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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해마다 인도·네팔·티베트로 길 떠나는 시인 류시화

박물관

태양과 밝음과 빛 속으로 떠나는 자는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류시화 시인.
해마다 인도와 네팔, 그리고 티베트 등지를 여행하는 시인의 여행에 대한 단상과 깨달음을 시인의 최근작 ‘지구별 여행자(김영사 펴냄)’에서 발췌한다.

이야기 하나 _ 내 삶에 있어서 여행의 의미

나는 여행이 좋았다. 삶이 좋았다. 여행 도중에 만나는 기차와 별과 모래사막이 좋았다. 생은 어디에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켜놓은 불빛이 보기 좋았다. 내 정신은 여행길 위에서 망고 열매처럼 익어갔다. 그것이 내 생의 황금빛 시절이었다.

여행은 내게 진정한 행복의 척도를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철학이나 종교적인 신념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신발을 신고 나서면 나는 언제나 그 순간에, 그리고 그 장소에 존재할 수가 있었다. 과거와 미래,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여기에 살아 숨쉬는 것을 가슴 아프도록 받아들여야만 했다. 매 순간을 춤추라. 그것이 여행이 내게 가르쳐준 생의 방식이었다.

바람을 춤추라, 온 존재로 매 순간을 느끼며 생을 춤추라. 자신이 내딛는 발걸음마다 춤을 추며 신에게로 가라.

내가 다녀야 할 학교, 내가 읽어야 할 책은 세상

학교는 내게 너무 작은 것들을 가르쳤다. 내가 다녀야 할 학교는 세상의 다른 곳에 있었다.

교실은 다른 장소에 있었다. 보리수나무 밑이 그곳이고, 기차역이 그곳이고, 북적대는 신전과 사원이 그곳이었다.

사기꾼과 성자와 걸인, 그리고 동료 여행자들이 나의 스승이었다. 그들이 나는 좋았다. 때로 삶으로부터 벗어나 또 다른 생활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명상이고 수행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는 따로 책을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세상이 곧 책이었다. 기차 안이 소설책이고, 버스 지붕과 들판과 외딴 마을은 시집이었다. 그 책을 나는 읽었다. 책장을 넘기면 언제나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그 길들은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이들과, 열여덟 살에 벌써 어머니가 된 여인들과, 진리를 깨우친 성자들의 동굴로 나를 안내했다.

책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것은 시간과 풍경으로 인쇄되고, 아름다움과 기쁨과 슬픔 같은 것들로 제본된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읽는 것이 좋았다. 등장인물들 중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자도 있었고, 학식을 자랑하며 근엄한 체하는 학자들도 있었고, 자기를 학대하는 고행승 사두도 있었다. 사리를 휘날리며 들판 끝으로 점점 사라져가는 여인들도 있었다.

내 여행의 시간은 길고 또 그 길은 멀었다. 여행 중에 나는 진정한 홀로 있음을 알았고, 그 홀로 있음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법을 배웠다.

여행길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으니…

내가 언제나 부러워 마지않는 사람은 이제 처음으로 배낭을 메고 새벽의 인도 공항에 도착하는 사람이다. 그의 눈이 곧 맞닥뜨리게 될 삶의 파노라마들, 꽃과 태양, 갠지스강과 시체들, 머리에 흰 터번을 두른 만년설의 산들과 신의 문양들, 그런 것들을 나는 미리 알고 가슴을 두근거린다.

그는 버스 지붕에 올라앉아 대륙을 가로지르기도 할 것이고, 기차의 차창 밖으로 물동이를 이고 멀어져가는 인도 여인들의 자태에 매혹당하기도 할 것이다. 또한 길 위에 떨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매 순간 어디로 갈 것인가 망설여야만 하리라. 그리고 어느 싸구려 여인숙에선가 자기 자신과 만나 뜨겁게 해후하리라.

여행은 언제나 좋았다. 여행의 길마다에서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니, 그것은 하찮은 자기 연민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나는 늘 나 자신을 향해 쓰러졌지만, 또한 나 자신으로부터 일어나곤 했다.

