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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의 장례풍속과 우리의 수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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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의 장례풍속과 우리의 수목장

외지인이 보기엔 엽기적인 티벳의 장례식 풍속을 보통 조장(鳥葬)이라 하고 중국에선 천장(天葬)이라고도 부릅니다. 인간은 자연에서 왔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로서 TIBET의 토착적인 풍속이야말로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장례풍속이라고 하겠는데 그 장례의 형식을 사진으로 보니 엽기적이란 소감이 절로 나오기도 합니다.



연기를 피우는 신호를 보내면 인육에 맛들어진 독수리떼가 모여든답니다...



시체를 잘게 잘라서 독수리가 먹기 좋게 토막을 냅니다.



독수리가 살점은 다 뜯어 먹고 뼈만 남았습니다.



남은 뼈를 도끼로 잘게 부수어 독수리가 뼈까지 깨끗이 먹게 합니다.

이상은 최근의 티벳의 장례모습을 담은 사진들이고
아래의 사진은 오래전인 1889년에 촬영된
鳥葬모습입니다.



사진으로 볼 때 현재의
鳥葬풍습과 별반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장례풍습에는 티벳인들의 자연회귀의 불교관이 묻어있고 가족의 시신을 독수리들이 물고 하늘로 날아오를 때 종교적 희열을 느끼기도 한답니다. 약간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타지에서 시체를 땅에 묻는 모습을 티벳인들이 본다면 몹시 의아하게 여길 것 같습니다. "저렇게 아까운 걸 땅 속에 그냥 썩히다니..."하며.

다만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건, 전에 들었던 鳥葬풍습은 시체를 맹금류의 먹이로 그냥 준다는 정도였는데 도끼로 잘게 토막까지 내는 과잉친절을 베푸는 모습은 비위를 상하게 합니다.




퓰리쳐상 피처 부문 수상. 독수리와 소녀(기아에 허득이는 수단의 모습).

1994년 캐빈 카터라는 카메라맨은 많은 논란을 일으킨 이 사진으로 퓰리쳐상을 받는다.
기자는 사진을 찍은 뒤 이 소녀를 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상을 받은 뒤 3개월만에 자살하고 말았다. 

우리들의 鳥葬?

알바니아 태생으로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한국전쟁을 취재한 미국의 저명한 사진가 디미트리 보리아(1902~1990)가 6.25사변 중 찍은 많은 사진 중 비참한 한 장면이다.
죽은 자가 아닌 살 수 있는 자를 새나 산짐승의 먹이로 주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2004년 9월 국내 처음으로 열렸던 김장수 전 고려대 농대 학장의 수목장 모습


세계의 장례식 문화는
매장(동북아, 구미유럽),  화장(동남아), 조장(중앙아시아, 중남미 일부), 풍장(남태평양,유럽일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시신을 화장해 뼛가루를 나무 주변에 뿌리거나 묻는 수목장이라는 전혀 새로운 장례가 선보이고 일부에선 크게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무덤 없는 친환경적인 장례를 '에코 다잉(eco-dying)'이라 하는데, 국토가 좁아 목초지, 주거지가 묘지로 훼손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컸던 스위스에서 1999년 1월 도입된 수목장이 독일 영국 등으로 전해졌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장례풍속도 매장이나 납공당 형태일변도에서 수목장 등으로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열심히 매장을 해봐야 썩어없어지는 것이 인간의 육신 아닙니까. 썩는다는 것은 결국 미생물이나 곤충의 먹이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남의 이목만 아니라면 매장문화는 결코 우수한 문화도 아니고 조장풍습보다 과학적이다거니 별다른 장점도 없습니다.

우리의 장례문화에 만족하지 못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좁은 땅 삼천리강산을 묘지화하는 매장문화는 정답이 아닙니다. 화장 후 품격있는 납골당에 유골을 안치하는 것, 이런 방법에도 불만이 만만찮은 게 사실입니다. 우리의 바람직한 장례는 과연 어떤 방법이 돼야 할까요?

매장은 일단 아니고, 저는 개인적으로 납골당형식도 아주 싫습니다. 몇 번 다녀본 납골당은 죽은 고인을 자연의 품에 안기지 못하게 돌상자에 가둬 계속 고통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방법은 환경친화적이고 국토도 전혀 잠식하지 않는 수목장 류가 되지 않을까요.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수목장 가는 길

 

                                                                                           강  정  연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나무 아래

                               아이를 심었습니다.

 

                               아이의 이마처럼 하얗고

                               반질반질한 돌 위에

                               아버지 눈물이 붉게 새겨집니다.

 

                               손 모은 바람은

                               새파란 혈관으로 흘러들어

                               하얀 웃음을 짓게 합니다.

 

                               하나 되었던 울타리 안에

                               빚장이 열리며

                               새는 날아가버렸습니다.

 

                               햇살에 고개 든

                               초록 무지개

                               못 다한 꿈이 피어나나 봅니다.

 

                               아이가 놀던 마당 가에

                               목련 꽃봉오리 벙글고

                               한 자락 바람 스쳐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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