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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자비 가득한 티베트에서 약육강식의 ‘세속’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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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자비 가득한 티베트에서 약육강식의 ‘세속’을 보다

 

 

정현욱의 중국은 지금|‘티베트열차’에 실은 중국의 야심

 

 

정현욱 《ⓔ人民》 기자 webmaster@minjog21.com

 

티베트에서의 열흘, 그 시간 동안의 감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건 ‘미안함’이다. 〈모독〉이라는 기행문을 쓴 한 소설가의 느낌이 이런 것이었을까. 펜을 들고, 카메라를 메고 두리번거리던 필자는 초상권 침해 범법자였다. 외계인 보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애써 평온한 하루를 살고자 하는 그들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 속물 말이다. 열흘간 티베트, 티베트인을 느끼려 했던 것은 어쩌면 오만함의 극치였는지도 모른다.                  

 

라마불교, 달라이 라마, 포탈라궁, 버터차. 티베트에 대해 일자무지한 사람도 ‘독립’ 문제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그만큼 ‘티베트’ 이라고 하면 제일의 화두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중국인 아닌 중국인으로’ 살아가는 티베트인의 비애다. 이는 티베트를 다루는 언론, 특히 서구의 시선이 대부분 그쪽으로 몰린 탓이기도 하지만, 식민지 아픔을 겪어봤던 우리가 갖는 동병상련의 감정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문제를 제외한다고 해도 그동안 우리에게 비춰진 티베트는 아름다운 풍광이나 독특한 문화 정도일 것이다.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처럼 동양 판타지 가득한 별천지로 떠올리거나, 책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와 같이 이상적 생태주의 공간으로 주장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것도 아니면, 남이 먹여준 밥을 급하게 먹듯 빠른 산업화를 겪어온 우리가 ‘꼭 한 번 가고 싶은 안식처’로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환상적인 프리즘을 통하지 않고 보다 현실적으로 티베트를 볼 수 있게 됐다. 중국령 티베트는 그 동안 감추고 있던 속살을 드러내 보이며 그렇고 그런 관광지쯤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외국인 중국 여행을 가면서 돈과 시간을 좀 더 들이면 어렵지 않게 중국의 서쪽 끝 ‘지방’ 티베트에 닿을 수 있다.

중국 언론이 ‘21세기 만리장성’이라고 떠드는 칭장철로(칭하이성∼시장성 철도)가 지난 7월 1일 개통되면서부터는 그나마 돈도 덜 들고 갖가지 편의시설도 많아졌다. 티베트로 가는 길은 불과 1∼2년 새 10배쯤 더 쉬워진 셈이다. 《오래된 미렁 아류 격으로 티베트를 소개한 책, 기사, 사진, 영상도 수두룩하다.


‘칭장철로’와 ‘푸와’에 숨은 중국의 노림수

사실 아름다운 풍경, 하늘과 맞닿은 ‘세계의 지붕’ 마을, 이색적인 유목민들의 생활, 농후한 불교문화, 자본주의 문화가 닿지 않은 미지의 세계. 티베트가 갖춘 모든 것은 사실 여행객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여행이란 행위 자체가 원래 이색 문물을 구경하는 것 아니던가. 특히 외국이라고 떠나도 똑같은 맥도널드 간판에 질린 사람들은 독특한 민족문화의 마지막 보루일 거라는 기대감을 품고 티베트를 찾는다. 하지만 아이러니인 것은 ‘다른 곳’을 갈구하며 찾아간 그 호기심은 바로 그곳을 ‘같은 곳’으로 변하게 만드는 시발이 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죄의식보다 진한 설레임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지난 8월 20일 필자는 변화하는 신 서부를 취재한다는 명목으로 칭하이성(靑海省) 거얼무(格爾木)에서 ‘하늘열차’에 올랐다.

