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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박물관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당신이 행복하지 않는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달라이 라마, 하워드 커틀러 지음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달라이 라마  하워드 커틀러 지음/류시화 옮김
김영사/2001년 11월/351쪽/9,500원

 

▣ 저 자  : 달라이 라마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가초. 티벳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이며,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고, 몇 권의 탁월한 명상서적의 저자이다.

하워드 커틀러

아리조나 의과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 피닉스에 있는 굿 사마리탄 메디컬 센터에서 정신의학 전문의 과정을 마쳤다. 또한 미국 정신의학회와 신경학회로부터 전문의 학위를 받았다. 달라이 라마와는 1982년 티벳 의학 연구 일로 인도를 방문했을 때 첫 만남을 가졌고, 그후 수년 동안 그와 대화를 계속해 왔다. 현재 피닉스에 살면서 개인 정신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 역 자  류시화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과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엮은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인도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등이 있다. 『성자가 된 청소부』『조화로운 삶』등을 번역하였다.

 


▣ Short Summary

달라이 라마와 마주앉아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끊임없는 질문들을 진지하게 던진다면 어떤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한가?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가? 외로움을 떨쳐버릴 수는 없을까? 인간은 왜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가? 삶에서 풀기 힘든 문제들을 줄일 수는 없을까? 공평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분노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어떻게 감내해야 하는가?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하워드 커틀러가 티벳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의 긴 인터뷰에서 던진 질문들이 바로 이같은 것들이다. 언뜻 달라이 라마의 해답은 잠언서들이나 가벼운 명상서적들을 겉으로 훑었을 때처럼 아주 쉽게 들린다. ‘네게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를 한 번 더 자신에게 물어보라’든가 ‘우리의 적은 우리의 스승이다’, ‘이해심이야말로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등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커틀러 박사는 더 끈질기게 파고든다. ‘어떤 이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또 행복하기도 하다’, ‘인생이 고통이라는 말은 너무 염세적이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마음껏 살아보는 것도 행복의 요소가 아닌가?’ 여기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진정하고 영원한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나와 똑같이 고통받고 있고, 똑같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들임을 이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 차 례
1. 행복에 대한 토론
2. 단순한 지혜
3. 행복에 이르는 길
4. 인간이란 무엇인가
5. 서로 가까워지는 것에 대해
6. 사랑한다는 것
7. 왜 자비심이어야 하는가
8. 우리는 무엇 때문에 고통받는가
9. 덧없음에 대한 명상
10. 마음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11. 자기 스스로 만든 고통
12. 마음의 길
13. 생각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
14.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15. 행복의 기술



행복에 대한 토론

달라이 라마는 자신은 진실로 행복하며 누구나 마음의 수행을 통해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행복이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엔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이트는 ‘신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던 듯하다’라고 못박았다. 나와 같은 수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줄곧 그런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결국 인간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마음의 고통을 평범한 불행으로 바꾸는 일’이라는 잔인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행복을 발견하는 분명한 길이 있다는 달라이 라마의 주장은 너무도 성급한 말처럼 들렸다. 서양에선 그동안 진정한 행복에 이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행복(happy)이란 단어조차도 운이나 기회를 뜻하는 아이슬란드의 ‘햅(happ)’이라는 단어에서 온 것이다. 이처럼 행복은 수수께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나 또한 서양인이기 때문에 행복이 단순히 마음의 수행을 한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내가 반론을 펴자, 달라이 라마는 곧바로 말했다.

“마음의 수행은 지성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난 이 단어를 티벳어인 ‘셈’의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셈이란 단어는 정신이나 영혼에 가깝습니다. 지성, 느낌, 생각을 모두 포함합니다. 마음의 수행을 통해 사람들은 차츰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버리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떻게 살게 될지 결코 알 수 없다. 하지만 삶에 있어서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행복을 찾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은 상식처럼 들린다. 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기 중심적이고, 심지어 남들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이 아닐까? 그러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수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불행한 사람들이 훨씬 자기 중심적이고, 사회에서 종종 외톨이가 되며, 나아가 비판적이고 적대적인 성격을 갖기 쉽다는 것이다. 반대로 행복한 사람들은 대개가 더 친해지기 쉽고, 마음이 넓으며, 창조적이고, 나아가 불행한 사람보다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좌절감을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행복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보다 애정이 풍부하고 용서를 잘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지혜

