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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탕카와 만다라 - 초펠 스님

화이트타라
티베트의 탕카와 만다라 - 초펠 스님  

 

초펠 스님(티베트 스님)


만달라


만달라의 의미는 본질을 찾는 것을 말하는데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의 뜻을 지니게 된다. 어떤 만달라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대주(四大洲)와 그 대주(大洲) 사이에 있는 소주(小洲)들과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등을 다 마음으로 만들어서 제존(諸尊)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도 있으며, 한편 천 위에 그린 만달라, 선정 만달라, 돌가루나 보석가루로 만든 만달라, 궁극적 보리심의 만달라, 통상적 보리심의 만달라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실천을 통하여 그 속에서 하나의 본질을 찾을 수 있을 때만이 만달라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만달라의 그림과 그 구조물을 보고 만달라라고 잘못 알고 있으며, 원래는 자기 스스로가 만달라 속에서 그 축복의 방편에 의지하여 본질을 깨우치는 것을 만달라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달라에 의지하면 자기의 영광을 찾을 수도 있으며, 축복을 받을 수도 있으며, 또 깨달음에 이를 수도 있으므로 만달라를 "본질의 찾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옛날에 만달라가 생명을 양육시키는 원천인 가슴(유방), 자궁 등의 우주적 상징으로서 원 안에 생식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만달라에 보이는 오여래(五如來)는 오대(五大), 오온(五蘊), 오번뇌(五煩惱), 오지(五智) 등과 연관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가 지니고 있는 오대(五大)는 오여래(五如來)의 본질로 바뀔 수 있는 재료인 것이다. 우리가 죽을 때는 이생의 거친 몸은 다음 생으로 갖고 가지 못하지만 이세한 색온(色蘊)은 바르도를 통하여 다음 생으로 가게 된다. 

색온(色蘊)을 만약 거친 것과 미세한 것으로 구별하지 않고 말하면 본래 우리의 색온(色蘊)은 시작도 끝도 없다고 한다. 이 색온(色蘊)이 없애야 되는 번뇌인 무명을 없애고 청정해진 상태로 되면 이를 비로자나라고 하며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를 얻게 되는 것이다. 

또 식(識)에는 심왕(心王)과 심소(心所)들이 있는데 심왕(心王)을 여섯 가지로 나눌수 있으며, 심소(心所) 또한 51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51가지의 심소 안에 변행(邊行)의 심소 중 하나가 수온(受蘊)이 없애야 하는 번뇌인 교만을 없애고 청정해진 상태를 보생이라 하며 평등성지(平等性智)를 얻게 되는 것이다. 

또 상온(想蘊)이 없애야 하는 번뇌인 탐욕을 없애고 청정해진 상태를 무량수 또는 아미타라고 하며 묘관찰지(妙觀察智)를 얻게 되는 것이다. 또 행온(行蘊)이 없애야 하는 번뇌인 질투를 없애고 청정해진 상태를 불공성취라고 하며 성소작지(成所作智)를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미세한 오온은 올바른 수행을 통하여 결국 오여래로 변화할 수 있지만 지금 이것은 번뇌와 함께 있으므로 번뇌를 다 없애게 된다면 거친 오온도 미세한 오온도 아니게 되므로 식들의 번뇌를 다 없앤 청정한 상태인 오여래로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오온은 오려래로 변화시키는 원인이므로 모든 중생들에게는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만달라는 다섯 가지의 색깔을 사용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티베트의 탱화 미술  

부처님의 탱화는 현재 비하르라고 알려진 중인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부처님 당시에 웃다야나(Utayana)와 빔비사라(Bimvisara)라는 왕이 서로 선물을 주고 받으며 지냈는데 어느 날 빔비사라왕은 웃다나야왕으로부터 값으로 메길 수 없는 귀한 선물을 받았다. 

빔비사라왕은 깊이 생각한 다음 그 보답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그려서 보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나중에 부처님께서 허락하시자 빔비사라왕은 붓다의 초상을 그리기 위하여 자신의 왕국 화가 몇 명을 붓다가 계신 곳으로 보냈다. 

그 화가들이 붓다를 뵙자 경이로움으로 인하여 감히 마주 보고 그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그 화가들 중의 한 명을 아주 맑은 연못으로 데리고 가서 그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리도록 하였다. 그 일을 마친 화가는 붓다의 조언으로 붓다의 모습 주위에 십이인연과 종교적 가르침의 말을 넣었다. 