내 생의 증거는 언제나 여행에 있었다. 내가 살아 있음을 가장 잘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은 곧 여행이었다. 여행 중일 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일 수가 있었다. 나는 여행이 좋았다. 삶이 좋았다.

여행 도중에 만나는 버스 지붕과 길과 반짝이는 소금 사막이 좋았다. 생은 어디에나 있었다.

 

이야기 둘 _ 내가 경험한 진정한 여행

그곳은 여행자가 내릴 곳이 아니었다. 새처럼 고개를 꺾고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끝없는 황무지의 연속이었다. 가도 가도 경계가 없을 것 같은 들판이 지평선 너머까지 아득히 이어져 있었다. 비냔나무인지 보리수인지 모를 커다란 나무들만 수백 미터 간격으로 군데군데 한 그루씩 서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마치 어느 화가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땅과 하늘과 나무가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미동도 하지 않았다. 먼 허공에서 날갯짓하고 있는 한 마리 검은 새만이 유일하게 그곳이 현실 속 공간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어쩌면 그 새도 나처럼 길을 잃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나는 망연자실해졌다. 여행자가 가장 힘들 때는 길이 없을 때가 아니라, 길이 너무 많을 때다.

이야기 둘_ 내가 경험한 진정한 여행

넓은 운동장에서 혼자 제식 훈련을 하는 사람처럼, 나는 배낭을 멘 채 동서남북으로 방향을 바꾸어 보았다.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곳에서 기차가 정차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었다. 한순간의 충동에 이끌려 기차를 내린 것이 잘못이었다. 그때 나는 단조롭게 반복되는 차창 밖 풍경을 보며 반쯤 졸음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기차가 이유 없이 들판 한가운데 멈춰섰고, 그 틈을 타 충동적으로 배낭을 들고 기차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내가 내리자마자 기차는 보란 듯이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 앗! 하는 사이에 나는 북인도 안드라 프라데시 주의 한 간이역에 나침반도 없이 홀로 남겨지고 말았다.

아무도 날 알지 못하는, 시간과 공간마저 지워진 낯선 세계로 떠나고 싶다는 것이 내 오랜 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꿈이 실현된 것이다. 집도 마을도 없고 태양만이 작열하는 무인 지대!

그때 나는 저만치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또 다른 사람 하나를 발견했다. 놀란 나는 그를 소리쳐 불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배낭을 메고서 걷고 있는 또 다른 나였다. 나는 그 ‘또 다른 나’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미래의 나를 향해. 그리고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니 뒤쪽에서는 또 과거의 내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북인도 들판에서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만나다

그곳은 그야말로 이상한 세계였다.

태양이 작열하고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 있는 현실 세계였지만, 동시에 그 세계에는 어렸을 때의 나도 있고, 청년기의 나도 있고, 노년기를 맞이한 나도 있었다. 북인도의 한 들판을 걷고 있는 중이었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인도의 땅 자체가 특별한 파동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선 많은 신비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 것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참을 수 없는 태양의 열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북인도 들판을 걷고 있는 수많은 나를 보았다. 그 수많은 나가 한 장소에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점점 무거워져가는 배낭을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나무에다 걸어놓았다.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도 뽑아서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아무리 가벼운 것도 무거운 법이다.

그렇게 반나절이 넘도록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이젠 너무 멀리 와서 처음의 자리로 돌아갈 수조차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기 때문에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가 없게 된….

아무것도 없는 그 풍경을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일부러 두 손을 망원경처럼 오므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때였다. 렌즈 없는 망원경 속으로 멀리 한 무리의 검은 점들이 나타났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곳으로 달려갔다.

가진 것 없지만 마음 넉넉한 인도의 집시들

들판 한가운데 집시들의 천막 몇 채가 원을 그리며 서 있었다. 집시들의 천막은 지저분하긴 했지만 누더기 천조각들을 이어 붙인 훌륭한 퀼트 작품이었다. 그 천막들 앞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지구가 둥글다는 걸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멀리 지평선들이 둥글게 휘어지고, 내가 서 있는 그곳이 세상의 중심인 것처럼 느껴졌다.

