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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와 미술 - 불법의 수호신 설사자 / 김선정교수

화이트타라
부처님이 앉으시는 좌대를 사자좌獅子座라고 한다. 밀교미술에서는 조각이든 그림이든 부처님이 앉아 계신 좌대를 살펴보면 반드시 하얀 사자가 사방팔방에서 좌대를 받들어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녹색 갈기털을 휘날리는 눈부신 빛깔의 하얀 사자는 부처님의 좌대뿐만 아니라 가람으로 들어가는 입구나 법당의 문도 지킨다. 이 사자를 설산에 사는 사자라고 해서 서양인들은 ‘눈사자(Snow lion)’라고 번역하였다. 밀교에서 눈사자들이 부처님의 좌대를 떠받들고 가람과 법당을 지키게 된 유래가 다음과 같이 전해져 온다.

부처님 계시던 마을에 사냥꾼이 살고 있었다. 부처님을 만나게 되면 생업인 사냥을 하지 말라고 하실 것 같아서 늘 부처님을 피해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숨을 곳도 없는 좁다란 외길에서 부처님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부처님의 위용에 압도되어 땅에 엎드린 사냥꾼에게 부처님은 사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3가지 부탁을 하시는 것이었다.

“사냥꾼이여, 전단나무에 구운 흰 사자의 고기를 먹지 않고, 북쪽을 향해서 뚫린 굴에는 들어가지 않고, 공주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겠는가?”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냥꾼으로서 본 적도 없는 흰 사자 고기를 안 먹겠다는 약속은 너무나 쉬운 것이었다. 모두 지키겠다고 대답하자 부처님은 사냥꾼을 축복하고 떠나셨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는데 왕이 매우 사랑하는 아름다운 공주가 죽을 병이 들었다. 오직 하얀 사자의 젖만이 이 젊은 공주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였다. 왕은 누구든지 흰 사자의 젖을 구해서 공주를 살려 내는 사람이 있으면 사위를 삼겠다고 하였다. 나라 안의 많은 사냥꾼들이 흰 사자를 찾아서 떠났다. 그 사냥꾼도 흰 사자를 찾아 히말라야로 떠나는 어느 사냥단에 끼게 되었다. 설산으로 깊이깊이 들어간 사냥꾼들은 길을 잃고 먹을 것이 떨어져 여러 날이 지났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을 지경인데 북쪽으로 난 어느 굴 속에서 하얀 사자 새끼 6마리를 발견하였다. 굶주린 사냥꾼들은 크게 기뻐하며 우선 새끼들부터 잡아먹기로 하였다. 주변에 단 한그루의 나무로 서있던 전단나무를 태워서 고기를 굽는데 사냥꾼은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하였다.

많은 사람이 많지도 않은 고기를 조금 먹어봤자 배는 다시 고플 것이며 이 깊은 설산을 살아서 나가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았다. 다른 사냥꾼들이 허겁지겁 새끼들을 먹고 있는데 무시무시한 굉음과 바람을 일으키며 부모 사자들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놀란 사냥꾼들은 두려움에 정신을 잃고 굴속으로 피해 들어갔다.

그 사냥꾼은 굴 속으로 숨어봐야 성난 사자를 피할 수는 없고,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부처님과의 약속이나 지키며 죽겠다고 결심했다. 부모 사자들은 굴 속으로 쫓아 들어가 모든 사람을 갈기갈기 물어서 찢어 죽였다. 그런데 혼자서 밖에 서 있는 그 사냥꾼에게선 새끼들을 해친 흔적이며 냄새가 나지 않았다. 흰 사자들이 물었다. “왜 너만 혼자 새끼들을 잡아먹지 않은 거지?” “부처님께 드린 약속 때문에...” “부처님이 누구야?” “그분은 모든 걸 다 아시고 모든 걸 할 수 있는 분이야.” “네 말이 정말이라면, 죽은 우리 새끼들도 살려낼 수 있겠구나?”

