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법보신문 4년 전 달람살라로 달라이라마 승왕을 인터뷰를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지도자를 직접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지요. 달라이라마는 참으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신력 같은 것이 느껴졌으니까요. 온화함 속에 깃든 당당함, 자비로운 미소 속에 자연스럽게 뿜어 나오는 불교와 티베트 문화에 대한 사랑, 그리고 전 인류를 향한 끝없는 자애로움 등, 그 순간의 감동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분을 우리나라에 모시려는 움직임이 올 들어 거세게 일어나면서 우리 국민이 그분을 직접 만나 가르침을 듣는다면 정말로 큰 정신적 성숙과 변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습니다. 저 역시 줄곧 위대한 성인을 우리 땅에서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구요. 그런데, 그분의 11월 방한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기도 하고, 또 우려도 했었지만 막상 좌절되고 나니 특히 방한을 앞장서 추진했던 사람들은 헤어나기 어려운 허탈과 분노에 휩싸여 있는듯 합니다. 문화주권이 짓밟혔다는 자괴심, 인권 정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이런 일이 별다른 죄책감 없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대한 배신감을 제대로 맛보고 있는 중이지요. 중국의 압력이 우리 정부는 몹시도 두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부의 이번 결정, 그러니까 국익을 위해 얼마간의 비난과 욕설을 감수하더라도 방한을 허가할 수 없다는 식의 태도는 밥을 위해 정신과 문화를 판 행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각계의 거센 반발을 의식했는지 외교부는 국감장에 나와 내년(하반기) 방한허가를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물론 이 언급의 이면에는 ‘중국정부와 협의를 거쳐’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중국도 언제까지나 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발언이 그 점을 입증하는 것이지요. 결국 중국이 반대입장을 고수하는 한 달라이라마는 우리나라에 올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달라이라마 쪽에서는 이례적으로 우리 정부와 대통령에게 깊은 유감을 표명해 왔습니다. 그들은 이번 처사는 마땅히 세계 양식있는 인사들과 인권지도자, 그리고 NGO의 거센 비판과 반발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했습니다. 자신이 방문하는 나라의 사정을 먼저 배려하는 달라이라마 쪽의 평소 태도에 비교하면 이는 매우 강력한 표현입니다. 4년 전 한국불교와 티베트불교와의 깊은 인연을 설명하면서 꼭 한국에 가보고 싶다며 갈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던 그분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좀처럼 서운함을 드러내지 않는 분인데 오죽 실망이 컸으면 그렇게 강력히 유감을 표명했겠습니까. 이제 이번 일로 우리 정부는 몇 개의 짐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경제적) 국익을 위해 비자를 내주지 못했으니 이른 시일내에 중국과 교류를 확대해 반드시 경제를 살려내야 할 것이고, 내년에는 중국정부와 당당하게 협의를 거쳐 마땅히 국빈의 예우로-적어도 89년 교황방한 때에 정부가 행했던 것 이상으로- 모셔야 할 것입니다. 또 미숙한 외교력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국민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힌 외교부에 납득할만한 조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편집부장 이학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