서른두 살의 나이에 은퇴해도 좋을 정도로 부자가 된 친구가 있었다. 몹시 달라진 환경에서 어떻게 지내는가 궁금했다. 그녀는 평소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정말 좋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전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그녀가 횡재를 해서 돈을 벌고 있을 즈음, 에이즈에 걸린 또 다른 친구가 있었다. 그는(물론 병에 안 걸리는 것이 좋았겠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인 후 그의 삶을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했고, 이는 성과가 있었다고 확언했다. 그는 영적인 세계를 탐구하고,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운명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두 친구의 이런 예는 행복이 바깥에 있지 않고 마음 안에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 성공을 하면 순간적으로 마음이 들뜨는 반면에 비극적인 일을 겪으면 심한 우울증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우리의 전체적인 행복은 기본 수준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과정을 ‘적응’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기본 수준을 결정하는 걸까? 또한 행복의 기본 수준을 바꾸거나 더 높이 끌어올릴 수도 있을까? 일부 연구자들은 사람들 각자가 느끼는 행복의 수준이 어느 정도는 유전적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생물학적인 요소가 행복을 느끼는 기본 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태어나면서부터 행복을 느끼는 기본 수준이 뇌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자의 경우 타고난 행복의 수준과 상관없이 마음을 변화시켜 행복의 느낌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 이유는 매순간의 행복이 대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많은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단순히 자신의 관점을 바꾸고, 자신의 일들이 더 나빠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함으로써 더욱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달라이 라마는 말한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내면의 수행이 뒤따르지 않은 한,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편안한 환경 속에서 지내더라도 당신은 자신이 바라는 기쁨과 행복을 절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반면에 당신의 내면이 고요하고 평화롭다면, 행복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갖가지 편리함을 누리지 못하더라도 당신은 변함없이 행복하고 즐거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행복에 이르는 길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수천 가지의 서로 다른 생각과 마음들 가운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키워야만 합니다. 부정적이고 해로운 것들은 줄이려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행복을 찾는 첫 번째 단계는 ‘배움’입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이 얼마나 해로운가를, 그리고 긍정적인 감정이 얼마나 이로운가를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배움의 과정을 통해 이렇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나의 행복과 미래는 내 손에 달려 있어.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선 안 돼!‘ 불교에선 인과 법칙을 하나의 자연 법칙으로 받아들입니다. 진리를 다룰 때 반드시 이 법칙을 이해해야 합니다. 바라지 않는 어떤 일이 있으면 그런 일을 일으키는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하며, 바라는 일이 있다면, 그런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과 조건을 찾아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입니다. 그 다음 할 일은 우리가 경험하는 다양한 마음 상태에 대해 이해하는 일입니다.”

내가 다양한 마음 상태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묻자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어 미움, 시기, 분노 같은 것은 해롭습니다. 이런 감정들은 우리의 정신적인 행복을 파괴하기 때문에 그것을 부정적인 마음의 상태로 여깁니다. 이 부정적인 생각은 모두 미움 때문에 생겨납니다. 반면에 친절과 자비 같은 마음은 분명히 매우 긍정적이며 쓸모가 있습니다. 따라서 친절과 자비심 같은 긍정적인 마음을 키우면 분명히 마음도 건강해지고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오후, 대화를 다시 시작하면서 내가 물었다. “긍정적인 마음을 키우는 것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걸까요?”

달라이 라마는 말했다.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사고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실제로 다르마(진리)의 실천이란 내면에서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는 것입니다. 과거에 있던 부정적인 상태나 습관을 긍정적인 새로운 상태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이나 수행이든 꾸준히 계속하여야 합니다. 수행을 통해 우리는 바뀔 수 있습니다. 나는 꾸준한 수행을 통해 그런 마음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달라이 라마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는 불과 네 살밖에 안 된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수행을 쌓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사랑, 애정, 친밀감, 자비심이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난 우리들 각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기본 능력을 갖고 있으며, 행복을 가져다주는 따뜻한 마음과 자비심을 키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가진 근본적인 믿음 중 하나는 우리에겐 자비를 베풀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이 있으며, 인간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평화롭다는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가 말을 마치자 내가 물었다. “근본적으로 친절하고 자비로운 성격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온갖 갈등과 공격적인 행동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달라이 라마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공격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지만, 그런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지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균형 잃은 인간의 지능, 지능의 잘못된 사용,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 때문입니다. 인간의 지능이 자비심에 의해 적당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면 파괴적인 영향을 줄 수가 있습니다. 재난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능 때문에 갈등이 생겼다면, 우리는 갈등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그 지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폭력적인 사건과 좋지 않은 일들이 수없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겪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인간의 기본적인 성격인 평화롭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난 믿습니다.”