부처님이 정말로 죽은 사자새끼들까지 살려낼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너무나 무서웠던 사냥꾼은 살릴 수 있다고 대답해 버렸다. 그러자 흰 사자들은 사냥꾼을 등에 태우고 바람처럼 달려서 설산을 내려와 부처님이 계신 곳에 이르렀다.

부처님께서는 사냥꾼이 흰 사자를 타고 달려온 모든 사정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보리씨 여섯 개를 집어 김을 불어넣고 사자들을 향해서 던졌다. 보리씨는 여섯 마리의 죽은 새끼들로 살아나 부모 사자들의 품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죽은 새끼들을 다시 찾은 흰 사자들의 놀라움과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사자들은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맹세하였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8마리 사자는 부처님을 수호하겠습니다. 부처님이 가시는 모든 곳에 우리가 가고 언제라도 부처님의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모시고 다니겠습니다.”

그리고 사냥꾼은 흰 사자의 젖을 얻어 공주의 병을 낫게 하였지만 공주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자 모두들 이상히 여겨서 이유를 물었다. ‘부처님과의 약속’ 때문이라고 대답하는데 바로 그 순간 사냥꾼은 모든 업장이 사라지고 대오 각성하여 아라한과를 얻고 부처님의 제자로 출가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눈사자가 살고 있다는 설산은 드높고 청정하되 어떤 생명도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만년설에 덮힌 그런 히말라야나 몽골의 설산에 과연 지금도 눈사자가 살고 있을까? 눈사자가 실재한다는 여러 가지 자료를 잔뜩 모아서 눈사자를 추적하러 나선 야심에 찬 학자나 기자 등 서양인의 무리를 인도와 네팔, 이곳 몽골에서도 종종 만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눈사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은 아직도 듣지 못했다. 눈사자는 그렇고 사람은 어떤가? 모든 것을 순식간에 얼려버리는 그곳에 가서 머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음식이 아닌 공기로 에너지를 흡입하고 단전 속에 잠자고 있는 두메의 불씨를 살려낸 성취자들, 요기와 요기니만이 세상 속에 존재하되 세상을 떠난 그 높고 청정한 곳에 머물 수 있다.

밀교에서 눈사자는 설산에서 심오한 명상에 잠기는 경지 높은 수행자들을 상징하며, 불법을 수호하는 보살을 상징한다. 부처님의 좌대를 받치고 문을 지키는 8마리 사자는 부처님이 나시는 곳에 언제나 함께 나신다는 觀音菩薩, 地藏菩薩, 大勢至菩薩, 文殊菩薩, 普賢菩薩, 金剛藏菩薩, 彌勒菩薩, 除障碍菩薩의 八大보살을 상징한다. 몽골 사람들이나 티벳 사람들에게 눈사자가 아직도 존재하는가 아닌가는 확인하러 찾아 나설 만큼 중요한 의문이 되지 못한다. 눈사자로 상징되는 보살들의 존재를 확신하기 때문이다. 또 음식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않고도 생명을 유지하며 두메의 불꽃을 살려서 어떤 추위도 이겨낼 수 있는 확실하고 구체적인 수행방법들이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는 아직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능력을 성취해낸 수행자들의 존재가 그토록 놀라운 기적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째서 여러 동물 중에 사자로서 부처님을 수호하게 하였으며, 보살의 상징으로 삼았을까? 왜 부처와 보살의 가르침을 사자후獅子吼라고 하는가? 그것은 사자의 성품이 보살과 같기 때문이라고 경전들은 가르친다. 사자는 모든 동물을 이겨낸 동물의 왕이다. 숲 속의 모든 동물이 사자를 두려워할망정 사자가 두려워하는 동물은 없다. 두려움이 없으면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롭다. 두려움이 없는 사자가 왕처럼 위엄 있게 숲을 거닐듯이, 나고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며 마음 속의 모든 악을 이겨낸 보살은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보살행菩薩行을 펼친다. 사자가 포효하면 숲 속의 모든 동물들이 두려움에 떨고 부처와 보살이 진리를 설하면 마음 속의 악이 맥을 못 추고 사그라진다.

