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잡지 [샘이 깊은 물] 12월호에 실린 손혁재 박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 칼럼 전문을 싣도록 하겠습니다. 달라이라마 방한의 의미 손 혁재/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김 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오랫동안 우리 나라의 민주화와 인권향상에 힘써 왔으며, 특히 육일오 선언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를 몰고 온 것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은 김 대중 대통령 개인의 경사가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해서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기운이 흘러 넘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천구백팔십구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이 끝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을 거부하는 것은 중국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티베트의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를 중국을 분열시키는 분열주의자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티베트를 침략하고, 백이십만 명의 티베트인을 죽이고, 티베트의 전통문화를 파괴한 것은 바로 중국이다. 더구나 달라이 라마는 중국에 대해 보복하려 하지도, 폭력을 사용하려 하지도 않는다. 티베트의 자치와 티베트 문화의 보전을 요구할 뿐이다. 게다가 달라이 라마 방한준비위원회는 달라이 라마로부터 평화와 화해, 공존의 가르침만 얻을 것이며, 티벳 해방 문제 같은 정치성을 띤 행사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려 하는가.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제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지금 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향한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정치, 경제,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와 나아가 인간의 행동 양식이나 의식 구조에 이르기까지 소용돌이가 일어나지 않는 곳이 없다.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밀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일찍이 겪어 보지 못한 커다란 변화의 흐름은 지금까지 많은 영향력을 가졌던 가치와 제도 가운데 상당수를 역사의 뒤편으로 밀어낼 것이다. 마치 공산주의가 지난 이십 세기 말에 사라졌고, 우리나라에서 천구백팔십년대 말에 독재정치가 무너졌던 것처럼, 지금은 영원히 존재할 것같이 보여도 분명히 시대의 흐름에 밀려 사라지는 것들이 나타나게 된다. 우리는 사라지는 낡은 것들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그 낡은 자리를 새롭게 차지할 새로운 가치와 제도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십일 세기에 바뀌게 될, 그래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현상의 하나가 종교의 변화일 것이다. 종교의 양상이나 기능이 바뀐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미 지금도 나타나고 있는 종교의 변화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이비 종교가 판을 치고 있는 현상이다. 문명의 급격한 변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아 실현은커녕 자신의 존재 유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자아 실현의 의욕과 용기를 잃어버리면 삶에 관심이 없어지며 순간적인 단순한 쾌락을 누리는 데 빠져들게 된다. \"정신적 공황 증후군\"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윤리의 위기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되고, 도덕 의식이 마비되어 찰나의 쾌락에 빠지기 쉽고 사회에 대한 무관심이 널리 퍼지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정의를 세우는 일, 평화를 이루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이 과제의 해결에 중요한 몫을 맡아야 할 종교는 먼저 자기혁신부터 이뤄야 한다. 이런 때에 세계의 정신적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달라이 라마가 우리나라에 온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다. 종교가 분쟁의 도구나 당사자가 되는 것을 막고 종교 사이에 대화와 관용의 기운이 넘쳐나고 상생의 문화가 살아날 것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의 상호방문, 경의선 철도 복원 같은 화해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을 한층 더 높여줄 것이다. 또한 온갖 갈등으로 시달리는 우리 사회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는 데에도 이바지할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미국, 일본, 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몇십 개 나라를 방문했다. 방문하는 나라마다 종교 사이의 대화와 관용의 기운을 확산시켰다고 평가받는다.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은 \"큰 바다와 같은 지혜를 갖춘 스승\"이라는 뜻이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달라이 라마는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를 통한 세계 평화의 향상에 이바지했다. 이런 달라이 라마가 우리나라를 이제야 방문하는 것은 오히려 때늦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달라이 라마가 언제 오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통해 우리 사회에 평화의 기운이 일어난다면 그게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다른 나라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책을 바꿔 가면서까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 라마를 피하는 것은 보기 좋은 모양새가 아니다. 하루빨리 달라이 라마가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이 역시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임을 밝힐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