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불교신문 어느날 부처님은 코살라국의 임금 비두다바가 석가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군대가 지나가는 길목의 고목나무 아래에 자리잡고 앉았다. 부처님을 목격한 비두다바 임금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가까운 곳에 무성한 숲들이 많은데 어찌하여 하필 고목나무 아래에 앉아계십니까? ’ ‘대왕이시여! 사람에게 종족이란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숲과 같은 것입니다. 종족의 숲을 잃는 것은 한낮의 고목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마음을 헤아린 임금이 두 차례에 걸쳐 군대를 이끌고 되돌아 갔다. 하지만 끝내 원한과 복수심을 극복하지 못한 비두다바 임금의 공격에 의해 석가족이 멸망되었다. 현장 〈서역기〉 현장법사는 정복자와 부처님의 만남을 매우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잘 알고 있듯이 인도의 태양열은 살인적이다. 한낮의 고목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행위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죽음을 뜻한다. 죽음을 각오한 부처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만적인 복수의 전쟁으로 석가족이 멸망되었다. 비록 현실적으로는 좌절을 겪었지만 부처님의 참뜻인 비폭력·평화정신은 불교역사의 아름답고 위대한 전통으로 씨뿌려졌다. 길고긴 세월동안 수없이 좌절을 겪으면서도 불교도들의 줄기찬 노력에 의하여 비폭력 평화의 전통이 역사의 지하수 되어 흘러왔다. 그결과 인류역사상 유일한 비폭력 평화의 종교로 평가받고 나아가 역사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리고 2천6백여년전 붓다에 의해 씨뿌려진 비폭력 평화의 싹이 오늘 달라이라마라는 인물에 의해 다시 아름답게 꽃피워지고 있다. 비폭력 평화의 전통이 달라이라마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현대인류사회의 목마름을 적셔주는 옹달샘으로 솟아나기 시작했다. 참으로 위대한 만남이요, 태어남이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불교도들이 희망의 옹달샘으로 등장한 달라이라마를 초청 하고자 정성을 쏟고 있다. 너무나 멋지고 시의적절한 일이다. 모처럼 국민적 공감과 호응을 받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불교의 참모습과 저력,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보는 듯 하다.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는 일에 큰의미를 부여하고 기뻐해야 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첫째, 인류역사를 살상과 파괴의 비극으로 얼룩지게 한 가장 큰 원인은 맹목적인 소유와 지배를 위한 야만적인 힘의 논리이다.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지와 탐욕에 근거한 강대국(중국)들의 패권주의를 극복 청산해야 한다. 둘째, 비폭력 평화의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영원한 염원이다. 인류의 염원인 비폭력 평화의 꽃이 꺾이는 것은 불교사상의 좌절이요. 인류사회의 절망을 의미한다. 불교의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하고 인류의 염원을 실현하고자 자신의 전존재를 바치는 분이 달라이 라마다. 달라이 라마가 가꾸고 있는 비폭력 평화의 꽃은 인류의 바램이요. 역사의 희망이다. 희망을 위해 비폭력 평화의 꽃은 잘 보호되고 가꾸어져야 한다. 이 일은 한국불교를 한국불교답게 하는 일이다.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희망의 새살을 돋게 하는 길이다. 비극의 인류역사를 청산하고 참다운 평화의 역사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너나없이 이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국민적 호응이 대단히 높다. 당국의 태도도 지극히 고무적이다. 그런데 불교계의 태도가 지나치게 미온적이고 그 역할이 미약하다. 너무나 불교적이고 너무나 의미있는 일인만큼 범불교, 범종단적으로 나서야 마땅하다. 다만 한가지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철처하리 만큼 겸허하게 배우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불교의 사상과 정신이 역사 현실에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 제대로 배우는 계기가 되도록 준비했으면 한다. 티베트불교(달라이라마)의 옳고 그름에 대한 논란과 아쉬운 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은 참으로 의미있고 기분좋은 일임에 틀림이 없다. 서로에게 유익한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범불교적 역량이 모아지길 기대하며 그동안의 수고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