절 입구와 법당 문을 지키는 한 쌍의 사자는 더 심오하고 초과학적인 상징을 담고 있다. 문의 오른쪽은 숫사자가, 왼쪽은 암사자가 지킨다. 여기서 암수는 음과 양을 상징하고 다시, 암사자는 대열락大悅樂을 숫사자는 공성空性을 상징한다. 음과 양이, 대열락과 공空이 둘이 아님을 깨우치는 것이 모든 생명의 궁극적 지향이다. 숫사자가 밟고 있는 둥근 보석공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는 ‘이신노부’라는 보석을 상징한다. 이 보석공은 홍옥紅玉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홍옥은 모든 빛을 하나로 모으고 증폭시키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물리학은 루비의 이런 성질을 이용해 레이저 광선을 만들었다). 즉 루비로 된 보석공은 모든 에너지를 모으고 증폭시켜서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보살의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 암사자는 새끼 사자를 데리고 있다. 이 새끼 사자는 모든 생명을 상징한다. 어머니가 독생자를 사랑하듯이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보살의 자비를 상징한다.

중국에 갔더니 밀교의 절뿐만 아니라 궁전의 입구에도 돌이나 철로 만든 눈사자를 세워서 지키게 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암사자가 거느린 새끼는 생략되더라도 숫사자는 반드시 보석 공을 지닌 모습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성문과 궁문을 지키는 해태도 다름 아닌 이 눈사자가 아닐까 한다.

“경복궁에 화재가 잦은 것은 마주보는 관악산의 화기火氣가 치성熾盛한 탓이라 그 화기를 누르기 위하여 한 쌍의 해태를 조성해 관악산을 향해 광화문을 지키게 하였다”는 기록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매우 밀교적인 처방이 아닐 수 없다. 광화문의 해태도 보석 공을 지니고 있다. 조각에서는 표현을 생략하지만 경전에서 설하는 눈사자의 보석공은 루비로 된 붉은색 공이다. 공의 모습인 구형球形은 밀교에서 물을 상징하는 도형(밀교에서 사대四大를 상징하는 도형들 地 - 황색의 정육면체, 水 - 청색의 구형, 火 - 적색의 3각 4면체, 風 - 녹색의 반구형)이다. 물은 청색의 구형으로 상징하는데 눈사자가 지닌 보석공이 붉은색 구형이 된 것은 그냥 물이 아니라 상극인 불을 극복한 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테라바다 불교를 신봉하는 미얀마와 태국에서도 절이나 대탑 등 성지의 입구를 사자들이 지키게 한다. 특히 미얀마에서는 모든 사원과 수행처, 탑과 성지의 입구를 거대한 한 쌍의 흰 사자들이 지키고 있다. 지금은 테라바다 불교지만 딴뜨라 불교시대를 거친 미얀마의 흰 사자도 설산의 눈사자를 의미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남방에서도 절의 입구를 사자가 지키는 것은 밀교 경전에서 보이는 다음과 같은 기록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아주 오랜 옛날에 숲 속에서 수행자들이 수행을 할 때 각종 동물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수행처에 돌, 흙, 나무 등으로 사자의 모습을 만들어 세웠다. 참새를 막기 위해 허수아비를 세우는 것처럼... 숲을 지나는 사람들이 이런 사자의 모습을 발견하면 거기 수행자가 거居하는 줄로 알고 수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피해 가거나 찾아가 공양을 올리고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다가 수행자들이 가르침을 펴기 위해 마을로 내려오면서 이 사자의 모습도 따라 내려와 수행자가 거하는 곳의 상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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