바로 밑에 있는 빈 집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은 빈 집들이 방치되어 있다.



프러샨블루빛 하늘과 눈부신 포탈라궁



라싸 드레풍 사원 / 사찰에는 야크 기름을 이용해서 늘 불을 켜둔다.
라싸에서 서북쪽에 위치한 드래풍 사원(Drepung Mon\astery)은 송첸 감포 시대 이후 세력이 약해진 불교를 다시 일으키고자 애썼던 총카파의 뜻을 받들어 1416년 총카파의 제자였던 장양초제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드레풍은 티벳어로 '쌀더미'라는 뜻이다.



라싸 드레풍 사원 외부 사진 4컷



라싸 드레풍 사원 내부 / 라마승들이 예불을 드리는 곳으로 보인다.



라싸 드레풍 사원 / (좌상) 드레풍 사원에서 내려다본 라싸 시내. (우상) 악보를 보면서 긴 티벳 전통 나팔을 부는 연습중인 젊은 라마승. 그 앞에 있는 사람은 가까이에서 본 악보는 처음 보는 기호였다고 말해준 일행 중 한 사람. (좌하) 사원 밑 길을 지나가는 양떼. (우하) 특별한 질감이 느껴지는 사원 회색 벽면.



라싸 드레풍 사원 / 야크 기름 불꽃. 사원 내에서는 봉투 안에 든 기름 덩어리를 잘게 부수고 있는 참배객들이 자주 보인다. 이들은 부서진 작은 기릉 덩어리를 불꽃이 피는 그릇 주변에 넣고 참배한다.

 

 

 

[티벳 여행기 03] 체탕의 샤미예 사원, 그리고 얌드록쵸로 가는 길




라싸에서 체탕으로 가는 길 / 이동하는 중에 야크 보다는 양떼를 자주 만났다.


2월 9일. 오늘은 음력 설과 티벳력 설이 모처럼 겹쳐서, 중국 한족이나 티벳인이나 우리나 모두에게 설날이다. 그래서 (우리만 빼고) 음력을 쇠는 중국 한족도, 티벳력을 쇠는 티벳인 장족도 오늘부터 설연휴에 들어간다. 이들은 한 일주일 푹 쉰단다. 덕분에 우리는 나머지 일정 동안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는데 애를 먹었다.

라싸에 도착했을 때부터 가져온 과자 포장지 등이 붕어빵처럼 부풀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낮은 기압 때문에 내부 체압을 받은 우리 몸도 저렇게 부풀어 오르고 싶은지 모를 일이다. 고산증세로 일행 중 두 사람이 처음 라싸에 온 날 입원해서, 이튿날 한 사람은 퇴원했으나 다른 한 사람은 마지막 라싸를 떠날 때까지 그곳 인민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티벳여행 중에는 특히 고산증으로 인한 뇌수종과 폐수종 등을 조심해야 한단다. 가이드가 나눠주던 고산증 예방약을 '다이아목스'에서 '홍경천'으로 교채하는 배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대가 높은 시가체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다 고산증을 느꼈다. 즉 대부분 파란 입술을 하고 다녀야만 했다.