인간 존재가 근본적으로 자비심을 갖고 있다는 달라이 라마의 생각은 지난 몇 해 동안 서구 사회에서 서서히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전에 그런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700년대 중반 데이빗 흄 같은 이는 인간 존재의 타고난 자비심에 대해 많은 글을 썼고, 100년 뒤 찰스 다윈도 인간이라는 종이 동정의 본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은 타고나기를 이기적이며, 공격성과 적개심이 인간 본성의 일부라는 생각이 지난 수백 년 동안 대다수의 서양인의 머릿속에 박혀져 있었다. 게다가 유명한 과학자들이 인간의 본질적인 공격 성향에 대한 믿음을 뒷받침해주기도 했다. “인간의 공격 성향은 원초적이며, 본래부터 존재하는 본능적인 성격이다.”라고 주장한 프로이드가 그 한 예이다.

하지만 최근에 이처럼 인간성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서서히 달라이 라마의 시각에 접근하고 있다. 전 세계 최고 과학자 20명이 작성하고 서명하여 1986년에 발표한 폭력에 관한 세비유 선언에서는 인간이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유전적으로 전해지는 본성이 아니며, 그런 행동은 저절로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현대의 연구가들은 많은 연구를 통해 인간이 공격성을 타고났다는 주장을 반박할 뿐 아니라, 인간이 선천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린다 윌슨 같은 사회학자들은 기본적인 생존본능 때문에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 이론은 인간이 생존본능 때문에 적대감과 공격성을 갖는다고 주장한 초기 사상가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백여 차례에 이르는 자연 재해를 검토한 결과, 윌슨 박사는 재난의 희생자들이 가진 강한 이타주의적인 성향을 발견하였다. 마치 그것이 재난에서 회복되는 하나의 과정처럼 보였다. 그녀는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행동함으로써, 나중에 정신적 충격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심리적 문제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인간의 본성이 공격적이 아니라 자비롭다는 결론을 내리면,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는 곧바로 달라진다. 사람들이 적대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고 보는 대신 그들이 기본적으로 자비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안심하고 그들을 믿을 수 있고 편한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다. 또한 이런 마음은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


서로 가까워지는 것에 대해

내가 달라이 라마에게 외로움을 느끼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어떻게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물음에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모든 인간 존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곧바로 그 사람과 가까운 관계인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나의 어떤 행동에 대해 상대방이 존경심을 잃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볼까봐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는데, 내게는 그런 마음이 비교적 적은 것도 외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난 그런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보통 사람이 그런 태도를 가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달라이 라마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기본적으로 자비심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곧 자비심을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들고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혹시 상대방이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도 이미 열린 마음으로 다가갔기 때문에 융통성 있게 그 사람을 대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비심이 없다면 가장 친한 친구가 다가와도 당신은 불편한 생각만 들 것입니다.”

자신이 전혀 외롭지 않다는 달라이 라마의 말에 내가 놀란 이유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 성인의 4분의 1이 조사를 받기 전 2주 동안 적어도 한 번은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외로운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표현하는 데 문제를 갖고 있으며,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고, 타인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대화 중에 상대방의 신호를 받아들여 반응하는 사교적 기술이 모자랐다. 이 연구는 그런 사교적인 기술을 익히는 것이 외로움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방법은 사교적인 기술이나 외면적인 행동을 바꾸는 일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곧바로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좋아했다. 자비심의 가치를 깨닫고 그 가치를 키우는 일이 그것이다.

인간관계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친밀한 관계가 인간 존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데 동의한다. 친밀감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일상 생활에서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달라이 라마의 방법에 따른다면, 먼저 친밀감에 대해 배우는 것이 합리적일 듯하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친밀감을 아주 구체적으로 정의하진 않지만, 친밀감이 신체적인 가까움을 넘어선다는 것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친밀감(intimacy)이라는 말의 어원은 ‘안’ 또는 ‘가장 깊숙한’이란 의미를 가진 라틴어 ‘인티마(intima)'이다. 그것을 전제로 댄 맥아담스 박사는 이렇게 정의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려는 소망은 자신의 가장 깊은 자아를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소망이다.”

인간의 삶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사람들이 친밀감을 경험하는 방식도 무수히 많다. 이런 깨달음은 우리에게 큰 기회를 준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무한한 자원을 갖고 있다. 친밀감은 우리 주변 모든 곳에 있다.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는 것이 행복이라면, 친밀감은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이 좋다고 여기면서 사는 것이 분명히 합리적인 삶의 방식이다. 달라이 라마가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친밀감은 많은 사람들, 다시 말해 가족, 친구 심지어 낯선 사람에게까지도 기꺼이 마음을 열고 모두 같은 인간 존재라는 생각 속에서 그들과 진실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

나는 달라이 라마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염두에 두는 기본 원칙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낯선 사람, 가족, 친구, 또는 연인과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원칙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비심을 갖고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자비심을 키우는 여러 방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감정이입입니다. 알다시피 감정이입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난 내가 티벳인이고, 남들과 피부색과 종교와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차이점을 강조하기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많다는 생각을 갖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런 차원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 서로 대화를 나누기가 훨씬 쉽지요.”