난데없는 외국인 여행자의 출현에 집시 처녀들은 연신 까르르 웃어대고, 노인들은 내가 내놓은 접대용 담배를 긴장한 손가락으로 꼬나물었다. 나도 어느새 한낮의 시련을 잊고 아이들과 장난을 쳤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집시들은 침묵과 평화로움 속에 한 지친 여행자를 말없이 받아들였다.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은 넉넉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게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중인지조차 묻지 않았다. 그렇다. 지친 여행자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아야 한다. 그는 이미 많은 여정을 지나왔을 테니까. 힌두어로 ‘손님’은 약속 없이 찾아오는 사람이란 뜻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 그대로 손님이었던 것이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차파티로 저녁을 먹고 나자, 지평선 저쪽에서 휘영청 달이 떠올랐다. 달은 무대의 막을 올리듯 수많은 반짝이 별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모닥불에 끓인 짜이와 고독, 잠든 염소들과 별들, 그 모든 것들이 넘치도록 많은 밤이었다.

당신의 여행을 이끌어주는 소중한 빛은 무엇인가

밤이 깊어가자 집시들은 퀼트 천막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전부 모닥불 옆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여인들은 옷은 말할 것도 없고 귀고리와 코걸이와 팔찌를 다 한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

잠시 후 나는 내 긴 머리카락 속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어떤 것 때문에 언뜻 잠이 깨었다. 놀라서 살펴보니 들쥐들이었다. 밤이면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 때문에 내 머리카락에 둥지를 틀려는 속셈이었다. 결국 나는 자다 깨다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다. 여인들은 모두 사리자락으로 머리를 덮고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얼른 배낭을 열고 그 속으로 얼굴을 들이민 채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꿈을 꾸었다. 대지와 하늘의 구분조차 없는 막막한 공간을 나 혼자 방랑하는 꿈이었다. 시간마저 지워진 하얀 지평선을 향해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도 없고, 반향 되어 오는 메아리나 그림자도 없는 세계였다. 나는 다만 먼 지평선을 목적지 삼아 끝없이 걸어야만 했다.

그 끝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고 내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청년의 모습으로 방랑을 시작한 나는 어느새 머리가 허연 노인의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나는 청년기에 추구하던 깨달음의 세계에 늙은 내가 도달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그 노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노인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모든 풍경이 일순간에 휙하고 지워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날이 밝았다. 이윽고 배낭을 메고 떠날 차비를 하자, 아이들과 처녀들과 노인들 모두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천막 앞에 줄지어 섰다. 나는 손을 한번 들어 보이고 나서 어제 왔던 길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집시들도 일제히 내게 손을 흔들었다.

한참을 가다 뒤돌아보니, 그때까지도 집시들이 천막 앞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100m를 가서도, 200m를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집시들은 그곳에 한 줄로 서서 여전히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들판이 너무 평지라서 헤어지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게 지평선 너머로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집시들과 한 지구별 여행자는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가장 긴 이별의 순간이었다.

자유를 찾아 생각의 비좁은 골방을 떠나 세상 속으로 가는 것이나, 또 자유를 위해 스스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나 둘 다 삶의 여행임에는 다름이 없으리라. 그 여행이 너무도 힘들어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순간이 올지라도 여행자에게는 그 여행을 이끌어주는 소중한 빛이 있다. 내게 끝없이 손을 흔들어주던 그 집시들처럼.

나는 광막한 무인 지대를 지나 태양의 볼록렌즈 속을 다시 통과하면서 철길이 있는 간이역으로 돌아왔다. 둥근 지구 저편으로 집시들의 천막도 아득히 멀어져갔다.

(자료제공/ 여성조선)

 

[본문 엿보기]

신은 어디에 있는가

동인도 비하르 주에 있는 요가 학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기차가 역을 출발하고 반 시간도 채 안 돼 배불뚝이 검표원이 나타났다. 그는 좌중을 제압하려는 듯 복도에서 걸구치는 가짜 시계 파는 청년을 떠다민 뒤,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다들 표를 보여 주시오!”