이틀을 라싸에서 묵은 일행은, 전날 방문했으나 문이 닫혀있던 포탈라궁을 오전에 들렀다.
지대가 높고 공기가 맑아서인지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은 더 이상 깊어보일 수가 없다. 어릴 때 달라이라마는 춥고 어두운 이곳을 싫어했었다고 했던가. 가이드북에는 손전등을 준비하라고 적혀있었지만 그 정도로 어둡다는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입구 마당에는 설을 맞은 티벳인들이 참배하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단체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체탕을 향해서 출발했다.
원래는 체탕 가는 길 중간 다낭 근방에서 배로 얄룽창포를 건너 사미예 사원을 방문해볼 예정이었지만 강에 바람이 많이 불고, 설날이라 배편 사정이 여의치 않는지 선착장에 내려가서 협상을 하던 가이드가 돌아와 호텔로 바로 가자고 한다.
라싸를 출발한지 3시간 후에 도착한 체탕의 'Shannan Post Hotel'에 짐을 내려놓고, 바로 사미예(Samye)사원으로 갔다. 강을 가로질러 건너지 않은 탓에 빙 돌아서 간 셈이니, 창밖으로 삭막한 사막과 돌산 만을 바라보며 길고 험한 길 위를 덜컹거리는 버스로 시간반을 더 가야 했다. 더한 문제는 그 사원의 라마승들이 벌인다는 '챰'축제 행사가 설날 예정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연휴로 일부 사원 문이 아예 닫혀있다는 데에는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니차가 죽 걸려있는 사원 안쪽 벽과 경내를 대충 둘러보고, 만난 학승들과 웃으며 함께 서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체탕에 대해서 아주여행사의 인터넷 정보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체탕(澤當)은 라싸와 200km 정도 거리에 있고, 해발 3400m 이다. 산남(山南)지역의 행정 중심이며, 서쪽으로는 라싸(拉薩)와 통하고, 동쪽으로는 빠이(Bayi/八一), 남쪽으로는 초나(Tson\a/錯那)로 통하는 교통 요지이다. 기후는 온난하며, 얄룽 창포 강변의 비옥한 토지로 인해 농업을 위주로 하고 있다. 풍성한 농산물에 사과 수출 등 티벳의 곡창지대라 부른다고.


티벳 여정 지도 / 사천성 성도 2박(첫날, 마지막 날), 라싸 3박(둘째날, 셋째날, 여섯째 날), 체탕 1박 (넷째 날). 시가체 1박(다섯째 날)

사미예(Samye) 사원에 도착한 일행과 타고온 미니 버스 / 사미예 사원은 다낭(札囊)현 얄룽 창포의 북쪽강변에 위치하고, 779년에 지었으며, 티벳 최초로 출가한 승려들이 있었다는 사찰이다. 적송덕찬(赤松德贊)은 강력하게 숭불정책을 폈으며, 또한 귀족 자제 7명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승려가 되게 하여, 사미예 사원으로 보냈는데, 이렇게 해서 제 1대 라마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후에 그는 또한 고승을 초청해서, 불경 번역 및 불경강의를 부탁하여 이때부터 티벳에 불경이 있게 되었다고.



사미예 사원 안쪽 벽에 걸린 마니차



사미예 사원의 부도탑



사미예 사원 지붕 / 사미예사원은 최초로 불상(佛像), 불경(佛經) 그리고 승려(僧人), 이 삼보(三寶)가 구비된 사찰이다. 기록에 의하면 사미예 사원의 원 면적은 11만㎡이고, 대소 전당을 모두 합쳐108채 이었으며, 규모가 하도 커, 사람들은“사찰로 만들어진 성”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겨우 주전만 비교적 양호하게 보전되었으며, 아래층에 보존이 잘된 사미예 사원 전경(全景) 벽화가 남아 있어 과거 사찰의 규모와 건축 배치 상황 등을 알 수 있다.



사미예 사원 경내 부도탑 2



사미예 사원에서 만난 학승들 / 주변 정리를 하거나 담소 중인 젊은 라마승들을 만나다. 대부분 애띄고 밝은 모습이었다.



사미예 사원에서 만난 학승들 2 / 일행중 한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는 일에 흔괘히 응했다.



사미예 사원 정문 앞 / 무표정한 얼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듯한 시선, 참배객으로 보이는 그는 오랫동안 한 자리에 같은 자세로 (왼손으로 잡고 있는 그릇(?) 위에 오른손 주먹을 빙빙 돌리며) 기원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미예 사원 정문 앞 광장 모습 / 명절인데에도 사람들의 왕래는 극히 적었으며 광장 앞에 있는 허름한 여관에는 젊은 애들 둘이서 빈집을 지키고 있었다.