칭하이와 시장(西藏:티베트의 중국어 명)을 잇는다고 해서 ‘칭장철로’ 라고 불리는 이 기찻길은 베이징에서는 꼬박 이틀이 걸리는 ‘대장정’이다. 지난 7월 개통된 신구간인 칭하이성 시닝(西寧)∼시장성 라싸(拉薩) 연결 노선은 전체의 약 1/3로, 총 길이가 1956km에 달한다. 서울~부산 KTX가 넉넉잡아 430km인 것과 비교하면 칭장철로가 얼마나 광활한 대륙을 횡단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중국은 1950년 티베트를 점령하고 1966년 시장자치구 지방정부를 세운 뒤 이곳을 제대로 지배하기 위해 철도 건설을 구상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1980년대에 이미 티베트열차의 1차 공정을 시작, 1984년 칭하이성 시닝~거얼무 철도를 개통했다.
하지만 거얼무에서 라싸로 통하는 기찻길은 해발 4000m가 넘는 고원지대를 통과해야 하는 데다 동토, 협곡 붕괴의 위험성이 커 쉽사리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얼마 전까지 숙원 사업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 2002년 중국 국무원은 서부 대개발 전략의 하나로 칭장철로 완공을 추진, 거얼무∼라싸 구간 공사가 그 해 6월 29일 첫 삽을 떴다. 그리고 올 해 7월 1일 마침내 티베트열차 전 노선이 ‘역사적’개통을 한 것이다.

물론 지금도 철도 운행에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요 며칠만 해도 칭장철로 탈선, 고산병으로 인한 여행객 사망 등 사고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동토 구간 붕괴 문제는 정식 개통 후 첫 겨울을 맞는 올 11월 이후가 돼 봐야 정확한 안전 검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환경파괴 문제 역시 만만찮다. 칭장철로는 중국 양대 강인 황허와 창쟝의 발원지, 무인 고원 커커시리(可可西里) 등 세계 생태환경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칭장고원 중간을 관통한다. 많은 과학자들은 수천 년 간 형성돼온 이끼 층을 파내고 땅의 맥을 끊다시피 한 철길이 칭장고원의 생태환경을 파괴할 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다. 이 지역의 환경 변화는 전 지구의 기후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게 티베트는 그런 위험요소를 감수하고서라도 놓칠 수 없는 ‘노다지’다. 티베트로 가는 칭장철로는 중국에 어마어마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가져다 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7월 24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시장성에 매장돼 있는 지하자원의 가치는 무려 100조 원을 넘는다고 한다. 거대한 인구에 최근 빠른 경제성장까지 거듭하며 ‘에너지 먹는 하마’로 떠오른 중국이 티베트의 지하자원을 개발하는 건 시간문제다. 더구나 굴뚝 없는 공장으로 외화를 쓸어모으고 있는 관광업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금광. 칭장철로가 개통된 지난 7월 한 달간 티베트를 다녀간 여행객 수만 해도 39만 명이 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50% 늘어난 수치다.

그 동안 티베트∼내륙 간 물자 운송은 항공편을 제외한 85%를 육로인 칭장공로(국도)가 담당했다. 티베트를 오가는 자원, 물자 교류는 자연히 더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서부개발로 서기동수(西氣東輸:서부지역의 천연가스를 동부로 수송), 서전동송(西電東送:서부의 수력전기를 동부로 수송)과 같은 거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중국은 지하자원의 마지막 보고인 티베트공정을 추진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시장 이란 말 자체부터 벌써 ‘서쪽 창고’를 뜻하니, 베이징 정부에게 티베트는 ‘석유와 가스가 흐르는 기회의 땅’으로 비치나 보다. 말하자면 칭장철로는 자원 운송 인프라를 위한 포석인 셈이다.


‘하늘 도시’로 가는 길, 초원을 닮은 사람들

거얼무에서만 꼬박 15시간을 달려야 하는 티베트열차를 타기 위해 새벽 6시 반부터 부랴부랴 거얼무 기차역으로 나갔다. 실제 시간으로 따지면 베이징보다 2시간 쯤 느린(중국은 베이징 기준으로 전국 시간 통일) 이른 새벽, 동이 트지 않은 하늘은 어둑어둑하다. 하지만 역전에 개미떼처럼 몰려 있는 여행객들은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들뜬 표정이다.