나는 결혼한 부부들이 왜 자주 싸우는지 궁금했다. 달라이 라마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와 문제를 갖고 있다면, 그 관계의 바탕이 되는 기초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군요. 첫 눈에 상대방의 매력에 끌려 맺어진 관계는 매우 불안정합니다. 많은 부분 순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느낌은 곧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되는 관계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단단한 밧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차원에서 두 사람 사이에 진정한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서로를 알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할 때 많은 문제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진정으로 만족스런 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최선의 방법은 상대방의 깊은 심성을 이해하고, 단순히 겉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아는 대신 깊은 차원에서 그 사람과 관계를 갖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에서는 자비심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적인 매력이나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강렬한 감정은 처음에 두 사람을 하나로 묶기 위한 끈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아교 접착제가 그렇듯이 처음에 묶어준 그 끈은 영구적인 끈으로 굳어지기 위해 다른 요소들과 섞여야만 한다. 그 요소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우리는 변치 않는 관계를 만들기 위한 달라이 라마의 방법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애정과 자비심을 갖고, 인간 존재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관계를 맺는 일이다. 그럴 때 우리는 연인이나 배우자뿐 아니라 친구와 친척, 낯선 사람과도 깊고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사실 모든 인간 존재와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며, 기회인 것이다.


왜 자비심이어야 하는가

나는 달라이 라마의 삶에서 자비심이란 것이 단지 따뜻한 마음과 애정을 키우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좋게 갖기 위한 것만이 아닌,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달라이 라마가 이해하는 자비심이 어떤 것인지 물었다. 달라이 라마가 대답했다.

“자비심은 다른 생명체에게 폭력을 쓰지 않고 해를 끼치지 않으며, 공격적이지 않은 마음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 책임감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티벳어로 ‘체와’라고 부르는 자비심의 의미 속에는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자비심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집착이 섞인 것이 있는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매우 부분적이고 편견에 치우쳐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집착에서 벗어난 자비심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 존재가 나 자신과 마찬가지로 행복을 바라고 고통을 극복하려는 본질적인 소망을 갖고 있다는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 자비심이야말로 진정한 자비심입니다.”

자비심과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질수록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이 좋아진다는 주장이 있는데, 최근에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많이 있었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데이빗 맥클랜드 교수는 학생들에게 테레사 수녀가 캘커타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찍은 영화를 보여주었다. 영화를 본 학생들은 그 영화가 자비심을 갖도록 자극을 주었다고 보고했다. 다음으로 교수는 학생들의 타액에서 면역 글로불린 A가 증가한 것을 발견했다. 이 물질은 호흡기 감염을 막아주는 항체이다.

자비심이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가치가 있다는 달라이 라마의 주장이 과학으로 입증되고 있지만, 실험과 조사에만 의지할 필요는 없다. 자비심을 갖고 남을 보살피는 것이 행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좋은 예가 하나 있다. 예순 살 가량의 조셉이라는 건축업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30년 동안 건축 일을 하며 큰돈을 벌다가 마침 불어닥친 부동산 경기 침체의 여파로 파산을 하고 25년간 이어진 결혼생활도 이혼으로 파경을 맞았다.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으나, 다행히 알코올 중독자 모임의 도움으로 술을 끊을 수 있었다. 그는 그 프로그램의 후원자가 되어 타인을 돕는 한편 적극적인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현재 작은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전처럼 큰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가지고 있는 기술로 남을 도우며 느끼는 순수한 기쁨은 큰돈을 벌면서 느낀 기쁨보다 훨씬 크다고 말한다. 조셉은 이렇게 덧붙였다. “난 내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고통받는가

키사고타미라는 여인이 아이를 살리기 위한 약을 붓다에게 구했다. 붓다는 여인에게 누구도 죽지 않는 집안에서 겨자씨를 구해오면 약을 지어 주겠다고 말했다. 여자는 집집마다 돌아다녔지만 죽음이 찾아오지 않은 집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슬픔에 빠진 사람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걸 알고, 붓다에게 돌아갔다. 붓다는 큰 자비를 갖고 말했다. “당신은 혼자만 아이를 잃었다고 생각했소. 하지만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것이 죽음의 법칙이오.”