사미예 사원 정문 앞 광장 모습 2 / 일행 중 한 사람이 광장 한켠에 있는 벽의 탱화를 구경하고 있다.



체탕의 Shannan Post Hotel 로비에서 / 오랫동안 차 속에서 구부리고 있던 피곤한 몸을 기체조로 풀어본다.



체탕에서 간체로 향하는 길 / 다음날은 버스로 8시간 이상의 이동이 내정되어 있어서, 체탕에서 불과 10Km 떨어져있다는, 티벳 최초의 궁전-윰불라강(Yumbulagang) 방문을 포기하고, 아침 식사 후 바로 얌드록쵸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사진 우측 마을에 있는 한 티벳 가옥을 방문하다.



체탕에서 간체로 향하는 길 위에서 2 / 동네 한 켠 룽다와 탈쵸(우리 솟대와 비슷함)가 걸려있는 향 피우는 곳 앞에서 일행과 함께



소젖을 짜는 아낙네



방문한 집 앞에서 만난 티벳 남자



야크 똥 건조 작업(?) / 야크 똥을 납작하게 만들어서 담벼락에 붙여놓고 말리고 있는 광경. 불을 피우는 원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야크는 그래서 티벳인들에게는 버릴 게 없는 참 중한 동물이다. 그래서 그만큼 야크를 아끼고 사랑한다.



체탕에서 간체로 향하는 길 위에서 만난 티벳 소녀



얌드록쵸(Yamdrok-tso) 길에서 만난 노인



빛나는 비취색의 얌드록쵸(Yamdrok-tso)/ 얌드록쵸는 티벳의 4대 신성한 호수 중의 하나. 나머지 셋은 '라모 라쵸', '남쵸(Nam-Tso/하늘호수)', '마나사로바(Manasarova)' 등이다.



얌드록쵸(Yamdrok-tso) 2 / 이 호수는 '분노한 신들의 안식처'라고 하여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전갈모양을 한 웅장한 자태의 이 호수는 짙은 청록색을 띠고 있으며 물이 흘러들지도 빠져나가지도 않는다고 한다.



얌드록쵸(Yamdrok-tso) 3 / 얌드록쵸 변을 따라 지나가는 양떼.



얌드록쵸(Yamdrok-tso) 4 / 부분적으로 옅은 얼음이 얼어있는, 이 아름답고 경이로운 호수 뒤로 멀리 만년설이 얹힌 히말라야 봉우리가 보인다.



캼바라 고개 / 돌탑들이 쌓여 있고 룽다와 탈쵸가 히말라야의 바람을 맞아 휘날리고 있는 캄바라(Kambala)고개. 갑자기 높이 올라왔기 때문에 대부분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이 고개를 넘어서 남서쪽 방향으로 간체(장쯔)가 있다.

 

 

 

[티벳 여행기 04] 갼체(Gyantse/江孜)의 쿰붐사원과 드종요새



01

갼체(Gyantse/江孜/장쯔) 가는 길 / 캄바라(Kambala)고개를 지나 갼체로 향가는 길. 일행이 타고 간 미니 버스.


오늘은 갼체의 쿰붐사원과 드종요새를 둘러보고 시가체까지 가야한다.
갼체에서 마땅한 숙박처를 확보하기 못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아무튼 갼체를 지나 시가체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여정 5일째 날, 부처가 아버지라 아예 성이 없다는 티벳인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계속된다.

갼체(江孜)와 시가체에서 일행들은 고산증에 시달려야 했다. 일부는 토하고나서 식사를 전혀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지대가 높은데다가 오래 차를 타서 피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대목에서 누룽지를 가져오신 60대 어르신들의 신세를 지는 젊은이들이 많았으니...

