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조선일보 ## 오랜 공부·수련에 담겨진 티베트민족의 ‘아픈 현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대작 ‘쿤둔’이 들어왔다. 하여 모처럼 시사회장을 다녀왔다. 서양 종교에서와는 달리 동양의 신앙과 예베의 대상은 공자나 불타의 경우에서처럼 사람이 성인의 단계를 거쳐 신의 반열에까지 오르는 과정을 거친다. 영화 ‘쿤둔’의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민족에게 석가모니의 불법을 널리 펴나가는 최고의 지체이자 절대 믿음의 대상으로서 신의 반열로 숭앙받는 반인반신의 존재이다. 그러나 티베트의 달라이라마(구세주)는 처음부터 그런 절대자로 태어나 군림하지 않는다. 얼마간의 비범성을 지녔으되 다름 사람들처럼 평범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라마교 사제들의 ‘발견’과 ‘모심’을 받는 과정을 치르고, 신앙과 정치모든 면에서 진정한 티베트 민족 최고 지도자 ‘달라이라마 등극’을 위한 오랜 공부와 수련을 거친다. 그 공부와 수련의 마당이 다름 아닌 라마교(티베트 불교)의 자비와 평등 평화 정신이며 티베트 민족의 역사와 삶의 현실이다. 이 영화가 내게 특히 흥미로운 것은 한 인간이 살아 있는 신의 지위에까지 이르는 신앙의 수평적 구세주관과 상상력 때문이다. 화면이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것은 그의 공부와 수련의 마당이 티베트 민족 역사와 삶의 현실에 직접적으로 관련 되어서인 것이다. 마틴 스콜세지가 이 반인반신 서사극에 정력을 쏟은 것도 서양인으로선 다만 신비스럽기만 했을 먼 나라의 세계보다도 바로 그런 동양적 구원사상과 지난한 수련과정의 소중함 때문이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서구 기술문명의 폭력과 현실정치 이념으로 무장한 이웃 강대국의 폭력 앞에 안타깝게 스러져 가는 한 민족의 운명과 라마교의 저항을 보이기 위해 감독이 그토록 충격적인 화면들(라마승들의 집단 희생 장면은 이 영화에서 장엄한 비극미의 절정을 이른다)을 동원해야 할만큼 서양영화의 상상력은 극단에 이른 것인지 모른다. 영화에서 모택동은 “종교는 독(아편)이다”라고 말한다. 당시 티베트의 현실과 관련하여 일리가 있을 법한 정복자의 충고를 부정적으로 처리한 감독의 진심은 필경 지상의 어떤 힘이나 풍요보다도 정신의 평화와 믿음, 삶의 화해와 구원이 앞서는 동양종교 라마교의 정신적 표상인 달라이라마 편에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달라이라마가 망명정부 수립을 위한 인도행 탈출길에 자신의 월경로를 열기 위해 중국군대의 학살한 현장을 지나가(자비와 평화의 삶을 위한 만인 구세자로서 그 살육의 현장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고통이라니!) 만난 인도 수비군과 나눈 몇 마디 대화는 그토록 힘있게 가슴을 울릴 수가 없다. “어디서 오는 누구인가?” 수비대의 물음에 청년 달라이라마는 대답한다. “나는 티베트의 일개 승려라오.” 그러자 수비군이 다시 묻는다. “구원의 불타란 말이겠지?” 이에 달라이라마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나는 물에 비치는 달과 같은 그림자일 뿐, 당신의 선함이 나를 통해 그렇게 비치기를 바랄 뿐이라오.” 이 한마디가 감동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그렇게 쌀쌀하던 날 저녁 시사회장 먼 길 다녀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이청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