어수선하기 짝이 없던 승객들은 보따리 속에 감춰 둔 표를 찾느라 더욱 부산해지고, 표 없이 탄 아줌마는 그 틈을 타 분홍색 사리로 얼굴을 가리고 나는 듯이 뒤칸으로 피신했다. 축제 시즌이 코앞에 다가오자 한 푼 얻어 볼까 하고 탔던 걸인들도 아연 긴장했다.

검은색 카이제르 수염을 하고, 코와 볼 사이에 콩알만한 사마귀가 있는 그 검표원은 잔뜩 거만한 태도로 승객들이 내미는 표에 검은 볼펜을 찍찍 그어 댔다. 그리고는 중간쯤에 앉은 늙은 사두(힌두교의 고행 수도승)에게도 어김없이 표를 요구했다.그제서야 내가 그 사두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만큼 그는 별다른 특색이 없는 평범한 탁발승이었다. 색바랜 옷에 지저분한 장발머리를 머리꼭지에 둘둘 말아 올린 그는 남의 자리에 엉덩이만 겨우 걸치고 앉아 있었다.

영국이 인도 땅에 철도를 건설한 이후, 열 정거장 정도는 그냥 올라타 은근슬쩍 남의 자리에 끼어 앉는 것이 인도인들의 전통이자 지나친 미덕이었다. 세 명씩 앉는 좌석에 대여섯 명씩 좁혀 앉는 것은 예사였다. 하지만 이제는 철도 행정이 날로 엄격해져 표 없이 탔다가 걸리면 그 자리서 철창행이었다. 보나마나 무임승차를 한 게 분명한 그 빈털터리 사두는 검표원의 거듭되는 요구에도 묵묵부답 눈을 감고 명상하는 자세였다.

신이 눈앞에 나타나기 전에는 결코 명상을 방해받지 않겠다는 결연한 모습이었다.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검표원이 아니었다. 그는 인도인이면서도 수도승에 대한 존경심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인도는 사두들의 나라라고 외치며 문전걸식 돌아다니는 이 소똥 묻은 방랑승들을 멸시하는 눈초리가 역력했다. 그는 손바닥으로 사두의 어깨를 치며 재차 표를 요구했다.

“바바지, 어서 표를 보여 주시오!”

마침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사두가 눈을 떴다. 그러자 층층이 낀 눈곱과 함께 뜻밖에도 강렬한 빛의 눈동자가 나타났다. 그는 검표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표를 보여 달라는 말인가? 난 수십 년을 이렇게 자유롭게 돌아다녔는데.”
사두의 범상치 않은 눈빛에 약간 움찔한 검표원은 일부러 더 배를 내밀며 말했다.
“기차표 말이오. 기차를 타려면 표를 사야 할 것 아니오. 어서 표를 보여 주시오. 표가 없으면 다음 역에서 당장 내려야만 할 것이오.”
사두 역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 같은 수행자들은 돈을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우린 사람들의 적선에 의지해서만 살아간다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순간 마음이 슬퍼졌다. 영적인 나라 인도에서 고작 기차표 한 장을 두고 수행승과 검표원이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 나는 요가 학교에서 이렇게 배웠었다.

‘세상 속에서 살라, 하지만 세상에 속하진 말라.’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도라고 해도 어딜 가나 집착과 슬픔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 나라에 진리를 찾아 떠나온 내가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검표원은 여전히 카이제르 콧수염을 실룩거리며 사두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수행자든 시바 신이든, 표 없이 기차를 타는 건 법으로 금지되어 있소. 보아하니 표가 없는 모양인데, 어서 일어나시오.”

그는 늙은 사두를 당장 어디론가 끌고 가 봉변을 줄 태세였다. 주위 사람들은 그의 위압적인 태도에 눌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이때쯤 나는 내가 나서야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임승차는 위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속세를 떠난 사람을 걸인 취급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 검표원에게 돈을 집어던지며 그 사두를 그냥 내버려두라고 소리칠까 말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검표원이 문득 비아냥거리는 투로 사두에게 물었다.“도대체 당신들은 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요? 진리를 추구한다면 히말라야 동굴 속에나 앉아 있으면 될 거 아니오.”