드디어 플랫폼에 티베트 열차가 자태를 드러냈다. 제법 세련된 여승무원들의 에스코트와 깔끔한 찻간 외관부터 지금까지 타 본 여느 중국 기차와는 다른 ‘녀석’인 걸 느낄 수 있었다. 깨끗하고 밝은 열차 내부, 꽤 레스토랑 흉내를 낸 식당 칸, 전 열차 내 금연, 끊임없이 티베트 문화와 날씨, 해발고도 상황을 소개하는 전광 게시판. 어른 발 만한 들쥐까지 돌아다니는 중국 기차도 타 본 필자로서는 티베트 열차의 실내 장식에서부터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티베트 열차는 창문이 4인용 식탁 크기만치 큼지막하다. 창틀로 막히지 않은 투명 통 유리는 맘껏 보며 사진을 찍으라고 멍석을 깔아준 것 같다. 실제로 거얼무에서 라싸로 달리는 15시간 동안 모두 800여 명이 타고 있는 15개의 찻간 곳곳에서는 창문에 들러붙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4000m 이상 고원(최고 해발 5072m)을 960km 달리는 동안 펼쳐진 풍광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키다리 산들의 행렬, 산중턱에 걸린 새하얀 구름, 파랑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하늘, 세상 초록빛은 모두 모아놓은 듯한 가지각색의 푸른 풀, 초원 위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까만 야크와 하얀 양, 제 맘대로 뛰어다니는 말, 상공을 유유히 비행하는 갈색빛 독수리. 감흥 없이 넘겼던 달력사진 속 풍경이 실제로 눈앞에 펼쳐졌다.

오염 없는 순수 자연이 발산하는 오색빛깔의 향연 속에서 뛰노는 양과 소는 마치 무릉도원의 신선 같다. 기차 속 여행객들은 사파리를 즐기는 것처럼 유리 밖 풍경을 감상하고 사진으로 찍어댄다.  
수많은 광경 중에서도 중국인들의 눈길을 잡아 끈 으뜸은 단연 초원 위에서 풀을 뜯고 있는 ‘티베트영양(藏羚羊)’이었다. 티베트영양은 베이징올림픽 마스코트로 선정돼 우리에게도 낯익은 중국의 길상동물 중 하나다.

지난해 중국은 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마스코트로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판다(Panda)와 티베트영양을 공동 선정했다. 손오공, 용 등 오히려 티베트영양보다 중국 캐릭터로 잘 알려진 후보들을 제치고 말이다. 이 사실은 흥미로운 동시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물론 티베트영양이 영험함 면에서 다른 후보들 보다 월등한 건 사실이다. 사람의 족적이 닿지 않는 해발 4600m 이상 천연고원에서 오염되지 않은 풀과 눈(雪)을 먹고 사는 신비스러운 동물이니 말이다.

하지만 티베트영양을 마스코트로 정한 중국의 진정한 노림수는 따로 있다. 당시 베이징올림픽위원회는 “판다는 세계 어디에서나 성스러운 동물로 사랑받고 있으며, 서부 초원의 티베트영양은 녹색 올림픽을 상징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판다, 티베트영양에다 물고기와 제비까지 그려 넣어 실체를 알 수 없게 된 마스코트 ‘푸와(福娃)’에 대해 실망스런 분위기였다. 그러나 “티베트는 중국”이라는 메시지는 정확히 전달했으니, 중국 정부로서는 본전은 뽑은 셈이다.

하늘로 달리는 칭장철로는 서역으로 가면 갈수록 티베트인의 모습과 맞닿았다. 철로 변에서 손을 흔드는 티베트인, 한 마리 야크처럼 가축 떼 사이에 파묻힌 사람들이 하나 둘 눈에 띄기 시작한다. 아직 유목생활을 하는 그들은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까만 천막을 띄엄띄엄 짓고 살아간다.