갼체(Gyantse/江孜)는 티벳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며 라싸에서 서남쪽으로 254km 거리에 있고 해발은 3950m이다. 연초하(年楚河)와 조상각산(祖常閣山) 사이에 위치하고, 육백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도시이다. 초기의 갼체(江孜)는 토지는 비옥하지만 편벽한 산촌에 불과 했었다.
토번왕조(吐蕃王朝)가 망하자, 티벳은 분열되기 시작 했는데, 이때 백활찬보(白闊贊普)가 갼체(江孜)에 궁을 짓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갼체(江孜)를 영웅성(英雄城)이라 부르는 이유는 과거 영국군이 이곳에 침입했을 때 갼체(江孜) 백성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후의 탄환과 양식이 떨어질 때 까지 싸웠으나 싸움에 패배하자 절벽에서 뛰어 내려 순국(殉國)했는데, 이를 기념(紀念)하기 위해 영웅성(英雄城)이라 부른다.
현재의 갼체(江孜)는 이미 옛 모습을 회복했으며, 티벳 양탄자 생산지로서도 유명하다.
갼체(江孜)역시 교통요지인데, 라싸(拉薩) 및 시가체(日喀則)에서 야동(亞東)을 갈 때,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한다.(지금은 시가체에서 라싸로 바로갈 수 있는 길을 놓고 있는 중이었다) 갼체(江孜)현 내에는 쿰붐사원(백거사/白居寺)및 드종요새(종산포대/宗山砲臺)외에도 농민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티벳의 다른 마을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다.

아래 글은 친구들 카페에 올라온, 내 친구 설촌 김성재씨의 티벳 관련 글입니다.
그는 전에 '북한에 소보내기 운동'에 참여하는 일로 관련 사진을 사진수첩에 소개한 적이 있는데, 좋은 내용의 글이어서 토만사 회원들이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여기에 옮겨싣습니다.

티벳족은 갑골시대(은나라시대) 강족(羌族)이란 이름으로 나온다.
강(羌)자는 양(羊)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 모습이다. 이들은 그 전부터 유목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은 중국의 하-은(상)-주 삼대로부터 기록에 나오는데, 중국과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살았을 것이다. 이후 그들은 중국 세력에 밀려 고원지대까지 올라갔으리라. 이들은 갑골문에 은나라 군대의 포로가 되어 나라제사의 희생으로 쓰였던 기록이 자주 나온다. '인신희생'인 것이다.

이들은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무너뜨렸을 때 조직적으로 참가한다.
우리가 낚시꾼으로 잘 알고 있는 강태공이 바로 이 종족의 후손이다. 姜太公은 은나라를 쳐부순 공으로 주나라 때 제후로 봉하여져 산동의 제나라의 왕(제후)이 된다. 姜은 강족 출신의 성씨란 뜻이다. (과거에는 귀한 성에 女자가 들어갔다.) 산동의 제나라는 토착인은 동이계열이며, 나라를 만든 이는 강족, 이들이 중국민족과 화해하기 힘든 정서를 지니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이 역사에 다시 크게 등장한 것은 몽골 칭기스칸 이후다.
몽골은 유목민으로 라마교를 믿었다. 티벳인은 지배집단의 일원으로 중국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티벳의 퐁속은 유목계열의 풍속과 불교의 풍속, 이 둘이 근간을 이루고 있고. 지금 지배적인 풍속은 고급문화인 불교계열이다. 우리 문화에 무속-불교-유교가 혼효(混淆)되어 있으나, 그것을 구별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티벳의 문화를 그렇게 분석해 본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산동 지역은 우리 문화의 또 하나의 파이프라인이었고, 몽골지배 아래 원나라를 통해 티벳의 습속이 고려에 유입되었으므로 우리와 티벳의 관계는 먼 옛날부터 결코 적은 것이 아니라 하겠다. 원각사 13층 탑은 바로 티벳인과의 관계를 비석으로 증명해주는 예에 불과하다.