사두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는 신을 찾아서 돌아다닌다네.”
그러자 검표원은 또다시 코 옆에 난 사마귀를 실룩거리며 반박했다.
“당신들은 항상 신은 모든 곳에 있다고 주장하지 않소. 그런데 또 어디로 신을 찾아다닌단 말이오?”
사두가 얼른 맞받아쳤다.
“모든 곳에 신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모든 곳을 돌아다니는 중이지.”
달리는 이등 열차 안에서 난데없이 사두 대 검표원의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끼어들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만만치 않은 떠돌이 수도승과 검표원이었다. 검표원은 승객들의 표를 검사해야 한다는 자신의 본분도 잊은 채 사두와의 논쟁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가 핏발 선 부리부리한 눈을 굴리며 말했다.“그럼 당신은 이 기차 안에서도 신을 발견할 수가 있소? 신이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한번 말해 보시오.”

허를 찌른 예리한 질문이었다. 그 순간 나뿐만 아니라 승객들 모두가 긴장했다. 이 예상치 않은 질문을 사두가 어떻게 받아넘길지 다들 염려하는 표정들이었다.

가난한 사두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기 앞에 서 있는 배불뚝이 검표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시선을 돌려 옆에 앉은 신혼부부와 맞은편의 시크교도 청년, 때마침 지나가는 짜이(우유와 설탕과 향료를 넣고 끓인 인도식 차) 파는 소녀, 그 건너편에 앉은 서류가방 든 신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신사의 맞은편에 앉은, 검은 선글라스에 장발머리를 한 외국인 여행자에게도 잠시 시선이 머물렀다.

그러는 사이 검표원은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손가락으로 자기의 콧수염을 잡아당기며 호통을 쳤다.

“모든 곳에 신이 있다면 당연히 이 기차 안에서도 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오? 허풍만 떨지 말고 어서 증거를 대 보시오.”

그러면서 그는 두 손을 허리에 갖다 대고 사두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거만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런 다음 궁지에 몰린 엉터리 사두를 보라는 듯 승객들을 휘둘러보았다.

이윽고 사두가 입을 열었다.

“그렇소. 난 이 기차 안에서도 신을 발견할 수가 있소.”

검표원이 다시금 무시하는 투로 윽박질렀다.

“그 신이 어디에 있다는 거요? 빨리 말해 보시오!”

사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불타는 듯한 강렬한 시선으로 자기 앞에서 있는 검표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평화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신은 지금 내 앞에 서서 나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소. 난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소. 신이 내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당신은 지금 내게 표를 요구하고 있지만, 난 당신 안에서 신을 발견하고 있소. 그것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오.”

그 순간이었다. 검표원의 태도에 큰 변화가 일었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두의 말솜씨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강렬한 눈빛이 그를 변화시켰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두의 목소리에 담긴 평화로움과 진실성이 그의 내면에 어떤 불꽃을 일으켰는지도. 어쨌든 검표원은 갑자기 어떤 것을 느낀 듯했다. 그것은 작은 깨달음이자 큰 변화였다.

공손히 태도가 바뀐 검표원은 조금 전까지의 거친 행동을 버리고, 무릎을 약간 굽혀 사두의 다리에 두 손을 갖다 댔다. 영적인 스승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인도의 오랜 예법이었다. 그리고는 부산하게 나머지 승객들의 표를 검사하며 다음 칸으로 옮겨갔다.

내게 다가와 표를 요구할 때의 검표원의 눈빛은 조금 전 가짜 시계 장수를 떠다밀 때의 눈빛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약간 물기에 젖어 있었고, 부드럽고 평화로운 빛이 검은 동자 주위에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을 바라보는 나 역시 그 온화한 빛에 전염이 되는 기분이었다.

무임승차한 사두는 눈을 감고 다시 명상에 잠기고, 승객들도 덩달아 실눈을 뜨고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자기 속의 신을 찾는 모습들이었다. 눈치 없는 짜이 파는 소녀만이 어서 짜이를 마시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인간 존재의 완성을 이룬 자, 깨달음을 얻은 자는 누구인가? 그는 천한 사람이든 귀한 사람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선한 자든 악한 자든 모든 인간 존재에게서 신을 발견하는 자라고 비하르 요가 학교의 창시자 스와미 사티야난다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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