천막 옆에는 첨성대같이 생긴 야크 똥 무덤이 서 있다. 몇몇은 까만 천막 옆에 하얀 천막이 같이 지어져 있다. 이는 미혼의 여성들이 사는 일종의 ‘사랑채’라고 한다. 출가하기 전 친정에서 자식 2명을 출산해야 하는 여성들은 이 흰색 막사에서 익명의 남성들과 관계를 갖는다. 척박한 환경에서 정처 없이 유목하고 살면서 노동력 확보와 자손 보존이 힘들었던 티베트인에게 이는 생존을 위한 방편이었다.

티베트 경치의 아름다움에 멍하게 빠져 있던 찰나, 이 곳 역시 중국임을 확인시켜 주는 붉은 깃발이 등장했다. 고원을 내려와 점점 목적지인 라싸 시로 가까워질수록 철로 주변에는 천막집이 아닌 정착 농가가 나타났고, 줄지어 선 이 벽돌집 옥상엔 모두 오성홍기(중국 국기)가 붉은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48시간을 달려온 베이징인을 환영하는 손뼉처럼 말이다.


주인 잃은 라싸의 슬픈 웅장함

15시간 외계 여행을 하는 동안 티베트 초원만큼이나 풀어져 있던 긴장된 삶의 끈은 밤 10시 반, 라싸 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팽팽한 현처럼 조여들었다.
기차역을 나서자 귀를 따갑게 하는 호객꾼, 외국인 차림만 보고 시가를 몇 배나 뻥튀기 하는 택시, 찌그러진 깡통을 들고 달려드는 걸인들. 너무나 익숙한 관광지 풍경, 베이징보다 더 ‘베이징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이곳은 하늘열차의 종착지 라싸다.

시장성의 성도(省都)인 라싸에 대한 첫인상은 ‘인종집합소’ 같다는 것이었다. 생김새가 서로 다른 중국인 한족과 장족(티베트족)에다가 서양인, 동양인 관광객이 뒤죽박죽 운집해 있었다. 실제로 라싸 시 인구는 2000년 통계로 약 47만 명인데 지난 7월 한 달만 해도 39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왔다고 하니, 상주인구와 여행객이 반반이다. 거기다 장사 등을 목적으로 들락거리는 타 지방 중국인들도 많은 걸 따져 보면 라싸는 주인보다 손님이 더 많은 도시인 셈이다. 

물밀 듯 들어오는 관광객과 유입 인구 덕(?)에 라싸는 최근 2∼3년 간 천지개벽이라 할 만큼 놀라운 속도로 개발됐다. 현지 사람들은 “과거 30년보다 최근 3년 동안의 변화가 컸다”고 말했다.
관광지 편의시설, 통신인 프라, 식당 호텔 등 서비스업종 등이 특히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급속하게 크느라 성숙할 시간을 상실한 신흥 관광도시 라싸는 혼돈에 빠져 있음을 숨기지는 못했다.

밤 11시, 길을 건너다 필자가 탄 택시에 치일 뻔한 한 티베트 청년은 열려 있는 택시 창문을 향해 가래침을 뱉었다. 하루도 조용히 살 틈을 주지 않는 이 이방인에게 그는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슬프게도 라싸는 마치 ‘신이 내린 관광지’인 것처럼 도시 구석 하나하나, 티베트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외부인의 눈을 매혹시킨다. 전 도시에 향(香)을 피워 놓은 것처럼 불교 기운 농후한 성스러움은 여행하러 온 이방인들을 최면에 걸리게 만든다. 