중국공산당이 장정기간(만리에 이르는 퇴각작전 기간) 중국공산당은 이들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었다.
인민을 사랑한다는 중공군은 이들이 피억압민들이므로 당연히 자기네를 지지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티벳인들은 중국인들의 모든 일에 반항하는 습속을 지니고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중공당국은 장정기간 내내 이들을 포함한 소수민족에게 곤란을 당하였다. (소수민족으로서 중공당국에 협조한 조선족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중국은 이후 소수민족을 철저히 관리하기로 작정하였고, 티벳인의 불행은 그 후에 닥쳐온다.

물 한 모금, 양젖 한 사발만 있으면 모든 걱정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그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극히 다른 방식의 삶만으로도 그들은 주목받고 있다.

(이상이 김성재씨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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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백거사) / 시(市) 중심 지역에 위치하고, 15세기에 창건 되었으며, 그 이후로 꾸준히 증축되었다. 티벳의 각 교파(敎派) 에서 어느 정도 동안 모두 점용했었기 때문에 백거사(白居寺)의 건축 양식은 황(黃), 백(白), 홍교파(紅敎派)의 예술특색이 종합되었다. 사찰 내의 대전당(大殿堂)과 백거탑(白居塔)은 참관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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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Gyantse) 쿰붐 사원 내부 / 대전당(大殿堂) 중앙에 석가모니 불상이 놓여져 있는데, 2만 8천근(斤)이 넘는 황동(黃銅)을 사용했으며 그 위에 다시 도금을 입혔는데, 매우 화려하다. 대전(大殿)내에는 그 밖에도 몇 칸의 작은 불전(佛殿)이 있는데, 천수관음상(千手觀音像)과 라마의 좌상(坐像)등을 모두 나무로 만들어 모셔 놓았다. 대전당의 석가모니 불상은 입구에서 촬영비를 지불했음에도 쵤영을 못하게 했다. 대전 안이 좁아서 그 큰 불상을 바로 발밑에서 위로 쳐다보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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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안 / 사원 주변 외벽을 따라 죽 마니차가 안치된 모습은 여러 다른 사찰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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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 입구에 있는 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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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안 / 좌우 사천왕상의 표정이(특히 눈이) 서로 다르다. 불상 중에서도 눈이 크거나 튀어나와 보이는 것은 인도의 영향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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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백거탑(白居塔) / 십만탑(十萬塔)이라고도 부르며, 1414년에 짓기 시작해서 10년 만에 완성되었는데, 탑이 곧 사찰이며, 티벳의 탑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탑은 총9층인데, 4층까지는 4면8각형이며, 5층부터 탑 정상까지는 원형이다. 면적 은 약 2200㎡이고, 층층이 모두 108개의 전당(殿堂)이 있으며, 전당(殿堂)내에는 벽화와 불상이 있는데, 모두 다 중국, 인도 및 네팔의 특색이 융합된 것이다. 한 전당 안에 모셔진 특이한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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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백거탑(白居塔) / 전당(殿堂)내의 불상이 10만개가 넘는다고 해서 십만탑 (十萬塔)이라고 하는 것이다. 백거탑(白居塔)의 건축 양식은 다른 사찰과는 좀 다르다. 특히 탑 정상의 부처 눈은 거의 네팔 풍에 가깝지만 탑내의 불상 및 조각은 그렇지가 않다. 한 전당 내에 모셔진 머리와 팔의 갯수가 많은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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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내 / 작은 방마다 하나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는 한 전당에 들렀다가 참배를 마치고 나오는 티벳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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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 대전당과 10만개의 불상이 있다는 백거탑. 