웃다나야왕은 그 선물을 보고 매우 감동하여 열심히 십이인연(十二因緣)에 대하여 명상하고 기도한 결과 나중에 견도(見道)에 이르기까지 깨우치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런 스타일의 그림은 "물에서 가져 온 것(츌렌마)" 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부처님께서 카필라국에서 설법을 하실 때 일어난 일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 당시 카필라국의 왕 마하나마(Mahanama)왕비에게는 로히따(Rohita)라는 시녀가 있었다. 어느날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동안 설법을 듣고 있던 왕비가 로히따에게 왕궁으로 가서 보석으로 장식된 목걸이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녀는 길을 가던 도중에 소 치는 소년의 공격을 받고 그만 죽어버렸다. 그렇지만 그녀는 붓다에 대한 강한 믿음 때문에 그녀는 스리랑카 왕의 공주로 다시 태어났다. 그녀가 아직 어렸을 때 그녀는 자신의 전생에 붓다의 가르침을 들었던 것과 자신의 믿음을 기억해 냈다.  그래서 그녀는 붓다에게 진주로 만든 선물과 편지를 보냈다. 그 답장으로 부처님께서는 하나의 편지와 그의 몸 주위에 후광을 그려 넣은 자신의 상을 그린그림을 그녀에게 보냈다. 이 스타일은 '빛에서 가져온 상(와렌마)'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편 티베트의 탱화는 종교적 의식에 사용되었던, 복잡하게 그려진 인도의 종교미술인 빠따(Pata)와 만달라에서 유래한다. 티베트인들이 인도의 위대한 스승들에게 종교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 미술 또한 받아들이면서 인도의 영향을 받았으며, 뒤에 네팔과 중국 예술가들의 영향도 받았는데,  결과적으로는 티베트 탱화의 개발에는 네팔과 중국 화가들의 영향이 더 큰 작용을 하였다. 티베트의 미술은 인도의 서쪽에 있는 중요한 예술학교들에서 7~8세기 경에 전해진 것인데 이 학교의 영향은 중인도와 동인도를 거쳐 네팔로, 또 네팔에서 티베트로 전해졌다. 

7세기경에 송첸감뽀왕이 불교와 함께 불교예술을 티베트 전역에 전파했다. 송첸감뽀왕이 중국와 네팔의 공주와 결혼할 때 중국과 네팔의 예술가들이 티베트에오게 되었는데 그들은 예술을 통해 불교를 멀리까지 전파하였다. 

11세기 서티베트의 탱화는 전반기 50년 동안 위대한 번역승 린젠쌍뽀가 케시미르로부터 수많은 예술가들을 티베트로 데려옴으로써 티베트의 서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탱화들은 티베트 전역에서 종교적인 행사를 할 때 절이나 법당 등에 걸었다. 

케시미르 예술분만 아니라 인도 중앙예술에서 도입된 서티베트의 미술은 자신의 스타일을 개발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오래 된 양식은 17세기에 결국 사라졌다. 이슬람의 인도 침공으로 인하여 인도 예술가들의 영향이 끊긴 몇 세기 동안에도 네팔의 영향을 받은 티베트 미술은 계속하여 유지되면서 티베트 전역으로 골고루 퍼져나갔다. 

중국의 영향은 18세기까지 티베트와 중국 사이의 정치적 관계에 따라 자주 변동되었다. 고세피 투릭(Guiseppe Tuccrik)은 티베트 미술사본에서 말하기를 티베트 미술의 발전은 중국과 네팔 양식의 복합된 상태 위에 구성되고 있다고 하였다. 시간이 흘러 티베트 미술에 새로운 방향과 길을 제시하였던 이 외부의 영향은 더욱더 명확한 티베트 스타일을 만드는 데 헌신하였다.

얼마 뒤에 그들이 하던 것처럼 더이상 간단히 모방하지 않고 자신들의 방법으로 그것들을 해석하게 되었다. 요즘 티베트의 탱화는 주로 멘리(Menri), 멘살(Mensar), 까르마 가드리(Karma Gadri)의 세 가지 양식에 의존하고 있다.  이 중에서 멘리 양식이 가장 오래 되었는데 네팔의 양식을 전수했던 도빠 따시 가쵸(Dhopa Tashi Gyastso)에게서 멘라 돈둡(Menla Dhon\drup)이 1440년에 개발한 것이다. 멘살 양식은 1645년 초잉 가초(Choying Gyatso)가 개발한 것으로 멘리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또 까르마 가드리 양식은 1500년에 태어난 남카 따시(Namka Tashi)가 개발한 것으로 다른 두 개의 양식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한편 탱화를 그리는 목적은 장식으로 사용하거나 치장하여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탱화는 종교적인 것이며, 또 그 안에는 모든 종교적인 의식이 들어 있으므로 수행이나 명상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다. 

탱화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으며 또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기술이라고 하기도 하며,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으며, 명상할 때 마음의 훈련에 쉽게 이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탱화를 그리게 되면 몸이 건강해지며, 재산도 불어나고 오래 살 수 있게 된다고도 한다. 

가끔씩은 병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나,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나, 죽어서 좋은 곳에 태어나기 위해서 탱화를 그리기도 한다. 이러한 탱화들 모두는 큰스님이나 점성술사들의 조언에 따라 그리게 되는데, 아주 다양한 문양들이 있게 된 원인은 탱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다양하게 그것들을 그렸기 때문이다.  평화의 존과 분노의 존, 명상 중인 존, 즉 부처님, 보살들, 가르침을 보호하는 신장들, 스승들과 스승들의 생애 등 수많은 대상들과 또 그것들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로 인하여 다양한 탱화의 종류가 있게 된 것이다. 

또 탱화에는 존들의 모습 뿐만이 아니라 경전의 내용들을 형상화시켜 그린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아비다르마(Abhidharma) 안에서 말하는 우주의 의미들과 육도 윤회, 계율 등의 내용과 의학에 관한 내용, 점성술의 내용 등을 탱화 속에 담은 것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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