달라이 라마는 인간의 고통에 대한 자신의 접근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것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을 포함하지만, 고통을 인간 존재에게 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용감하게 우리의 문제에 정면으로 맞섰으나 해결책이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고 하여도 문제에 맞서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결국 언젠가 고통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마주칠지도 모르는 고통에 익숙해짐으로써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무심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가 다시 말했다.

“고통이 삶의 일부라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고통과 문제를 싫어하지만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바라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더니 달라이 라마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당신 생일에 사람들은 ‘생일을 축하합니다’라고 말할 겁니다. 사실 당신이 태어난 날은 당신의 고통이 태어난 날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고통이 태어난 날을 축하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더군요.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고통을 참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삼사라(산스크리트어인 삼사라는 삶과 죽음과 환생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상태에 있는 존재를 말한다. 이것은 또한 세속에 있는 인간 존재의 상태를 말하는데, 이 존재들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 존재들은 이 상태에 머물러 있으며, 과거의 행동과 부정적이고 거짓된 마음에서 생긴 카르마, 즉 업보에 의해 계속 이 상태에 머물게 된다. 우리의 마음에서 모든 부정적인 성향을 없애고 해탈하면 비로소 이 상태에서 벗어난다), 즉 깨닫지 못한 존재는 본질적으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덧없음에 대한 명상
“우리는 종종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느끼고, 사소한 일을 크게 여기고, 그런 일을 자신만 겪고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스스로 고통을 키운다.“ 이 말을 통해 달라이 라마는 삶 속에서 느끼는 수많은 분노가 큰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치료 전문가들은  이런 과정을 고통의 개인화라고 부른다. 그것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에만 신경을 곤두세운 채 모든 일을 이해하거나 오해함으로써 심리적으로 시각을 좁히는 경향을 말한다. 쟈크 뤼세랑은 이런 편협한 생각이 좀더 폭넓은 것을 암시한다고 하면서, 통찰력 있는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었다.

여덟 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뤼세랑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그룹을 조직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독일인에게 붙잡혀 수용소에 갇혔다. 나중에 수용소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 뤼세랑은 말했다. ”당시의 경험을 통해 나는 우리가 불행을 느끼는 이유는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에 놓고, 자신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는 비참한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임을 알았다. 자신의 몸 안에, 또는 머릿속에 갇혀 있는 사람은 언제나 불행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의 본질에 대해 달라이 라마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고통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 원인과 바탕을 조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첫걸음은 우리가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인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모든 사물, 사건, 현상은 매순간 역동적으로 변화하며, 그대로 정지해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변할 수밖에 없고 어떤 것도 영원한 상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만의 힘으로 똑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것들은 다른 요소들의 힘이나 영향 속에 있습니다. 당신이 어느 순간 즐거움과 쾌락을 느끼더라도 그것은 영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 또한 불교에서 ‘변화의 고통’으로 부르는 고통의 범주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덧없음에 대한 깨달음은 불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덧없음에 대한 명상은 불교의 중요한 수행이다. 덧없음에 대한 명상은 불교에서 두 가지 역할을 한다. 불교의 수행자들은 자기 존재의 덧없음에 대해 명상을 한다. 그것은 삶이란 보잘것없고,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명상이다. 이런 사색과 더불어 인간이란 하찮은 존재이며, 영적으로 해방되고 고통과 끝없는 환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때, 수행자는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이용해서 해탈을 위한 영적 수행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수행자는 더 깊은 차원에서 덧없음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모든 현상의 덧없는 성질에 대해 명상하면서 현상의 진정한 성격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런 이해를 통해 우리는 고통의 궁극적인 원천이 되는 무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마음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적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방법으로 달라이 라마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를 해치려는 사람에 대한 우리의 습관적인 반응을 이해하는 일이다. 달라이 라마는 말했다.