이 탑(사원) 입구에서 오래 기다려야 했다. 식사라도 하고 오는지 늦게 나타난 젊은 라마승은 일행들에게 사진촬영요금을 일일이 챙겼다. 사진을 안 찍겠다는 사람은 카메라를 뺐다싶이해서 입구에 보관시켰다. 입구 계단을 막 올라서면 석가모니 대불이 모셔진 대전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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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내 / 느긋한 표정의 두 참배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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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앞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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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정문 / 문이 닫혀 있는 곳은 정문 뿐만 아니라 내부 각 사원의 입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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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처럼 목덜미에 갈기가 수북하게 나있는 개, 티벳탄 마스티프 / 한 때 천장대에서 지금 독수리가 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사납고 표독스러운 구석이 보이지 않아서 천장과 연관지어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 개는 코를 박은채 잠에 빠져있어서 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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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내 / 역시 입구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참배객 중 한 분. 티벳인들의 열굴에서는 따가운 햇빛에 익은 볼, 특히 광대뼈 부근이 붉게 탄 것을 볼 수 있다. 햇빛이 너무 강하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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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내 / 느긋하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참배색 일행.우리도 전에 시골에서는 이런 표정을 만난 적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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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내 / "도대체 이 사람은 지금 뭘하고 있는 거야?" - 참배객을 따라온 한 어린이가 궁금한 표정으로 필름을 갈아끼우고 있는 일행 중의 한 사람(사진작가 이혜선씨)을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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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내 / 이곳 역시 경내에 아크 기름 불꽃을 켜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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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내 / 스님들이 단체 수련하는 곳으로 추정되는 사원 내의 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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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쿰붐 사원 앞 주차장에서 / 뒤쪽 산능선을 따라 보이는 것이 드죵 요새의 뒷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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갼체(江孜) 드종 요새 / 갼체(江孜)현 중심 산 상에 위치하며, 14세기 토번왕조(吐蕃王朝)때 이 지방의 왕이 종산(宗山)위에 천연 요새 인 갼체 종(宗)을 세웠다. 19세기에 신무기로 무장한 영국군이 쳐들어 왔을 때 갼체 시민들은 극렬하게 저항했지만 갼체(江孜)시민들의 무기는 영국군에 비해 너무 조잡했기 때문에 강약의 차이는 확연했었다. 결국 영국군에 포위되어 최후에는 대부분이 절벽으로 뛰어내려 순국했다. 종산(宗山)위에는 아직도 당시의 포대가 있으며, 성곽의 외관도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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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Shigatse)의 타쉬룬포사원


