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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어둠 속에서 빛을 보는 아이, 타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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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깜깜한 절망일까? 아니면 희뿌연 혼돈일까?

《타쉬》(사브리에 텐베르켄 지음, 엄정순 옮김, 샘터 출간, 2001년)는 앞을 보지 못하는 티베트 소년, 타쉬에 대한 이야기다.
눈이 멀었든, 귀가 멀었든, 입이 멀었든, 장애를 숙명처럼 지고 살아가야 하는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이다. 그래서 장애가 없는 사람은 그 고통에 동정심을 보낸다. 사지가 멀쩡한 자신의 몸을 다행스럽게 바라보며……

반면에 그런 숙명적 굴레를 헤쳐 가는 장애인의 삶은 그 자체가 인간 승리의 드라마이다. 그래서 장애가 없는 사람은 그의 용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건장한 사지만큼 그렇게 멀쩡하지 못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소리와 냄새만 있는 세계,그곳은 어떤 곳일까

《타쉬》의 작가 사브리에 텐베르켄은 그런 동정심과 박수를 바라지 않는다.
작가는 눈 먼 타쉬가 '보는' 세계를 그리고 있을 뿐이다. 타쉬가 어둠 속에서 '보는' 빛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두 눈이 멀쩡한 나는 타쉬가 '보는' 세계와 빛을 볼 수 없다. 어둠 속에선 오히려 나의 눈이 멀고 말기 때문일까?

작가 텐베르켄, 그도 타쉬처럼 앞을 보지 못한다. 두 살 때부터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눈 먼 타쉬가 '보는' 세계를 눈 먼 텐베르켄이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타쉬》에는 더더욱 예사롭지 않은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 티베트에서 두 번째로 큰 소금 호수 남쵸. 호수 너머 넨첸 탕글라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호수를 한 바퀴 돌려면 걸어서 꼬박 20일이 걸린다. (책 중에서) ⓒ 샘터

어린 시절 열병을 앓고 난 후 갑자기 시력을 상실한 타쉬처럼, 눈 먼 자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캄캄한 어둠 외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타쉬의 경우처럼 눈 먼 자도 무엇인가를 본다.

"볼 수는 없고 단지 느낄 수만 있는, 소리와 냄새만 있는 세계, 그런 세계가 있을까? 그렇다면 그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서서히 그리고 끊임없이 타쉬의 감겨진 눈꺼풀 너머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소리와 냄새의 세계, 그리고 이전 기억 속에서 여전히, 아니 더욱 찬란히 빛나고 있는 색깔의 세계로 타쉬는 조금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빛의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말이다. 타쉬는 빛의 세계만을 전부라고 믿는 눈 뜬 자들의 오만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그러면서 또 다른 세계를 보라고 나를 이끌고 있다.

그들이 가뿐히 걸어갈 때마다 밝은 종소리가 찰랑거린다

타쉬가 보는 또 다른 세계는?

"타쉬는 자주 마을 어귀에 있는 죽은 나무뿌리 위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곤 했다. 그곳에서 타쉬는 아침저녁으로 그의 앞을 지나 들로 나가는 여러 종류의 마을 가축들을 만나게 된다. 가축들의 각기 다른 발굽소리를 듣고, 그들 특유의 냄새를 맡고, 가축의 목에 달린 어둡고 밝은 여러 가지의 종소리를 들었다.

▲ 날마다 넓은 들판에 앉아 돌을 만지며 물 흐르는 소리와 가축들의 종소리 그리고 바람소리를 들으며 또한 들판에서 자라는 야생식물과 들꽃 냄새를 맡으며 타쉬의 머리 속에는 새로운 이야기와 노래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었다.(책 중에서) ⓒ 샘터

아주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염소들이 있다. 염소들은 목에 작은 종을 달고 있는데 그들이 가뿐히 걸어갈 때마다 밝은 종소리가 찰랑거린다.

당나귀가 경쾌한 걸음으로 그의 앞을 지날 때에도 물론 당나귀 특유의 냄새가 난다. 달콤하고 은은한 냄새다. 타쉬는 특히 당나귀를 좋아하는데, 녀석이 조심스럽게 때론 날렵하게 걷는 모습은 정말 멋졌다.

야크도 있다. 정말 큰 놈들이다. 야크는 크고 묵직한 소리를 내는 종을 목에 달고 있는데, 그놈들이 걸을 때에는 부드러운 흙길에서조차 묵직한 소리가 난다."

나는 눈만 있으면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래서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타쉬는 귀로, 손으로, 코로 보는 세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소리의 세계, 냄새의 세계, 촉감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나는 정말 눈 뜬 장님인지 모른다.

빛의 세계에만 안존하고 있으니, 어둠이 몰려오면 덩달아 두려움이 달려든다. 어둠의 세계에서는 소리가 빛이요, 냄새가 빛이요, 촉감이 빛이다. 빛을 잃으니 두려울 수밖에.

마음에 깃든 귀신이 바로 타쉬의 동반자였다

나는 귀를 막고, 코를 막고, 손을 숨기고 살아온 셈이다. 타쉬는 그것을 한껏 열라고 한다. 그러면 더 많은 눈이 생길 거라고 한다. 귀의 눈, 코의 눈, 손의 눈 그리고 눈의 눈까지. 그 때 비로소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눈 먼 타쉬가 어떻게 새로운 눈을 가질 수 있었을까?
타쉬를 그 길로 이끈 것은 부모님도 아니었고, 선생님도 아니었다. 그것은 귀신이었다. 타쉬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귀신이 바로 타쉬의 동반자였다.

