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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 스승 입적, 놀라운 칠채화신(七彩化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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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생인 캉사르 린뽀체의 칠채화신 입적 후 모습. (사진/페이스북 링하모 https://www.facebook.com/branis.katic?fref=photo)

 

골록지역의 위대한 족첸 수행자로 알려진 캉사르 린뽀체의 칠채화신 입적 후 모습(사진/www.facebook.com/branis.katic?fref=photo)

 

 

마치 어린아이 처럼 체구가 매우 작아진 모습(사진/www.facebook.com/branis.katic?fref=photo)

 

 

1938년에 태어나 향년 77세로 입적한 캉사르 린뽀체의 평상시 모습(사진/https://www.facebook.com/branis.katic?fref=photo)

 

 

티베트 동북부 암도의 골록지역에 위치한 칙딜 캉사르 딱룽 사원(Chikdril Khangsar Taklung monastery)의 캉사르 린뽀체가 향년 77세로 입적했습니다.

 

린뽀체의 입적 소식을 전한 프랑스에 거주하는 페이스북 이용자 링 하모(Ling Lhamo)는 현지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해 캉사르 린뽀체가 칠채화신으로 입적했다고 전했습니다.

 

캉사르 린뽀체는 티베트 불교 주요 4대 종파 중 하나인 닝마파의 족첸 수행자로서 골록지역에 널리 알려진 큰 스승으로서 2014년 4월 13일 명상 상태에 접어든 후 티벳력으로 보름인 4월 15일부터-16일 사이에 입적에 들었습니다.

 

복수의 현지 소식통들의 말을 빌어 소식을 전한 링 하모에 따르면 캉사르 린뽀체께서 칠채화신으로 입적해 몸이 매우 작아진 상태라고 합니다.

 

 

칠채화신에 대한 내용을 티베트의 지혜(민음사, 2012년, 소걀린포체)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해당 내용이 궁금해 해외자료에서 관련 사진을 찾았었고 당시 그 사진 속의 모습은 몸은 온데간데 없고 말그대로 터럭만 남아 있는 모습이였는데 현대 인물 중에서 칠채화신으로 입적했다는 소식을 처음 접하는지라 놀랍기만 합니다.

 

티베트의 지혜에 나온 칠채화신(七彩化身)에 대한 글을 소개합니다.

 

【족첸의 고급 수행을 통해 성취한 수행자들은 그들의 삶을 특별한 성취로 충만하게 종결지을 수 있다. 죽을 때, 그들은 자신의 육체를 만들어낸 오대(五大) 가운데 빛의 정수 속으로 몸을 재흡수시킬 수 있으며,결과적으로 그들의 육신은 빛 속에 녹아들어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이 과정은 "칠채화신" 또는 "빛의 몸"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용해 과정은 때때로 빛과 무지개의 자발적인 현출이 뒤따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대의 족첸 탄트라와 위대한 스승의 저술은 이처럼 놀랍고 신비한 현상을 상이한 범주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지난날, 적어도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을지라도, 그것은 어느 정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자신이 칠채화신을 성취한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죽은 후 방이나 텐트 속에서 일주일 동안 어느 누구도 방해하지 말고 혼자 내버려둘 것을 요청한다.

 

여드레째 되는 날 시신은 찾을 길 없고 몸의 가장 불순한 부분인 손톱, 발톱, 터럭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현상을 아마 믿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렇지만 족첸의 계보를 살펴보면 칠채화신에 도달한 수많은 수행자로 가득 차 있다.

 

뒤좀 린포체가 종종 지적했듯이, 이것은 고대에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수많은 실례 가운데 나는 가장 최근에 일어났고, 나와 개인적으로 관계가 있는 경우를 거론하고자 한다. 

 

1952년 티베트의 동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하는 가운데 칠채화신 현상이 일어난 유명한 실례가 있다. 칠채화신을 이룬 사람, 쇠남 남걀은 내 가정 교사의 아버지이자 라마 체텐의 형이었다.

 

나는 이미 1장에서 라마 체텐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는 매우 단순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는데 만트라와 불경을 조각하는 석공으로 성지를 순례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젊은 시절에는 사냥꾼이었고 위대한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가 수행자인 줄은 몰랐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숨은 요가 수행자"였던 것이다.

 

죽기 전에 얼마 동안 그는 산속에 들어가 지평선을 배경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앉아 있었다. 그는 전통적으로 전해 오는 영창(詠唱) 대신 자신의 노래를 직접 만들어 염송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의 행동에 별다른 생각을 품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돌연 병이 들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그는 점점 행복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병색이 점점 짙어지자 그의 가족이 스승과 의사를 불러왔다. 그의 아들이 그에게 모든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것을 모조리 잊었다. 어쨌든, 기억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환각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일이 잘되어 간다고 확신한다." 

 

일흔아홉 살의 나이로 죽기 직전 그는 말했다. "내가 바라는 건 죽고 나서 내 시신을 일주일 동안 옮기지 말라는 것뿐이다."

 

그가 죽자, 그의 가족은 그의 시신을 천으로 싸고 라마와 사문을 초대해 그를 위해 수행해 줄 것을 청했다.

 

그들은 집안의 작은방에 시신을 안치했다. 그는 키가 큰 사람이었지만 마치 줄어들기라도 한 듯 방안에 들이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고 사람들은 그것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집 주위에 일곱 색깔 무지개가 특이하게 감돌기 시작했다. 엿새째 되는 날 방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들은 시체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보았다.

 

그가 죽은 지 여드레째 되는 날 아침에 장의사가 그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도착했다. 천을 풀어헤치자, 그들은 손톱, 발톱, 터럭말고는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