“우리는 적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행동 때문에 적이 불행해진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좋아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적에게 보복을 하면 일종의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그 사람 또한 당신에게 복수할 것이고, 그러면 복수극은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 복수극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얻는 결과는 양측이 모두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분노나 증오는 낚시꾼의 낚싯바늘과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절대로 이런 낚싯바늘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문제 삼으면서, 달라이 라마는 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계속 말했다. 그것은 우리 삶에 혁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새로운 관점이었다.
“일반적으로 불교는 경쟁 상대나 적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갖는가에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그것은 마음이 자비심과 행복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자신의 적에게 인내와 관용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밖의 일들은 더욱 쉬워질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한 자비심이 자연스럽게 솟아날 것입니다. 사실 적은 인내심을 수행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적이 없다면, 인내심이나 관용의 마음이 생길 가능성도 없습니다. 친구들은 대개 우리를 시험하지 않으며, 따라서 인내심을 키울 기회도 주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의 적만이 그런 기회를 줍니다. 따라서 이런 시각을 갖는다면 우리는 적들을 위대한 스승으로 생각하고, 인내를 수행할 값진 기회를 준 그들을 존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장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적들을 존경하라는 달라이 라마의 제안은 처음엔 조금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저항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마침내는 힘이 세지게 된다. 적을 만나는 것이 매우 드문 기회이고, 또 가치 있는 일이라는 달라이 라마의 말이 단순히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는 사실은 나를 찾아와 인간 관계에서 생긴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시각을 바꾸는 능력, 곧 자신의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능력은 마음의 유연성에서 나온다. 마음의 유연성은 궁극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삶의 모든 것들을 끌어안을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 충분히 살아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마음의 유연성을 갖는 일과 시각을 바꾸는 능력은 서로 관계가 있다. 유연한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볼 수 있게 한다. 또 거꾸로, 다양한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문제를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마음의 유연성을 키우는 훈련이 될 수 있다.

달라이 라마는 말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편협한 자세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티벳이 수백 년 동안 불교국가였기에 티벳 사람들은 불교가 최고의 종교이고, 모든 사람들이 불교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아주 극단적입니다. 이제 우리는 티벳을 떠나 세상의 다른 종교들과 접촉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진실에 가깝게 인도했습니다. 전 세계가 불교를 믿도록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제는 다른 종교와 만나도 긍정적이고 편안한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음식점에 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음식을 시켜 먹지만 누구도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시야를 넓히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극단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런 생각들에서 생겨나는 부정적인 결과들도 피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만든 고통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투옥되었던 유태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플랭클은 말했다. “고통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한, 인간은 어떤 고통이든 기꺼이 받아들인다.” 플랭클은 수용소에서 겪었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경험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잔혹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는가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다. 살아남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을 관찰한 끝에 그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젊거나 기운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과 경험에서 어떤 목적과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힘을 얻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것이었다.

고통의 의미를 찾기 위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 고통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또한 종교적인 세계관을 갖지 않은 사람들도 깊은 사색을 통해 고통의 뒤에 있는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마틴 루터 킹 2세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파괴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인간의 고통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를 탐구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달라이 라마에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불교 수행에선 개인의 고통을 자비심을 높이는 방법으로 이용합니다. 고통을 통렌 수행의 기회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통렌 수행이란 대승불교에서 마음속으로 그리는 수행입니다. 이 수행을 하는 불교도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떠맡고, 그들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 건강, 재산을 준다고 마음속으로 상상합니다. 따라서 질병이나 고통을 겪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기회로 삼아 이렇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나의 이 고통이 다른 모든 생명 가진 존재들의 고통을 대신하게 하소서, 이 고통을 경험하면서, 이와 비슷한 고통을 겪을지도 모르는 모든 생명 가진 존재들을 구원하게 하소서. 따라서 당신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떠맡는 수행의 기회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많은 연구자들은 통증을 느끼는 데 마음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조사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최면 실험이나 플라시보 효과 등도 높은 차원의 두뇌의 기능이 낮은 단계의 신경에서 전해지는 통증의 신호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고통을 느끼는 정도를 결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통증에 대한 자세가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강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은 단순히 철학적인 사색이 아니라, 과학적인 증거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그리고 통증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명상을 통해 통증에 대한 마음 자세를 바꿀 수 있다면, 우리의 노력이 전혀 쓸모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통증은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우리 몸을 보호할 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의 유기체이게 만든다. 손이나 발에서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우리 몸의 일부분으로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육체의 통증이 우리가 하나의 몸으로 통합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듯이, 고통에 대한 경험은 다른 사람들과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힘을 가진다. 아마 이것이 우리의 고통 뒤에 숨겨진 궁극적인 의미일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고, 우리를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과 하나로 연결시키는 요소이다.


마음의 길

내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행동을 버리고,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달라이 라마가 대답했다.

“자신 안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방법을 이야기할 때, 배움은 단지 첫 번째 단계일 뿐입니다. 그 밖에도 확신, 결단, 행동, 노력 등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배움의 다음 단계는 확신을 갖는 일입니다. 배움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변화에 대한 확신은 다시 결단으로 이어집니다. 그 다음에 자신의 결단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또한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통해 사람은 실제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변화를 위해선 노력이라는 마지막 요소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행동이나 마음 자세를 바꾸려는 의지를 가지기 위해 무엇보다 가장 효과적인 유일한 방법은 역시 부정적인 행동들이 가져오는 파괴적인 결과에 대하여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그런 파괴적인 결과를 마음속에 떠올려야 합니다.”