▲ 귀신을 믿는 토속 신앙에서 기인한 인사법이 있다. 낯선 사람과 처음 인사할 때 혀를 내미는 것이다. 악귀들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다니는데 사람과 다른 것은 그들의 혀가 검기 때문이다. (책 중에서) ⓒ 샘터

타쉬는 자신에게서 눈을 훔쳐간 것이 귀신이었다고 믿는다. 어머니가 염소우리 뒤편에 있는 노간주나무를 함부로 꺾어다가 울타리를 만들었는데, 아마 귀신이 그 때문에 자신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타쉬는 그 귀신을 탓하지 않는다.
"타쉬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노간주나무에 물을 주고, 뿌리도 새 흙으로 갈아주었다. 마을 귀신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화해하고 싶어서다. 바로 그 귀신 때문에 자기 눈이 멀게 되었음을 알면서도 타쉬는 그들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눈 먼 타쉬는 귀신과 친구가 된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타쉬는 귀로, 손으로, 코로 보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눈 먼 자가 보는 세상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타쉬는 마을 어귀에 있는 죽은 나무를 떠나 좀더 먼길을 나선다. 세상을 찾으러 나서고 싶었던 것이다. 그 길에도 귀신이 동행한다.
"탐험 길에 나선 타쉬는 자신의 직감과 귀신을 믿었다.

타쉬가 믿고 있는 것처럼 귀신은 타쉬 곁에서 항상 조용한 관찰자로서 그를 온갖 장애물과 모든 위험에서 보호해주었다.
귀신은 타쉬와 함께 걸으면서 마을길들을 가르쳐주었다.……초여름이 다 가기 전에 주변에 있는 모든 냄새와 소리, 모든 돌과 언덕들이 타쉬의 새로운 세계로 들어왔다."

귀신이 없는 어른의 세계, 그래서 더 어두운 세계

타쉬는 귀신을 본다. 마음의 눈으로 귀신을 본다. 그리고 귀신을 친구로 삼는다. 귀신은 그런 타쉬의 마음을 느낀다.
그래서 타쉬가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귀신을 향한 타쉬의 마음이 너무나도 애틋하게 드러난 구절을 한번 보자. 조금 길더라도 세밀하게 읽어보자. 귀신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우리 마음과는 전혀 다른 타쉬의 마음을 엿볼 수 있기에.

▲ 서서히 끊임없이 타쉬의 감겨진 눈꺼풀 너머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책 중에서) ⓒ 샘터


"밖으로 나간 아이들은 타쉬를 둘러싸고 어두운 밤 속으로 달린다. 뛰어가면서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고 짐승 울음소리를 내며 휘파람을 부르고 손뼉을 쳐댄다.
나쁜 혼령을 쫓기 위해서 하는 아이들의 의식이다. 아이들의 소리는 작은 오두막집을 사이로 울려 퍼졌으므로 그 어떤 귀신도, 그 어떤 악령도 감히 이 소리에 도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타쉬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 타쉬는 그의 귀신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타쉬가 늘 고마워하는 그 귀신이! 귀신을 쫓아내려고 아이들이 소란을 떨고 다니는 그 밤에 타쉬는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처럼 할 수가 없다.

무섭다고 말하는 타쉬를 데리고 나는 염소우리 뒤편에 있는 노간주나무로 갔다.……버터 램프에 불을 붙이고 국수 그릇을 노간주나무 뿌리 위에 올려놓았다. 마른 노간주나무 가지 위에 타쉬가 비단 카탁을 걸어놓자, 그것은 바람에 가볍게 춤추며 깜빡이는 불빛으로 부드러운 흙바닥 위에 그림자 놀이를 하는 마술을 부리고 있다. 이날 밤 귀신은 타쉬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노간주나무 뿌리 위에 올려놓았던 국수 그릇이 깨끗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가 이 국수를 먹었을까?
밤중에 배가 고파서 오두막 주위를 어슬렁거렸던 개들이었을까? 아니면 타쉬의 보시에 고마워한 귀신이었을까?"


▲ 플라는 타쉬에게 '소음을 내는 괴물' '연기를 토해내는 야크' '철사로 된 말' '철판으로 된 용' 등을 가르쳐 주었다.(책 중에서) ⓒ 샘터

타쉬의 세계에는 귀신이 있다. 귀신과 함께 우정을, 사랑을 나눈다. 타쉬의 마음은 그렇게 열려 있다. 타쉬는 열린 마음의 눈으로 새로운 세계를 본다. 그래서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본다. 희망을 본다.

현대 문명이 세상을 뒤덮으면서 귀신을 세상 밖으로 몰아낸 지도 이미 오래다. 이제는 귀신보다는 돈이나 물질이 훨씬 더 가까이 있다. 귀신을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세상 사람들을 그런 이를 보고 미쳤다고 한다.

그런 세상과 더불어 나의 마음도 팍팍해진다. 그래서 나의 세계에는 귀신이 없다. 어린 시절 내 마음속에 깃들여 있던 귀신은 내가 어른이 되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른의 팍팍한 마음속에는 귀신이 있을 자리가 없는 것인가.

귀신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마음은 닫혀 있다. 마음의 눈이 먼 상태에서 보이는 세상은 과연 어떤 것일까? 휘황찬란한 빛의 세계에 살면서 오히려 어둠을 본다. 절망과 혼돈을 본다.
정말 눈이 먼 사람은 타쉬일까? 아니면 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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