라싸는 티베트에서 해발이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다. 중국 역사로는 당나라 시대였던 7세기 초, 송첸 감포 왕이 티베트족을 통합하여 최초의 통일국가인 토번을 세웠다. 척박한 서역 땅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키웠던 토번국은 당나라에게 위협적인 존재였고, 이에 당 태종은 화번공주(정치적 목적으로 이민족의 군주에게 출가시킨 황족의 부녀자)인 문성공주를 송첸 감포에게 시집 보냈다. 이로써 티베트에는 중국 문화와 불교 등이 전해졌고, 불교 경전을 보급하기 위한 티베트 문자도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13세기 몽고족에 점령되면서 중국 왕조인 원, 청나라의 지배를 받게 됐다. 베이징 정부는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라는 논리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토번국 시대에 당나라 문화가 전해진 것, 원·청대의 지배를 받았던 것을 주요 근거로 내세운다. 동북공정 논리처럼 ‘조금이라도 중국 피가 섞였으면 중국인’이란 식으로 우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18세기에는 영국, 러시아의 침략을 받고, 신해혁명(1911) 이후에는 중국 국민당 관리를 받다가,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단독정부를 세웠던 티베트는 아직까지 조국의 독립을 주장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립 후 1950년 티베트를 침공한 중국 공산당에 맞서서 말이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1966년에 시장자치구 정부를 구성, 티베트가 중국의 일개 지방에 불과하다는 쐐기를 박았다.

전통적인 티베트 정교합일 체제의 최고 지도자인 14대 달라이 라마(텐진 가쵸)는 1959년 인도로 망명해 망명정부를 꾸리고 전 세계적으로 무폭력주의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공로로 그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그의 가르침에 관한 책이 40여 권이나 나오는 등 말 뜻 그대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받으며 이제 중국 정부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고 있는 라싸의 상징, 포탈라궁에 직접 가 보니 천 년 가까이 티베트를 지배해온 권력의 상징이 그 높이에서부터 느껴진다. 해발 3600m인 고원도시의 희박한 산소 때문에 숨까지 헉헉대며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하는 포탈라궁은 2000년 전 티베트 인들에게는 감히 근접할 수도 없었던 황궁이었으리라.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제 불교의 관세음보살이 아닌 중국 공산당 정부의 관리를 받고 있는 포탈라궁은 그 모습마저 퍽 ‘중국스럽게’ 변해 있다는 점이다.

라싸시 한복판에 위치한 높은 포탈라궁은 마치 베이징 텐안먼과 같았다. 장안가와 같은 대로를 중간에 두고(실제로 이름도 베이징로) 널따랗게 자리 잡은 포탈라궁 광장과 그 맞은편에 우뚝 선 시장화평해방기념비는 텐안먼 광장을 방불케 했다. 중국 타 지방보다 훨씬 많은 수의 군부대가 시내 곳곳에 즐비해 있는 모습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포탈라궁 내부는 세상의 온갖 보석들을 모아둔 보물창고 같아 주눅이 들 정도였다. 바깥 빛이 차단돼 암실처럼 어두컴컴한 궁 내부는 복도 또한 거대한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어 관광 가이드나 화살표시가 없었다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옛 티베트에서 불교 사찰은 종교 뿐 아니라 정치적 지배력을 지닌 권력집단이었고, 승려를 제외한 일반인 사회는 장주와 노예가 분리된 봉건 장원제였다. 때문에 중국 정부가 티베트 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리 중 하나로 “봉건제에서 핍박받던 노예 사회를 해방시켰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옛 티베트 노예제를 복원해 놓은 파라장원에 가보니 그 시대 노예들은 조선시대의 가노(家奴), 유럽 장원제의 농노 보다 더 비참한 생활을 한 것 같다. 이 역시 정당성의 극대화를 노린 중국의 오버액션인지도 모르지만.