달라이 라마의 말은 진실인 듯했다.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일부 부정적인 행동과 사고 방식이 얼마나 강력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바꾸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서 달라이 라마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삶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더욱 건전하게 행동하기를 바라지만 때론 타성에 젖거나 변화에 대한 저항감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되는 걸까요?” 그는 의외로 쉽게 대답했다.
“그것은 그저 우리가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니 습관이 잘못 들어서 자기가 좋아하고 익숙한 일만 하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습관을 우리의 장점으로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익숙해지는 것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행동 방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다람살라에서 나는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일찍 일어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더 이상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습관의 힘 때문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하룻밤 새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요즘의 내 상태는 2,30년 전과 비교하여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물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 결과 생긴 것입니다. 난 여섯 살쯤에 불교의 교리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는데, 당시엔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사람들은 나를 가장 높은 영혼을 윤회한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열여섯 살이 되어서야 불교에 대해 어느 정도 진지한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부자연스럽고 불가능해 보였지만 40년이 흐른 지금 자연스럽고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다시피 정신적인 성장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달라이 라마의 방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긍정적인 마음이 부정적인 마음을 바로잡는 직접적인 교정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현대 행동 과학에서 인지 치료가 이것과 유사한 접근법을 보이고 있다. 앨버트 엘리스 박사와 아론 벡 박사 같은 정신요법의 전문가들이 발전시킨 현대의 인지 치료는 우리가 혼란스런 감정을 갖고 외부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가 왜곡된 생각과 비이성적인 믿음 때문이라고 보았으며, 연구자들은 환자가 왜곡된 사고 방식 대신에 정확한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고 기분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우리가 생각을 바꿈으로써 감정을 변화시키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없앨 수 있다는 과학적인 사실은 달라이 라마의 사상을 뒷받침한다. 그의 가르침은 긍정적인 마음이라는 교정 수단을 이용해, 그것의 반대편에 있는 부정적인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새로운 생각을 발전시킴으로써 뇌의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과학적인 결과까지 나왔다. 달라이 라마의 믿음과 이런 과학적 증거가 합쳐질 때, 마음의 수행을 통해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은 더욱 현실성을 가질 것이다.


생각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

분노와 미움을 물리치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달라이 라마는 먼저 이와 같은 파괴적인 감정의 성격을 살피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고통을 주는 감정엔 자만심, 거만함, 시기심, 질투, 성욕, 배타적인 마음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나쁜 감정은 미움과 분노입니다. 왜냐하면 이 감정들은 자비심과 이타적인 마음을 갖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인간의 가치와 마음의 평화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분노에도 긍정적인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비심과 책임감 때문에 분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분노가 사람을 보호하고 더 큰 힘을 줄지라도, 그 힘 역시 맹목적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분노를 터뜨려서 생기는 결과가 건설적일지 파괴적일지는 불확실합니다. 그리고 미움 자체만 볼 때, 그것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예외 없이 부정적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억누른다고 해서 분노와 미움을 사라지게 할 순 없습니다. 우리는 미움에 대한 교정 수단을 적극적으로 키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내심과 관대한 마음입니다.”

내가 물었다.
“분노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서양의 일부 정신요법에선 분노를 표현할 것을 권하는데, 그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달라이 라마가 말했다.
“일반적으로 분노와 미움은 자제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악화되고 계속 커지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감정을 경계하는 자세를 갖고 그 힘을 줄이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할수록, 더 좋은 결과가 얻어진다고 난 생각합니다.”
“분노를 표현하고 발산하는 것이 종지 않다면, 어떤 해결 방법이 있을까요?”
“내면에 만족을 느끼고, 친절한 마음과 자비심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게 되어 순식간에 분노를 터뜨리는 것을 막아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내와 관용의 정신으로 그 부정적인 감정에 맞서야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불안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달라이 라마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효과가 있는 두 가지 방법을 말한다. 첫째는 ‘문제에 해결책이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해결책이 없다면 역시 걱정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라는 것과 둘째는 좀더 폭넓은 효과가 있는 방법인데, 사람의 기본적인 동기를 바꾸는 일이다. 마음의 수행을 통해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달라이 라마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남을 위하려는 동기를 가질수록 극심한 불안을 일으키는 상황에 부딪혀도 두려워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남을 위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작은 일들에도 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럴 때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자신에게 남을 해치려는 생각이 없고 자신의 동기가 진실하다고 확신한다면 우리는 크고 작은 상황 속에서도 불안감을 줄일 수 있다.