시가체(Shigatse/日喀則)의 'Manasarovar Hotel'은 그곳에서는 제일 큰 호텔로 더운 물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다. 감기가 겹치면 더 힘드니 가급적 샤워, 머리 감기를 삼가하라는 가이드 말이 있었지만, 이제 모양새는 티벳사람이 다 되어간다며 웃던 일행은 대개 이곳에서 샤워를 했다. 대신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철저히 말리고 바깥 출입을 하라는 가이드 말을 순순히 따랐다. 티벳 여행을 자주했던 분 왈, 건조한 날씨 때문에 내의를 한 달 이상 입어도 냄새가 안 난다고 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몇사람씩 택시를 나눠 타고 타쉬룬포 사원으로 향했다.
이 사원 앞 광장에도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너무 일찍 왔는지 사원 문이 열리지 않아서 마니차가 즐비한 사찰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먼지가 풀풀 날리는 흙길 위로 지성으로 오체투지를 하면서 사찰 주위를 도는 세 여인을 볼 수 있었다.

타쉬룬포사원(Tashilhunpo/자스룬뿌사/札什倫布寺)은 시가체(Shigatse/日喀則)시내의 서남쪽 니마동 산(泥瑪東 山)의 산기슭에 위치한다. 사찰은 산을 의지해서 지었고, 겹겹의 궁전(宮殿)과, 사방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황교(黃敎)-겔룩파- 사대사찰 중 하나인데, 포탈라궁(布達拉宮)보다 아름답다.
"타쉬룬포"는 티벳어로 복(福), 길상(吉祥)의 모임이란 뜻이다. 이 사찰은 달라이 라마 1세가 1447년에 창건하였으니 이미 5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 1600년 4세 판첸(班禪)라마가 직무를 인계받아, 1차 대규모 증축 공사를 진행 했는데, 이때부터 타쉬룬포사 (札什倫布寺)는 판첸(班禪) 라마가 정치 및 종교 활동을 처리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사찰의 면적은 약 20만㎡, 많은 진귀한 문물(文物)이 보존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27미터 높이의 대강파 불좌상(大强巴 佛座像)이 단연 눈에 띈다. 사찰 안의 이 좌상(座像)때문에 많은 경당(經堂)이 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

타쉬룬포사 앞에서 토속상품을 판다는 상인들은 설연휴로 다들 철시를 하고 빈 좌판들이 길옆으로 줄을 서 있다. 점심 식사 후, 일행은 다시 라싸를 향해 출발했다. (원래 스케줄은 이곳에서 바로 공가공항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었으나 고산병으로 라싸 시내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 분과 그 친구들 두 사람을 픽업해야 하기 때문에 일정을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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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앞 광장 / 사원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사원 앞 광장에는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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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 사원 울타리를 따라 비치된 마니차.사찰을 돌면서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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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 사원 주변 외벽을 따라 비치된 마니차를 돌리며 걸어가는 한 노인.
이 노인을 따르는 양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 양은 길 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두려운지 멈춰섰다 가다를 반복하며 주인 뒤를 따랐다. 사진작가 한 분이 이 노인에게 인사를 하고 사탕을 하나 건냈더니, 이 노인은 그 사탕을 둘로 쪼개서 한 조각은 염소에게 먹이고 나머지 절반을 자기 입에 넣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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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 사원 내외부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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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주변 / 사찰의 왼편 언덕. 사원의 주위에는 군데군데 향불을 피우는 곳이 있다.지나는 참배객들이 이곳에 향나무와 풀을 넣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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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주변 / 흙길 위에 오체투지를 하면서 사원 주변을 돌고 있는 세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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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 아침 햇살을 받은 타쉬룬포 사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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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 사원 입구에서 만난 젊은 라마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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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내 / 말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는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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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내 / 새순이 돋은 나뭇가지를 씹어보는 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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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내외부 / (좌상) 사원으로 향하는 참배객 행열. 사원 안쪽 마을로 통한 길과 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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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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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 휴대전화 사용중인 젊은 라마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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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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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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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내부 / 마을로 통하는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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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 경내에서 마주친 라마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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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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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의 타쉬룬포사원 앞 길 / 티벳 방문 기념품은 대개 라싸의 바로크 주변이나 이곳 시가체 타쉬룬포 앞길에서 사라는 가이드북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설연휴로 대부분 철시하고 빈 좌판대만 길 양편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택시 안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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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에서 라싸로 돌아오는 길 / 얄룽창포. 창포는 강(江)이라는 뜻의 티벳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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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에서 라싸로 돌아오는 길 / 중간 쉬는 곳에서 만난 아이. 노래를 아주 잘하는 이 아이는 금번 티벳여행 중에 가장 그 인상이 기억 되는 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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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체에서 라싸로 돌아오는 길 / 이 사람은 일행들이 '볼 일'을 다 보고나서 차에 타려고 모여드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탈을 쓰고 노래를 시작했다. 오래 해본 솜씨인데, 그 앞쪽에 서 있던 꼬마도 꼭같이 그 노래를 따라서 불렀다. 그에게는 적선이 아니라 정당한 공연료를 지불했다. 그 노래를 따라서 부르는 이 꼬마가 귀엽기도 하고, 애처럽기도 하고... 바라보는 심사가 편치 않았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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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라싸 / 호텔에서 내려다본 라싸 시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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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의 샹바라 호텔 / 호텔 입구에서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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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의 샹바라 호텔 마당 / 매달아놓은 연등이 명절 느낌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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