인민해방과 보살자비에 가려진 지배논리

티베트 농촌 마을로 들어가 보니 칭장철로가 가져온 삶의 변화는 그 지역 경제 성장보다 더 커 보였다. 이제 그들이 초원 위를 달리던 말은 오토바이로, 초원과 하나 됐던 천막집은 콘크리트 주택으로, 그들의 발을 감싸던 오색 자수신발은 짝퉁 ‘나이카’ 운동화로, 물처럼 마시는 버터차 제조용 나무 차통은 전기믹서기로 바뀌었다.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전통과 자연을 해치고 이뤄진 개발이 그들에게 편리와 경제적 풍족함을 가져다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신적 풍요와 행복으로 이어졌는지는 장담할 수 없어 보였다. ‘미개’한 유목생활에서 ‘문명적’인 정착생활로, 그리고 달라이 라마의 ‘신자(信者)’에서 공산당의 ‘인민(人民)’으로 삶의 변화를 감내하고 있는 그들은 갑작스런 적응을 강요받은 탓인지 오히려 한발 더 나간 모습으로 여행객들을 놀라게 했다.

유명한 관광지 어느 곳에나 외국인들에게 다가와 세 손가락을 비비며 돈을 요구하는 티베트인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은 모두 전경통(轉經桶)을 돌리며 옴마니반메훔을 외고 있다.

“그가 없었으면 지금 이런 수준의 생활은 불가능했어요. 마오쩌둥을 가장 존경합니다.”
필자의 ‘꼬드김’으로 일일 관광 가이드가 돼 준 티베트인 춰마양중(여, 34)의 집에는 티베트 불교의 또 다른 지도자인 판첸 라마와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판첸 라마는 5대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었던 롭상 최키 갈첸을 위해 마련한 제도로, 전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로 지목된 새 지도자가 성장할 때까지 지도력의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중국에 점령된 후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의 운명은 평행선처럼 벌어지게 됐다.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단합해 있는 티베트를 분열시키기 위해 중국 공산당이 판첸 라마를 이용, 그를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로 정했고 “공산당은 종교를 인정하지 않지만 소수민족 문화의 특수성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그의 종교 활동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싸 뿐 아니라 티베트의 중심도시인 르카저(日喀則), 린쯔(林芝) 그리고 농촌 마을 곳곳을 돌면서, 어쩌면 한족들의 말대로 티베트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은 옛 기득권층일 뿐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라오바이싱(老百性, 평범한 서민)’ 이라고 소개하는 춰마양중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결국 밥그릇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32.5%에 달하는 문맹, 1인당 GDP가 1000달러에 불과한 가난한 티베트 서민들 중에서 사상과 정책의 차이를 이해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표방하는 ‘배불리 먹여 입 막기 전략’은 어떻게 보면 매우 영리한 술수다.

나라 잃은 티베트 인들에 대한 동정과 달라이 라마의 고귀한 인품만으로 티베트의 독립을 이야기 할 만큼 중국 공산당과 티베트 망명정부, 그리고 티베트인들을 둘러싼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 티베트 인 3∼4명 중 한 명 꼴인 140만 명(티베트 망명정부 보고, 중국 공산당 점령 후 티베트족 사망자 수)이 무참히 학살된 역사는 ‘인민해방’이라는 대의로도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혜의 큰 바다’란 뜻의 달라이 라마 역시 인간이 만들어 낸 지배제도일 따름이며, 신(神)이 아니라 신격화된 사람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미 세상에 개방될 만큼 개방 돼 예전과 달라진 티베트가 달라이 라마의 정교합일 체제로 복귀한다고 해도 예전처럼 행복해 진다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불교 색채 농후한 티베트에서 석가모니의 자비 가득한 세상이 아닌 약육강식의 속세를 확인하는 일은 씁쓸했지만, 티베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속적 역학관계는 그곳의 오염되지 않은 하늘만큼이나 선명해 보였다.


정현욱 (27) 기자는 인민일보 한국발행처에서 발간하는 인터넷신문 《ⓔ人民》(www.einmin.com)의 편집팀장으로 일한다.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며 ‘중국 매체의 한국인 기자’라는 특이한 신분을 갖고 있다. 중국 내 조선족 사회에 관심이 많으며 현지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점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2006년 10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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