두려움 없는 마음과 정직한 자기 평가는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자부심을 잃지 않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정직함이 부정적인 마음을 치유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달라이 라마의 믿음은 사실 최근의 많은 연구로 확인되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스스로에 대해 현실적이고 정확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빈약하고 부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을 더 좋아하고, 더 큰 자기 확신을 갖는다는 것이다.

여러 해에 걸쳐 달라이 라마는 자부심이 정직한 태도와 자기 능력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에서 생긴다는 것을 종종 내 눈앞에서 보여주었다. 그가 많은 청중들의 질문에 ‘잘 모르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그는 뭔가 아는 체하지 않고 자기 지식의 부족함을 그대로 인정했다.

틱슨에서 강연을 하던 어느 날, 달라이 라마는 논리가 특히 복잡한 산티데바의 『입보리행론』의 구절들을 설명하고 있었다. “도무지 알 수 없군요! 이 구절은 그대로 남겨두는 게 좋겠습니다. 자, 다음 구절은……” 그는 청중들 보다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경우에 잘 어울리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치아가 아주 좋지 않은 노인이 음식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부드러운 것은 먹고, 단단한 것은 남겨놓으면 됩니다.” 그 순간에도 그의 확고한 자신감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행복의 기술

행복의 기술은 많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대로, 행복의 기술은 진정한 행복이 어디서 오는가를 이해하고, 삶을 살면서 그것들을 키우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또한 내적인 수련을 통해 파괴적인 생각들을 뿌리 뽑고 차츰 친절, 관용, 용서 같은 긍정적이고 건강한 마음을 갖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충만하고 만족스런 삶으로 인도하는 여러 요소들을 확인했다. 이제 그 마지막 요소인 영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달라이 라마는 영성과 종교의 구별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인간 존재로서 우리가 가진 능력을 깨닫고, 내면을 변화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음의 수행이라고 부르는 과정을 통해 일어납니다. 나는 바로 이런 과정이 영적인 차원을 갖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영성은 종교적 믿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지구상에 50억의 인간 존재가 있으므로, 50억 개의 종교가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불교 승려인 나는 불교가 나에게 가장 좋은 종교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불교가 모든 이에게 가장 좋은 종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세계의 모든 주요 종교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종교가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려면, 수행자 각자가 자기 종교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여전히 서로 다른 종교로부터 도움과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종교들이 서로를 존중하게 만드는 방법은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달라이 라마는 행복한 삶을 위한 마지막 요소를 말했다. 그것은 바로 삶에서 영적인 차원을 갖는 일이었다. 붓다의 가르침을 통해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삶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고통과 괴로움을 참고, 나아가 그것들을 초월하는 길을 발견했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가 지적하듯이 세계의 모든 중요한 종교들은 인간에게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똑같이 줄 수 있다. 다양한 종교를 통해 폭넓게 생겨난 신앙의 힘이 수백만 명의 삶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이처럼 깊은 종교적 신앙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시기를 참고 견딜 수 있었다. 그 힘은 때로는 작고 조용한 방식으로, 때로는 깊은 변화를 주는 경험으로 작용한다.

사실 사람들의 신앙심이 깊을수록 사망률이 낮아지고 건강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수백 건의 과학적 의학적 연구가 있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깊은 신앙심을 가진 노인이 종교적 확신이 적은 노인보다 골반 수술을 받은 후에 더 멀리 걷고, 또 우울증에 빠지는 경우도 적었다고 한다. 또한 깊은 신앙심을 가진 환자들이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 뒤에 식이요법에 더 잘 적응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더 오래 건강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예도 있다.

달라이 라마는 강한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영적인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서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결론을 맺었다.

“우리는 종교적인 신앙이 하나의 영적인 차원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종교를 믿는다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신앙이 없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권리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차원의 영성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선함, 친절, 자비, 그리고 관심 같은 기본적인 인간의 특성입니다. 이런 종류의 영성은 우리가 종교를 믿든 안 믿든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는 이와 같은 두 번째 차원의 영성이 종교적인 영성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특정한 종교가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제한된 수의 인간, 다시 말해 인류의 일부분만이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 존재이자 인간 가족을 이루는 한 사람인 이상,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이 기본적인 영적인 가치를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인간 존재는 무정하고 아주 건조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고, 우리의 가족이 고통을 받고, 결국에는 사회 전체가 큰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따라서 기본적인 영성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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